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은 합숙하지 않았다’…합숙은 정말 필요할까?

입력 2019.03.28 (17:00) 수정 2019.04.0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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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시 반까지 수업을 했고, 점심 먹고 다시 3시부터 5시까지 수업 있었고, 집에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에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하루 3시간 정도의 팀 훈련. 어느 축구 동호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만을 위해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던 이강인(발렌시아)의 일과였다.

다만 훈련이 효율적이면서 강도가 높았다. 실전감각은 주말 경기를 통해 끌어올렸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클럽에선 어린아이들이 기숙사에 있지 않아서, 집에서 각자 학교에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합숙을 통해 훈련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훈련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 최근 한국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이미 줄어드는 추세…갑작스러운 폐지는 어려워

쇼트트랙 심석희의 미투 폭로 이후,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합숙소 폐지를 선언하자 경기인들은 스포츠 문외한의 폭거라며 비판했다.

합숙 존치론자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됐다. 도 장관의 말은 합숙이 당장 없어져 스포츠가 망한다는 공포 분위기 조성에 근거로 쓰였다.

경북 오상고 축구부 장수룡 감독은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개선이 아니라 전체를 다 없애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최소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인데 전혀 반영 안 됐다. 토론회도 없었고 공론화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당장 합숙을 모두 없애기는 무리가 있다. 지방 고교 축구부의 경우 60~80%가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합숙소를 폐지한다면 학생 선수들의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또 현재의 합숙훈련은 대학 진학을 위한 대회 입상을 큰 목표로 삼는다. 당장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선수와 학부모들을 개혁의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학교 운동부 지도자는 "합숙을 한다고 손흥민, 류현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학을 위한 대회 성적을 거두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점진적이며 대안이 있는 폐지가 필요하다. 이미 2016년 619개였던 초중고 합숙소는 2019년 369개로 줄었다.

남상우 한국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은 "합숙소를 일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지방학사처럼 정부에서 특정 지역 학생 선수들을 위한 기숙시설을 세우고 공동관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 전환도 비용 문제 등으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교육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필요한 방법이다.

합숙폐지로 인한 단기적 경기력 약화도 문제다. 남 연구원은 우수 유망주 학생 선수들은 단기간 소집해 국가대표급 훈련 시스템에서 집중 합숙 훈련을 진행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천안초 화재 사건 16주기, 안민석 의원 "장기적으론 스포츠 클럽이 해답"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 2003년 9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 16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천안초 사건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린아이들을 비인격적인 환경에 가둬놓고 운동을 시켰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합숙소에 대해선 "합숙소는 학교 안 섬이며. 인권의 사각지대다. 합숙을 위한 비용 운용도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력 약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안 의원은 "중학교부터 합숙소를 폐지하고 학교 스포츠 클럽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학생이 즐겁게 운동을 접할 수 있다. 이후 재능을 보인 학생들이 전문 선수의 길을 택한다면 오히려 스포츠 인재 저변을 넓힐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 의원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합숙소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어린 학생들 십수 명을 한 방에 가둬놓고 24시간 지도자의 통제하는 자체가 비인격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 고교야구 사례는?…합숙, 정말로 학생관리에 필수적일까?

학교 스포츠의 천국인 일본을 살펴보자. 2010년대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대회 최강의 학교는 오사카토인 고교다. 오사카토인고는 2012년, 2014년, 2018년 여름 고시엔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2018년 우승으로 봄, 여름 대회 제패를 두 번 기록한 역사상 최초의 학교가 됐다.

이 학교가 내세우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기숙사(우리의 합숙) 시스템이다. 오사카토인고 야구부에는 외출금지, 연애 금지, 스마트폰 금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편의점 외출이라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이 사례는 합숙존치론에 힘을 실어 준다.

하지만 오사카의 리세이샤 고교처럼 명문사립 고교 중 이례적으로 야구부 기숙사가 없는 학교도 있다. 리세이샤 고교는 지난 2014년, 2017년 봄 선발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오사카토인고는 2018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2명이나 배출했다. (후지와라 쿄타, 네오 아키라). 리세이샤고도 2016년(테라지마 나루키), 2017년(야스다 히사노리) 드래프트 1순위를 배출했다.

상시적인 합숙시설을 학교에 두는 것이 학생 관리에 필수적은 아니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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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인은 합숙하지 않았다’…합숙은 정말 필요할까?
    • 입력 2019-03-28 17:00:08
    • 수정2019-04-03 07:41:14
    스포츠K
"오전 12시 반까지 수업을 했고, 점심 먹고 다시 3시부터 5시까지 수업 있었고, 집에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에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하루 3시간 정도의 팀 훈련. 어느 축구 동호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만을 위해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던 이강인(발렌시아)의 일과였다. 다만 훈련이 효율적이면서 강도가 높았다. 실전감각은 주말 경기를 통해 끌어올렸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클럽에선 어린아이들이 기숙사에 있지 않아서, 집에서 각자 학교에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합숙을 통해 훈련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훈련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 최근 한국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이미 줄어드는 추세…갑작스러운 폐지는 어려워 쇼트트랙 심석희의 미투 폭로 이후,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합숙소 폐지를 선언하자 경기인들은 스포츠 문외한의 폭거라며 비판했다. 합숙 존치론자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됐다. 도 장관의 말은 합숙이 당장 없어져 스포츠가 망한다는 공포 분위기 조성에 근거로 쓰였다. 경북 오상고 축구부 장수룡 감독은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개선이 아니라 전체를 다 없애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최소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인데 전혀 반영 안 됐다. 토론회도 없었고 공론화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당장 합숙을 모두 없애기는 무리가 있다. 지방 고교 축구부의 경우 60~80%가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합숙소를 폐지한다면 학생 선수들의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또 현재의 합숙훈련은 대학 진학을 위한 대회 입상을 큰 목표로 삼는다. 당장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선수와 학부모들을 개혁의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학교 운동부 지도자는 "합숙을 한다고 손흥민, 류현진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학을 위한 대회 성적을 거두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점진적이며 대안이 있는 폐지가 필요하다. 이미 2016년 619개였던 초중고 합숙소는 2019년 369개로 줄었다. 남상우 한국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은 "합숙소를 일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지방학사처럼 정부에서 특정 지역 학생 선수들을 위한 기숙시설을 세우고 공동관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 전환도 비용 문제 등으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교육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필요한 방법이다. 합숙폐지로 인한 단기적 경기력 약화도 문제다. 남 연구원은 우수 유망주 학생 선수들은 단기간 소집해 국가대표급 훈련 시스템에서 집중 합숙 훈련을 진행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천안초 화재 사건 16주기, 안민석 의원 "장기적으론 스포츠 클럽이 해답"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 2003년 9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건 16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천안초 사건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린아이들을 비인격적인 환경에 가둬놓고 운동을 시켰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합숙소에 대해선 "합숙소는 학교 안 섬이며. 인권의 사각지대다. 합숙을 위한 비용 운용도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기력 약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안 의원은 "중학교부터 합숙소를 폐지하고 학교 스포츠 클럽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학생이 즐겁게 운동을 접할 수 있다. 이후 재능을 보인 학생들이 전문 선수의 길을 택한다면 오히려 스포츠 인재 저변을 넓힐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 의원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합숙소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어린 학생들 십수 명을 한 방에 가둬놓고 24시간 지도자의 통제하는 자체가 비인격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 고교야구 사례는?…합숙, 정말로 학생관리에 필수적일까? 학교 스포츠의 천국인 일본을 살펴보자. 2010년대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대회 최강의 학교는 오사카토인 고교다. 오사카토인고는 2012년, 2014년, 2018년 여름 고시엔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2018년 우승으로 봄, 여름 대회 제패를 두 번 기록한 역사상 최초의 학교가 됐다. 이 학교가 내세우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기숙사(우리의 합숙) 시스템이다. 오사카토인고 야구부에는 외출금지, 연애 금지, 스마트폰 금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편의점 외출이라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이 사례는 합숙존치론에 힘을 실어 준다. 하지만 오사카의 리세이샤 고교처럼 명문사립 고교 중 이례적으로 야구부 기숙사가 없는 학교도 있다. 리세이샤 고교는 지난 2014년, 2017년 봄 선발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오사카토인고는 2018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2명이나 배출했다. (후지와라 쿄타, 네오 아키라). 리세이샤고도 2016년(테라지마 나루키), 2017년(야스다 히사노리) 드래프트 1순위를 배출했다. 상시적인 합숙시설을 학교에 두는 것이 학생 관리에 필수적은 아니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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