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위안부 문제’ 조명…“명예회복 운동 이끈 할머니”
입력 2019.01.30 (21:22)
수정 2019.01.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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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갔고 중국에서 8년간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1992년 마침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일본과 맞섰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는 평화운동가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홍석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한국에 대한 배상을 촉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92세로 숨을 거두다.
명사들의 생전 행적을 장문의 기사로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부고는 김 할머니가 1990년대 초반 수십 년 간의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최초의 여성 중에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엔 등 전 세계를 돌며 증언에 나선 김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고 전했습니다.
[故 김복동/위안부 피해자/지난해 9월 : "일본 정부에서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자기네들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만 14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간 뒤 동남아를 돌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김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도 소개했습니다.
1992년 피해 증언에 나서면서 한국 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나서게 됐고, 김 할머니가 맨 앞에서 이들의 명예회복 운동을 이끌었다고도 했습니다.
로이터와 알자지라는 '진정한 사과'라는 소제목 기사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김 할머니가 2015년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로이터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고인의 유언을 기사 제목에 담았습니다.
일본 주요 언론 가운데는 NHK만 인터넷 기사를 통해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여론의 대일 감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갔고 중국에서 8년간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1992년 마침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일본과 맞섰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는 평화운동가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홍석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한국에 대한 배상을 촉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92세로 숨을 거두다.
명사들의 생전 행적을 장문의 기사로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부고는 김 할머니가 1990년대 초반 수십 년 간의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최초의 여성 중에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엔 등 전 세계를 돌며 증언에 나선 김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고 전했습니다.
[故 김복동/위안부 피해자/지난해 9월 : "일본 정부에서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자기네들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만 14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간 뒤 동남아를 돌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김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도 소개했습니다.
1992년 피해 증언에 나서면서 한국 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나서게 됐고, 김 할머니가 맨 앞에서 이들의 명예회복 운동을 이끌었다고도 했습니다.
로이터와 알자지라는 '진정한 사과'라는 소제목 기사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김 할머니가 2015년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로이터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고인의 유언을 기사 제목에 담았습니다.
일본 주요 언론 가운데는 NHK만 인터넷 기사를 통해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여론의 대일 감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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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9-01-30 21:32:17
[앵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갔고 중국에서 8년간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1992년 마침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일본과 맞섰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는 평화운동가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홍석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한국에 대한 배상을 촉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92세로 숨을 거두다.
명사들의 생전 행적을 장문의 기사로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부고는 김 할머니가 1990년대 초반 수십 년 간의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최초의 여성 중에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엔 등 전 세계를 돌며 증언에 나선 김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고 전했습니다.
[故 김복동/위안부 피해자/지난해 9월 : "일본 정부에서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자기네들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만 14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간 뒤 동남아를 돌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김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도 소개했습니다.
1992년 피해 증언에 나서면서 한국 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나서게 됐고, 김 할머니가 맨 앞에서 이들의 명예회복 운동을 이끌었다고도 했습니다.
로이터와 알자지라는 '진정한 사과'라는 소제목 기사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김 할머니가 2015년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로이터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고인의 유언을 기사 제목에 담았습니다.
일본 주요 언론 가운데는 NHK만 인터넷 기사를 통해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여론의 대일 감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갔고 중국에서 8년간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1992년 마침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일본과 맞섰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는 평화운동가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이 고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홍석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한국에 대한 배상을 촉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92세로 숨을 거두다.
명사들의 생전 행적을 장문의 기사로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부고는 김 할머니가 1990년대 초반 수십 년 간의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최초의 여성 중에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엔 등 전 세계를 돌며 증언에 나선 김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고 전했습니다.
[故 김복동/위안부 피해자/지난해 9월 : "일본 정부에서도 과거 식민지 시대에 자기네들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만 14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간 뒤 동남아를 돌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김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도 소개했습니다.
1992년 피해 증언에 나서면서 한국 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나서게 됐고, 김 할머니가 맨 앞에서 이들의 명예회복 운동을 이끌었다고도 했습니다.
로이터와 알자지라는 '진정한 사과'라는 소제목 기사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김 할머니가 2015년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해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한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로이터는 "끝까지 싸워달라"는 고인의 유언을 기사 제목에 담았습니다.
일본 주요 언론 가운데는 NHK만 인터넷 기사를 통해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여론의 대일 감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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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기자 muse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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