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5만 원 모델에 유관순 안된 이유는 “고문 받기 전 초상화 없어서?”

입력 2019.03.02 (10:04) 수정 2019.03.1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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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방송된 jtbc ‘해볼라고’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5만 원권 모델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전파를 탔다. 유관순 열사도 후보에 올랐지만 고문 때문에 부어있는 모습만 확인돼 화폐도안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었다는 내용이다.

이날 방송내용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출처=jtbc‘해볼라고’출처=jtbc‘해볼라고’

이 같은 설명은 과연 사실일까? 팩트체크K 취재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관순 열사가 고액권 초상 인물 후보였던 것은 사실

10만 원권 인물로 선정됐던 김구(좌), 유관순(우)10만 원권 인물로 선정됐던 김구(좌), 유관순(우)

한국은행은 12년 전인 2007년 5월 2일 고액권 발행계획을 공표하고 하고 같은 달 21일 고액권 초상 인물 선정을 위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각계 전문가 8명과 한국은행 부총재, 발권국장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여론조사 대상 후보 인물로 20명을 추천, 여론조사 결과와 각종 자료 검토 후 2차 후보를 발표했다.

2차 초상 인물 후보는 총 10인으로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이 포함됐다.

하지만 10월 말 발표된 최종후보 4인에서 유관순 열사는 제외됐다. 한국은행은 자문위원회의 추천을 바탕으로 정부 협의를 거쳐 11월 5일 김구와 신사임당을 각각 10만 원권과 5만 원권 초상 인물로 선정했다.

한국은행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초상화 때문’이란 건 잘못된 설명”

방송에 참고자료로 사용된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 사진 (출처=독립기념관)방송에 참고자료로 사용된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 사진 (출처=독립기념관)

한국조폐공사 신제품연구팀 관계자는 “방송 내용에 오해가 있었다”면서 도안으로 검토된 초상화들이 기술적 측면에서 화폐로 구현하기 부적절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화폐도안에는 이목구비가 잘 갖춰진 초상화가 필요한데 유관순 열사의 경우엔 조건을 만족하는 초상화를 찾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조폐공사의 이런 설명에 대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발권정책팀 관계자는 “유관순 열사가 아닌 신사임당과 김구가 고액권 인물로 선정된 것은 당시 여론과 자문위원회의 검토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지 못한 주된 이유로 초상화를 꼽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화폐도안으로 적절한 영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여론조사 후보로 등록도 못했을 거라고 근거를 들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 국가표준영정은 고액권 발행 계획 이전에 이미 지정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졸업사진(뒷줄 제일 오른쪽) (출처=국가보훈처)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졸업사진(뒷줄 제일 오른쪽) (출처=국가보훈처)

유관순 열사 기념 사업회 확인 결과 투옥 전 이화학당 시절 유관순 열사의 사진 자료는 존재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한국은행도 유관순 열사의 초상 인물 후보 등재 당시 이미 도안에 적절한 표준영정을 확인, 여론조사에 활용했었다고 밝혔다.

유관순 국가표준영정 78호유관순 국가표준영정 78호

한국은행이 언급한 영정은 윤여환 교수가 제작한 국가표준영정 78호다. 국가표준영정은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 제작 시 통일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하는 초상화다. 윤 교수가 제작한 이 영정은 부실 고증과 작가의 친일 행적 시비가 일었던 기존의 유관순 영정(국가표준영정 15호에서 지정 해제)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서 21년만인 2007년 2월 7일 새로운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영정 속 유관순 열사는 흰색 통치마 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쥔 채 이화학당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열사의 얼굴은 현존하는 사진 3장을 활용해 전통영정기법으로 제작됐으며 의복과 마룻바닥, 태극기 또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려졌다.
우리나라 화폐는 충무공 이순신의 표준영정이 73년 제1호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이후 표준영정을 인물 초상화로 사용해왔다. 5천 원권의 율곡 이이와 5만 원권의 신사임당은 이종상 화백이 새로 제작하긴 했지만 이 역시도 스승 김은호 화백의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이 2007년 2월 지정됐으므로 한국은행이 고액권 발행 계획을 공표한 5월 이후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이 예비도안으로 활용됐던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윤 교수도 자신이 제작한 표준영정이 5만 원권 도안으로 제안됐던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화폐 인물 선정의 구체적 이유를 알 수 없는 점은 아쉬워

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된 5만 원권 도안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된 5만 원권 도안

한국은행은 고액권 인물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2007년 당시에도 각 인물에 대한 자문위의 평가나 여론조사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구체적인 선정 과정은 현실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유관순 열사가 최종후보에 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선정 결과를 두고 일부 이견이 분분했던 만큼, 선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다원 팩트체크 인턴 dw08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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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2 10:04:47
    • 수정2019-03-13 13: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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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방송된 jtbc ‘해볼라고’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5만 원권 모델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전파를 탔다. 유관순 열사도 후보에 올랐지만 고문 때문에 부어있는 모습만 확인돼 화폐도안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었다는 내용이다. 이날 방송내용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출처=jtbc‘해볼라고’ 이 같은 설명은 과연 사실일까? 팩트체크K 취재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관순 열사가 고액권 초상 인물 후보였던 것은 사실 10만 원권 인물로 선정됐던 김구(좌), 유관순(우) 한국은행은 12년 전인 2007년 5월 2일 고액권 발행계획을 공표하고 하고 같은 달 21일 고액권 초상 인물 선정을 위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각계 전문가 8명과 한국은행 부총재, 발권국장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여론조사 대상 후보 인물로 20명을 추천, 여론조사 결과와 각종 자료 검토 후 2차 후보를 발표했다. 2차 초상 인물 후보는 총 10인으로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이 포함됐다. 하지만 10월 말 발표된 최종후보 4인에서 유관순 열사는 제외됐다. 한국은행은 자문위원회의 추천을 바탕으로 정부 협의를 거쳐 11월 5일 김구와 신사임당을 각각 10만 원권과 5만 원권 초상 인물로 선정했다. 한국은행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초상화 때문’이란 건 잘못된 설명” 방송에 참고자료로 사용된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 사진 (출처=독립기념관) 한국조폐공사 신제품연구팀 관계자는 “방송 내용에 오해가 있었다”면서 도안으로 검토된 초상화들이 기술적 측면에서 화폐로 구현하기 부적절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화폐도안에는 이목구비가 잘 갖춰진 초상화가 필요한데 유관순 열사의 경우엔 조건을 만족하는 초상화를 찾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조폐공사의 이런 설명에 대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발권정책팀 관계자는 “유관순 열사가 아닌 신사임당과 김구가 고액권 인물로 선정된 것은 당시 여론과 자문위원회의 검토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지 못한 주된 이유로 초상화를 꼽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화폐도안으로 적절한 영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여론조사 후보로 등록도 못했을 거라고 근거를 들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 국가표준영정은 고액권 발행 계획 이전에 이미 지정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졸업사진(뒷줄 제일 오른쪽) (출처=국가보훈처) 유관순 열사 기념 사업회 확인 결과 투옥 전 이화학당 시절 유관순 열사의 사진 자료는 존재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한국은행도 유관순 열사의 초상 인물 후보 등재 당시 이미 도안에 적절한 표준영정을 확인, 여론조사에 활용했었다고 밝혔다. 유관순 국가표준영정 78호 한국은행이 언급한 영정은 윤여환 교수가 제작한 국가표준영정 78호다. 국가표준영정은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 제작 시 통일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하는 초상화다. 윤 교수가 제작한 이 영정은 부실 고증과 작가의 친일 행적 시비가 일었던 기존의 유관순 영정(국가표준영정 15호에서 지정 해제)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서 21년만인 2007년 2월 7일 새로운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영정 속 유관순 열사는 흰색 통치마 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쥔 채 이화학당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열사의 얼굴은 현존하는 사진 3장을 활용해 전통영정기법으로 제작됐으며 의복과 마룻바닥, 태극기 또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려졌다. 우리나라 화폐는 충무공 이순신의 표준영정이 73년 제1호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이후 표준영정을 인물 초상화로 사용해왔다. 5천 원권의 율곡 이이와 5만 원권의 신사임당은 이종상 화백이 새로 제작하긴 했지만 이 역시도 스승 김은호 화백의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이 2007년 2월 지정됐으므로 한국은행이 고액권 발행 계획을 공표한 5월 이후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이 예비도안으로 활용됐던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윤 교수도 자신이 제작한 표준영정이 5만 원권 도안으로 제안됐던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화폐 인물 선정의 구체적 이유를 알 수 없는 점은 아쉬워 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된 5만 원권 도안 한국은행은 고액권 인물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2007년 당시에도 각 인물에 대한 자문위의 평가나 여론조사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구체적인 선정 과정은 현실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유관순 열사가 최종후보에 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선정 결과를 두고 일부 이견이 분분했던 만큼, 선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다원 팩트체크 인턴 dw08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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