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네이팜탄 소녀’ 킴 푹의 평양행은 꿈일까?

입력 2019.02.13 (07:03) 수정 2019.02.13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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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몸으로 화상을 입은 채 울부짖으며 불길 속을 뛰쳐나오는 어린 소녀, 이른바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실제 주인공인 킴 푹 여사가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전쟁과 공포의 상징인 '네이팜탄 소녀'의 아픔을 딛고, 전 세계를 누비며 전쟁 피해 어린이를 돕는 등 평화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온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실제로 특파원 시절 만난 푹 여사는 더 이상 공포에 떨며 울부짖던 '사진 속 소녀'가 아닌, 온화한 미소를 띤 중년 평화 전도사의 모습이었다.

푹 여사는 특히 전쟁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언젠가 북한을 찾아 북한 어린이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그녀의 고국에서 열리는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날아든 '네이팜탄 소녀'의 국제 평화상 수상 소식, 북미의 담판 결과에 따라 어쩌면 그녀의 평양행은 단지 꿈은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6월 베트남전 당시, 미국 AP통신 사진기자인 닉 우트가 촬영한 ‘네이팜탄 소녀’(원제:전쟁의 공포) 사진. 지구촌에 반전 여론을 촉발시킨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1972년 6월 베트남전 당시, 미국 AP통신 사진기자인 닉 우트가 촬영한 ‘네이팜탄 소녀’(원제:전쟁의 공포) 사진. 지구촌에 반전 여론을 촉발시킨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11년 전 만난 ‘네이팜탄 소녀’…전쟁의 공포 딛고 ‘평화 전도사’로 변신

베트남전 하면 떠오르는 사진, 이른바 '네이팜탄 소녀'의 주인공인 킴 푹 여사를 직접 만난 건 11년 전 워싱턴 특파원 시절의 일이다.

2008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 인근에 위치한 메릴랜드에서 '네이팜탄 소녀'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취재 신청을 했다. 그녀는 강연 취재를 허용한 것은 물론 별도의 인터뷰 요청까지 흔쾌히 수락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봐왔던 바로 그 사진, '네이팜탄 소녀'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말로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한 사진 속 '9살 소녀'는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40대 중반의 중년 여인이었다.

무려 17차례의 수술을 통해 화상을 지워낸 그녀의 모습에서 더 이상 전쟁이 남긴 아픈 상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온화한 미소와 친절함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1992년 쿠바 유학을 거쳐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한 그녀는 1997년부터는 유네스코의 평화 친선대사에 임명돼 전 세계를 누비며 평화 전도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평화 자선단체(킴 푹 재단)를 만들어 지뢰 피해 어린이 등 전쟁 중 다친 아이들을 돕는 사업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에서 강연하는 ‘네이팜탄 소녀’ 킴 푹 여사의 모습(KBS 9시뉴스 방송 화면)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에서 강연하는 ‘네이팜탄 소녀’ 킴 푹 여사의 모습(KBS 9시뉴스 방송 화면)

■ “네이팜탄 소녀, 평화의 상징으로…북한 어린이 직접 만나고 싶다”

"더 이상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어린이로 보지 마세요. 평화를 호소하는 어린이로 봐주세요. 군인들도 역시 피해자죠. 우리는 똑같은 고통을 받았잖아요. 사랑하고 용서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전 세계 반전 여론의 기폭제가 돼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기도 했던 '네이팜탄 소녀', 사진 속 주인공 킴 푹 여사에게 그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푹 여사는 강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회고하면서, 참혹했던 피폭 당시 상황과 이후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네이팜탄 사진' 속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하며, 전 세계에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잊을 수는 없지만 과거의 아픔에 연연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다"고 강조한 푹 여사는 자신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앞으로도 화해와 용서의 길을 걸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이런 행동이 인류 평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도 함께 전했다.

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 강연을 마치고 KBS 워싱턴 지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킴 푹 여사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 강연을 마치고 KBS 워싱턴 지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킴 푹 여사

취재를 마감하는 순간, 푹 여사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기자에게 물으며 "기회가 되면 북한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쟁, 함께 전쟁의 상처를 경험했던 피해 공유자의 입장에서 북한 땅을 밟아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셈이다.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실제 주인공인 킴 푹 여사가 11일(현지시각) 독일 현지에서 ‘드레스덴 평화상(Dresden Peace Prize)’을 수상하고 있다.‘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실제 주인공인 킴 푹 여사가 11일(현지시각) 독일 현지에서 ‘드레스덴 평화상(Dresden Peace Prize)’을 수상하고 있다.

■ ‘드레스덴 평화상’ 수상…“증오의 설파자들에게 인류의 위대함 보여줘”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 재단은 푹 여사에서 평화인권상을 수상하면서, 그녀가 전쟁 중에 다친 아이들을 지원하고 폭력과 혐오에 반기를 들었으며 유네스코 활동을 앞장서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녀가 증오의 설파자들에게 인류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면서 "그녀의 위대한 행동이 전 세계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네이팜탄 소녀'로 상징되는 전쟁의 공포와 증오를 이겨내고 전 세계를 상대로 용서와 화해를 주창해온 평화 운동가, 푹 여사의 삶 자체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셈이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의 첫 수상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다.

푹 여사는 수상 소감을 통해 "혼자 있을 때 나는 그 사진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내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해준다. 그것이 나의 비전"이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푹 여사는 상금으로 받은 1만 유로(약 1천300만 원) 전액을 전쟁고아 등을 지원하는 자신의 재단에 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팜탄 공격을 받을 당시 전신의 30%에 3도 화상을 입었던 푹 여사는 지금까지 무려 17차례의 수술을 받은 데 이어 2015년부터 새로운 화상 치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국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킴 푹 여사의 평양행은 꿈일까?

2주 뒤 킴 푹 여사의 고국인 베트남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문제를 좌우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자신을 미군의 잔학상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반발, 1992년 쿠바 유학 도중 결국 캐나다 망명을 선택했던 킴 푹 여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푹 여사가 고국을 떠난 27년의 세월, 베트남은 그 사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사회주의 개혁 개방의 상징으로 급부상했고, 지금은 북한의 발전 모델로도 거론되고 있다.

북미 정상은 과연 이번 만남에서 핵무기라는 걸림돌을 치우고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네이팜탄 소녀'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하노이 정상회담 2주 앞두고 외신을 통해 날아든 킴 푹 여사의 국제 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그녀의 평양행이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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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2-13 07: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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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몸으로 화상을 입은 채 울부짖으며 불길 속을 뛰쳐나오는 어린 소녀, 이른바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실제 주인공인 킴 푹 여사가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전쟁과 공포의 상징인 '네이팜탄 소녀'의 아픔을 딛고, 전 세계를 누비며 전쟁 피해 어린이를 돕는 등 평화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온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실제로 특파원 시절 만난 푹 여사는 더 이상 공포에 떨며 울부짖던 '사진 속 소녀'가 아닌, 온화한 미소를 띤 중년 평화 전도사의 모습이었다.

푹 여사는 특히 전쟁의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언젠가 북한을 찾아 북한 어린이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그녀의 고국에서 열리는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날아든 '네이팜탄 소녀'의 국제 평화상 수상 소식, 북미의 담판 결과에 따라 어쩌면 그녀의 평양행은 단지 꿈은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6월 베트남전 당시, 미국 AP통신 사진기자인 닉 우트가 촬영한 ‘네이팜탄 소녀’(원제:전쟁의 공포) 사진. 지구촌에 반전 여론을 촉발시킨 이 사진은 이듬해인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11년 전 만난 ‘네이팜탄 소녀’…전쟁의 공포 딛고 ‘평화 전도사’로 변신

베트남전 하면 떠오르는 사진, 이른바 '네이팜탄 소녀'의 주인공인 킴 푹 여사를 직접 만난 건 11년 전 워싱턴 특파원 시절의 일이다.

2008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 인근에 위치한 메릴랜드에서 '네이팜탄 소녀'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취재 신청을 했다. 그녀는 강연 취재를 허용한 것은 물론 별도의 인터뷰 요청까지 흔쾌히 수락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봐왔던 바로 그 사진, '네이팜탄 소녀'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말로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한 사진 속 '9살 소녀'는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40대 중반의 중년 여인이었다.

무려 17차례의 수술을 통해 화상을 지워낸 그녀의 모습에서 더 이상 전쟁이 남긴 아픈 상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온화한 미소와 친절함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1992년 쿠바 유학을 거쳐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한 그녀는 1997년부터는 유네스코의 평화 친선대사에 임명돼 전 세계를 누비며 평화 전도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평화 자선단체(킴 푹 재단)를 만들어 지뢰 피해 어린이 등 전쟁 중 다친 아이들을 돕는 사업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에서 강연하는 ‘네이팜탄 소녀’ 킴 푹 여사의 모습(KBS 9시뉴스 방송 화면)
■ “네이팜탄 소녀, 평화의 상징으로…북한 어린이 직접 만나고 싶다”

"더 이상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어린이로 보지 마세요. 평화를 호소하는 어린이로 봐주세요. 군인들도 역시 피해자죠. 우리는 똑같은 고통을 받았잖아요. 사랑하고 용서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전 세계 반전 여론의 기폭제가 돼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기도 했던 '네이팜탄 소녀', 사진 속 주인공 킴 푹 여사에게 그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푹 여사는 강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회고하면서, 참혹했던 피폭 당시 상황과 이후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네이팜탄 사진' 속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하며, 전 세계에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잊을 수는 없지만 과거의 아픔에 연연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다"고 강조한 푹 여사는 자신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앞으로도 화해와 용서의 길을 걸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이런 행동이 인류 평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당부도 함께 전했다.

2008년 4월 미국 매릴랜드 강연을 마치고 KBS 워싱턴 지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킴 푹 여사
취재를 마감하는 순간, 푹 여사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기자에게 물으며 "기회가 되면 북한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쟁, 함께 전쟁의 상처를 경험했던 피해 공유자의 입장에서 북한 땅을 밟아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셈이다.

‘네이팜탄 소녀’ 사진의 실제 주인공인 킴 푹 여사가 11일(현지시각) 독일 현지에서 ‘드레스덴 평화상(Dresden Peace Prize)’을 수상하고 있다.
■ ‘드레스덴 평화상’ 수상…“증오의 설파자들에게 인류의 위대함 보여줘”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 재단은 푹 여사에서 평화인권상을 수상하면서, 그녀가 전쟁 중에 다친 아이들을 지원하고 폭력과 혐오에 반기를 들었으며 유네스코 활동을 앞장서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녀가 증오의 설파자들에게 인류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면서 "그녀의 위대한 행동이 전 세계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네이팜탄 소녀'로 상징되는 전쟁의 공포와 증오를 이겨내고 전 세계를 상대로 용서와 화해를 주창해온 평화 운동가, 푹 여사의 삶 자체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셈이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독일 '드레스덴 평화상'의 첫 수상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다.

푹 여사는 수상 소감을 통해 "혼자 있을 때 나는 그 사진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내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해준다. 그것이 나의 비전"이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푹 여사는 상금으로 받은 1만 유로(약 1천300만 원) 전액을 전쟁고아 등을 지원하는 자신의 재단에 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팜탄 공격을 받을 당시 전신의 30%에 3도 화상을 입었던 푹 여사는 지금까지 무려 17차례의 수술을 받은 데 이어 2015년부터 새로운 화상 치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국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킴 푹 여사의 평양행은 꿈일까?

2주 뒤 킴 푹 여사의 고국인 베트남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문제를 좌우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자신을 미군의 잔학상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반발, 1992년 쿠바 유학 도중 결국 캐나다 망명을 선택했던 킴 푹 여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푹 여사가 고국을 떠난 27년의 세월, 베트남은 그 사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사회주의 개혁 개방의 상징으로 급부상했고, 지금은 북한의 발전 모델로도 거론되고 있다.

북미 정상은 과연 이번 만남에서 핵무기라는 걸림돌을 치우고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네이팜탄 소녀'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하노이 정상회담 2주 앞두고 외신을 통해 날아든 킴 푹 여사의 국제 평화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그녀의 평양행이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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