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맘때쯤,
거창과 산청 그리고 함양에선
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국가 배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승목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펙트1]"얘는 불쌍한 내 동생이고,
얘는 내 형님... 둘째 형님이고..."
비석 앞에서
가족을 불러보는 김운섭 씨.
70년 가까운 세월에도,
김 씨는 엄마와 작은 형,
그리고 세 살배기 여동생까지 잃은
악몽 같은 겨울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운섭(78)[인터뷰]
/ 거창사건 생존자
"집에는 불을 지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빨리빨리 나오라 해서, 뜰앞에
논들에 전부 끌어모아 가지고 / 무조건
기관총과 그 M1총으로 갈겼지 전부 다 싹"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9일.
지리산 일대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은
거창군 신원면에서 무고한 주민
719명을 무참히 사살했습니다.
이틀 전 산청과 함양에서 학살된
주민 705명까지 천 4백여 명의 희생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생존자들과 유족회의 끈질긴 활동으로
사건의 실상은 세상에 알려졌고,
1995년 12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 부담 등의 이유로
배상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
현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관련 법안은 계류된 채
정부와 정치권 논의엔 진척이 없습니다.
신양재 [인터뷰]
/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 유족회 간사
"생활하시는 분들이 다 몇 분 안 계세요.
연로하시다 보니까... 몇 분 안 계시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 그러니까 유족회 쪽에
서도 무슨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전란의 시기
적군이 아닌 국군에 의해 자행된
지역민들의 죽음.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KBS뉴스 오승목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맘때쯤,
거창과 산청 그리고 함양에선
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국가 배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승목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펙트1]"얘는 불쌍한 내 동생이고,
얘는 내 형님... 둘째 형님이고..."
비석 앞에서
가족을 불러보는 김운섭 씨.
70년 가까운 세월에도,
김 씨는 엄마와 작은 형,
그리고 세 살배기 여동생까지 잃은
악몽 같은 겨울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운섭(78)[인터뷰]
/ 거창사건 생존자
"집에는 불을 지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빨리빨리 나오라 해서, 뜰앞에
논들에 전부 끌어모아 가지고 / 무조건
기관총과 그 M1총으로 갈겼지 전부 다 싹"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9일.
지리산 일대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은
거창군 신원면에서 무고한 주민
719명을 무참히 사살했습니다.
이틀 전 산청과 함양에서 학살된
주민 705명까지 천 4백여 명의 희생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생존자들과 유족회의 끈질긴 활동으로
사건의 실상은 세상에 알려졌고,
1995년 12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 부담 등의 이유로
배상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
현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관련 법안은 계류된 채
정부와 정치권 논의엔 진척이 없습니다.
신양재 [인터뷰]
/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 유족회 간사
"생활하시는 분들이 다 몇 분 안 계세요.
연로하시다 보니까... 몇 분 안 계시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 그러니까 유족회 쪽에
서도 무슨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전란의 시기
적군이 아닌 국군에 의해 자행된
지역민들의 죽음.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KBS뉴스 오승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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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국가 배상은 막막하기만...씻기지 않은 70년의 상처
-
- 입력 2019-02-15 14:06:15
[앵커멘트]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맘때쯤,
거창과 산청 그리고 함양에선
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국가 배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승목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펙트1]"얘는 불쌍한 내 동생이고,
얘는 내 형님... 둘째 형님이고..."
비석 앞에서
가족을 불러보는 김운섭 씨.
70년 가까운 세월에도,
김 씨는 엄마와 작은 형,
그리고 세 살배기 여동생까지 잃은
악몽 같은 겨울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운섭(78)[인터뷰]
/ 거창사건 생존자
"집에는 불을 지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빨리빨리 나오라 해서, 뜰앞에
논들에 전부 끌어모아 가지고 / 무조건
기관총과 그 M1총으로 갈겼지 전부 다 싹"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9일.
지리산 일대
공비를 토벌하던 국군은
거창군 신원면에서 무고한 주민
719명을 무참히 사살했습니다.
이틀 전 산청과 함양에서 학살된
주민 705명까지 천 4백여 명의 희생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생존자들과 유족회의 끈질긴 활동으로
사건의 실상은 세상에 알려졌고,
1995년 12월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 부담 등의 이유로
배상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
현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관련 법안은 계류된 채
정부와 정치권 논의엔 진척이 없습니다.
신양재 [인터뷰]
/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 유족회 간사
"생활하시는 분들이 다 몇 분 안 계세요.
연로하시다 보니까... 몇 분 안 계시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 그러니까 유족회 쪽에
서도 무슨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전란의 시기
적군이 아닌 국군에 의해 자행된
지역민들의 죽음.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KBS뉴스 오승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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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목 기자 o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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