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중 숨진 모자의 비극…‘100년의 한’ 풀릴까?

입력 2019.02.26 (06:23) 수정 2019.02.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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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1919년 4월 3일, 충북 진천에서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요.

이날 일제의 무차별 총격에 희생된 군중에는 30대 아들과 노모도 있었는데 백 년이 흐른 지금도 독립유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3·1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던 1919년 4월 3일 충북 진천의 거리에 군중 2천여 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합니다.

이 과정에 군중을 이끌었던 30대의 박도철 씨가 일제의 총탄에 희생됐습니다.

박 씨의 노모 역시 아들의 죽음에 항의하다 무자비한 총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박영섭/박도철 씨 손자 : "아들 살려 내라, 주재소를 쫓아가서 유리창을 돌멩이로 던져서 깨고 그랬대요. 그러니까 이제 그걸 보고 일본 순사가 즉석에서 증조할머니를 쏴서 두 분이 같이 돌아가신 거죠."]

이들이 희생된 지도 백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생활고 속에 관련 자료를 찾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영섭/박도철 씨 손자 : "끼니를 먹지 못했어요. 집안 후대들이 이런 걸 한다는 걸 꿈에도 못 꾸죠."]

박 씨 일가의 사연을 접한 지역 역사 연구자들이 최근 중요한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국가기록원의 3·1 운동 피살자 명부에서 박 씨의 이름을 확인한 겁니다.

'진천군 만승면 광혜원리' '36살 박도철' '음력 3월 3일', '경찰서 습격을 시도 중 피살' 여기에 제적 등본과 의로운 모자의 기념비까지 발굴했습니다.

[오인근/진천향토사연구회 : "순국하게 된 상황은 '경찰서를 습격하다가 피살당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독립유공 신청 명단에 오른 박 씨.

올해 말 심사에서 반드시 독립 유공자로 선정돼 백 년의 한을 풀 수 있기를 박 씨의 후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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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중 숨진 모자의 비극…‘100년의 한’ 풀릴까?
    • 입력 2019-02-26 06:24:17
    • 수정2019-02-26 0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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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1919년 4월 3일, 충북 진천에서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요.

이날 일제의 무차별 총격에 희생된 군중에는 30대 아들과 노모도 있었는데 백 년이 흐른 지금도 독립유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3·1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던 1919년 4월 3일 충북 진천의 거리에 군중 2천여 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합니다.

이 과정에 군중을 이끌었던 30대의 박도철 씨가 일제의 총탄에 희생됐습니다.

박 씨의 노모 역시 아들의 죽음에 항의하다 무자비한 총격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박영섭/박도철 씨 손자 : "아들 살려 내라, 주재소를 쫓아가서 유리창을 돌멩이로 던져서 깨고 그랬대요. 그러니까 이제 그걸 보고 일본 순사가 즉석에서 증조할머니를 쏴서 두 분이 같이 돌아가신 거죠."]

이들이 희생된 지도 백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독립유공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생활고 속에 관련 자료를 찾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영섭/박도철 씨 손자 : "끼니를 먹지 못했어요. 집안 후대들이 이런 걸 한다는 걸 꿈에도 못 꾸죠."]

박 씨 일가의 사연을 접한 지역 역사 연구자들이 최근 중요한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국가기록원의 3·1 운동 피살자 명부에서 박 씨의 이름을 확인한 겁니다.

'진천군 만승면 광혜원리' '36살 박도철' '음력 3월 3일', '경찰서 습격을 시도 중 피살' 여기에 제적 등본과 의로운 모자의 기념비까지 발굴했습니다.

[오인근/진천향토사연구회 : "순국하게 된 상황은 '경찰서를 습격하다가 피살당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독립유공 신청 명단에 오른 박 씨.

올해 말 심사에서 반드시 독립 유공자로 선정돼 백 년의 한을 풀 수 있기를 박 씨의 후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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