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항하지 않았냐고요?” 성폭행-성매매 사이 장애인 성폭력

입력 2019.02.25 (07:04) 수정 2019.02.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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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사줄게' 모텔 따라간 지적장애인...법원에선 성매매로?
■처벌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 성폭력'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피해자에게 묻는 법원

# 2017년, 지적장애 2급의 여성을 지하철에서 만난 A 씨. 여성은 장애인석에 앉아있었습니다. A 씨는 '맛있는걸 사주겠다"며 여성을 모텔로 데리고 갔고, 모텔에서 3만 원을 더 주고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 지적장애와 정신분열증이 있는 여성을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B 씨. 여성에게 '재미있게 놀자'는 쪽지를 수십 통 보냈습니다. 결국 집으로 찾아온 여성. B 씨는 이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연관 기사] [앵커의 눈] “장애 맞나요? 왜 기억이 바뀌죠?”…장애 이해 못하는 법원

이 두 명의 남성,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혐의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 위계 등 간음'입니다. 위계(僞計). 쉽게 풀이하자면 속임수를 썼다는 뜻으로, 이 경우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속여서' 성폭행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남성들, 어떻게 됐을까요?

A 씨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두 사람 사이의 성관계는 속임수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피고인이 어떠한 위계로써 피해자에게 간음행위 또는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조건에 대하여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켰는지를 알 수 없다" 1심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혐의는 성매매였습니다. 맛있는걸 사주겠다는 말에 모텔로 따라간 여성이 3만 원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는 결론이 됩니다. 어쩐지 개운하지 않습니다.

B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 가서 유죄 판결이 깨집니다. 이유는 A 씨의 사례와 같습니다. 성관계 자체는 속임수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의 경우 이후에도 두 번이나 대법원에 다시 올라가면서 치열한 법정 다툼이 벌어졌지만, 속임수에 따른 성폭행이었다는 검찰 측 주장은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성폭력...처벌의 '사각지대'

상식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으로 평가받지만 법정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지 않는 일, 장애인 성폭력 관련 사건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성폭행을 함에 있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면 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고, 폭행과 협박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항거곤란 혹은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면 역시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경우 폭행·협박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명확한 항거곤란·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입증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위계(僞計), 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위력(威力)에 따른 범행으로 보고 기소한다고 해도 앞서 본 두 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사실상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럼 이 사각지대,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법을 바꿔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건 '법' 자체가 아닌 '법적 해석'입니다. "형법의 예방적 효과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사각지대를 좁혀주려는 법적 해석이 중요합니다. 법에 대한 해석은 판례로 이뤄지기 때문에 판례에서 법을 좁게 해석하면 그만큼 피해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의 말입니다.

장애 맞나요?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

법적 해석을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피해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장애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는 경우 피해자의 장애 정도부터 증명해야 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이 경우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싸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판결문을 토대로 성폭력 사건 지적장애 피해자들이 답해야 하는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를 뽑아봤습니다.

Q. 장애 맞나요?

장애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쉽게 피해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법정에서는 오히려 정말 장애가 있는지 의심받기도 합니다. 비교적 '고급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흔히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 어린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가들의 설명은 다릅니다. 연령과 사회 경험 등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데도 비교적 자유자재로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장애인은 아기처럼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하네?' , '이런 표현도 쓸 줄 아네?' , '그럼 성관계의 의미를 알고 있었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김예원 대표의 지적입니다.

Q.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사실 합의했던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항'의 개념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인상 한 번 찌푸린 것만으로도 저항·거절의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발버둥 치고 때릴 수도 있잖아요" 양애리아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람마다 저항의 층위는 다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지적 장애인의 경우 '거절'을 '학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도 설명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교육을 잘 받잖아요. 뭐 하나 주면 '감사합니다' 인사하게 하고, 어른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하고..."

선생님의, 부모님의,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교육받으면서 거절보다는 순응을 요구받는 경우가 더 많았던 사람이라면 강하게, 단호히 거절하는 게 익숙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Q. 왜 기억을 못 하나요?


꼭 요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진술의 일관성입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데, 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일관된 진술만을 요구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방향·숫자 등에 대한 인지가 힘들어 지적 장애가 나온 것인데도 이를 간과하고 '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니 진술이 일관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식으로 신빙성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개별 당사자가 어떤 특성의 장애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지를 면밀히 따져본 뒤 이를 고려해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Q. 이례적 행동?

성폭력 가해자에게 '좋아한다'며 문자를 보내거나,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에도 가해자가 불러내면 또 약속 장소에 나가거나, 피해를 입은 직후에 바로 신고하지 않거나... 장애인 성폭력 사건 판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 같은 행동들에는 '이례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피고인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과연 누구의 기준에서 이례적인 행동으로 정의되는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을 이례적 행동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김예원 대표의 지적은 결국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개별 장애인의 행동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가해자를 또 만나면 비슷한 성폭력 피해를 또 한 번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추론하지 못하는 경우, 성폭력임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취재를 하면서 만나본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문제 역시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공통된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서 대부분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묻잖아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왜 따라갔느냐...끊임없이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양애리아 부소장의 설명입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처럼 피해자의 개별 상황과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피해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우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함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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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요?” 성폭행-성매매 사이 장애인 성폭력
    • 입력 2019-02-25 07:04:08
    • 수정2019-02-25 07:27:32
    취재K
■'맛있는 것 사줄게' 모텔 따라간 지적장애인...법원에선 성매매로?
■처벌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 성폭력'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피해자에게 묻는 법원

# 2017년, 지적장애 2급의 여성을 지하철에서 만난 A 씨. 여성은 장애인석에 앉아있었습니다. A 씨는 '맛있는걸 사주겠다"며 여성을 모텔로 데리고 갔고, 모텔에서 3만 원을 더 주고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 지적장애와 정신분열증이 있는 여성을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B 씨. 여성에게 '재미있게 놀자'는 쪽지를 수십 통 보냈습니다. 결국 집으로 찾아온 여성. B 씨는 이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연관 기사] [앵커의 눈] “장애 맞나요? 왜 기억이 바뀌죠?”…장애 이해 못하는 법원

이 두 명의 남성,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혐의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 위계 등 간음'입니다. 위계(僞計). 쉽게 풀이하자면 속임수를 썼다는 뜻으로, 이 경우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속여서' 성폭행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남성들, 어떻게 됐을까요?

A 씨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두 사람 사이의 성관계는 속임수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피고인이 어떠한 위계로써 피해자에게 간음행위 또는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조건에 대하여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켰는지를 알 수 없다" 1심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혐의는 성매매였습니다. 맛있는걸 사주겠다는 말에 모텔로 따라간 여성이 3만 원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는 결론이 됩니다. 어쩐지 개운하지 않습니다.

B 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 가서 유죄 판결이 깨집니다. 이유는 A 씨의 사례와 같습니다. 성관계 자체는 속임수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의 경우 이후에도 두 번이나 대법원에 다시 올라가면서 치열한 법정 다툼이 벌어졌지만, 속임수에 따른 성폭행이었다는 검찰 측 주장은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성폭력...처벌의 '사각지대'

상식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으로 평가받지만 법정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지 않는 일, 장애인 성폭력 관련 사건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성폭행을 함에 있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면 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고, 폭행과 협박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항거곤란 혹은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면 역시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경우 폭행·협박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명확한 항거곤란·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입증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위계(僞計), 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위력(威力)에 따른 범행으로 보고 기소한다고 해도 앞서 본 두 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사실상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럼 이 사각지대,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법을 바꿔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건 '법' 자체가 아닌 '법적 해석'입니다. "형법의 예방적 효과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사각지대를 좁혀주려는 법적 해석이 중요합니다. 법에 대한 해석은 판례로 이뤄지기 때문에 판례에서 법을 좁게 해석하면 그만큼 피해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의 말입니다.

장애 맞나요?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

법적 해석을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피해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장애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는 경우 피해자의 장애 정도부터 증명해야 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이 경우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싸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판결문을 토대로 성폭력 사건 지적장애 피해자들이 답해야 하는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를 뽑아봤습니다.

Q. 장애 맞나요?

장애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쉽게 피해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법정에서는 오히려 정말 장애가 있는지 의심받기도 합니다. 비교적 '고급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흔히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 어린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가들의 설명은 다릅니다. 연령과 사회 경험 등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데도 비교적 자유자재로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장애인은 아기처럼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하네?' , '이런 표현도 쓸 줄 아네?' , '그럼 성관계의 의미를 알고 있었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김예원 대표의 지적입니다.

Q. 왜 저항하지 않았나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사실 합의했던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항'의 개념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인상 한 번 찌푸린 것만으로도 저항·거절의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발버둥 치고 때릴 수도 있잖아요" 양애리아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람마다 저항의 층위는 다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지적 장애인의 경우 '거절'을 '학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도 설명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교육을 잘 받잖아요. 뭐 하나 주면 '감사합니다' 인사하게 하고, 어른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하고..."

선생님의, 부모님의,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교육받으면서 거절보다는 순응을 요구받는 경우가 더 많았던 사람이라면 강하게, 단호히 거절하는 게 익숙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Q. 왜 기억을 못 하나요?


꼭 요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진술의 일관성입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데, 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일관된 진술만을 요구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방향·숫자 등에 대한 인지가 힘들어 지적 장애가 나온 것인데도 이를 간과하고 '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니 진술이 일관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식으로 신빙성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개별 당사자가 어떤 특성의 장애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지를 면밀히 따져본 뒤 이를 고려해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Q. 이례적 행동?

성폭력 가해자에게 '좋아한다'며 문자를 보내거나,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에도 가해자가 불러내면 또 약속 장소에 나가거나, 피해를 입은 직후에 바로 신고하지 않거나... 장애인 성폭력 사건 판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 같은 행동들에는 '이례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피고인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과연 누구의 기준에서 이례적인 행동으로 정의되는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을 이례적 행동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김예원 대표의 지적은 결국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개별 장애인의 행동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가해자를 또 만나면 비슷한 성폭력 피해를 또 한 번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추론하지 못하는 경우, 성폭력임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취재를 하면서 만나본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문제 역시 성폭력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공통된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서 대부분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묻잖아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왜 따라갔느냐...끊임없이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양애리아 부소장의 설명입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처럼 피해자의 개별 상황과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피해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우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함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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