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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발목잡는 또다른 5.18 왜곡 사례
입력 2019.02.19 (21:59) 수정 2019.02.20 (02:10) 뉴스9(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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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5.18 당시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왜곡 사례 외에도
극우 세력의 5.18 왜곡 주장은
다양합니다.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과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시민군 총격으로 숨졌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신군부와 일부 극우세력에 의해
'좌익 제소자 구출'을 위한 것으로
알려진 '교도소 습격 사건'.

하지만 육군본부 자료와
특전사 자료를 비교하면
습격 횟수는 각각 6차례,
4차례로 다르고,
발생 시각과 내용도 제각각입니다.

이 가운데
교전 상황은 두 차례 있지만,
정작 회수한 무기는
총 한자루와 실탄 20여 발,

교도소를 습격하러 나선
화력으론 믿기지 않습니다.

때문에 계엄군이
광주 외곽봉쇄작전에 나서면서
광주를 빠져나가려는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실제 당시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농민 4명이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2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채소행상 김성수 씨 가족도
무차별 사격을 받아
다섯살 난 딸은 하반신 마비,
아내는 후유증으로 숨졌습니다.


[인터뷰]최용주/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엄격한 의미에서 일종의 양민 살해, 학살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1심 재판에서도 그런게 인정이 됐었는데 어떻게 2심과 3심을 넘어가면서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정당방위로 되어 있는지는 저도 좀 5.18연구자로서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런 부분입니다."

사망자 대부분이 시민군에 의해
숨졌다는 주장은 어떨까.

1989년 국방부는,
80년 당시 검시보고서와 달리
칼빈 총상 사망자를 부풀려
88명이 칼빈 총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시민군이 가지고 있던 무기가
칼빈이었다는 점에서
극우세력들은 '폭도'들끼리
난동으로 숨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군인들도 칼빈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사진을 보면
군인들이 칼빈을 들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시민들이 무장하기 전에
칼빈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폭도로 분류되면
불이익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M16 총상 사망자를 칼빈 총상 사망자로
검안의사들이 일부러
바꿨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신군부 입장에 맞게
조작된 군 자료가 수 십년이 지나
또다른 왜곡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곽선정입니다.
  • 진상규명 발목잡는 또다른 5.18 왜곡 사례
    • 입력 2019-02-19 21:59:41
    • 수정2019-02-20 02:10:30
    뉴스9(광주)
[앵커멘트]
5.18 당시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왜곡 사례 외에도
극우 세력의 5.18 왜곡 주장은
다양합니다.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과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시민군 총격으로 숨졌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곽선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신군부와 일부 극우세력에 의해
'좌익 제소자 구출'을 위한 것으로
알려진 '교도소 습격 사건'.

하지만 육군본부 자료와
특전사 자료를 비교하면
습격 횟수는 각각 6차례,
4차례로 다르고,
발생 시각과 내용도 제각각입니다.

이 가운데
교전 상황은 두 차례 있지만,
정작 회수한 무기는
총 한자루와 실탄 20여 발,

교도소를 습격하러 나선
화력으론 믿기지 않습니다.

때문에 계엄군이
광주 외곽봉쇄작전에 나서면서
광주를 빠져나가려는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실제 당시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농민 4명이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2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채소행상 김성수 씨 가족도
무차별 사격을 받아
다섯살 난 딸은 하반신 마비,
아내는 후유증으로 숨졌습니다.


[인터뷰]최용주/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엄격한 의미에서 일종의 양민 살해, 학살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1심 재판에서도 그런게 인정이 됐었는데 어떻게 2심과 3심을 넘어가면서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정당방위로 되어 있는지는 저도 좀 5.18연구자로서 이해할 수가 없는 그런 부분입니다."

사망자 대부분이 시민군에 의해
숨졌다는 주장은 어떨까.

1989년 국방부는,
80년 당시 검시보고서와 달리
칼빈 총상 사망자를 부풀려
88명이 칼빈 총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시민군이 가지고 있던 무기가
칼빈이었다는 점에서
극우세력들은 '폭도'들끼리
난동으로 숨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군인들도 칼빈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사진을 보면
군인들이 칼빈을 들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시민들이 무장하기 전에
칼빈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폭도로 분류되면
불이익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M16 총상 사망자를 칼빈 총상 사망자로
검안의사들이 일부러
바꿨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신군부 입장에 맞게
조작된 군 자료가 수 십년이 지나
또다른 왜곡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곽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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