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오바마 도청’으로 반격 나선 트럼프…‘맞불 특검’ 카드로 대선판 흔든다

입력 2019.04.03 (17:03) 수정 2019.04.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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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극(Hoax)이 다른 대통령에게 또 일어나도록 해선 안 됩니다"

22개월간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마친 로버트 뮬러 특검이 '러시아-트럼프 캠프 공모·내통 혐의'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 입증에 실패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번 한 말이다. 그는 '러시아 스캔들'을 '러시아 사기극(Russia Hoax)'으로 불러왔다.

'러시아 스캔들 재발 방지'를 강조한 말 속에는 '보복' 의지도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뮬러 특검 결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해외감시법(FISA.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 남용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특검'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해외감시법(FISA) 남용'이란 오바마 행정부의 법무부가 2016년 트럼프 캠프를 도청했다는 의혹과 관련이 있다. 특검 조사를 받은 현 정권이 전 정권을 겨냥한 '특검' 카드를 꺼내 보인 것이다.

'반격' 노리는 트럼프 "'FISA 남용' 맞불 특검"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자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사슬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들을 향해 완전히 거칠게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남편은 누군가가 한 대 때리면 10배나 더 강하게 때려 보복한다"는 멜라니아 여사의 과거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특검 보고서가 나온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 방해로 간주될 수 있다는 변호사들의 우려를 듣고 그동안 러시아 스캔들 공세에 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사법 방해 의혹의 빌미가 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해임과 같은 조치를 이후 더는 취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반격의 시점'을 기다려왔다는 얘기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때가 온 지금, 반격의 선봉에 그레이엄 의원이 선 모양새다. 상원 법사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이제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된 근원을 들여다볼 때"라며 "상대편의 이야기를 파헤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특히, "2016년 여름, FBI가 트럼프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이었던 카터 페이지에 대해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따라 감청 영장을 발부받았던 것을 새로운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가 트럼프 캠프를 감청하기 위해 'FISA 남용'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얘기다.

대선 당시 FBI의 영장 신청을 받은 법무부는 감시법원에 이른바 '트럼프 X파일'을 증거로 제출해 도청 권한을 얻었다. FBI는 이를 통해 페이지가 러시아를 찾아 친(親)러시아 발언을 했던 사실을 포착했고 이것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X파일'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과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도청 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X파일'까지 거짓이라면,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과정은 물론 명분까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달에도 "트럼프 대통령 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법무부와 FBI 고위 간부들이 모의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다. 'FISA 남용'을 고리로 한 반격 카드는 트럼프 대통령도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X파일을 근거로 신청된 영장에 대한 '기밀 해제(declassification)' 계획을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 권한으로 기밀을 해제하면 영장 내용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FISA 남용' 여부도 드러날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가장 유용한 타이밍에 해제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X파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이던 2013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문란한 파티를 벌였고, 그 동영상을 러시아 당국이 갖고 있다는 내용.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도 담고 있음.

트럼프가 의심하는 '러시아 스캔들' 최종 배후는?

특검 결과가 공개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매우 매우 사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 반역적 처사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반역'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수사의 필요성을 설파한 대상,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숨은 권력집단)는 과연 누구일까?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내며 "특검 수사는 낮은 곳에서 시작됐지만 높은 곳으로부터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특검 수사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백악관과 관련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여러분도 답을 알고 있다"는 뼈있는 답변을 내놨다.

‘오바마 도청’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오바마 도청’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3월 트위터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직전 나를 도청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선 뒤 넉 달 가까이 지난 때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닉슨의 워터게이트 감"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정보기관 관계자에게서 직접 들은 말을 토대로 폈던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직후 도청 장소로 지목된 트럼프 타워를 벗어나 뉴저지주 별장에서 당선인 일정을 소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도청 개입 의혹이 제기된 사건은 또 있다. 지난해 2월, 론 존슨 상원의원(공화)은 뮬러 특검팀에 있던 전 FBI 수사관 피터 스트르조크와 그와 불륜관계였던 변호사 리사 페이지가 2016년 9월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메시지에서 페이지는 코미 당시 FBI 국장의 브리핑을 거론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알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대화가 오간 시점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 대선 개입을 중단하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보고받은 브리핑이 러시아 스캔들 관련 내용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메시지가 공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유일한 '공모'는 민주당과 러시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왜 FBI가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서버는 확보하지 못했나?"라고 비판했었다.

저명 언론인, 주류 언론 향해 "트럼프에 사과하라"

지금 주류 언론은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이다. 트럼프 진영의 반격이 향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주류 언론'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NBC에 출연해 "민주당과 진보 언론은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은 트위터에 '뮬러의 광기! 가장 잘못된 미디어 논객 골라내기'라는 제목의 뉴욕 포스트 기사를 링크하기도 했다.

샌더스 대변인이 공유한 ‘뉴욕포스트’ 기사샌더스 대변인이 공유한 ‘뉴욕포스트’ 기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겨냥해 "가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건 너무나 웃기는 일"이라며 "상을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악관도 "지난 2년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MSNBC가 8,507건의 러시아 스캔들 기사를 냈다"는 자료를 내면서 "가짜 뉴스가 끝없이 쏟아졌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지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보고서를 '민주당·미디어와의 전쟁'에서 무기화하고 있다"며 "'공모 없음'이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샤릴 애트키슨 칼럼 캡처샤릴 애트키슨 칼럼 캡처

언론계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재앙 미디어 실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주류 언론의 검증 부족과 편향성 문제를 지적했다. 중립성향의 의회전문지 더 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 제목의 샤릴 애트키슨의 칼럼을 올렸다. 애트키슨은 CBS 기자 출신으로 에미상을 여러 번 받은 언론인이다. 그는 주류 언론을 향해 "트럼프의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유로 '거짓'이라는 식의 조건반사적인 보도를 했고, 오류가 발견돼도 집요하게 반 트럼프 논조만을 이어갔다"고 꼬집었다.

제프 저커 CNN 대표는 러시아 스캔들 보도가 과했다는 지적에 대해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사로서 마땅히 24시간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저거 대표를 향해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은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오도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CNN을 뉴스 채널로 보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포스트 뮬러 특검' 앞둔 워싱턴 ... '폭풍전야'

하지만 뮬러 특검 보고서로 러시아 스캔들이 '가짜 뉴스'가 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사법 방해 의혹은 판단을 보류함으로써 정쟁의 불씨를 남겼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사법방해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특검보고서 '전체 공개'를 요구해온 민주당은 보고서 전체와 관련 증거 등에 대한 소환장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표결할 걸로 전해졌다.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민주)은 "의회는 편집 없는 특검보고서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방해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할 주체는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장관이 아니라 의회"라며 행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반격보다는 오바마 케어 폐지와 국경장벽 건설 등 핵심 정책을 밀어붙이며 대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오늘도 트위터를 통해 "어떤 증거나 문서가 공개된다 해도 제럴드 내들러나 아담 시프(하원 정보위원장, 민주)를 만족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위대한 미국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멕시코 국경지대 찾은 트럼프 대통령멕시코 국경지대 찾은 트럼프 대통령

'보고서 전면 공개'로 반전을 꾀하고는 있지만, 최종병기 뮬러 보고서가 '맹탕'으로 나온 만큼 민주당의 속내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이슈를 꺼내준 것이 차라리 잘됐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워싱턴포스트는 "하원 민주당 지도부는 동료 의원들에게 건강보험 등 유권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에 집중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도 "오바마 케어 폐지를 위한 트럼프의 행보가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류 언론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를 눈에 띄게 줄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진영의 반격 카드인 'FISA 영장 기밀해제' 관련 보도는 일절 내보내지 않고 있다. 정치와 미디어 권력 모두 '포스트 뮬러 특검'에 대비해 신중히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싼 트럼프-반 트럼프 진영 간 싸움은 미국의 외교 전략 노선 등을 놓고 벌이는 트럼프 VS 기성 권력(Establishment)간 대립과 맞물려 이어져 왔다. 내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미국 내 거대한 권력 전쟁은 조만간 또 하나의 극적인 반전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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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극(Hoax)이 다른 대통령에게 또 일어나도록 해선 안 됩니다"

22개월간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마친 로버트 뮬러 특검이 '러시아-트럼프 캠프 공모·내통 혐의'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 입증에 실패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번 한 말이다. 그는 '러시아 스캔들'을 '러시아 사기극(Russia Hoax)'으로 불러왔다.

'러시아 스캔들 재발 방지'를 강조한 말 속에는 '보복' 의지도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뮬러 특검 결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해외감시법(FISA.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 남용을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특검'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해외감시법(FISA) 남용'이란 오바마 행정부의 법무부가 2016년 트럼프 캠프를 도청했다는 의혹과 관련이 있다. 특검 조사를 받은 현 정권이 전 정권을 겨냥한 '특검' 카드를 꺼내 보인 것이다.

'반격' 노리는 트럼프 "'FISA 남용' 맞불 특검"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자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사슬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들을 향해 완전히 거칠게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남편은 누군가가 한 대 때리면 10배나 더 강하게 때려 보복한다"는 멜라니아 여사의 과거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특검 보고서가 나온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 방해로 간주될 수 있다는 변호사들의 우려를 듣고 그동안 러시아 스캔들 공세에 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사법 방해 의혹의 빌미가 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해임과 같은 조치를 이후 더는 취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반격의 시점'을 기다려왔다는 얘기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때가 온 지금, 반격의 선봉에 그레이엄 의원이 선 모양새다. 상원 법사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이제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된 근원을 들여다볼 때"라며 "상대편의 이야기를 파헤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특히, "2016년 여름, FBI가 트럼프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이었던 카터 페이지에 대해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따라 감청 영장을 발부받았던 것을 새로운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가 트럼프 캠프를 감청하기 위해 'FISA 남용'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얘기다.

대선 당시 FBI의 영장 신청을 받은 법무부는 감시법원에 이른바 '트럼프 X파일'을 증거로 제출해 도청 권한을 얻었다. FBI는 이를 통해 페이지가 러시아를 찾아 친(親)러시아 발언을 했던 사실을 포착했고 이것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X파일'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과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도청 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X파일'까지 거짓이라면,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과정은 물론 명분까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달에도 "트럼프 대통령 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법무부와 FBI 고위 간부들이 모의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다. 'FISA 남용'을 고리로 한 반격 카드는 트럼프 대통령도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X파일을 근거로 신청된 영장에 대한 '기밀 해제(declassification)' 계획을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 권한으로 기밀을 해제하면 영장 내용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FISA 남용' 여부도 드러날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가장 유용한 타이밍에 해제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X파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이던 2013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문란한 파티를 벌였고, 그 동영상을 러시아 당국이 갖고 있다는 내용.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도 담고 있음.

트럼프가 의심하는 '러시아 스캔들' 최종 배후는?

특검 결과가 공개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매우 매우 사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 반역적 처사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반역'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수사의 필요성을 설파한 대상,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숨은 권력집단)는 과연 누구일까?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내며 "특검 수사는 낮은 곳에서 시작됐지만 높은 곳으로부터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특검 수사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백악관과 관련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여러분도 답을 알고 있다"는 뼈있는 답변을 내놨다.

‘오바마 도청’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3월 트위터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선 직전 나를 도청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선 뒤 넉 달 가까이 지난 때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닉슨의 워터게이트 감"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정보기관 관계자에게서 직접 들은 말을 토대로 폈던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직후 도청 장소로 지목된 트럼프 타워를 벗어나 뉴저지주 별장에서 당선인 일정을 소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도청 개입 의혹이 제기된 사건은 또 있다. 지난해 2월, 론 존슨 상원의원(공화)은 뮬러 특검팀에 있던 전 FBI 수사관 피터 스트르조크와 그와 불륜관계였던 변호사 리사 페이지가 2016년 9월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메시지에서 페이지는 코미 당시 FBI 국장의 브리핑을 거론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알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대화가 오간 시점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 대선 개입을 중단하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보고받은 브리핑이 러시아 스캔들 관련 내용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메시지가 공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유일한 '공모'는 민주당과 러시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왜 FBI가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서버는 확보하지 못했나?"라고 비판했었다.

저명 언론인, 주류 언론 향해 "트럼프에 사과하라"

지금 주류 언론은 적잖이 충격받은 모습이다. 트럼프 진영의 반격이 향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주류 언론'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NBC에 출연해 "민주당과 진보 언론은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은 트위터에 '뮬러의 광기! 가장 잘못된 미디어 논객 골라내기'라는 제목의 뉴욕 포스트 기사를 링크하기도 했다.

샌더스 대변인이 공유한 ‘뉴욕포스트’ 기사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겨냥해 "가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건 너무나 웃기는 일"이라며 "상을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악관도 "지난 2년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MSNBC가 8,507건의 러시아 스캔들 기사를 냈다"는 자료를 내면서 "가짜 뉴스가 끝없이 쏟아졌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지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보고서를 '민주당·미디어와의 전쟁'에서 무기화하고 있다"며 "'공모 없음'이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샤릴 애트키슨 칼럼 캡처
언론계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재앙 미디어 실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주류 언론의 검증 부족과 편향성 문제를 지적했다. 중립성향의 의회전문지 더 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 제목의 샤릴 애트키슨의 칼럼을 올렸다. 애트키슨은 CBS 기자 출신으로 에미상을 여러 번 받은 언론인이다. 그는 주류 언론을 향해 "트럼프의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유로 '거짓'이라는 식의 조건반사적인 보도를 했고, 오류가 발견돼도 집요하게 반 트럼프 논조만을 이어갔다"고 꼬집었다.

제프 저커 CNN 대표는 러시아 스캔들 보도가 과했다는 지적에 대해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사로서 마땅히 24시간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저거 대표를 향해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은 "시청자들을 의도적으로 오도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CNN을 뉴스 채널로 보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포스트 뮬러 특검' 앞둔 워싱턴 ... '폭풍전야'

하지만 뮬러 특검 보고서로 러시아 스캔들이 '가짜 뉴스'가 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사법 방해 의혹은 판단을 보류함으로써 정쟁의 불씨를 남겼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사법방해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특검보고서 '전체 공개'를 요구해온 민주당은 보고서 전체와 관련 증거 등에 대한 소환장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표결할 걸로 전해졌다.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민주)은 "의회는 편집 없는 특검보고서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방해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할 주체는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장관이 아니라 의회"라며 행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반격보다는 오바마 케어 폐지와 국경장벽 건설 등 핵심 정책을 밀어붙이며 대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오늘도 트위터를 통해 "어떤 증거나 문서가 공개된다 해도 제럴드 내들러나 아담 시프(하원 정보위원장, 민주)를 만족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위대한 미국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멕시코 국경지대 찾은 트럼프 대통령
'보고서 전면 공개'로 반전을 꾀하고는 있지만, 최종병기 뮬러 보고서가 '맹탕'으로 나온 만큼 민주당의 속내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이슈를 꺼내준 것이 차라리 잘됐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워싱턴포스트는 "하원 민주당 지도부는 동료 의원들에게 건강보험 등 유권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에 집중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도 "오바마 케어 폐지를 위한 트럼프의 행보가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류 언론은 러시아 스캔들 관련 보도를 눈에 띄게 줄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진영의 반격 카드인 'FISA 영장 기밀해제' 관련 보도는 일절 내보내지 않고 있다. 정치와 미디어 권력 모두 '포스트 뮬러 특검'에 대비해 신중히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싼 트럼프-반 트럼프 진영 간 싸움은 미국의 외교 전략 노선 등을 놓고 벌이는 트럼프 VS 기성 권력(Establishment)간 대립과 맞물려 이어져 왔다. 내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미국 내 거대한 권력 전쟁은 조만간 또 하나의 극적인 반전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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