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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미세먼지 대책 될까?
입력 2019.03.11 (13:39) 수정 2019.03.11 (13:40) 취재후
■ 서울시·환경부, 이르면 내년부터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추진
■ 서울 초미세먼지 배출원인의 40% 가까이가 난방·발전 부문
■ 내 돈 안 들이는 전셋집 문화와 100만 원 훌쩍 넘는 비용은 과제

"갑자기 웬 친환경 보일러?"

일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주, 서울시와 환경부가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부가 가정에서 보일러를 교체할 때 일반 보일러가 아닌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한다는 겁니다.

콘덴싱 보일러는 배기가스를 한 번 더 사용해 열효율을 높이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보일러입니다. 그중에서도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는 에너지소비효율과 질소산화물 배출 농도가 모두 1등급을 충족해 '친환경 마크'를 받아야 합니다.

개정안에는 또 보일러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 기준을 새로 만들고 이 기준에 못 미치는 보일러는 아예 유통 단계에서부터 금지하는 방안도 함께 포함될 예정입니다.


물론 멀쩡한 새 보일러를 떼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대상은 '노후 보일러'인데, 보통 설치한 지 10년이 넘은 보일러를 의미합니다. (우리 집에 설치된 보일러의 연식을 알고 싶다면, 보일러의 본체에 붙은 스티커를 보면 됩니다.) 또 노후 보일러라고 해도 멀쩡하면 계속 쓰면 되고, 고장이 나서 바꿔야 하는 경우에 한해 친환경 보일러로 교체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면 차량 2부제와 중국발 미세먼지 책임론으로 시끌벅적한데, 뜬금없이 웬 보일러일까요?

서울 초미세먼지 40%가 난방·발전에서 나와.. "가정용 보일러 안 잡고 방법 없다"

서울연구원의 '초미세먼지 상세모니터링 연구(15'~16')'에 따르면 서울 초미세먼지 배출원의 39%는 난방·발전에서 나오고, 이 중 46%는 가정용 보일러가 차지합니다. 서울 미세먼지의 18%가 가정용 보일러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자동차 25%에 맞먹는 수치입니다.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가정용 보일러 10대 중 4대는 노후 보일러인데, 일반·노후 보일러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평균 170ppm을 넘습니다. 20ppm 미만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친환경 보일러의 8배입니다.

결국, 주차장을 전면 폐쇄하고 차량 2부제를 강제하는 것만큼이나 가정용 보일러를 잡는 게 중요한 미세먼지 대책이라는 게 서울시의 판단입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이미 2015년부터 콘덴싱 보일러 보급 사업에 나서 가정용 일반 보일러를 바꿀 때 대당 16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지난해 9월 말까지 9천여 대 보급하는 데 그쳤는데, 서울시에 359만여 대의 가정용 보일러가 설치된 것으로 추산되니 0.24%에 불과합니다.

"어렵고 비싼데.. 전셋집에 누가 친환경 보일러 설치해요?"

왜 한국의 친환경 보일러 보급률은 이렇게 낮을까요? 유럽의 경우 친환경 보일러 보급률이 80%에 달합니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일반 보일러를 금지하고 친환경 보일러를 의무로 한 배경을 고려한다고 해도 차이가 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입니다. 일반 보일러는 평균 50~60만 원, 친환경 보일러는 9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정부 보조금 16만 원에, 열효율이 높아 1년 평균 10만 원의 난방비를 아낄 수 있으니 2~3년이면 '본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큰 효과는 없습니다.

"보조금을 받고 친환경 보일러로 바꾸겠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부분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전·월세 세입자들은 "세 들어 사는 집에 누구 좋으라고 돈을 들이냐"라는 반응입니다. 1년에 십 만원 아껴봤자 2년 단위로 옮겨 가야 하는 전셋집에 수십만 원을 더 들여 친환경 보일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같은 이유에서 집주인들도 "어차피 난방비는 세입자가 내는 건데, 돈 들일 필요 있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저소득층의 경우, 친환경 보일러의 높은 가격은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실제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친환경 보일러 교체·지원금 수령 의향을 물어봤는데, 400여 명이 '바꿀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교체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자기 집이라도 문제는 있습니다. 사실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는 까다로운 아이입니다. 연통(굴뚝)의 모양이나, 응축수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배수관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설치가 불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일러 설치 업계에 따르면 오래된 빌라나 단독주택에서는 대부분 '설치 불가' 판정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미세먼지 대책 될까?

이렇게 아직 여러 장애물이 남은 것 같은데, 서울시와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에 대한 내용을 '수도권대기환경특별법'에 담아 빠르면 올해 말 공포하기로 했습니다. 법이 문제없이 통과되면 이르면 내년부터 서울시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뒤 인천·경기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 중 가정용 보일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친환경 보일러가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미세먼지가 재난 수준인데 뭐든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들어가는 비용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우선순위가 맞는지를 따져봐야겠습니다. 저희가 만난 서울시 산하 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용 노후 보일러 교체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자동차 등 이동오염원과 비교하면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정책적인 고려와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신용승 원장)
  • [취재후]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미세먼지 대책 될까?
    • 입력 2019-03-11 13:39:39
    • 수정2019-03-11 13:40:07
    취재후
■ 서울시·환경부, 이르면 내년부터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추진
■ 서울 초미세먼지 배출원인의 40% 가까이가 난방·발전 부문
■ 내 돈 안 들이는 전셋집 문화와 100만 원 훌쩍 넘는 비용은 과제

"갑자기 웬 친환경 보일러?"

일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주, 서울시와 환경부가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부가 가정에서 보일러를 교체할 때 일반 보일러가 아닌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한다는 겁니다.

콘덴싱 보일러는 배기가스를 한 번 더 사용해 열효율을 높이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보일러입니다. 그중에서도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는 에너지소비효율과 질소산화물 배출 농도가 모두 1등급을 충족해 '친환경 마크'를 받아야 합니다.

개정안에는 또 보일러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 기준을 새로 만들고 이 기준에 못 미치는 보일러는 아예 유통 단계에서부터 금지하는 방안도 함께 포함될 예정입니다.


물론 멀쩡한 새 보일러를 떼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대상은 '노후 보일러'인데, 보통 설치한 지 10년이 넘은 보일러를 의미합니다. (우리 집에 설치된 보일러의 연식을 알고 싶다면, 보일러의 본체에 붙은 스티커를 보면 됩니다.) 또 노후 보일러라고 해도 멀쩡하면 계속 쓰면 되고, 고장이 나서 바꿔야 하는 경우에 한해 친환경 보일러로 교체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면 차량 2부제와 중국발 미세먼지 책임론으로 시끌벅적한데, 뜬금없이 웬 보일러일까요?

서울 초미세먼지 40%가 난방·발전에서 나와.. "가정용 보일러 안 잡고 방법 없다"

서울연구원의 '초미세먼지 상세모니터링 연구(15'~16')'에 따르면 서울 초미세먼지 배출원의 39%는 난방·발전에서 나오고, 이 중 46%는 가정용 보일러가 차지합니다. 서울 미세먼지의 18%가 가정용 보일러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자동차 25%에 맞먹는 수치입니다.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가정용 보일러 10대 중 4대는 노후 보일러인데, 일반·노후 보일러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평균 170ppm을 넘습니다. 20ppm 미만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친환경 보일러의 8배입니다.

결국, 주차장을 전면 폐쇄하고 차량 2부제를 강제하는 것만큼이나 가정용 보일러를 잡는 게 중요한 미세먼지 대책이라는 게 서울시의 판단입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이미 2015년부터 콘덴싱 보일러 보급 사업에 나서 가정용 일반 보일러를 바꿀 때 대당 16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지난해 9월 말까지 9천여 대 보급하는 데 그쳤는데, 서울시에 359만여 대의 가정용 보일러가 설치된 것으로 추산되니 0.24%에 불과합니다.

"어렵고 비싼데.. 전셋집에 누가 친환경 보일러 설치해요?"

왜 한국의 친환경 보일러 보급률은 이렇게 낮을까요? 유럽의 경우 친환경 보일러 보급률이 80%에 달합니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일반 보일러를 금지하고 친환경 보일러를 의무로 한 배경을 고려한다고 해도 차이가 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입니다. 일반 보일러는 평균 50~60만 원, 친환경 보일러는 90만 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정부 보조금 16만 원에, 열효율이 높아 1년 평균 10만 원의 난방비를 아낄 수 있으니 2~3년이면 '본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큰 효과는 없습니다.

"보조금을 받고 친환경 보일러로 바꾸겠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부분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전·월세 세입자들은 "세 들어 사는 집에 누구 좋으라고 돈을 들이냐"라는 반응입니다. 1년에 십 만원 아껴봤자 2년 단위로 옮겨 가야 하는 전셋집에 수십만 원을 더 들여 친환경 보일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같은 이유에서 집주인들도 "어차피 난방비는 세입자가 내는 건데, 돈 들일 필요 있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저소득층의 경우, 친환경 보일러의 높은 가격은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실제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친환경 보일러 교체·지원금 수령 의향을 물어봤는데, 400여 명이 '바꿀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교체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자기 집이라도 문제는 있습니다. 사실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는 까다로운 아이입니다. 연통(굴뚝)의 모양이나, 응축수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배수관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설치가 불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일러 설치 업계에 따르면 오래된 빌라나 단독주택에서는 대부분 '설치 불가' 판정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미세먼지 대책 될까?

이렇게 아직 여러 장애물이 남은 것 같은데, 서울시와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에 대한 내용을 '수도권대기환경특별법'에 담아 빠르면 올해 말 공포하기로 했습니다. 법이 문제없이 통과되면 이르면 내년부터 서울시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뒤 인천·경기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미세먼지의 국내 요인 중 가정용 보일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친환경 보일러가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미세먼지가 재난 수준인데 뭐든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들어가는 비용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우선순위가 맞는지를 따져봐야겠습니다. 저희가 만난 서울시 산하 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용 노후 보일러 교체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자동차 등 이동오염원과 비교하면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정책적인 고려와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신용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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