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으슥콜을 아시나요? 동화책에 담긴 엄마 나라 이야기

입력 2019.01.13 (08:01) 수정 2019.01.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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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인은 책을 좋아하지 않을지언정, 내 아이 만큼은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 말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헝겊책을 안기고, 글도 못 읽는 아이에게 그림책과 동화책 사주는 이유겠죠.

이런 육아의 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 가정의 엄마와 자녀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엄마가 자란 곳은 낯선 타국, 엄마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아이에게 엄마 나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아이에게 내가 듣고 자란 동화를 들려주기 위해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이 동화책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 '과일의 여왕' 두리안의 전설


과일의 여왕이라는 두리안, 고약한 냄새와 심술궂게 생긴 모양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는 녀석입니다.

10여 년 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오혜진 씨. 혜진 씨가 살던 필리핀에서는 두리안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얘기죠.

두 아이의 엄마인 혜진 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자신이 어릴 적 재미있게 봤던 동화를 아이에게도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혜진 씨의 ‘엄마 나라 동화’ 만들기가 시작됐습니다.

『두리안의 전설』은 엄마와 자녀가 함께 만든 책입니다. 지혜 씨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두 아이가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린 겁니다. 엄마 나라를 소개하고 싶은 작전이 성공했는지, 아이들은 지혜 씨에게 두리안을 사달라고 했답니다.

# 으슥콜을 아시나요?


으슥콜, 이건 또 뭘까요? 낯선 발음에 신조어인가 싶지만,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호수라는데, 한국인들에겐 여전히 낯설 뿐입니다.

우리에겐 축구 상대국으로 더 익숙한 키르기스스탄, 어떤 나라일까요?

3년 전 국적을 취득한 박지혜 씨, 한국에서 16년째 살고 있지만, 모국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큽니다.

박 씨는 “사람들이 키르기스스탄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며 아쉬움을 전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알려주고 싶어 동화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에 자신이 없던 박 씨는 그림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했는데, 작가에게 키르기스스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크고 널찍한 키르기스스탄의 자연경관,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장신구를 표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지혜 씨는 “중앙아시아를 한국보다 작고 가난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런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애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캄보디아, 필리핀, 일본…세계 문화 맛보기


엄마들이 만든 동화책은 세계 문화 맛보기 같습니다.

캄보디아는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신가요? 캄보디아 전래 동화 『놈반쪽』은 명절 음식 '놈반쪽'의 기원을 따라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놈반쪽' 가게의 그림인데요, 그림 작가들이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그리자 이 책을 쓴 호렝 씨가 수정을 요구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줄 선 사람들 옆으로 사람 그림을 추가해 보완했다고 합니다.

맛있는 열대과일 망고, 이 과일에도 전설이 있었습니다. '앙가'라는 마음씨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아빠가 있는 친구만 괴롭히는 '두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이 위기에 빠지고, 앙가는 자신을 희생해 마을을 구합니다. 앙가가 떠난 집 마당에 과일나무가 자랐는데, 그 열매가 익으면 달콤하지만, 익지 않을 땐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신맛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이 과일을 먹으면 앙가처럼 두 얼굴이 된다고 하여 '앙가 → 망고'로 불렀다는 사연입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전래 동화를 보면, 권선징악이 뚜렷한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유사합니다. 일본 동화 『데굴데굴 주먹밥』은 주먹밥을 쥐구멍으로 빠뜨린 할아버지가 큰 보물을 받은 것을 보고, 이웃집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따라 하다가 보물은커녕 고생만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혹 떼려다 혹 붙여온 '혹부리 영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 다문화 엄마에게 자신감이 필요한 이유


엄마 나라 동화책 만들기는 한 사회적기업의 노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만든 동화책이 차곡차곡 쌓여 60권에 달합니다.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중국과 일본까지 그 나라도 다양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됐다는 증표겠죠.

‘엄마 나라 동화책’은 한국어와 모어, 그리고 영어로 구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초등학교 다문화 교육 현장에서도 사용되고, 더 나아가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엄마 나라에도 전해졌습니다.

『두리안의 전설』을 쓴 오지혜 씨는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모교를 방문했습니다. 책을 기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혜 씨는 “다니던 학교를 찾아 책을 기증하니 뿌듯했다”며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합니다. 전달된 동화책은 한국어 교육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전문성 양성에 힘쓰고 있는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언어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전문성”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동화책 만들기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 엄마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엄마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활동입니다. 최 대표는 “자신감을 찾는 엄마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엄마 나라 동화책, 아마추어가 만든 동화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엄마에 대한 이해, 사회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나라 간 이해를 돕는 '다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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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으슥콜을 아시나요? 동화책에 담긴 엄마 나라 이야기
    • 입력 2019-01-13 08:01:36
    • 수정2019-01-13 08:10:52
    취재K
엄마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인은 책을 좋아하지 않을지언정, 내 아이 만큼은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 말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헝겊책을 안기고, 글도 못 읽는 아이에게 그림책과 동화책 사주는 이유겠죠.

이런 육아의 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 가정의 엄마와 자녀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엄마가 자란 곳은 낯선 타국, 엄마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아이에게 엄마 나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아이에게 내가 듣고 자란 동화를 들려주기 위해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이 동화책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 '과일의 여왕' 두리안의 전설


과일의 여왕이라는 두리안, 고약한 냄새와 심술궂게 생긴 모양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는 녀석입니다.

10여 년 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오혜진 씨. 혜진 씨가 살던 필리핀에서는 두리안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얘기죠.

두 아이의 엄마인 혜진 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자신이 어릴 적 재미있게 봤던 동화를 아이에게도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혜진 씨의 ‘엄마 나라 동화’ 만들기가 시작됐습니다.

『두리안의 전설』은 엄마와 자녀가 함께 만든 책입니다. 지혜 씨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두 아이가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린 겁니다. 엄마 나라를 소개하고 싶은 작전이 성공했는지, 아이들은 지혜 씨에게 두리안을 사달라고 했답니다.

# 으슥콜을 아시나요?


으슥콜, 이건 또 뭘까요? 낯선 발음에 신조어인가 싶지만,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호수라는데, 한국인들에겐 여전히 낯설 뿐입니다.

우리에겐 축구 상대국으로 더 익숙한 키르기스스탄, 어떤 나라일까요?

3년 전 국적을 취득한 박지혜 씨, 한국에서 16년째 살고 있지만, 모국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큽니다.

박 씨는 “사람들이 키르기스스탄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며 아쉬움을 전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알려주고 싶어 동화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에 자신이 없던 박 씨는 그림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했는데, 작가에게 키르기스스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크고 널찍한 키르기스스탄의 자연경관,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장신구를 표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지혜 씨는 “중앙아시아를 한국보다 작고 가난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런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애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캄보디아, 필리핀, 일본…세계 문화 맛보기


엄마들이 만든 동화책은 세계 문화 맛보기 같습니다.

캄보디아는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신가요? 캄보디아 전래 동화 『놈반쪽』은 명절 음식 '놈반쪽'의 기원을 따라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놈반쪽' 가게의 그림인데요, 그림 작가들이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그리자 이 책을 쓴 호렝 씨가 수정을 요구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줄 선 사람들 옆으로 사람 그림을 추가해 보완했다고 합니다.

맛있는 열대과일 망고, 이 과일에도 전설이 있었습니다. '앙가'라는 마음씨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아빠가 있는 친구만 괴롭히는 '두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이 위기에 빠지고, 앙가는 자신을 희생해 마을을 구합니다. 앙가가 떠난 집 마당에 과일나무가 자랐는데, 그 열매가 익으면 달콤하지만, 익지 않을 땐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신맛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이 과일을 먹으면 앙가처럼 두 얼굴이 된다고 하여 '앙가 → 망고'로 불렀다는 사연입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전래 동화를 보면, 권선징악이 뚜렷한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유사합니다. 일본 동화 『데굴데굴 주먹밥』은 주먹밥을 쥐구멍으로 빠뜨린 할아버지가 큰 보물을 받은 것을 보고, 이웃집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따라 하다가 보물은커녕 고생만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혹 떼려다 혹 붙여온 '혹부리 영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 다문화 엄마에게 자신감이 필요한 이유


엄마 나라 동화책 만들기는 한 사회적기업의 노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만든 동화책이 차곡차곡 쌓여 60권에 달합니다.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중국과 일본까지 그 나라도 다양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됐다는 증표겠죠.

‘엄마 나라 동화책’은 한국어와 모어, 그리고 영어로 구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초등학교 다문화 교육 현장에서도 사용되고, 더 나아가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엄마 나라에도 전해졌습니다.

『두리안의 전설』을 쓴 오지혜 씨는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모교를 방문했습니다. 책을 기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혜 씨는 “다니던 학교를 찾아 책을 기증하니 뿌듯했다”며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합니다. 전달된 동화책은 한국어 교육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전문성 양성에 힘쓰고 있는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언어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전문성”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동화책 만들기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 엄마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엄마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시작된 활동입니다. 최 대표는 “자신감을 찾는 엄마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엄마 나라 동화책, 아마추어가 만든 동화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엄마에 대한 이해, 사회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나라 간 이해를 돕는 '다문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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