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현실’ 말한 헌법재판소…‘여성 vs 태아’ 구도도 깼다

입력 2019.04.12 (21:26) 수정 2019.04.13 (00:5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어제(11일) 결정은 결과 자체뿐만 아니라, 판단의 근거도 상당히 의미있습니다.

헌재 결정문에는 임신한 여성이 마주하는 현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있는데요.

특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이 단순 대립관계가 아니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전향적이라는 평가입니다.

김채린 기자가 판결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4 대 7'.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관은 7년 새 3명 늘었습니다.

[유남석/헌법재판소장 :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더 중요한 변화는 결정문의 구체적 내용.

2012년 위헌 의견엔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추상적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이번엔 여성들의 현실을 '위헌' 의견의 주된 근거로 삼았습니다.

헌재는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양육 부담을 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 단절' 통계까지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낙태가 일률적으로 금지되는 상황에서 해외 원정 등 음성적 낙태뿐만 아니라 여아 유기, 영아 살해까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협박 도구로 사용된다고도 했습니다.

[서기석/헌법재판관 : "(자기낙태죄 조항은)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 민사 분쟁의 압박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이한본/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 부위원장 : "낙태죄의 부당성에 대한 많은 목소리들을 헌법재판소가 담아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헌재는 낙태를 결정한 여성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태아의 삶을 깊이 고민한다고 봤습니다.

[서기석/헌법재판관 : "(낙태 여부 결정은) 자신이 처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입니다."]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곧 태아의 안위"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단순 대립 관계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여성과 태아를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보는 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며, 조화와 균형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차혜령/변호사(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 :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우위에 서는 관계로는 절대로 문제를 풀 수가 없다.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 (헌재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낙태를 실질적으로 줄일 방안 등을 찾아야 한다며, 국가와 입법권자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성의 현실’ 말한 헌법재판소…‘여성 vs 태아’ 구도도 깼다
    • 입력 2019-04-12 21:29:44
    • 수정2019-04-13 00:50:23
    뉴스 9
[앵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어제(11일) 결정은 결과 자체뿐만 아니라, 판단의 근거도 상당히 의미있습니다.

헌재 결정문에는 임신한 여성이 마주하는 현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있는데요.

특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 자기결정권이 단순 대립관계가 아니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전향적이라는 평가입니다.

김채린 기자가 판결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4 대 7'.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관은 7년 새 3명 늘었습니다.

[유남석/헌법재판소장 :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더 중요한 변화는 결정문의 구체적 내용.

2012년 위헌 의견엔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추상적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이번엔 여성들의 현실을 '위헌' 의견의 주된 근거로 삼았습니다.

헌재는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양육 부담을 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 단절' 통계까지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낙태가 일률적으로 금지되는 상황에서 해외 원정 등 음성적 낙태뿐만 아니라 여아 유기, 영아 살해까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협박 도구로 사용된다고도 했습니다.

[서기석/헌법재판관 : "(자기낙태죄 조항은)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 민사 분쟁의 압박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이한본/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 부위원장 : "낙태죄의 부당성에 대한 많은 목소리들을 헌법재판소가 담아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헌재는 낙태를 결정한 여성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태아의 삶을 깊이 고민한다고 봤습니다.

[서기석/헌법재판관 : "(낙태 여부 결정은) 자신이 처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입니다."]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곧 태아의 안위"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단순 대립 관계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여성과 태아를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로 보는 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며, 조화와 균형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차혜령/변호사(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 :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우위에 서는 관계로는 절대로 문제를 풀 수가 없다.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 (헌재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낙태를 실질적으로 줄일 방안 등을 찾아야 한다며, 국가와 입법권자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