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멕시코서 ‘기름 도둑’ 극성…연간 3조 피해

입력 2019.01.23 (18:06) 수정 2019.01.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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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를 한눈에 보는 <글로벌 경제> 조항리 아나운서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답변]

오늘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기름을 훔치려다 발생한 화재로 90명 넘게 숨지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주요 석유 생산국인 멕시코에서 누가 기름을 훔쳐 가려고 했던 걸까요?

짙은 어둠 속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습니다.

불길은 이내 들판 전체를 집어삼키는데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망치면서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목격자 : "사람들의 눈이 빨개지고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뒷걸음쳤어요."]

현지시각 지난 18일,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백 km 떨어진 이달고 주의 한 송유관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숨진 사람만 90여 명.

다친 사람 가운데 중상자도 많아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폭발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답변]

아직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현지 언론들은 송유관의 뚫린 구멍에서 샌 기름이 폭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현장 모습이 찍힌 영상입니다.

송유관에서 기름이 분수처럼 솟구칩니다.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기름을 담습니다.

[피해자 가족 : "많은 사람이 (공짜) 휘발유를 가지러 간 거예요. 조금이라도 경비를 충당하려고요, 가족을 위해서죠."]

당시 현장에는 인근 주민 7백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앵커]

문제는 애초에 송유관에 왜 구멍이 뚫려 있었느냐 하는 것일 텐데요?

[답변]

멕시코 당국은 누군가 기름을 훔치려 고의로 송유관에 구멍을 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기름 절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송유관에서 발견된 구멍만 만 2천여 개가 넘습니다.

하루 평균 42개씩 구멍이 생긴 셈인데, 2014년과 비교하면 무려 세 배에 이릅니다.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인 페멕스는 매일 도둑맞는 양이 차량 6백 대 분, 천만 달러(약 113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는데요.

정부 추산 피해액만 연간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 3천억 원이 넘습니다.

[프란시스코/페멕스 보안과 직원 : "(절도용 꼭지를) 없애 버리면 또 다른 것으로 대체합니다. 두세 번 수리하게 되면 구멍은 더 커지는 거죠."]

문제는 송유관을 훼손하면 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0년 푸에블라 주에서도 송유관이 폭발해 20여 명이 숨지는 등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고, 2015년 토바스코에선 새어나온 기름이 식수원으로 흘러들어 가 인근 주민 10만 명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앵커]

그런데 피해 규모만 봐도 좀도둑의 소행으로는 보기는 어려운데요?

[답변]

맞습니다.

현지 매체는 기름 도둑의 주범으로 멕시코 마약 조직인 카르텔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절도와 유통, 판매 역할을 분담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과 결탁해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등 기업형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들 조직은 석유를 훔치기 위해 최신 장비까지 동원합니다.

불법 도청을 통해 이동 경로를 파악해뒀다가 유조차를 통째로 강탈해가는 겁니다.

이렇게 빼돌린 석유는 암시장에서 싼값에 거래되거나 미국 등지에 있는 해외 기업들에 몰래 팔아넘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갱단 조직원 : "두 개의 파이프로 9,300달러(약 천만 원)를 벌 수 있습니다. 작업은 20분에서 40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송유관 위치 등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겠죠.

이 때문에, 정부는 페멕스 소속 직원들이 갱단과 결탁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앵커]

멕시코 정부가 더는 기름을 훔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쟁을 선포한 이유가 있었군요?

[답변]

네, 이미 주요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한 상태고요,

트럭이나 열차를 이용해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석유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 대통령 : "기름 도둑과의 전쟁에 진전이 있습니다. 공급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아수라장입니다.

주유소마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사람들은 기름통을 든 채 줄을 섭니다.

문제는 몇 시간씩 기다려도 휘발유를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린다/멕시코 시민: "사람들이 길 위에서 휘발유를 훔쳐요. (남의) 차량에서 몰래 빼내는 거죠. 어제는 다른 주유소에서 사람들이 기름이 없어 다투는 일이 있었어요."]

[앵커]

시장에 휘발유 공급이 전혀 안 되고 있군요? 이유가 뭔가요?

[답변]

페멕스는 유류 운반 과정에서 차질을 빚었을 뿐 공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요.

외신들이 전한 속사정은 많이 다릅니다.

페멕스는 멕시코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이었지만, 2002년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해마다 50억 달러(5조 6천억 원)의 영업 손실을 보았습니다.

연간 3조 원에 달하는 석유 절도와 방만한 경영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이 때문에, 70년이 넘은 낡은 정유 시설에 투자할 능력이 없어 원유 생산량도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우선 페멕스에 4조 4천억 원 예산을 긴급 편성했는데요,

또한, 새로운 유전 지대에서 석유를 시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앵커]

신임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기름 절도라는 고질적 병폐를 끊고 정유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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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경제] 멕시코서 ‘기름 도둑’ 극성…연간 3조 피해
    • 입력 2019-01-23 18:13:38
    • 수정2019-01-23 18:20:43
    통합뉴스룸ET
[앵커]

세계를 한눈에 보는 <글로벌 경제> 조항리 아나운서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답변]

오늘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기름을 훔치려다 발생한 화재로 90명 넘게 숨지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주요 석유 생산국인 멕시코에서 누가 기름을 훔쳐 가려고 했던 걸까요?

짙은 어둠 속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습니다.

불길은 이내 들판 전체를 집어삼키는데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망치면서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목격자 : "사람들의 눈이 빨개지고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뒷걸음쳤어요."]

현지시각 지난 18일,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백 km 떨어진 이달고 주의 한 송유관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숨진 사람만 90여 명.

다친 사람 가운데 중상자도 많아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폭발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답변]

아직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현지 언론들은 송유관의 뚫린 구멍에서 샌 기름이 폭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현장 모습이 찍힌 영상입니다.

송유관에서 기름이 분수처럼 솟구칩니다.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기름을 담습니다.

[피해자 가족 : "많은 사람이 (공짜) 휘발유를 가지러 간 거예요. 조금이라도 경비를 충당하려고요, 가족을 위해서죠."]

당시 현장에는 인근 주민 7백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앵커]

문제는 애초에 송유관에 왜 구멍이 뚫려 있었느냐 하는 것일 텐데요?

[답변]

멕시코 당국은 누군가 기름을 훔치려 고의로 송유관에 구멍을 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 기름 절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송유관에서 발견된 구멍만 만 2천여 개가 넘습니다.

하루 평균 42개씩 구멍이 생긴 셈인데, 2014년과 비교하면 무려 세 배에 이릅니다.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인 페멕스는 매일 도둑맞는 양이 차량 6백 대 분, 천만 달러(약 113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는데요.

정부 추산 피해액만 연간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 3천억 원이 넘습니다.

[프란시스코/페멕스 보안과 직원 : "(절도용 꼭지를) 없애 버리면 또 다른 것으로 대체합니다. 두세 번 수리하게 되면 구멍은 더 커지는 거죠."]

문제는 송유관을 훼손하면 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0년 푸에블라 주에서도 송유관이 폭발해 20여 명이 숨지는 등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고, 2015년 토바스코에선 새어나온 기름이 식수원으로 흘러들어 가 인근 주민 10만 명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앵커]

그런데 피해 규모만 봐도 좀도둑의 소행으로는 보기는 어려운데요?

[답변]

맞습니다.

현지 매체는 기름 도둑의 주범으로 멕시코 마약 조직인 카르텔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절도와 유통, 판매 역할을 분담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과 결탁해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등 기업형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들 조직은 석유를 훔치기 위해 최신 장비까지 동원합니다.

불법 도청을 통해 이동 경로를 파악해뒀다가 유조차를 통째로 강탈해가는 겁니다.

이렇게 빼돌린 석유는 암시장에서 싼값에 거래되거나 미국 등지에 있는 해외 기업들에 몰래 팔아넘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갱단 조직원 : "두 개의 파이프로 9,300달러(약 천만 원)를 벌 수 있습니다. 작업은 20분에서 40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송유관 위치 등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겠죠.

이 때문에, 정부는 페멕스 소속 직원들이 갱단과 결탁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앵커]

멕시코 정부가 더는 기름을 훔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쟁을 선포한 이유가 있었군요?

[답변]

네, 이미 주요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한 상태고요,

트럭이나 열차를 이용해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석유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 대통령 : "기름 도둑과의 전쟁에 진전이 있습니다. 공급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아수라장입니다.

주유소마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사람들은 기름통을 든 채 줄을 섭니다.

문제는 몇 시간씩 기다려도 휘발유를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린다/멕시코 시민: "사람들이 길 위에서 휘발유를 훔쳐요. (남의) 차량에서 몰래 빼내는 거죠. 어제는 다른 주유소에서 사람들이 기름이 없어 다투는 일이 있었어요."]

[앵커]

시장에 휘발유 공급이 전혀 안 되고 있군요? 이유가 뭔가요?

[답변]

페멕스는 유류 운반 과정에서 차질을 빚었을 뿐 공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요.

외신들이 전한 속사정은 많이 다릅니다.

페멕스는 멕시코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이었지만, 2002년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해마다 50억 달러(5조 6천억 원)의 영업 손실을 보았습니다.

연간 3조 원에 달하는 석유 절도와 방만한 경영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이 때문에, 70년이 넘은 낡은 정유 시설에 투자할 능력이 없어 원유 생산량도 가파르게 하락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우선 페멕스에 4조 4천억 원 예산을 긴급 편성했는데요,

또한, 새로운 유전 지대에서 석유를 시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앵커]

신임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기름 절도라는 고질적 병폐를 끊고 정유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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