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칠레가 산불을 극복한 어느 기발한 방법(feat. 강아지 세 마리)

입력 2019.04.16 (10:22) 수정 2019.04.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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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은 매해 연말이면 '올해의 사진(Photo of the Year)'을 선정해 발표한다. 사진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자는 취지이다. 위 사진은 지난 2017년 통신사 한 곳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뽑힌 사진 가운데 하나이다.

사진 속의 개는 보더 콜리(Border Collie)라는 종이다. 주로 양치기개 역할을 하는 '목양견'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활동적이고 프리스비와 같은 각종 스포츠에 능할 뿐 아니라 지능도 뛰어나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개', '가장 똑똑한 개'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된 이유는 그런 보더 콜리가 등에 메고 있는 가방 때문이다. (사진 속에 보더 콜리가 메고 있는 초록색 가방 근처로 흩날리고 있는 점들이 보이는가? 이것은 바로 달리는 보더 콜리에 의해 흩뿌려지고 있는 씨앗이다.)


2017년 칠레는 사상 최악의 산불을 겪었다.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된 산불로 십수 명이 숨지고, 7천 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발생했으며, 서울시 면적의 7배가 넘는 임야가 잿더미로 변했다. 칠레에서는 대개 고온건조한 여름철에 주로 산불이 나지만, 기후 변화로 가뭄이 심해지면서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칠레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세르히오 갈릴레아 공공시설부 차관을 국가재건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가옥 건축 등에 2천8백만 달러(한화 약 318억 원)를 투입하는 등 총력을 다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한 장애인 보조견 훈련사의 '귀여운 아이디어'가 칠레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을 통해서도 보도되면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칠레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환경NGO Pewos의 대표이기도 한 프란시스카 토레스는 산불이 완전히 진화된 때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기르던 개 세 마리인 '다스', '올리비아', '서머'들을 차에 싣고 타버린 숲으로 데려갔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 개들은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숲의 이곳저곳을 마음껏 뛰어다녔고, 그럴 때마다 개들이 뛰어다닌 곳에는 식물의 씨앗이 사방팔방으로 뿌려졌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보더 콜리 세 마리의 등에는 특수 제작된 가방 조끼가 입혀졌고, 그 안에는 각종 씨앗으로 가득 채웠다. 토레스는 이 개들에게 절대로 다른 야생동물들을 공격하지 말 것과 가방에 든 씨앗을 다 뿌리고 오면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훈련시켰다. 그 결과 이들은 마음껏 숲 속을 뛰어다니며 매일 30㎢의 면적에 10㎏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다. 기껏해야 온종일 3㎢ 면적에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람에 비해 10배 가까운 효율이다. 게다가 사람은 씨 뿌리는 것을 노동으로 여겨 매우 힘들어하지만, 보더 콜리들은 천성적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토레스는 설명했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숲 속에서 이렇게 6개월여를 보더 콜리 삼총사는 매일같이 신나게 뛰어다녔고,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뿌려진 씨앗에서 싹이 돋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비록 아주 작은 변화일지라도 생태계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칠레인들에게 큰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특히 토레스는 씨앗의 품종을 고르는데 있어서도 외래종이 아닌 자생종으로만 엄선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보더 콜리 세 마리에 의해 뿌려진 씨앗들(좌)에서 싹이 나는 모습(우)보더 콜리 세 마리에 의해 뿌려진 씨앗들(좌)에서 싹이 나는 모습(우)

이유인즉슨, 산불이 난 뒤 삼림의 복구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방법에 있어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학계를 중심으로 '산불이 삼림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과 함께 -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정 산불'이라고 해서 '방화'나 '곤충·병의 억제', '특정 관목의 재생 촉진' 등을 위한 목적으로 해마다 고의로 산불을 내고 있다- '산불 복구 방법으로서 씨 뿌리기가 반드시 효과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가 미국 산림국(US Forest Service) 등에 의해 힘을 얻으면서 적어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외래종 식물을 파종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불이 지나간 숲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토양의 침식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고, 서식처를 잃어버린 야생 동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방목지의 경우 방목 가축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막상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까지 유의미한 평가를 받은 경우는 드물다. 일부 학자들은 산불 후 살포된 일년생 초본에 의해 일부 자생종의 자연적 재생이 도리어 지연된 사례까지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산불 후 씨앗을 뿌릴 때는 적어도 "산불 전 생태계의 구성 요소를 반영할 수 있는 자생종·고유종들만 선별하는 등 면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루어져 있다.

최근 강릉 산불 이후 국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화재로 타버린 산을 되살리는 보더콜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는 등 칠레에서의 이 사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실천에 옮긴 토레스는 "이렇게 뿌려진 씨앗에서 싹이 터서 식물 군락이 되살아나게 되면 산불로 서식지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야생 동물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엄청난 재난을 겪고 무력감과 실의에 젖은 지역민과 서식 동물 등에 작으나마 희망의 씨앗을 보여주고, 인간에 의해 파괴돼버린 산림에 조금씩이라도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의 '미안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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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4-16 10: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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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은 매해 연말이면 '올해의 사진(Photo of the Year)'을 선정해 발표한다. 사진을 통해 한 해를 돌아보자는 취지이다. 위 사진은 지난 2017년 통신사 한 곳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뽑힌 사진 가운데 하나이다.

사진 속의 개는 보더 콜리(Border Collie)라는 종이다. 주로 양치기개 역할을 하는 '목양견'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활동적이고 프리스비와 같은 각종 스포츠에 능할 뿐 아니라 지능도 뛰어나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개', '가장 똑똑한 개'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된 이유는 그런 보더 콜리가 등에 메고 있는 가방 때문이다. (사진 속에 보더 콜리가 메고 있는 초록색 가방 근처로 흩날리고 있는 점들이 보이는가? 이것은 바로 달리는 보더 콜리에 의해 흩뿌려지고 있는 씨앗이다.)


2017년 칠레는 사상 최악의 산불을 겪었다.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된 산불로 십수 명이 숨지고, 7천 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발생했으며, 서울시 면적의 7배가 넘는 임야가 잿더미로 변했다. 칠레에서는 대개 고온건조한 여름철에 주로 산불이 나지만, 기후 변화로 가뭄이 심해지면서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칠레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세르히오 갈릴레아 공공시설부 차관을 국가재건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가옥 건축 등에 2천8백만 달러(한화 약 318억 원)를 투입하는 등 총력을 다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한 장애인 보조견 훈련사의 '귀여운 아이디어'가 칠레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을 통해서도 보도되면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칠레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환경NGO Pewos의 대표이기도 한 프란시스카 토레스는 산불이 완전히 진화된 때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기르던 개 세 마리인 '다스', '올리비아', '서머'들을 차에 싣고 타버린 숲으로 데려갔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 개들은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숲의 이곳저곳을 마음껏 뛰어다녔고, 그럴 때마다 개들이 뛰어다닌 곳에는 식물의 씨앗이 사방팔방으로 뿌려졌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보더 콜리 세 마리의 등에는 특수 제작된 가방 조끼가 입혀졌고, 그 안에는 각종 씨앗으로 가득 채웠다. 토레스는 이 개들에게 절대로 다른 야생동물들을 공격하지 말 것과 가방에 든 씨앗을 다 뿌리고 오면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훈련시켰다. 그 결과 이들은 마음껏 숲 속을 뛰어다니며 매일 30㎢의 면적에 10㎏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다. 기껏해야 온종일 3㎢ 면적에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람에 비해 10배 가까운 효율이다. 게다가 사람은 씨 뿌리는 것을 노동으로 여겨 매우 힘들어하지만, 보더 콜리들은 천성적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토레스는 설명했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숲 속에서 이렇게 6개월여를 보더 콜리 삼총사는 매일같이 신나게 뛰어다녔고,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뿌려진 씨앗에서 싹이 돋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비록 아주 작은 변화일지라도 생태계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칠레인들에게 큰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특히 토레스는 씨앗의 품종을 고르는데 있어서도 외래종이 아닌 자생종으로만 엄선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보더 콜리 세 마리에 의해 뿌려진 씨앗들(좌)에서 싹이 나는 모습(우)
이유인즉슨, 산불이 난 뒤 삼림의 복구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방법에 있어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학계를 중심으로 '산불이 삼림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과 함께 -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정 산불'이라고 해서 '방화'나 '곤충·병의 억제', '특정 관목의 재생 촉진' 등을 위한 목적으로 해마다 고의로 산불을 내고 있다- '산불 복구 방법으로서 씨 뿌리기가 반드시 효과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가 미국 산림국(US Forest Service) 등에 의해 힘을 얻으면서 적어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 외래종 식물을 파종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불이 지나간 숲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토양의 침식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고, 서식처를 잃어버린 야생 동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방목지의 경우 방목 가축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막상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까지 유의미한 평가를 받은 경우는 드물다. 일부 학자들은 산불 후 살포된 일년생 초본에 의해 일부 자생종의 자연적 재생이 도리어 지연된 사례까지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산불 후 씨앗을 뿌릴 때는 적어도 "산불 전 생태계의 구성 요소를 반영할 수 있는 자생종·고유종들만 선별하는 등 면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루어져 있다.

최근 강릉 산불 이후 국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화재로 타버린 산을 되살리는 보더콜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는 등 칠레에서의 이 사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실천에 옮긴 토레스는 "이렇게 뿌려진 씨앗에서 싹이 터서 식물 군락이 되살아나게 되면 산불로 서식지를 잃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야생 동물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엄청난 재난을 겪고 무력감과 실의에 젖은 지역민과 서식 동물 등에 작으나마 희망의 씨앗을 보여주고, 인간에 의해 파괴돼버린 산림에 조금씩이라도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의 '미안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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