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300마리 삶아 죽여도…“실형” 없는 동물보호법

입력 2019.01.19 (19:00) 수정 2019.01.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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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박소연 대표가 촉발시킨 유기견 안락사 논란이 잦아들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이미 검찰에 고발됐고, 검찰과 법원에서는 사기·횡령 혐의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보다 더 중하게 다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태를 키운 핵심은 '동물권'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뜨거운 논쟁 역시 결국 '동물권'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법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실형'없는 동물 학대, 왜?

케어 박소연 대표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약 1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08년, 대구시에서 활동하던 한 동물보호협회의 이사장이 두 달 동안 구조한 유기동물 179마리를 안락사시켰습니다. 이 단체는 심지어 7개 구청과 유기동물 보호 관리 사업 위·수탁 계약을 맺은 곳이었습니다.

결국,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 해 법원은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동물보호법 위반에 따른 최고형은 벌금 500만 원이었습니다. 실형 선고는 아예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이후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법이 개정됩니다. 2011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실형 선고가 가능해졌는데요, 그럼 비교적 최근 판결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고양이 300마리 삶아 죽인 남성
: 2014년 2월부터 1년여 동안 300마리의 길고양이를 포획한 뒤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 죽인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16년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당시 재판부는 '동물보호법의 입법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어려운 생계를 위해 범행을 했고, 동물의 생명에 대한 경시적 경향으로 동물을 학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참작돼 실형 선고를 피한 겁니다.

▶강아지 78마리 굶겨 죽인 애견판매업자
: 애견판매점을 운영하던 업주가 일부러 사료, 물을 주지 않아 강아지 78마리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적자 영업이었습니다. 운영이 어려워지자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거나 혹은 예전에 병을 앓은 전력이 있어 사실상 판매가 힘들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들을 골라 굶겨 죽인 겁니다.

지난해 7월, 이 업자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두 사례 모두 상당히 많은 수의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인데, 집행유예가 나왔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최대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사실상 실형 선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유가 뭘까요?

첫째, 애초에 법정 최고형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대 징역 2년이니 양형에 참작할만한 유리한 사정이 있으면 바로 집행유예가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부감입니다. 동물을 죽였다고 사람에게 징역을 살도록 선고하는 일에 아직 거부감이 크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결국 법원이 실형 선고가 필요할 만큼 동물에 대한 범죄를 무겁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가족 같은' 반려견이 죽었는데...50만 원만 물어내라?

사실 동물을 바라보는 법의 시선은 상당히 냉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할 정도로 동물과 사람의 유대감은 각별한데 '가족 같고 사랑스러운' 반려 동물이 죽어도 법에서는 그저 아끼는 '물건'이 파손된 것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누군가 반려동물을 죽였을 경우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봤자 '물건값'만 배상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진돗개 등 일반적인 반려견의 경우 50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변화도 감지됩니다. 10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이 술에 취한 사람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죽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가족에게 지난해 법원은 수백만 원의 정신적 위자료를 인정했습니다. 진돗개인 반려견의 '값'은 일반적 분양가인 50만 원으로 책정됐지만, 재판부는 가족들이 느꼈을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고려해 엄마와 아빠에게 각 300만 원, 아이에게 200만 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최근 몇 년 사이 법원도 이를 반영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동물권'일까?

동물권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의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도 본성대로 생활하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제도 안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물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동물의 살아갈 '권리'를 마음대로 뺏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며, 동시에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견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만,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당연한 것들이 존중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2017년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들고양이에게 끓인 물을 들이붓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며 학대하다가 키우던 개에게 물어 죽이도록 했는데, 학대하다 죽인 것뿐만 아니라 이를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재판부는 '영상을 본 대중들의 관심과 분노를 오히려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며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같은 해, 암컷 진돗개를 상대로 수간(獸姦)을 시도했다가 죽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상대로 여러 차례 수간을 시도했는데 결국 개는 그 후유증으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 및 감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키우던 퓨마가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까지 했습니다.

퓨마 사살 사건에서 올해 불거진 유기견 안락사 사태까지. 우리 사회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동물권이 포괄하는 개념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국화 변호사는 "법률이 시민들에 대한 인식 개선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민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반드시 개선 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먼저 확산된 일부 국가의 경우 동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법에 명시하기도 합니다. 헌법(기본법)에서 '국가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헌법질서의 범위 내에서 입법에 의하여, 그리고 법률에 따른 집행권과 사법권에 의하여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독일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사회의 동물권 인식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그리고 법은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 사진은 위 사건과 관계없는 강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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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300마리 삶아 죽여도…“실형” 없는 동물보호법
    • 입력 2019-01-19 19:00:34
    • 수정2019-01-19 19: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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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박소연 대표가 촉발시킨 유기견 안락사 논란이 잦아들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이미 검찰에 고발됐고, 검찰과 법원에서는 사기·횡령 혐의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보다 더 중하게 다뤄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태를 키운 핵심은 '동물권'에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뜨거운 논쟁 역시 결국 '동물권'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법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실형'없는 동물 학대, 왜?

케어 박소연 대표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약 1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08년, 대구시에서 활동하던 한 동물보호협회의 이사장이 두 달 동안 구조한 유기동물 179마리를 안락사시켰습니다. 이 단체는 심지어 7개 구청과 유기동물 보호 관리 사업 위·수탁 계약을 맺은 곳이었습니다.

결국,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 해 법원은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동물보호법 위반에 따른 최고형은 벌금 500만 원이었습니다. 실형 선고는 아예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이후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법이 개정됩니다. 2011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실형 선고가 가능해졌는데요, 그럼 비교적 최근 판결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고양이 300마리 삶아 죽인 남성
: 2014년 2월부터 1년여 동안 300마리의 길고양이를 포획한 뒤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 죽인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16년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당시 재판부는 '동물보호법의 입법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어려운 생계를 위해 범행을 했고, 동물의 생명에 대한 경시적 경향으로 동물을 학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참작돼 실형 선고를 피한 겁니다.

▶강아지 78마리 굶겨 죽인 애견판매업자
: 애견판매점을 운영하던 업주가 일부러 사료, 물을 주지 않아 강아지 78마리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적자 영업이었습니다. 운영이 어려워지자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거나 혹은 예전에 병을 앓은 전력이 있어 사실상 판매가 힘들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들을 골라 굶겨 죽인 겁니다.

지난해 7월, 이 업자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두 사례 모두 상당히 많은 수의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인데, 집행유예가 나왔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최대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사실상 실형 선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유가 뭘까요?

첫째, 애초에 법정 최고형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대 징역 2년이니 양형에 참작할만한 유리한 사정이 있으면 바로 집행유예가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부감입니다. 동물을 죽였다고 사람에게 징역을 살도록 선고하는 일에 아직 거부감이 크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결국 법원이 실형 선고가 필요할 만큼 동물에 대한 범죄를 무겁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가족 같은' 반려견이 죽었는데...50만 원만 물어내라?

사실 동물을 바라보는 법의 시선은 상당히 냉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할 정도로 동물과 사람의 유대감은 각별한데 '가족 같고 사랑스러운' 반려 동물이 죽어도 법에서는 그저 아끼는 '물건'이 파손된 것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누군가 반려동물을 죽였을 경우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봤자 '물건값'만 배상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진돗개 등 일반적인 반려견의 경우 50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변화도 감지됩니다. 10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이 술에 취한 사람에게 쇠파이프로 맞아 죽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가족에게 지난해 법원은 수백만 원의 정신적 위자료를 인정했습니다. 진돗개인 반려견의 '값'은 일반적 분양가인 50만 원으로 책정됐지만, 재판부는 가족들이 느꼈을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고려해 엄마와 아빠에게 각 300만 원, 아이에게 200만 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최근 몇 년 사이 법원도 이를 반영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동물권'일까?

동물권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의 서국화 변호사는 '동물도 본성대로 생활하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제도 안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물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동물의 살아갈 '권리'를 마음대로 뺏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며, 동시에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견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만,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당연한 것들이 존중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2017년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들고양이에게 끓인 물을 들이붓고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며 학대하다가 키우던 개에게 물어 죽이도록 했는데, 학대하다 죽인 것뿐만 아니라 이를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재판부는 '영상을 본 대중들의 관심과 분노를 오히려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며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같은 해, 암컷 진돗개를 상대로 수간(獸姦)을 시도했다가 죽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반려견을 상대로 여러 차례 수간을 시도했는데 결국 개는 그 후유증으로 죽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 및 감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키우던 퓨마가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동물원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까지 했습니다.

퓨마 사살 사건에서 올해 불거진 유기견 안락사 사태까지. 우리 사회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동물권이 포괄하는 개념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국화 변호사는 "법률이 시민들에 대한 인식 개선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민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반드시 개선 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먼저 확산된 일부 국가의 경우 동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법에 명시하기도 합니다. 헌법(기본법)에서 '국가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헌법질서의 범위 내에서 입법에 의하여, 그리고 법률에 따른 집행권과 사법권에 의하여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독일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사회의 동물권 인식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그리고 법은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 사진은 위 사건과 관계없는 강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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