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오태훈의 시사본부] 김복동 할머니, 투사 넘어 하나의 ‘깃발’되신 분
입력 2019.01.30 (15:52) 수정 2019.01.31 (11:33) 최영일의 시사본부
- 25년전 다큐 <낮은 목소리> 개봉, 피해자에게 책임 돌리고 부끄러워하던 시절이었어
- DJ정부 때 국가유공자급 생계지원 시작한 것이 사회적 인식 전환의 모멘텀
- 태도불변 日정부? 이젠 일본시민들이 사죄·배상하는 정부 되도록 앞장서야
- 대통령 빈소 방문 매우 중요한 행위. 피해사실 50년간 숨겨야했던 이유 함께 고민해야
- 위안부 문제,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것 달라. 수요집회와 ‘전쟁과여성’박물관 체험하시길
- 타인의 아픔에 대해 “지친다, 지겹다” 말하지 않는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1월 30일(수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변영주 감독



▷ 오태훈 : 지금 이 시각 서울 종로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서는 1372차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계속된 수요집회죠. 김복동 할머니 타계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분들이 김 할머니 빈소 방문에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올려놓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다큐멘터리죠.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변영주 : 안녕하세요?

▷ 오태훈 : 변 감독의 작품 ‘낮은 목소리’가 만들어진 지가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 변영주 : 네, 그렇습니다.

▷ 오태훈 : 그 사이에 많은 할머니들이 알려지기도 했고 또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에 김복동 할머니 타계 소식, 어떻게 들으셨는지 좀 여쭙겠습니다.

▶ 변영주 : 제가 95년에 ‘낮은 목소리’ 1편을 극장에서 개봉을 하고 그리고 99년까지 해서 3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요. 그 다큐멘터리 3편에 나오는 할머니 중에 이제는 이용수 할머니 단 한 분만 남으셨고 다 돌아가시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실은 저희가 영화를 찍을 때 100차 수요집회를 하면서 이걸 100차까지 했구나, 200차 전에는 해결되겠지라고 말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뭐 200차가 아니라 1000회차를 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할머니들이 이제는 거의 20여 분밖에 안 남아 계시기 때문에 좀 많이 착잡하죠.

▷ 오태훈 : 처음 ‘낮은 목소리’를 만드실 때 분위기라든가 말씀을 좀 듣고 싶은데요.

▶ 변영주 : 그러니까 아무래도 할머니들께서는 거의 한 50년 동안 자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셨잖아요. 그리고 오히려 한국사회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던 시절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오히려 숨기시다가 사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부정 그리고 그런 일 없다는 것에 어느 날 화가 나신 할머니 한 분이 “거짓말하지 말아라, 살아 있는 증거가 여기 있는데.” 그런데 그때 처음 증언하셨던 김학순 할머니는 생존자가 자기 혼자인 줄 알았던 거예요. 다 죽고 나만 살아 남았을 거다, 그러니 나라도 해야 된다. 그랬더니 나만 살아 남은 줄 알았는데라는 분들이 한 분, 한 분 그 이후에 증언을 하신 거죠. 그러니까 실은 여전히 두려워하시고 겁도 많으시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시절이 90년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어려움이 참 많이 있었다면서요?

▶ 변영주 :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사실은 일본에서 전국 개봉을 할 때 언제나 좀 웃기는 얘기지만 경찰이 보호를 해줬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우익의 어떤 그런 것도 있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굳건하게 점차적으로 굳건해지시는 거죠. 왜 그러냐 하면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와 같은 피해를 겪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점점점점 강건해지셨기 때문에 사실은 어떤 위협이나 이런 것들이 할머니한테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 이후에는.

▷ 오태훈 : 영화가 발표된 지 1995년 이후에 지금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라든가 또 할머니들의 모습도 많이 변화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 변영주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저는 김대중 정부 때 할머니들에 대한 생계 지원 거의 국가유공자급의 생계 지원을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을 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동안은 가족들도 “우리 할머니 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녀?”에서 “아니구나, 우리 할머니가 정말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셨고 지금 너무나 멋지게 자기 스스로를 증언하시고 일본 정부와 싸우고 계시는구나.”로 인식의 전환이 오는 거죠.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정부가 할머니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시민들이 할머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끊임없이 연동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아마 요즘 수요집회를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0대, 20대 친구들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 오태훈 : 네, 많이 나옵니다.

▶ 변영주 :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할머니들에게 굉장히 큰힘을 주시고 바로 그런 힘들이 할머니로 하여금 단순하게 자기의 인권을 위해서 싸우는 어떤 투사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동유럽에도 있네? 아프리카에도 있네? 중동에도 있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있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요근래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정부나 아니면 시민으로부터 받은 기금들을 안 쓰시고 모으셔서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기금으로 상을 만드셨을 정도예요.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내전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을 위해서 그 여성에게 김복동상을 수여해서 기금을 나눠주고 그러니까 이거는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의 깃발이 되어서 자기와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는 전 세계의 피해 여성들의 그야말로 큰언니가 되신 거죠. 그런 것들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그런 많은 변화와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왜 이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 변영주 : 그러니까 결국은 저는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을 해봐요. 과거에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정부를 정부로 가지고 있는 그 정부의 시민은 행복할까? 바꿔 말하면 지금 이것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피해자 중에는 그런 부끄러움을 모르고 인간 개개인의 인권에 대해서 소중함을 모르는 정부를 가진 일본 시민들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바꿔 말하면 이것은 할머니들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피해 사실조차도 인권을 생각하며 노력하고 사죄하는 정부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 정부의 구성원인 시민들에게 잘못한 일을 할까요? 안 하겠죠. 바꿔 말하면 좋은 정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진심으로 지금이라도 일본의 시민들이 가해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것을 사죄받고 배상하고 책임을 지는 걸로 인해서 그것이 자부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우리 선조는 잘못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사죄하고 책임을 지고 있는 그야말로 올바른 시민이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시민들이 앞장서야 될 문제라고도 생각을 해봅니다.

▷ 오태훈 : 청취자께서도 지금 인터뷰 들으시면서 “김복동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시고 어른이십니다.”, “가슴 아픈 역사에 그저 눈물만 앞을 가립니다.”라고 의견도 보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애도하고 있고 또 가시는 길 편안하게 잘 가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 전하고 있는데 95년 당시에 1편 개봉할 때는 이런 얘기 들었어요.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서 학교 단체 관람 요청을 했는데 모조리 학교 측에서 거절했던 기억도 있었다면서요?

▶ 변영주 : 사립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이런 성적인 이야기를 그러니까 이 피해 사실을 성적인 이야기라고 언급하셨고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하셨던 적도 있고요. ‘낮은 목소리’가 캐나다의 어느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상영을 하는데 모든 외국인들이 영화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영화의 어떤 것들을 얘기하는데 당시에 그곳에 계시던 영사분이 영사부부님께서 나가시면서 “뭐 이런 부끄러운 걸 남의 나라에 와서 트냐”고 화를 내며 나갔던 적도 있어요.

▷ 오태훈 : 그랬군요, 참... 헌데 지금은 그래도 그나마 많이 달라지고 또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의 인식도 많이 깨우쳐지지 않았겠습니까?

▶ 변영주 : 그럼요.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대통령께서 할머니 빈소를 찾아주신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그럼으로 인해서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할머니들은 50년 동안 이것을 숨길 수밖에 없었나를 고민해내지 않는다면 할머니가 노력하신 것을 우리가 이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왜 언제나 스스로 먼저 그것에 대해서 잘잘못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걸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부분들을 고민해내는 순간 할머니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앞서서 수요집회 말씀도 좀 나눠봤습니다만 수요집회 공식명칭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거든요. 이 시위를 우리가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 변영주 : 그러니까 결국은 일본 정부의 태도 문제겠죠. 이를테면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명백한 사과와 그 사과라는 것은 “아, 유감이에요.”가 아니거든요. 그때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 조직이 되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당시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자료를 공개하고 그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시작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결심의 문제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그걸 안 하고 있는 거죠.

▷ 오태훈 : 변 감독의 작품 포함해서 ‘귀향’이라든가 ‘아이 캔 스피크’ 여러 이러한 중요한 부분을 다뤄준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재조명하는 문화적인 시도들도 계속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 변영주 :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서울에 연희동 근처에 오시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많은 기금들을 받아서 많은 시민들의 돈을 모아서 만든 아주 조그마한 박물관인데요. 그곳에 오신다면 먼저 간 할머니들 아직도 생존해 계신 분들에 대한 중간 역사 기록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함께 보시면 아마 그다음에 이것이 어떻게 더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논의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제일 먼저 하실 일은 나 그 문제 뭔지 알아가 아니라 잊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그것에 대해서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곳에 가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기회가 되신다면 수요일 점심시간에 잠깐 한번 와서 보신다면 그러니까 보는 것과 나 알고 있어는 되게 다르거든요. 기억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어떤 인터뷰를 제가 봤어요.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했거나 이 사실을 덮으려 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도 있지 않았나라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참 기억에 남는데 제가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주의하거나 아니면 돌아봐야 될 것들 또 앞으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해야 될 일들 끝으로 무엇을 짚어주시겠습니까?

▶ 변영주 :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불행한 것을 들었을 때 아직도 그 얘기를 하느냐? 혹은 이제 좀 지친다, 좀 피로감을 느낀다는 말을 하곤 하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의 경험을 세상에 얘기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간다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누군가 자기가 너무 아프다고 얘기할 때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것, 지겨워하지 않는 것, 귀담아 보려고 애써 보는 것이라는 시민의 어떤 태도가 있다면 앞으로 벌어질 어떤 불행에 대해서 할머니들처럼 10년 동안 숨어 있지 않겠죠. 그리고 그런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변영주 감독과 함께 할머니들의 삶 돌아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변영주 : 예, 감사합니다.
  • [오태훈의 시사본부] 김복동 할머니, 투사 넘어 하나의 ‘깃발’되신 분
    • 입력 2019-01-30 15:52:39
    • 수정2019-01-31 11:33:34
    최영일의 시사본부
- 25년전 다큐 <낮은 목소리> 개봉, 피해자에게 책임 돌리고 부끄러워하던 시절이었어
- DJ정부 때 국가유공자급 생계지원 시작한 것이 사회적 인식 전환의 모멘텀
- 태도불변 日정부? 이젠 일본시민들이 사죄·배상하는 정부 되도록 앞장서야
- 대통령 빈소 방문 매우 중요한 행위. 피해사실 50년간 숨겨야했던 이유 함께 고민해야
- 위안부 문제,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것 달라. 수요집회와 ‘전쟁과여성’박물관 체험하시길
- 타인의 아픔에 대해 “지친다, 지겹다” 말하지 않는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1월 30일(수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변영주 감독



▷ 오태훈 : 지금 이 시각 서울 종로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서는 1372차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계속된 수요집회죠. 김복동 할머니 타계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분들이 김 할머니 빈소 방문에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올려놓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다큐멘터리죠.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변영주 : 안녕하세요?

▷ 오태훈 : 변 감독의 작품 ‘낮은 목소리’가 만들어진 지가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 변영주 : 네, 그렇습니다.

▷ 오태훈 : 그 사이에 많은 할머니들이 알려지기도 했고 또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에 김복동 할머니 타계 소식, 어떻게 들으셨는지 좀 여쭙겠습니다.

▶ 변영주 : 제가 95년에 ‘낮은 목소리’ 1편을 극장에서 개봉을 하고 그리고 99년까지 해서 3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요. 그 다큐멘터리 3편에 나오는 할머니 중에 이제는 이용수 할머니 단 한 분만 남으셨고 다 돌아가시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실은 저희가 영화를 찍을 때 100차 수요집회를 하면서 이걸 100차까지 했구나, 200차 전에는 해결되겠지라고 말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뭐 200차가 아니라 1000회차를 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할머니들이 이제는 거의 20여 분밖에 안 남아 계시기 때문에 좀 많이 착잡하죠.

▷ 오태훈 : 처음 ‘낮은 목소리’를 만드실 때 분위기라든가 말씀을 좀 듣고 싶은데요.

▶ 변영주 : 그러니까 아무래도 할머니들께서는 거의 한 50년 동안 자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셨잖아요. 그리고 오히려 한국사회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던 시절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오히려 숨기시다가 사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부정 그리고 그런 일 없다는 것에 어느 날 화가 나신 할머니 한 분이 “거짓말하지 말아라, 살아 있는 증거가 여기 있는데.” 그런데 그때 처음 증언하셨던 김학순 할머니는 생존자가 자기 혼자인 줄 알았던 거예요. 다 죽고 나만 살아 남았을 거다, 그러니 나라도 해야 된다. 그랬더니 나만 살아 남은 줄 알았는데라는 분들이 한 분, 한 분 그 이후에 증언을 하신 거죠. 그러니까 실은 여전히 두려워하시고 겁도 많으시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시절이 90년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어려움이 참 많이 있었다면서요?

▶ 변영주 :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사실은 일본에서 전국 개봉을 할 때 언제나 좀 웃기는 얘기지만 경찰이 보호를 해줬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우익의 어떤 그런 것도 있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굳건하게 점차적으로 굳건해지시는 거죠. 왜 그러냐 하면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와 같은 피해를 겪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점점점점 강건해지셨기 때문에 사실은 어떤 위협이나 이런 것들이 할머니한테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 이후에는.

▷ 오태훈 : 영화가 발표된 지 1995년 이후에 지금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라든가 또 할머니들의 모습도 많이 변화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 변영주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저는 김대중 정부 때 할머니들에 대한 생계 지원 거의 국가유공자급의 생계 지원을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을 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동안은 가족들도 “우리 할머니 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녀?”에서 “아니구나, 우리 할머니가 정말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셨고 지금 너무나 멋지게 자기 스스로를 증언하시고 일본 정부와 싸우고 계시는구나.”로 인식의 전환이 오는 거죠.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정부가 할머니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시민들이 할머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끊임없이 연동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아마 요즘 수요집회를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0대, 20대 친구들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 오태훈 : 네, 많이 나옵니다.

▶ 변영주 :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할머니들에게 굉장히 큰힘을 주시고 바로 그런 힘들이 할머니로 하여금 단순하게 자기의 인권을 위해서 싸우는 어떤 투사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동유럽에도 있네? 아프리카에도 있네? 중동에도 있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있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요근래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정부나 아니면 시민으로부터 받은 기금들을 안 쓰시고 모으셔서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기금으로 상을 만드셨을 정도예요.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내전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을 위해서 그 여성에게 김복동상을 수여해서 기금을 나눠주고 그러니까 이거는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의 깃발이 되어서 자기와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는 전 세계의 피해 여성들의 그야말로 큰언니가 되신 거죠. 그런 것들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그런 많은 변화와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왜 이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 변영주 : 그러니까 결국은 저는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을 해봐요. 과거에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정부를 정부로 가지고 있는 그 정부의 시민은 행복할까? 바꿔 말하면 지금 이것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피해자 중에는 그런 부끄러움을 모르고 인간 개개인의 인권에 대해서 소중함을 모르는 정부를 가진 일본 시민들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바꿔 말하면 이것은 할머니들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피해 사실조차도 인권을 생각하며 노력하고 사죄하는 정부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 정부의 구성원인 시민들에게 잘못한 일을 할까요? 안 하겠죠. 바꿔 말하면 좋은 정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진심으로 지금이라도 일본의 시민들이 가해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것을 사죄받고 배상하고 책임을 지는 걸로 인해서 그것이 자부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우리 선조는 잘못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사죄하고 책임을 지고 있는 그야말로 올바른 시민이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시민들이 앞장서야 될 문제라고도 생각을 해봅니다.

▷ 오태훈 : 청취자께서도 지금 인터뷰 들으시면서 “김복동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의인이시고 어른이십니다.”, “가슴 아픈 역사에 그저 눈물만 앞을 가립니다.”라고 의견도 보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애도하고 있고 또 가시는 길 편안하게 잘 가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 전하고 있는데 95년 당시에 1편 개봉할 때는 이런 얘기 들었어요.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서 학교 단체 관람 요청을 했는데 모조리 학교 측에서 거절했던 기억도 있었다면서요?

▶ 변영주 : 사립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이런 성적인 이야기를 그러니까 이 피해 사실을 성적인 이야기라고 언급하셨고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하셨던 적도 있고요. ‘낮은 목소리’가 캐나다의 어느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상영을 하는데 모든 외국인들이 영화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영화의 어떤 것들을 얘기하는데 당시에 그곳에 계시던 영사분이 영사부부님께서 나가시면서 “뭐 이런 부끄러운 걸 남의 나라에 와서 트냐”고 화를 내며 나갔던 적도 있어요.

▷ 오태훈 : 그랬군요, 참... 헌데 지금은 그래도 그나마 많이 달라지고 또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의 인식도 많이 깨우쳐지지 않았겠습니까?

▶ 변영주 : 그럼요.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대통령께서 할머니 빈소를 찾아주신 것이 저는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그럼으로 인해서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할머니들은 50년 동안 이것을 숨길 수밖에 없었나를 고민해내지 않는다면 할머니가 노력하신 것을 우리가 이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왜 언제나 스스로 먼저 그것에 대해서 잘잘못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걸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부분들을 고민해내는 순간 할머니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앞서서 수요집회 말씀도 좀 나눠봤습니다만 수요집회 공식명칭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거든요. 이 시위를 우리가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 변영주 : 그러니까 결국은 일본 정부의 태도 문제겠죠. 이를테면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명백한 사과와 그 사과라는 것은 “아, 유감이에요.”가 아니거든요. 그때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식으로 조직이 되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당시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자료를 공개하고 그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시작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결심의 문제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그걸 안 하고 있는 거죠.

▷ 오태훈 : 변 감독의 작품 포함해서 ‘귀향’이라든가 ‘아이 캔 스피크’ 여러 이러한 중요한 부분을 다뤄준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재조명하는 문화적인 시도들도 계속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 변영주 :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서울에 연희동 근처에 오시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많은 기금들을 받아서 많은 시민들의 돈을 모아서 만든 아주 조그마한 박물관인데요. 그곳에 오신다면 먼저 간 할머니들 아직도 생존해 계신 분들에 대한 중간 역사 기록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함께 보시면 아마 그다음에 이것이 어떻게 더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논의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제일 먼저 하실 일은 나 그 문제 뭔지 알아가 아니라 잊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그것에 대해서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곳에 가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기회가 되신다면 수요일 점심시간에 잠깐 한번 와서 보신다면 그러니까 보는 것과 나 알고 있어는 되게 다르거든요. 기억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태훈 : 어떤 인터뷰를 제가 봤어요. 위안부 할머니를 모욕했거나 이 사실을 덮으려 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도 있지 않았나라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참 기억에 남는데 제가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 주의하거나 아니면 돌아봐야 될 것들 또 앞으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해야 될 일들 끝으로 무엇을 짚어주시겠습니까?

▶ 변영주 :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불행한 것을 들었을 때 아직도 그 얘기를 하느냐? 혹은 이제 좀 지친다, 좀 피로감을 느낀다는 말을 하곤 하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의 경험을 세상에 얘기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간다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누군가 자기가 너무 아프다고 얘기할 때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것, 지겨워하지 않는 것, 귀담아 보려고 애써 보는 것이라는 시민의 어떤 태도가 있다면 앞으로 벌어질 어떤 불행에 대해서 할머니들처럼 10년 동안 숨어 있지 않겠죠. 그리고 그런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변영주 감독과 함께 할머니들의 삶 돌아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변영주 : 예, 감사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