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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남은 자의 외침은 ‘계속’
입력 2019.01.30 (18:06) 수정 2019.01.30 (18:07) 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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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인 28일 두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93세의 이 모 할머니가 이날 오전에, 94세의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오후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이 할머니와 유가족은 장례를 비공개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반면 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연일 조문객의 추모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992년 성 노예 피해 사실을 알리며 평생을 싸워온 김 할머니는 성 노예 피해의 산 증인으로 불릴 만큼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끝나면 나비처럼 날아가고 싶다던 김복동 할머니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두 분의 할머니가 한 많은 인생을 뒤로하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지만, 남은 자들의 외침은 계속됐습니다.

1992년 이후 27년을 이어온 수요집회는 오늘도 흔들림 없이 열렸습니다. 회차로 치면 1천372회째입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집회였지만, 오늘 집회 참석자들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아직 두 할머니의 장례가 진행 중이라 추모 집회를 열진 않았지만, 이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두 분의 명복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집회장 한쪽에는 두 분의 영정도 모셨습니다.

이제 남은 성 노예 피해 생존자는 23명입니다. 1천 번이 넘는 외침에도 끄떡없던 일본 정부는 언제쯤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될까요?
이분들이 '직접'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나비’ 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남은 자의 외침은 ‘계속’
    • 입력 2019-01-30 18:06:43
    • 수정2019-01-30 18:07:08
    케이야
이틀 전인 28일 두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93세의 이 모 할머니가 이날 오전에, 94세의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오후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이 할머니와 유가족은 장례를 비공개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반면 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연일 조문객의 추모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992년 성 노예 피해 사실을 알리며 평생을 싸워온 김 할머니는 성 노예 피해의 산 증인으로 불릴 만큼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끝나면 나비처럼 날아가고 싶다던 김복동 할머니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두 분의 할머니가 한 많은 인생을 뒤로하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지만, 남은 자들의 외침은 계속됐습니다.

1992년 이후 27년을 이어온 수요집회는 오늘도 흔들림 없이 열렸습니다. 회차로 치면 1천372회째입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집회였지만, 오늘 집회 참석자들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아직 두 할머니의 장례가 진행 중이라 추모 집회를 열진 않았지만, 이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두 분의 명복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집회장 한쪽에는 두 분의 영정도 모셨습니다.

이제 남은 성 노예 피해 생존자는 23명입니다. 1천 번이 넘는 외침에도 끄떡없던 일본 정부는 언제쯤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될까요?
이분들이 '직접'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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