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브라질 ‘파벨라’ 건축…‘부패 고리’에 맡겨진 안전

입력 2019.04.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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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감싸 안듯 두 팔을 벌린 거대 예수상이 우뚝 서 있는 세계적 관광도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 이른바 '파벨라'로 불리는 리우의 빈민가에서는 범죄조직과 군·경찰 간에 총격전이 이어져 치안의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12일에는 주거 건물 2동이 무너져 14일 현재까지 주민 9명이 숨지고 15명이 잔해에 매몰돼 실종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붕괴된 건물은 무허가로 지어지면서 완공되기도 전에 건물 안에는 여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허가도 없이 건축 중인 건물에 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브라질의 오랜 부패 구조와 무허가 건축물에 허가를 내주는 건축 행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거 건물 2동 '폭삭'..."아이들이 잔해 안에 있어요"】

현지시각 12일 오전 6시 30분쯤, 이른 아침 브라질 리우시 서쪽 무제마 지역에서 공사 중이던 2개의 주거용 건물이 함께 무너졌다. 목격자들은 붕괴 전 쪼개지는 굉음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사고로 14일 현재까지 9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 주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주민 알란 산타나는 "아이들이 잔해 안에 있다"며 넋을 잃고 슬픔을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구조견과 헬기 등 모든 수색 장비를 동원해 잔해 속에 밤샘 실종자를 찾고 있다.

【붕괴 뒤 실종자 수 파악 어려워...무허가 건축이 낳은 비극】

건물 2동이 붕괴됐지만 실종자 수는 파악이 힘들었다. 이는 건물 2개가 모두 무허가로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허도 없는 건축업자들이 시의 허가 없이 건물을 건축하고 있었다. 건축업자들은 리우 시로부터 이미 건축 중단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외면한 채 층 수를 올리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은 6층 안팎으로 지금까지 4~6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건축업자들은 아래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들 가구 위에 지속해서 층수를 올리며 건축을 진행하고 있었다.

허가 없이 지어지는 건물이다 보니 지반의 성질이나 구조, 건축 재질 등에 따른 건물 층수 하중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붕괴 전 리우 시에 내린 집중 호우가 붕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지만, 안전이 고려되지 않은 무면허·무허가 건축이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빈민가 '파벨라' 땅 무단 차지...짓고,팔고】

무면허 건축업자들이 주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빈민가 '파벨라'의 우두머리를 만나야 한다. 파벨라에는 보통 총기와 마약 거래를 하는 범죄조직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촌장을 만나지 않고서는 땅을 찾기도 건물을 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파벨라의 촌장과 논의를 끝내면 건축업자들은 일부 땅을 무단으로 차지하고 시의 허가도 없이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이들은 1개 층만 완공돼도 집 없는 서민들에게 판매를 시작한다. 20평 남짓한 방 2개짜리 빌라 한 가구가 천만 원이 안 되는 돈에 팔린다. 건축업자들은 아래층 입주와 동시에 위층을 올린다. 입주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또 공사하는 것이다. 입주자는 공사 소음이나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한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데도 이들이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년 뒤면 합법화 가능,주택 가격 상승 기대'】

행정당국이 입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헌법에 보장된 거주권이다. 행정당국이 강제 이주를 위해서는 이들이 살 곳을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부족한 행정당국으로서는 안전이 우려되는 곳에 사실상 불법 거주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거주민들도 불법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거주 이후 수년이 지나면 시 당국으로부터 합법적인 주택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안전의 우려와 '공사 중 거주'라는 불편함도 참고 사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보통의 경우, 행정당국은 수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주민들을 불법 거주로 놔두기보다 무허가 부동산을 합법화해 토지 가옥 세금을 거두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로 안전이 외면된 불법 건축이 횡행하고 있는 이유다. 거주민들은 건물이 합법화되면 주변 시세로 자신의 보유 부동산이 거래가 가능해져 큰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파벨라 장악 범죄조직에 쉽지 않은 행정력 동원】

무너진 건물이 위치한 지역은 산 아랫부분에 위치한 시의 환경보호구역이다. 건축업자들은 산림을 무단 벌채한 뒤 건물을 짓는다. 폭우에 붕괴가 우려되는 곳이지만 배수시설과 축대 등의 안전 시설물은 고려하지 않는다. 행정당국은 이러한 불법 사실을 알고도 입주민들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건물을 철거 하지도 못한다. 군과 경찰의 도움없이는 파벨라 안으로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파벨라를 장악하고 있는 범죄조직의 총기를 동원한 강한 저항이 우려되는 것이다.

리우 시는 지난해 리우 법원에 철거 명령 내려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다만 이 일대 입주를 금지했다. 거주민들은 잠시 이 지역에서 이주했지만, 다시 돌아왔다. 리우 시에는 또 폭우가 예상되면서 이 지역 불법으로 건축된 다른 거주 건물들에 대한 붕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축업자와 범죄조직이 손을 잡고 경찰까지 연루돼 있다는 현지 보도가 잇따르면서 시민의 안전이 구조적인 부패 고리에 맡겨졌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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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브라질 ‘파벨라’ 건축…‘부패 고리’에 맡겨진 안전
    • 입력 2019-04-15 08:01:06
    특파원 리포트
도시를 감싸 안듯 두 팔을 벌린 거대 예수상이 우뚝 서 있는 세계적 관광도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 이른바 '파벨라'로 불리는 리우의 빈민가에서는 범죄조직과 군·경찰 간에 총격전이 이어져 치안의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12일에는 주거 건물 2동이 무너져 14일 현재까지 주민 9명이 숨지고 15명이 잔해에 매몰돼 실종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붕괴된 건물은 무허가로 지어지면서 완공되기도 전에 건물 안에는 여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허가도 없이 건축 중인 건물에 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브라질의 오랜 부패 구조와 무허가 건축물에 허가를 내주는 건축 행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거 건물 2동 '폭삭'..."아이들이 잔해 안에 있어요"】

현지시각 12일 오전 6시 30분쯤, 이른 아침 브라질 리우시 서쪽 무제마 지역에서 공사 중이던 2개의 주거용 건물이 함께 무너졌다. 목격자들은 붕괴 전 쪼개지는 굉음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사고로 14일 현재까지 9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 주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주민 알란 산타나는 "아이들이 잔해 안에 있다"며 넋을 잃고 슬픔을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구조견과 헬기 등 모든 수색 장비를 동원해 잔해 속에 밤샘 실종자를 찾고 있다.

【붕괴 뒤 실종자 수 파악 어려워...무허가 건축이 낳은 비극】

건물 2동이 붕괴됐지만 실종자 수는 파악이 힘들었다. 이는 건물 2개가 모두 무허가로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허도 없는 건축업자들이 시의 허가 없이 건물을 건축하고 있었다. 건축업자들은 리우 시로부터 이미 건축 중단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외면한 채 층 수를 올리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은 6층 안팎으로 지금까지 4~6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건축업자들은 아래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들 가구 위에 지속해서 층수를 올리며 건축을 진행하고 있었다.

허가 없이 지어지는 건물이다 보니 지반의 성질이나 구조, 건축 재질 등에 따른 건물 층수 하중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붕괴 전 리우 시에 내린 집중 호우가 붕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지만, 안전이 고려되지 않은 무면허·무허가 건축이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빈민가 '파벨라' 땅 무단 차지...짓고,팔고】

무면허 건축업자들이 주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빈민가 '파벨라'의 우두머리를 만나야 한다. 파벨라에는 보통 총기와 마약 거래를 하는 범죄조직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촌장을 만나지 않고서는 땅을 찾기도 건물을 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파벨라의 촌장과 논의를 끝내면 건축업자들은 일부 땅을 무단으로 차지하고 시의 허가도 없이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이들은 1개 층만 완공돼도 집 없는 서민들에게 판매를 시작한다. 20평 남짓한 방 2개짜리 빌라 한 가구가 천만 원이 안 되는 돈에 팔린다. 건축업자들은 아래층 입주와 동시에 위층을 올린다. 입주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또 공사하는 것이다. 입주자는 공사 소음이나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한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데도 이들이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년 뒤면 합법화 가능,주택 가격 상승 기대'】

행정당국이 입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헌법에 보장된 거주권이다. 행정당국이 강제 이주를 위해서는 이들이 살 곳을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부족한 행정당국으로서는 안전이 우려되는 곳에 사실상 불법 거주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거주민들도 불법 사실을 알고 있지만 거주 이후 수년이 지나면 시 당국으로부터 합법적인 주택 등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 안전의 우려와 '공사 중 거주'라는 불편함도 참고 사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보통의 경우, 행정당국은 수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주민들을 불법 거주로 놔두기보다 무허가 부동산을 합법화해 토지 가옥 세금을 거두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로 안전이 외면된 불법 건축이 횡행하고 있는 이유다. 거주민들은 건물이 합법화되면 주변 시세로 자신의 보유 부동산이 거래가 가능해져 큰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파벨라 장악 범죄조직에 쉽지 않은 행정력 동원】

무너진 건물이 위치한 지역은 산 아랫부분에 위치한 시의 환경보호구역이다. 건축업자들은 산림을 무단 벌채한 뒤 건물을 짓는다. 폭우에 붕괴가 우려되는 곳이지만 배수시설과 축대 등의 안전 시설물은 고려하지 않는다. 행정당국은 이러한 불법 사실을 알고도 입주민들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건물을 철거 하지도 못한다. 군과 경찰의 도움없이는 파벨라 안으로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파벨라를 장악하고 있는 범죄조직의 총기를 동원한 강한 저항이 우려되는 것이다.

리우 시는 지난해 리우 법원에 철거 명령 내려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다만 이 일대 입주를 금지했다. 거주민들은 잠시 이 지역에서 이주했지만, 다시 돌아왔다. 리우 시에는 또 폭우가 예상되면서 이 지역 불법으로 건축된 다른 거주 건물들에 대한 붕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축업자와 범죄조직이 손을 잡고 경찰까지 연루돼 있다는 현지 보도가 잇따르면서 시민의 안전이 구조적인 부패 고리에 맡겨졌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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