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비건이 던진 ‘불가침’ 승부수…북미 협상 ‘본게임’ 시작됐다!

입력 2019.02.01 (19:05) 수정 2019.02.0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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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We are not going to invade North Korea. We are not seeking to topple the North Korean regime)"

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다음 주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대북 불가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 측 실무협상 대표인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할 경우 사실상 북한 체제는 물론 정권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비건 대표는 이를 위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포괄적 신고'와 '해체'를 북한에 요구했는데, 발언 수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가 통근 비핵화 거래를 요구하며 사실상 승부수를 띄운 셈인데,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계기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바야흐로 본게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 비건의 '불가침' 승부수.."북한 침공 안해...정권 전복 추구안해"

비건 특별대표의 이례적인 '대북 불가침' 발언은 미국의 한 대학 강연 과정에서 나왔다.

비건 대표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비핵화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만든 전제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전쟁은 끝났다"면서 "우리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대북 불가침 의사를 천명했다.

비건 대표는 "미국의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 이제 움직여야 할 때라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더는 이런 갈등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의 핵 위협이 한창이던 2017년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이른바 '4노(NO) 원칙'(정권교체-정권붕괴-흡수통일-침공 불가)을 천명한 적은 있지만, 지난해 북미 대화가 본격화된 뒤 미국 정부 관리가 공개 석상에서 '대북 불가침'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넘어 '불가침 조약'과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논의 수준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셈인데,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할 경우 북한의 최대 목표인 정권의 '안전 보장' 요구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발언의 내용 못지않게 주목되는 건 발언의 시점이다. 이달 말 2차 북미정상회담, 특히 다음 주 북미 실무협상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의 협상 대표가 직접 '불가침'을 거론한 건 다분히 협상을 의식한 계산된 행보라는 해석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대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미국은 통 큰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으니 이제 북한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메시지로, 미국으로선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강연 이후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비건 대표는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 땅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며 대사관에 (미국) 국기가 내걸리는 완벽한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북미 협상 타결 이후의 궁극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 "모든 핵·미사일 '어느 시점' 신고해야"...주목되는 "비상 계획' 발언

비건 대표는 이날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담은 '비핵화 명세서'도 함께 제시했다.

비건 대표는 먼저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해체·폐기(dismantlement and destruction)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새롭게 공개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인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체 범위를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포괄적인 신고를 통해 어느 시점에서 이를 얻어낼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전반에 대한 '핵 신고'를 요구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이 핵심 핵·미사일 시설에 접근해 모니터링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 미사일, 발사대, 여타 대량살상무기 비축물을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일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을 상대로 '불가침' '평화체제' '경제 보상' 등을 망라한 화끈한 비핵화 대가를 제시하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핵 신고와 사찰, 검증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비건 대표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기 이전 대북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면서, "미국은 외교적 과정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contingency)을 갖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 유연해진 미국 "동시적, 병행적으로 진전".. 2월 한 달이 '관건적 시기"

비건 대표의 이날 발언 중에는 미국의 달라진 협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먼저 비건 대표는 이날 "싱가포르 합의사항을 동시적·병행적으로(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진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 동시적 해결' 방식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외신들은 비건 대표가 북한에 핵· 미사일 시설에 대한 '포괄적인 신고'를 요구하면서도, 그 시기를 '어느 시점(at some point)'으로 표현해 한발 물러선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비핵화의 첫 단계로 강력히 요구해온 '핵 리스트 신고'를 일정 시점 이후로 늦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미국의 협상 태도가 종전보다 유연해졌다는 평가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비건 대표의 '어느 시점'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더는 비핵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서 핵 자산에 대한 완전한 목록 제출을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시사했다"고 풀이했다.

미국이 '핵 리스트 제출이 비핵화의 첫 단계'라는 주장을 철회한다면 이는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양국의 외교 관계를 가로막아온 장애물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건 대표는 오는 3일 서울을 방문해 우리 정부와 사전 조율을 한 뒤, 이르면 4일부터 북한 측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를 만나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설 연휴 기간, '비건-김혁철' 실무라인의 가동을 통해 북미는 2월 말로 가닥이 잡힌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확정한 뒤, 비핵화와 상응조치로 대변되는 의제 조율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대북 불가침'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북미 협상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있는 가운데 설 연휴를 포함한 이번 2월 한달이 북미 협상의 운명을 가를 관건적 시기가 될 거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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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19:05:36
    • 수정2019-02-01 19: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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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We are not going to invade North Korea. We are not seeking to topple the North Korean regime)"

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다음 주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대북 불가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 측 실무협상 대표인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할 경우 사실상 북한 체제는 물론 정권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비건 대표는 이를 위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포괄적 신고'와 '해체'를 북한에 요구했는데, 발언 수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미국 정부가 통근 비핵화 거래를 요구하며 사실상 승부수를 띄운 셈인데,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계기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바야흐로 본게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 비건의 '불가침' 승부수.."북한 침공 안해...정권 전복 추구안해"

비건 특별대표의 이례적인 '대북 불가침' 발언은 미국의 한 대학 강연 과정에서 나왔다.

비건 대표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비핵화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만든 전제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전쟁은 끝났다"면서 "우리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대북 불가침 의사를 천명했다.

비건 대표는 "미국의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 이제 움직여야 할 때라고 확신하고 있다"면서 "더는 이런 갈등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의 핵 위협이 한창이던 2017년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이른바 '4노(NO) 원칙'(정권교체-정권붕괴-흡수통일-침공 불가)을 천명한 적은 있지만, 지난해 북미 대화가 본격화된 뒤 미국 정부 관리가 공개 석상에서 '대북 불가침'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넘어 '불가침 조약'과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논의 수준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셈인데,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할 경우 북한의 최대 목표인 정권의 '안전 보장' 요구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발언의 내용 못지않게 주목되는 건 발언의 시점이다. 이달 말 2차 북미정상회담, 특히 다음 주 북미 실무협상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의 협상 대표가 직접 '불가침'을 거론한 건 다분히 협상을 의식한 계산된 행보라는 해석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대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미국은 통 큰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으니 이제 북한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메시지로, 미국으로선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강연 이후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비건 대표는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 땅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며 대사관에 (미국) 국기가 내걸리는 완벽한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북미 협상 타결 이후의 궁극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 "모든 핵·미사일 '어느 시점' 신고해야"...주목되는 "비상 계획' 발언

비건 대표는 이날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담은 '비핵화 명세서'도 함께 제시했다.

비건 대표는 먼저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해체·폐기(dismantlement and destruction)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새롭게 공개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인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체 범위를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포괄적인 신고를 통해 어느 시점에서 이를 얻어낼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전반에 대한 '핵 신고'를 요구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이 핵심 핵·미사일 시설에 접근해 모니터링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 미사일, 발사대, 여타 대량살상무기 비축물을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일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을 상대로 '불가침' '평화체제' '경제 보상' 등을 망라한 화끈한 비핵화 대가를 제시하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핵 신고와 사찰, 검증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비건 대표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기 이전 대북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하면서, "미국은 외교적 과정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contingency)을 갖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 유연해진 미국 "동시적, 병행적으로 진전".. 2월 한 달이 '관건적 시기"

비건 대표의 이날 발언 중에는 미국의 달라진 협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먼저 비건 대표는 이날 "싱가포르 합의사항을 동시적·병행적으로(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진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 동시적 해결' 방식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외신들은 비건 대표가 북한에 핵· 미사일 시설에 대한 '포괄적인 신고'를 요구하면서도, 그 시기를 '어느 시점(at some point)'으로 표현해 한발 물러선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비핵화의 첫 단계로 강력히 요구해온 '핵 리스트 신고'를 일정 시점 이후로 늦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미국의 협상 태도가 종전보다 유연해졌다는 평가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비건 대표의 '어느 시점'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더는 비핵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서 핵 자산에 대한 완전한 목록 제출을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시사했다"고 풀이했다.

미국이 '핵 리스트 제출이 비핵화의 첫 단계'라는 주장을 철회한다면 이는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양국의 외교 관계를 가로막아온 장애물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건 대표는 오는 3일 서울을 방문해 우리 정부와 사전 조율을 한 뒤, 이르면 4일부터 북한 측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를 만나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설 연휴 기간, '비건-김혁철' 실무라인의 가동을 통해 북미는 2월 말로 가닥이 잡힌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확정한 뒤, 비핵화와 상응조치로 대변되는 의제 조율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대북 불가침'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북미 협상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있는 가운데 설 연휴를 포함한 이번 2월 한달이 북미 협상의 운명을 가를 관건적 시기가 될 거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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