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일본주의가 뭐길래? MB부터 전두환까지 법정서 방패로

입력 2019.04.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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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피고인들 줄줄이 지적…공소장 일본주의는 무엇?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 一本主義)' 한눈에 보기에도 난해한 법률 용어가 최근 각종 기사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소장 일본주의'를 꺼내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 전문가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연구관은 물론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과 이재명 경기지사, 정봉주 전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 씨, 이윤택 씨까지. 정치적으로는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들도 법정에서는 모두 하나같이 "공소장 일본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소장 일본주의'는 대체 무엇일까요?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공소장 일본주의 최근 수면 위로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찰이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겁니다. 혐의 사실 이외에 사실을 적어 재판부에 피고인이 유죄일 것 같다는 심증을 줘선 안된다는 거죠. 피고인인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떼어내 오직 범죄 내용만을 놓고 유무죄를 가리자는 취지입니다. 법정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재판장님, 이 사안은 본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대사가 공소장 일본주의를 단적으로 설명해줍니다.

만일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인정되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피고인이 범행을 했는지 판단하지 않고 검찰이 기소를 잘못했기 때문에 재판을 끝내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 특성상, 관행처럼 공소장에 혐의 이외의 배경이 적히기도 하고 공소장 이외의 수사 기록이 재판부에 제출됐습니다. 설사 재판부가 문제를 인정하더라도 공소를 기각하기보단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해왔습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던 '공소장 일본주의'가 최근 혐의가 복잡한 전직 대통령들과 '법잘알' 전·현직 판사들이 법정에서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끄집어내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재판부에 예단 심어주면 안 돼" VS "범행 동기 설명하려면 필연적"
실제로 이른바 거물급 피고인들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적하는 전략은 잘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막연하게 유죄를 의심하게 한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공소 기각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근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장에 공소 사실에 예단을 일으킬 기타 사실을 나열했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의 복잡한 혐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범행 동기를 포함한 배경 사실을 공소장에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역시 엇갈립니다. 대법원은 1994년 "공소장에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이외의 사실로서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사유를 나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다수의견으로 "범행 동기 등을 설명하기 위해 검사가 구체적인 사정을 적시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사법 농단' 재판 계기… "'공소장 일본주의' 엄격해질 것"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원 안팎에서는 '공소장 일본주의'가 해석의 영역인 만큼 관련 판결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2009년 대법원 판례만 봐도, 문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적법하다는 의견을 낸 대법관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이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사실을 특정하려면 그 배경과 과정을 자세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의 수호자로 나선 지금과 다른 모습입니다. 그만큼 '공소장 일본주의'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 검찰의 공소장을 지금보다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기류는 분명히 읽힙니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을 관례적으로 받아주면서 '공소장 일본주의'가 사문화됐던 경향이 있다"며 "사법부가 피고인석에 앉으면서 검찰 공소 방식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 같아 앞으로 재판의 모습이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 논쟁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미지수지만, 오랜 재판 관행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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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소장 일본주의가 뭐길래? MB부터 전두환까지 법정서 방패로
    • 입력 2019-04-16 08:28:52
    취재K
■거물 피고인들 줄줄이 지적…공소장 일본주의는 무엇?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 一本主義)' 한눈에 보기에도 난해한 법률 용어가 최근 각종 기사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소장 일본주의'를 꺼내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 전문가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연구관은 물론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과 이재명 경기지사, 정봉주 전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 씨, 이윤택 씨까지. 정치적으로는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들도 법정에서는 모두 하나같이 "공소장 일본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소장 일본주의'는 대체 무엇일까요?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공소장 일본주의 최근 수면 위로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찰이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겁니다. 혐의 사실 이외에 사실을 적어 재판부에 피고인이 유죄일 것 같다는 심증을 줘선 안된다는 거죠. 피고인인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떼어내 오직 범죄 내용만을 놓고 유무죄를 가리자는 취지입니다. 법정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재판장님, 이 사안은 본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대사가 공소장 일본주의를 단적으로 설명해줍니다.

만일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인정되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피고인이 범행을 했는지 판단하지 않고 검찰이 기소를 잘못했기 때문에 재판을 끝내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 특성상, 관행처럼 공소장에 혐의 이외의 배경이 적히기도 하고 공소장 이외의 수사 기록이 재판부에 제출됐습니다. 설사 재판부가 문제를 인정하더라도 공소를 기각하기보단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해왔습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던 '공소장 일본주의'가 최근 혐의가 복잡한 전직 대통령들과 '법잘알' 전·현직 판사들이 법정에서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끄집어내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재판부에 예단 심어주면 안 돼" VS "범행 동기 설명하려면 필연적"
실제로 이른바 거물급 피고인들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적하는 전략은 잘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막연하게 유죄를 의심하게 한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공소 기각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근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장에 공소 사실에 예단을 일으킬 기타 사실을 나열했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의 복잡한 혐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범행 동기를 포함한 배경 사실을 공소장에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역시 엇갈립니다. 대법원은 1994년 "공소장에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이외의 사실로서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사유를 나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다수의견으로 "범행 동기 등을 설명하기 위해 검사가 구체적인 사정을 적시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사법 농단' 재판 계기… "'공소장 일본주의' 엄격해질 것"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원 안팎에서는 '공소장 일본주의'가 해석의 영역인 만큼 관련 판결이 충분히 쌓일 때까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2009년 대법원 판례만 봐도, 문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적법하다는 의견을 낸 대법관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이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사실을 특정하려면 그 배경과 과정을 자세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의 수호자로 나선 지금과 다른 모습입니다. 그만큼 '공소장 일본주의'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 검찰의 공소장을 지금보다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기류는 분명히 읽힙니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을 관례적으로 받아주면서 '공소장 일본주의'가 사문화됐던 경향이 있다"며 "사법부가 피고인석에 앉으면서 검찰 공소 방식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 같아 앞으로 재판의 모습이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 논쟁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미지수지만, 오랜 재판 관행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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