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뽑아준 은행장은 감옥갔는데 부정합격자는 ‘별일없이 산다’…왜?

입력 2019.02.04 (14:01) 수정 2019.02.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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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고 계신 분이 몇 분인지도 모르시는 거예요?"
"그렇죠. 개인 신분으로 변호사 써서 하는 부분이라… 저희가 거기까지는 내용을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채용 비리' 문제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1심 선고 결과가 나온 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구속된 이 전 행장을 뒤로하고, 법정에서 나와 우리은행 측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정 채용이 인정돼 은행장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니, 부정 합격자 퇴출이나 피해자 구제 같은 후속 대책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은행 측의 답변이 조금 황당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적힌 부정 합격자들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지만, 말해주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는.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부정 합격자 77% 재직 중…"부정 합격? 처음 듣는 얘기"

서울의 모 우리은행 지점에서, 한 부정 합격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서울의 모 우리은행 지점에서, 한 부정 합격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그 취재 결과가 지난달 28일 KBS 뉴스9에 보도됐습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수사·재판을 통해, 서류 전형이나 1차 면접에서 청탁으로 부정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36명. 이들 중 28명(77.7%)이 재직하고 있는 걸로 취재진은 파악했습니다. 모두 2015~2017년 공채로 입사한 직원들로, 가장 길게는 4년째 근무 중인 셈입니다.

[연관 기사] [끈질긴K] 은행장 법정 구속에도 부정 합격자 ‘모르쇠’…피해자 구제 0건

이들 중 6명을 KBS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전화도 받으며, '별일 없이' 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말을 걸어봤습니다. "원래 학점이 낮아 서류에서 필터링 되셨다", "1차 면접에서 원래 불합격권이었는데 점수 조작이 있었다.", "선생님을 부정 합격시키면서 다른 합격자가 억울하게 떨어졌다"…. 1명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고, 5명은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표정에선 황당함, 단호함, 불쾌함, 억울함 같은 것들이 읽혔습니다.

우리은행 "부정 합격자 조사도 징계도 어려워…법적 근거 없어"


정말로 몰랐을까요? 진짜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부정 합격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적어도 은행 차원에선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바로 잡을 의지가 있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은행에 다시 한 번 물어봤습니다. 정말 부정 합격자들의 행방을 모르고 있느냐고요. 질의서를 두 번 보내고 나서야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 1심 판결문을 통해 부정 합격자의 인적 사항과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 알고 있다면 왜 부정 합격자 퇴출에 손을 놓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은행 측은 '입법 미비'를 사유로 들었습니다. 부정 합격자에 대해 조사나 징계, 해고 등의 자체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일까요?

부정 합격자 퇴출 사례 있지만…"우리는 공공기관 아닌 사기업"

기획재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의 일부분.기획재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의 일부분.

재작년부터 채용 비리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자, 정부는 급히 관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월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를 내놨습니다. 채용 비리 연루자와 부정 합격자 제재에 대한 가이드라인 성격이었는데요. 내용을 보면, 채용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던 공공기관 임직원이 기소되면 즉시 직권면직 등으로 퇴출하도록 했습니다. 부정 합격자도 본인이 직접 부정행위를 해 기소되면 즉시 퇴출을 추진하도록 했습니다. 혹여 직접 부정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혜택만 봤더라도, 책임이 면해지진 않았습니다. 관련자가 기소되면, 그 공소장에 명시된 부정 합격자 역시 즉시 업무에서 배제하고 재조사와 징계위를 거쳐 퇴출하도록 한 겁니다. 실제로 강원랜드와 가스안전공사, 수서고속철도 운영사 SR 등은 지난해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정 합격자를 면직 처리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2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여기에도 부정 합격자 채용 취소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채용 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 임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 관계 부처의 장은 그 사람의 비위 행위로 입사한 부정 합격자를 '합격 취소'하라고 해당 공공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과 개정법의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입니다. 부정 합격자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우리은행의 주장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라는 겁니다. 우리은행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일반 사기업, 중소기업이 아니지 않나. 큰 은행이고 공정성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법적인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나서서 조사나 징계를 하겠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부정 합격자 자체 징계 등에 대해 "법률 검토 중에 있다."라고 답변을 약간 바꾸었지만, 역시 관련 계획은 세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실제 법적 논란 있어" vs "의지가 없는 것"


우리은행 측의 이런 입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노사관계 분야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이를 은행의 '책임 회피'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해고하려면 근로자의 귀책 사유, 즉 근로자가 인사상 불이익의 책임을 져야 할 사유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아닌 주변인이 부정 합격을 청탁한 거라면, 근로자에게 책임을 물어 채용 취소가 가능한지 법적인 논란이 있다는 겁니다.

이 인사는 "우리은행이 부정 합격자를 해고하면, 그 사람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내는 등 해고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고려해 쉽게 관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하나 변호사는 은행의 '의지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김 변호사는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에 보낸 법률 자문에서, "대법원 판결은 근로계약도 일반계약과 같이 무효, 취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 판결문에서는 관련자들이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계속 확인되기 때문에, 은행이 부정 합격자들과 맺은 근로계약도 무효로 볼 수 있다"면서 "(부정 합격자 퇴출을) 하기 싫으니 안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고 하지만, 법원이 판결문에서 지적했듯 우리은행의 공공성은 다른 어떤 사기업보다도 큰 만큼 입법 미비 탓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입니다.

법 개정안, 채용절차 개선책 나왔지만…엎질러진 물

공공기관에 이어 금융권 채용비리 문제가 터진 뒤, 부정 합격자 처리를 위한 여러 대책이 나왔습니다.

우선 국회에서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나 제3자의 부당한 청탁이나 금전적 이익 제공이 있었다면, 부정하게 채용된 자의 채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법안 내용 보기: [2013718]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은행연합회도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제정해, 부정 청탁으로 합격한 직원의 채용을 취소하거나 면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2018년 6월 시행된 은행연합회의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의 일부분2018년 6월 시행된 은행연합회의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의 일부분

우리은행도 채용공고 절차에서부터 부정행위 시 불이익을 사전 고지하고, '채용 청탁 등 부정행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포함한 공정 채용 7중 안전장치를 도입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은행 측은 "은행권 최초로 이런 안전장치를 도입한 이후 청탁은 1건도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입사한 부정 합격자들을 처리하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합격자 바꿔치기와 점수 조작으로 부당하게 탈락한 피해자 구제는 더욱 요원합니다. 우리은행 측은 부정 합격자에 대한 합격 취소, 면직이 완료돼야 그다음 단계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더욱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입사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이미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우리은행은 밝혔습니다.

법원은 채용 비리를 저지른 이광구 전 행장 등의 범행이 우리은행 지원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본 취업준비생들에게 "크나큰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겼고,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 범행의 결과물인 부정 합격자와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치가 없다면, 크나큰 배신감과 좌절감, 사회적 신뢰의 심각한 훼손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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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뽑아준 은행장은 감옥갔는데 부정합격자는 ‘별일없이 산다’…왜?
    • 입력 2019-02-04 14:01:36
    • 수정2019-02-04 14:02:25
    취재후·사건후
"지금 다니고 계신 분이 몇 분인지도 모르시는 거예요?"
"그렇죠. 개인 신분으로 변호사 써서 하는 부분이라… 저희가 거기까지는 내용을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채용 비리' 문제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1심 선고 결과가 나온 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구속된 이 전 행장을 뒤로하고, 법정에서 나와 우리은행 측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정 채용이 인정돼 은행장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니, 부정 합격자 퇴출이나 피해자 구제 같은 후속 대책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은행 측의 답변이 조금 황당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적힌 부정 합격자들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지만, 말해주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는.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부정 합격자 77% 재직 중…"부정 합격? 처음 듣는 얘기"

서울의 모 우리은행 지점에서, 한 부정 합격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그 취재 결과가 지난달 28일 KBS 뉴스9에 보도됐습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수사·재판을 통해, 서류 전형이나 1차 면접에서 청탁으로 부정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36명. 이들 중 28명(77.7%)이 재직하고 있는 걸로 취재진은 파악했습니다. 모두 2015~2017년 공채로 입사한 직원들로, 가장 길게는 4년째 근무 중인 셈입니다.

[연관 기사] [끈질긴K] 은행장 법정 구속에도 부정 합격자 ‘모르쇠’…피해자 구제 0건

이들 중 6명을 KBS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전화도 받으며, '별일 없이' 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말을 걸어봤습니다. "원래 학점이 낮아 서류에서 필터링 되셨다", "1차 면접에서 원래 불합격권이었는데 점수 조작이 있었다.", "선생님을 부정 합격시키면서 다른 합격자가 억울하게 떨어졌다"…. 1명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고, 5명은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표정에선 황당함, 단호함, 불쾌함, 억울함 같은 것들이 읽혔습니다.

우리은행 "부정 합격자 조사도 징계도 어려워…법적 근거 없어"


정말로 몰랐을까요? 진짜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부정 합격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적어도 은행 차원에선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바로 잡을 의지가 있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은행에 다시 한 번 물어봤습니다. 정말 부정 합격자들의 행방을 모르고 있느냐고요. 질의서를 두 번 보내고 나서야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 1심 판결문을 통해 부정 합격자의 인적 사항과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 알고 있다면 왜 부정 합격자 퇴출에 손을 놓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은행 측은 '입법 미비'를 사유로 들었습니다. 부정 합격자에 대해 조사나 징계, 해고 등의 자체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일까요?

부정 합격자 퇴출 사례 있지만…"우리는 공공기관 아닌 사기업"

기획재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의 일부분.
재작년부터 채용 비리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자, 정부는 급히 관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월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를 내놨습니다. 채용 비리 연루자와 부정 합격자 제재에 대한 가이드라인 성격이었는데요. 내용을 보면, 채용 비리에 연루돼 수사를 받던 공공기관 임직원이 기소되면 즉시 직권면직 등으로 퇴출하도록 했습니다. 부정 합격자도 본인이 직접 부정행위를 해 기소되면 즉시 퇴출을 추진하도록 했습니다. 혹여 직접 부정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혜택만 봤더라도, 책임이 면해지진 않았습니다. 관련자가 기소되면, 그 공소장에 명시된 부정 합격자 역시 즉시 업무에서 배제하고 재조사와 징계위를 거쳐 퇴출하도록 한 겁니다. 실제로 강원랜드와 가스안전공사, 수서고속철도 운영사 SR 등은 지난해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정 합격자를 면직 처리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2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여기에도 부정 합격자 채용 취소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채용 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 임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 관계 부처의 장은 그 사람의 비위 행위로 입사한 부정 합격자를 '합격 취소'하라고 해당 공공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과 개정법의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입니다. 부정 합격자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우리은행의 주장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라는 겁니다. 우리은행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일반 사기업, 중소기업이 아니지 않나. 큰 은행이고 공정성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법적인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나서서 조사나 징계를 하겠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부정 합격자 자체 징계 등에 대해 "법률 검토 중에 있다."라고 답변을 약간 바꾸었지만, 역시 관련 계획은 세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실제 법적 논란 있어" vs "의지가 없는 것"


우리은행 측의 이런 입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노사관계 분야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이를 은행의 '책임 회피'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해고하려면 근로자의 귀책 사유, 즉 근로자가 인사상 불이익의 책임을 져야 할 사유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아닌 주변인이 부정 합격을 청탁한 거라면, 근로자에게 책임을 물어 채용 취소가 가능한지 법적인 논란이 있다는 겁니다.

이 인사는 "우리은행이 부정 합격자를 해고하면, 그 사람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내는 등 해고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고려해 쉽게 관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하나 변호사는 은행의 '의지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김 변호사는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에 보낸 법률 자문에서, "대법원 판결은 근로계약도 일반계약과 같이 무효, 취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 판결문에서는 관련자들이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계속 확인되기 때문에, 은행이 부정 합격자들과 맺은 근로계약도 무효로 볼 수 있다"면서 "(부정 합격자 퇴출을) 하기 싫으니 안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고 하지만, 법원이 판결문에서 지적했듯 우리은행의 공공성은 다른 어떤 사기업보다도 큰 만큼 입법 미비 탓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입니다.

법 개정안, 채용절차 개선책 나왔지만…엎질러진 물

공공기관에 이어 금융권 채용비리 문제가 터진 뒤, 부정 합격자 처리를 위한 여러 대책이 나왔습니다.

우선 국회에서는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구직자나 제3자의 부당한 청탁이나 금전적 이익 제공이 있었다면, 부정하게 채용된 자의 채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법안 내용 보기: [2013718]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은행연합회도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제정해, 부정 청탁으로 합격한 직원의 채용을 취소하거나 면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2018년 6월 시행된 은행연합회의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의 일부분
우리은행도 채용공고 절차에서부터 부정행위 시 불이익을 사전 고지하고, '채용 청탁 등 부정행위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포함한 공정 채용 7중 안전장치를 도입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은행 측은 "은행권 최초로 이런 안전장치를 도입한 이후 청탁은 1건도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입사한 부정 합격자들을 처리하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합격자 바꿔치기와 점수 조작으로 부당하게 탈락한 피해자 구제는 더욱 요원합니다. 우리은행 측은 부정 합격자에 대한 합격 취소, 면직이 완료돼야 그다음 단계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더욱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입사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이미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우리은행은 밝혔습니다.

법원은 채용 비리를 저지른 이광구 전 행장 등의 범행이 우리은행 지원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본 취업준비생들에게 "크나큰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겼고,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 범행의 결과물인 부정 합격자와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치가 없다면, 크나큰 배신감과 좌절감, 사회적 신뢰의 심각한 훼손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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