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의 2’ 규정이 가른 운명…그래도 조양호 경영권 유지?

입력 2019.03.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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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선임에 3분의 2 찬성 필요' 규정이 독배

20년 전 대한항공 정관에 들어간 규정 하나가 조양호 한진 회장의 운명을 갈랐다.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 직접 원인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대한항공 정관의 특이한 규정 때문이었다.

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의 지분은 73.8%였고 다른 회사처럼 '2분의 1'인 36.9%를 요구했다면 조 회장은 자기 측 지분 33.4%에서 3.5%p만 추가로 더 확보하면 됐다. 그러나 정관 규정 때문에 12.5%p를 더 확보해야 했고 결국 전날 전격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힌 국민연금 측의 일격에 주주 손에 밀려난 첫 번째 재벌 총수가 됐다.

20년 전 대한항공은 사고가 잇따랐고, 외국인 주주들의 경영 참여 요구에 도전을 받고 있었다. 당시 대한항공에 근무했던 직원은 "외국인 측이 사내이사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든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든 규정이 20년 만에 독배가 된 셈이다.

대한항공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대한항공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 아니다"

충격적인 이사 선임 실패에도 대한항공은 짤막한 입장만 내놓았다. "보도에 나간 것처럼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사내이사가 아니기에 더 이상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대표이사로서의 경영권은 상실한 게 맞다.

총수 일가의 지배는 유지

그러나 대한항공 측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조 회장이 대표이사 직위를 잃더라도 대한항공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 대부분은 조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또, 조 회장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재벌집단)의 동일인(총수)로서의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의 사실상의 대한항공 지배는 계속될 전망이다.

전경련의 "연금 사회주의 우려" 등 갖가지 논란을 낳으면서 조 회장을 이사에서 내려오게는 했지만 한진 재벌에 의한 지배 자체는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조 회장 측이 미등기 임원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려는 것일 수 있다"면서 "그럴 경우 경영 책임은 안 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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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분의 2’ 규정이 가른 운명…그래도 조양호 경영권 유지?
    • 입력 2019-03-27 14:42:01
    취재K
'이사 선임에 3분의 2 찬성 필요' 규정이 독배

20년 전 대한항공 정관에 들어간 규정 하나가 조양호 한진 회장의 운명을 갈랐다.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 직접 원인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대한항공 정관의 특이한 규정 때문이었다.

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의 지분은 73.8%였고 다른 회사처럼 '2분의 1'인 36.9%를 요구했다면 조 회장은 자기 측 지분 33.4%에서 3.5%p만 추가로 더 확보하면 됐다. 그러나 정관 규정 때문에 12.5%p를 더 확보해야 했고 결국 전날 전격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힌 국민연금 측의 일격에 주주 손에 밀려난 첫 번째 재벌 총수가 됐다.

20년 전 대한항공은 사고가 잇따랐고, 외국인 주주들의 경영 참여 요구에 도전을 받고 있었다. 당시 대한항공에 근무했던 직원은 "외국인 측이 사내이사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든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만든 규정이 20년 만에 독배가 된 셈이다.

대한항공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 아니다"

충격적인 이사 선임 실패에도 대한항공은 짤막한 입장만 내놓았다. "보도에 나간 것처럼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사내이사가 아니기에 더 이상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대표이사로서의 경영권은 상실한 게 맞다.

총수 일가의 지배는 유지

그러나 대한항공 측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조 회장이 대표이사 직위를 잃더라도 대한항공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 대부분은 조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또, 조 회장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재벌집단)의 동일인(총수)로서의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의 사실상의 대한항공 지배는 계속될 전망이다.

전경련의 "연금 사회주의 우려" 등 갖가지 논란을 낳으면서 조 회장을 이사에서 내려오게는 했지만 한진 재벌에 의한 지배 자체는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조 회장 측이 미등기 임원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려는 것일 수 있다"면서 "그럴 경우 경영 책임은 안 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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