[특파원리포트] 지구 반대편에 여의도 79배 한국땅…방치 41년만에 새로운 계기?

입력 2019.01.10 (09:31) 수정 2019.01.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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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있는 한국 땅은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영화 '파 앤드 어웨이'를 연상하게 한다. 말을 타고 달리다 깃발을 꽂는 곳이 자기 땅이 되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그린 영화에서처럼 한국 국유지는 그야말로 광활한 땅이다.

2만여 헥타르, 서울시의 3분의 1 만한 면적이고 여의도의 79배 규모다. 이 넓은 한국땅이 왜 40여 년간 방치돼 있었던 것일까? 매입 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에 한국의 국유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야따마우까(옛 마을) 한국 농장…끝이 보이지 않는 땅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0 킬로미터 떨어진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 수도에서 이곳까지는 항공기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공항에서부터 차로 150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한국 국유지를 만날 수 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깜포 코레아(한국 농장)'로 널리 알려진 한국 국유지, 농장 명은 '야따마우까'다. 인디오 말로 '옛 마을'이란 뜻이다. 드론을 띄워 한국 땅을 촬영했다.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땅에 곳곳에는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국유지 관리인이 현지인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경계 말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경계말뚝의 총 길이가 무려 100킬로미터, 설치에만도 2년이 걸렸다. 경계말뚝만으로도 땅의 면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 농장’ 쓰인 땅 구획도‘한국 농장’ 쓰인 땅 구획도

관리인이 세 차례 바뀐 세월

한국 정부가 영농이민을 위해 이 땅을 매입한 때는 1978년, 그간 관리인이 세 번 바뀌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현지 관리인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현직 관리인은 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이지만 이 땅은 개발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이 땅에 대한 개발 논의가 시작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땅 개발과 관리를 담당할 부처 이관에 대한 논란만 거듭됐다. 그동안 관리비와 토지세 등으로 한 해 수만 달러를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경계 말뚝 ‘코이카’ 소유 팻말경계 말뚝 ‘코이카’ 소유 팻말

동의서가 ‘불하’ ‘양도’로 와전

현재 땅 소유주는 외교부 소속의 코이카, 국제협력단이다. 경계말뚝에 걸려 있는 녹슨 팻말에도 코이카의 땅이라는 글자가 확연하게 보였다.

국유지 안에는 5가구의 농민들이 살고 있었다. 2017년 일부 한국 언론들이 국유지 일부를 무상으로 양도받았다고 보도한 거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취재팀은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당시 무상 양도했다는 근거가 된 스페인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2015년 소유주인 코이카와 서류를 작성했던 거주민 파블로 씨를 직접 만나봤다.

취재팀은 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거주를 시작했던 때가 한국 정부가 땅을 매입하기 전인 것으로 확인했다. 아르헨티나 법에 따르면 무단 점유를 하더라도 10년 이상이 되면 거주권을 갖게 된다. 한국 정부가 이 땅에서 이들을 내쫓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코이카와 이들이 서명한 서류명도 계약서가 아닌 동의서였다. 당시 서류 작성 과정에 참석했던 스페인어 번역가는 분명하게 이 서류는 계약서가 아닌 동의서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개발 계획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거주민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라면 양도하는 땅의 면적을 명시해야 하지만 동의서에는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관 “공문으로 요청했나요?”

아르헨티나 정부 측은 한국 국유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땅이 위치한 주 정부의 책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국유지로 향하기 전에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관에 미리 전화했다. 주 정부와 대사관이 이 땅에 대해 논의해 왔기 때문에 주 정부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 등의 정보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사관 담당자의 답변은 취재팀을 당황하게 했다.

"본부(한국 외교부)에 공문을 보냈나요? 공문으로 요청하지 않았다면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지, 아르헨티나 정부의 담당 부서와 담당자 정도를 묻는 말에 공문을 보내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통상적이지 않은 까칠한 답변에 왜 대사관 측이 이리 민감하게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축산단지 개발 계획”…“2년간 잠잠”

아르헨티나 주 정부와 직접 연락해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 정부의 산림보호청장이었다. 한국 국유지를 담당하는 총책임자다.

청장은 코이카 측이 2016년 개발계획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유지내 8,000 헥타르를 축산단지로 개발하고 1,500헥타르에서 소먹이 풀을 재배하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진행된 사항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청장의 말이었다. 더욱이 2017년 국유지 안에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1,500헥타르를 태워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복구계획이 제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땅을 방치한 뒤 개발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상황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국유지 옆 아르헨티나 축산 농장국유지 옆 아르헨티나 축산 농장

국유지 인접한 축산 농장

흙먼지를 날리며 벌판에서 축사로 돌아오는 소 떼들, 국유지와 인접한 축산 농장의 모습이다. 1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농가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자 수출이 늘었고 수출업자는 물론 축산업자들도 분주해졌다.

땅이 건조하다 보니 2곳의 우물을 파고 땅 곳곳에 관을 연결해 물을 공급하며 소먹이 풀을 재배하고 소를 키운다. 소 1마리 키우는 데 필요한 땅은 2헥타르 정도라고 한다. 건조한 시기를 고려해 풀을 먹일 수 있는 축산 면적이다. 2018년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의 아르헨티나 국유지 타당성 조사 결과에서도 농사보다는 축산업이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인 영농인 활용 방안 강구”…새로운 계기 마련

아르헨티나 동포들에게는 이 땅이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다. 2018년 10월 해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던 여야 의원들도 땅을 매각하는 쪽으로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땅을 관리하기 쉽지 않은 데다 누구도 선뜻 개발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기 때문에 파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뒤 이 같은 매각 분위기는 반전됐다. 2018년 11월 말 G20 정상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동포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양상모 아르헨티나 한인 농업협회 회장은 대통령에게 "농업 이민 장려라는 최초 구입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에게 "동포 한인 영농인들에게 임차하는 방안이나 영농인들에게 장기 분할 상환 등으로 인계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매입한 지 41년을 맞는 2019년, 아르헨티나 한국땅의 미래가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될지, 아니면 지난 시절과 마찬가지로 방치 햇수만 늘리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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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지구 반대편에 여의도 79배 한국땅…방치 41년만에 새로운 계기?
    • 입력 2019-01-10 09:31:56
    • 수정2019-01-10 14:21:40
    특파원 리포트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있는 한국 땅은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영화 '파 앤드 어웨이'를 연상하게 한다. 말을 타고 달리다 깃발을 꽂는 곳이 자기 땅이 되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그린 영화에서처럼 한국 국유지는 그야말로 광활한 땅이다.

2만여 헥타르, 서울시의 3분의 1 만한 면적이고 여의도의 79배 규모다. 이 넓은 한국땅이 왜 40여 년간 방치돼 있었던 것일까? 매입 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에 한국의 국유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야따마우까(옛 마을) 한국 농장…끝이 보이지 않는 땅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0 킬로미터 떨어진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 수도에서 이곳까지는 항공기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공항에서부터 차로 150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한국 국유지를 만날 수 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깜포 코레아(한국 농장)'로 널리 알려진 한국 국유지, 농장 명은 '야따마우까'다. 인디오 말로 '옛 마을'이란 뜻이다. 드론을 띄워 한국 땅을 촬영했다.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땅에 곳곳에는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국유지 관리인이 현지인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경계 말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경계말뚝의 총 길이가 무려 100킬로미터, 설치에만도 2년이 걸렸다. 경계말뚝만으로도 땅의 면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 농장’ 쓰인 땅 구획도
관리인이 세 차례 바뀐 세월

한국 정부가 영농이민을 위해 이 땅을 매입한 때는 1978년, 그간 관리인이 세 번 바뀌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현지 관리인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다고 현직 관리인은 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이지만 이 땅은 개발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이 땅에 대한 개발 논의가 시작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땅 개발과 관리를 담당할 부처 이관에 대한 논란만 거듭됐다. 그동안 관리비와 토지세 등으로 한 해 수만 달러를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경계 말뚝 ‘코이카’ 소유 팻말
동의서가 ‘불하’ ‘양도’로 와전

현재 땅 소유주는 외교부 소속의 코이카, 국제협력단이다. 경계말뚝에 걸려 있는 녹슨 팻말에도 코이카의 땅이라는 글자가 확연하게 보였다.

국유지 안에는 5가구의 농민들이 살고 있었다. 2017년 일부 한국 언론들이 국유지 일부를 무상으로 양도받았다고 보도한 거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취재팀은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당시 무상 양도했다는 근거가 된 스페인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2015년 소유주인 코이카와 서류를 작성했던 거주민 파블로 씨를 직접 만나봤다.

취재팀은 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거주를 시작했던 때가 한국 정부가 땅을 매입하기 전인 것으로 확인했다. 아르헨티나 법에 따르면 무단 점유를 하더라도 10년 이상이 되면 거주권을 갖게 된다. 한국 정부가 이 땅에서 이들을 내쫓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코이카와 이들이 서명한 서류명도 계약서가 아닌 동의서였다. 당시 서류 작성 과정에 참석했던 스페인어 번역가는 분명하게 이 서류는 계약서가 아닌 동의서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개발 계획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거주민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라면 양도하는 땅의 면적을 명시해야 하지만 동의서에는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관 “공문으로 요청했나요?”

아르헨티나 정부 측은 한국 국유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땅이 위치한 주 정부의 책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국유지로 향하기 전에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관에 미리 전화했다. 주 정부와 대사관이 이 땅에 대해 논의해 왔기 때문에 주 정부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 등의 정보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사관 담당자의 답변은 취재팀을 당황하게 했다.

"본부(한국 외교부)에 공문을 보냈나요? 공문으로 요청하지 않았다면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지, 아르헨티나 정부의 담당 부서와 담당자 정도를 묻는 말에 공문을 보내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통상적이지 않은 까칠한 답변에 왜 대사관 측이 이리 민감하게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축산단지 개발 계획”…“2년간 잠잠”

아르헨티나 주 정부와 직접 연락해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 정부의 산림보호청장이었다. 한국 국유지를 담당하는 총책임자다.

청장은 코이카 측이 2016년 개발계획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유지내 8,000 헥타르를 축산단지로 개발하고 1,500헥타르에서 소먹이 풀을 재배하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진행된 사항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청장의 말이었다. 더욱이 2017년 국유지 안에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1,500헥타르를 태워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복구계획이 제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땅을 방치한 뒤 개발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상황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국유지 옆 아르헨티나 축산 농장
국유지 인접한 축산 농장

흙먼지를 날리며 벌판에서 축사로 돌아오는 소 떼들, 국유지와 인접한 축산 농장의 모습이다. 1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농가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자 수출이 늘었고 수출업자는 물론 축산업자들도 분주해졌다.

땅이 건조하다 보니 2곳의 우물을 파고 땅 곳곳에 관을 연결해 물을 공급하며 소먹이 풀을 재배하고 소를 키운다. 소 1마리 키우는 데 필요한 땅은 2헥타르 정도라고 한다. 건조한 시기를 고려해 풀을 먹일 수 있는 축산 면적이다. 2018년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의 아르헨티나 국유지 타당성 조사 결과에서도 농사보다는 축산업이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인 영농인 활용 방안 강구”…새로운 계기 마련

아르헨티나 동포들에게는 이 땅이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다. 2018년 10월 해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던 여야 의원들도 땅을 매각하는 쪽으로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땅을 관리하기 쉽지 않은 데다 누구도 선뜻 개발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기 때문에 파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뒤 이 같은 매각 분위기는 반전됐다. 2018년 11월 말 G20 정상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동포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양상모 아르헨티나 한인 농업협회 회장은 대통령에게 "농업 이민 장려라는 최초 구입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한국 대사에게 "동포 한인 영농인들에게 임차하는 방안이나 영농인들에게 장기 분할 상환 등으로 인계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매입한 지 41년을 맞는 2019년, 아르헨티나 한국땅의 미래가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될지, 아니면 지난 시절과 마찬가지로 방치 햇수만 늘리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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