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기획] 재일조선인, 그리고 조선학교

입력 2019.04.20 (08:06) 수정 2019.05.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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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혹시 조선학교를 아십니까?

아마 일본에 있는 북한학교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광복 뒤 일본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국어 강습소를 세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 강습소가 조선학교의 전신입니다.

일본식 교육을 따라야 한다는 일본정부의 억압에 맞서 4.24 교육투쟁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교육원조를 받으면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 남북의 창에서는 이 조선학교에 대해 알아봅니다.

먼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이소정 기자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도착한 곳은 한반도 오대 명산 중 하나인 묘향산입니다.

푸른 나무 그늘 아래서 고기를 구워먹고, 북한의 인기가요도 불러 봅니다.

[북한가요 ‘준마처녀’ : "랄라 랄라라~ 날보고 준마처녀래요."]

이들은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 조선학교 학생들입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가나가와 조선중고급학교 학생 : "보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 오늘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고국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정도 진행되는 일부 조선학교 학생들의 북한 여행.

하지만 이런 영상들은 대부분 북한 당국과 일부 선전매체를 통한 겁니다.

이게 조선학교의 전부일까요?

지난 1월, KBS 취재진은 도쿄 조선학교를 찾았습니다.

우리 중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특히 인상적인 건 학교 곳곳에 아이들이 붙여 놓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소식과 한국 취재진을 대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태도였습니다.

["박보검 좋아해요."]

["송중기 오빠 좋아해요."]

["방탄 좋아합니다."]

한류 스타를 좋아하고, 통일된 한반도를 염원하는 아이들.

교장 선생님도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조선학교가 오해받을 때 안타깝다고 얘기합니다.

[신길웅/도쿄 조선중고급학교장 : "저희들이 늘 말하는 것은 조선학교는 재일동포들의 학교라고 말합니다. 어떤 교육을 하는가. 조선학교는 일본에 살지만 조선 사람의 정신을 키우는 학교이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그런 학교라고 저희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첩을 양성하는 학교라든지 빨갱이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 학부모들 그런 것은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 뒤 일본에 남은 조선인 60여만 명은 가장 먼저 국어 강습소를 세웁니다.

[영화 ‘조선 아이’ : "우리는 조선인입니다!"]

식민지 시대, 모국어를 모르던 조선 아이들이 처음으로 우리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한 곳.

그러나 학교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948년 1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전국 지사에게 통지서를 보내‘조선 아이들도 일본 교육법에 따르는 학교에서 일본어로 하는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통지에 따르지 않는 학교는 강제 폐쇄했습니다.

35년만에야 다시 쓰게 된 우리말과 우리의 글. 민족교육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4.24 교육 투쟁입니다.

일본 전역에서 거리로 나온 동포 100만 명.

3천 명 가까이 체포됐고, 오사카에서는 16살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배영애 할머니는 지금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배영애/4.24 교육투쟁 참가자 : "그냥 안아가지고 바깥으로 탁 내동댕이쳐졌어요. 아팠지만 그런 것보다 너무 부아가 나고, 분노하는 그런 마음에 슬프다는 마음보다도 우리가 어제까지 다닌 학교, 왜 우리가 그렇게 당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지요."]

1948년부터 2년 동안 일본정부의 폐쇄정책으로 500개가 넘던 조선학교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학교를 지키려는 동포들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1955년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이 결성되고, 1957년부터 지원된 북한의 교육원조비가 조선학교 확장에 쓰이게 됩니다.

일본 사회 일부에서 북한과 총련, 조선학교를 하나로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90년대 북핵문제가 불거지자 조선학교에 대한 여론은 악화됩니다.

[배명옥/변호사/조선학교 졸업 : "제가 중급학교 2학년 시절에도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 2명이 저의 저고리 옷고름을 이렇게 당기고 이 옷 뭐냐고 하면서 계단에서 밀고 했어요. 그런 거. 특히 인원수가 많은 도쿄의 조선학교 여학생들은 전차 속에서 치마저고리를 칼로 찢기는 사건이 많이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정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습니다.

["이제 문 여시지! 여기는 일본인 토지다 이것들아!"]

["일본에서 나가라! 너희 뭐야? 스파이 아이들 아니야?"]

2009년,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이른바 재특회 등 우익단체 회원들은 교토 조선 초급학교 진입을 시도하며 어린 학생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15년 째 조선학교를 연구하고 있는 류타 교수는 북한과 총련, 조선학교를 하나로 규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바 ‘반일 교육’을 하는 스파이 학교’라는 주장에 그는 역사인류학자로서 객관적 시각을 제안 합니다.

[이타가키 류타/교토 도시샤대학 사회학부 교수 : "이게 완전히 일본 학교 교과서의 조선어판인 거죠. 이걸 5학년 때 배우고 그 다음에 6학년 조선역사인거죠. 그러니까 순서로써는 먼저 일본의 역사를 배우는 순서로 되어있는데..."]

조선학교의 교과과정이 일본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고, 민족 교육 과정도 재일조선인의 상황에 맞게 변해왔다는 겁니다.

[이타가키 류타/교토 도시샤 대학 사회학부 교수 : "교토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교실 앞에 있는 초상화는 없어졌고요. 부모님 심정은 약간 복잡하고요. 사상 교육 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는 측면도 있고 현재는 2003년인가에 만든 교과서를 쓰고 있을텐데 그 당시에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고 6.15의 분위기가 반영되어있는 교과서인데, 지금 쓰고 있는 거. 그러니까 통일지향적인 내용을 지금 바탕으로 하고 있죠."]

그러나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문부과학성이‘고교 무상화’정책에서 조선학교 10곳만 제외시킨 겁니다.

교육권의 침해라는 UN의 권고가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학교가 무상화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협력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도쿄와 오사카, 아이치, 후쿠오카, 히로시마 등 5개 지역에서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승소한 건 오사카 1심 딱 한 번뿐, 재판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민주당 정권에서 고교무상화를 도입할 당시 책임자였던 마에카와 전 문부과학성 차관.

그 역시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는 의외의 결과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에카와/전 문부과학성 차관 : "15세 학생이 중학교 졸업 뒤 들어가서 3년 동안 일정 수준의 수업을 받는 학교라면 충분하다는 (심사)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심사를 위해) 교토, 오사카, 고베 지역의 조선고교 3곳을 견학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물론 교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이 걸려있었지만 그것이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하세가와 씨는 책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 67곳을 직접 찾아다닌 6개월 대장정의 이야깁니다.

[하세가와 가즈오/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대표 : "일본인들에게는 조선학교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파이 학교 아니냐’ ‘조총련 돈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등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고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와 이념을 떠나서 아이들은 모두 같다고 말하는 하세가와 선생.

[하세가와 가즈오/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대표 : "여론이나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계속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6월,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조선학교 학생들이 판문점 북측지역을 찾았습니다.

[가나가와 조선중고급학교 학생 : "오늘 6월12일 온 세계의 이목을 모으는 조미수뇌회담이 진행되는 뜻깊은 날에 여기 판문점에 오니 감동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소망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의 수학여행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끝까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3만 조선적

[앵커]

조선학교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조선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광복 직후, 일본 정부는 일본에 남은 우리 민족을 ‘조선적’의 ‘외국인’으로 분류합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 중 3만 명 정도는 여전히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적을 바꾸면 남북 분단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라는데요.

‘조선적’을 지키고 있는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가 들려드립니다.

[리포트]

일본 요코하마의 조선학교.

재일동포이자 전 J리그 축구 스타인 안영학 씨를 만났습니다.

[2006년 1월 KBS 뉴스 : "(조선적 출신) K리그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안영학은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를 보고 K리그 선수가 되는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안영학 : "특히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는 울면서 기뻐했고..."]

[안영학 : "16강 진출은 어렵지만, 안되죠. (16강 진출) 가능성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에서도 활약한 안영학 씨의 국적은 ‘조선적’입니다.

[1947년 5월 2일 : "오늘 일본국 헌법을 공포 합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연합국 최고 사령부 GHQ 하에서 일본의 새로운 헌법이 시행됩니다.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의 법적 지위가 ‘황국신민’에서 ‘외국인’ 즉 ‘조선적’으로 바뀐건데요.

‘조선적’이 표시된 외국 증명서를 지니지 않으면 감옥에 구금하거나 강제 퇴거한다고 돼있습니다.

일본에 남아있던 약 60만명의 조선인에게 ‘조선적’이 부여된 겁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등록증에 뭐 조선, 조선이라는 그 기호라고 하나? 국적은 아니고 조선. 일단 조선이라고 돼 있는데 그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고 사실상 좀 뭐 복잡한 조선적. 네."]

1965년 한일 수교 협정 체결 이후, 한국 국적을 선택할 길이 열렸지만 안영학 씨는 여전히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어머니도, 형님도 다 한국 국적으로 바꿨어요. 저는 역시 (국적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냥 조선으로서 불편함이 없는 날이 오는 것을 저는 믿고 있고, 그런 날이 오기를 저는 기대하고 있어요."]

방한을 위해 조선적 동포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일본과 다른 나라를 오갈 땐 일본 법무성으로부터 재입국허가서를 받아야 합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아무래도 조선의 그 여권을 보거나, 아니면 재입국허가서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역시 본 적이 없는 직원도 있잖아요. 세관 직원들이. 그러면 ‘이거 무엇이냐’ 해서 좀 기다리라고 해서 대기를 해야 해요. 그때는. 그래서 좀 오래 걸리고..."]

한국 입국을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K리그 시절 동료가) ‘결혼합니다. 꼭 와주세요’라고 해서 청첩장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꼭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대사관에 가서 신청했는데, 청첩장도 제시했는데 결국에는 발급이, 며칠 후에 통보가 와서 이번에는 발급이 안 됐습니다, 라고 해서, 이유는 물어보지도 못해요. 이유는 뭐 말씀 못 드린다고..."]

2017년 은퇴한 뒤 안영학 씨는 선수이자 감독으로 독립축구 연맹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일명 CONIFA라 불리는 이 대회는 FIFA에 가입하지 못한 47개 미승인 국가와 소수 민족들이 참여하는 축제입니다.

UKJ, 즉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축구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그런 이념이 있었어요. 그거는 제가 살면서 축구선수로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저의 이념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 꼭 대회에 가야겠다. 우리 재일 코리안을 온 세계에 알려주고 싶었고..."]

서울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조경희 씨도 재일동포입니다.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조선학교에서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조선학교) 특징으로 봤을 때 굉장히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고요. 사실 조선학교 출신자들은 그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는 자존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도 안정적으로 세워진다고 할까요."]

일본 땅에 살지만 조선학교에서 자신의 뿌리를 배우는 학생들.

하지만 조선적 재일동포들에겐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한국 입국할 때) 첫 번째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래 (한국에) 방문하세요’ 이렇게 내줍니다. 여행 증명서 자체를 내주기도 하는데 두 번, 세 번에 걸쳐서 신청하게 되면 끈질긴 질문과 이유서, 사유서를 쓰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에 방문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문제가 지속되면서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한국 정부에 입국 과정의 단순화, 발급 기간 축소 등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는데요.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죠. 새로운 규정도 개선되었고. 규정 자체도 개선이 되었고. 현재는 많은 사람이 신청하면 일단은 발급이 되고 있다고 듣고 있어요. 아직은 시험단계이긴 하지만."]

지난 2017년 문재인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광복절 경축사/2017년 8월 15일 :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외교부는 남북의 창 취재진의 질문에, “조선적 재일동포는 합법적 등록 절차를 거친다면 대한민국 국적으로 인정” 되고, 또한 “원활한 고국방문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민단계 민족학교 4곳 외에 조선학교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이게 사실 다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고 남북의 이 분단체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조선적자들을 어떤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는 사실 한반도하고 일본, 재일동포의 그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문제를 금방 좀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 ‘조선’적을 지키고 있는 재일 동포들.

“남도 북도 내 고향, 내 조국” 이라는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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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4 기획] 재일조선인, 그리고 조선학교
    • 입력 2019-04-20 08:09:49
    • 수정2019-05-03 18:06:24
    남북의 창
[앵커]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혹시 조선학교를 아십니까?

아마 일본에 있는 북한학교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광복 뒤 일본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국어 강습소를 세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 강습소가 조선학교의 전신입니다.

일본식 교육을 따라야 한다는 일본정부의 억압에 맞서 4.24 교육투쟁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5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교육원조를 받으면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 남북의 창에서는 이 조선학교에 대해 알아봅니다.

먼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이소정 기자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버스를 타고 학생들이 도착한 곳은 한반도 오대 명산 중 하나인 묘향산입니다.

푸른 나무 그늘 아래서 고기를 구워먹고, 북한의 인기가요도 불러 봅니다.

[북한가요 ‘준마처녀’ : "랄라 랄라라~ 날보고 준마처녀래요."]

이들은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 조선학교 학생들입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가나가와 조선중고급학교 학생 : "보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 오늘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고국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정도 진행되는 일부 조선학교 학생들의 북한 여행.

하지만 이런 영상들은 대부분 북한 당국과 일부 선전매체를 통한 겁니다.

이게 조선학교의 전부일까요?

지난 1월, KBS 취재진은 도쿄 조선학교를 찾았습니다.

우리 중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특히 인상적인 건 학교 곳곳에 아이들이 붙여 놓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소식과 한국 취재진을 대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태도였습니다.

["박보검 좋아해요."]

["송중기 오빠 좋아해요."]

["방탄 좋아합니다."]

한류 스타를 좋아하고, 통일된 한반도를 염원하는 아이들.

교장 선생님도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조선학교가 오해받을 때 안타깝다고 얘기합니다.

[신길웅/도쿄 조선중고급학교장 : "저희들이 늘 말하는 것은 조선학교는 재일동포들의 학교라고 말합니다. 어떤 교육을 하는가. 조선학교는 일본에 살지만 조선 사람의 정신을 키우는 학교이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그런 학교라고 저희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첩을 양성하는 학교라든지 빨갱이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 학부모들 그런 것은 생각도 안하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 뒤 일본에 남은 조선인 60여만 명은 가장 먼저 국어 강습소를 세웁니다.

[영화 ‘조선 아이’ : "우리는 조선인입니다!"]

식민지 시대, 모국어를 모르던 조선 아이들이 처음으로 우리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한 곳.

그러나 학교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948년 1월, 일본 문부과학성은 전국 지사에게 통지서를 보내‘조선 아이들도 일본 교육법에 따르는 학교에서 일본어로 하는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통지에 따르지 않는 학교는 강제 폐쇄했습니다.

35년만에야 다시 쓰게 된 우리말과 우리의 글. 민족교육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4.24 교육 투쟁입니다.

일본 전역에서 거리로 나온 동포 100만 명.

3천 명 가까이 체포됐고, 오사카에서는 16살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배영애 할머니는 지금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배영애/4.24 교육투쟁 참가자 : "그냥 안아가지고 바깥으로 탁 내동댕이쳐졌어요. 아팠지만 그런 것보다 너무 부아가 나고, 분노하는 그런 마음에 슬프다는 마음보다도 우리가 어제까지 다닌 학교, 왜 우리가 그렇게 당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지요."]

1948년부터 2년 동안 일본정부의 폐쇄정책으로 500개가 넘던 조선학교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학교를 지키려는 동포들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1955년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이 결성되고, 1957년부터 지원된 북한의 교육원조비가 조선학교 확장에 쓰이게 됩니다.

일본 사회 일부에서 북한과 총련, 조선학교를 하나로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90년대 북핵문제가 불거지자 조선학교에 대한 여론은 악화됩니다.

[배명옥/변호사/조선학교 졸업 : "제가 중급학교 2학년 시절에도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 2명이 저의 저고리 옷고름을 이렇게 당기고 이 옷 뭐냐고 하면서 계단에서 밀고 했어요. 그런 거. 특히 인원수가 많은 도쿄의 조선학교 여학생들은 전차 속에서 치마저고리를 칼로 찢기는 사건이 많이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정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습니다.

["이제 문 여시지! 여기는 일본인 토지다 이것들아!"]

["일본에서 나가라! 너희 뭐야? 스파이 아이들 아니야?"]

2009년,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이른바 재특회 등 우익단체 회원들은 교토 조선 초급학교 진입을 시도하며 어린 학생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15년 째 조선학교를 연구하고 있는 류타 교수는 북한과 총련, 조선학교를 하나로 규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바 ‘반일 교육’을 하는 스파이 학교’라는 주장에 그는 역사인류학자로서 객관적 시각을 제안 합니다.

[이타가키 류타/교토 도시샤대학 사회학부 교수 : "이게 완전히 일본 학교 교과서의 조선어판인 거죠. 이걸 5학년 때 배우고 그 다음에 6학년 조선역사인거죠. 그러니까 순서로써는 먼저 일본의 역사를 배우는 순서로 되어있는데..."]

조선학교의 교과과정이 일본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고, 민족 교육 과정도 재일조선인의 상황에 맞게 변해왔다는 겁니다.

[이타가키 류타/교토 도시샤 대학 사회학부 교수 : "교토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교실 앞에 있는 초상화는 없어졌고요. 부모님 심정은 약간 복잡하고요. 사상 교육 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는 측면도 있고 현재는 2003년인가에 만든 교과서를 쓰고 있을텐데 그 당시에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고 6.15의 분위기가 반영되어있는 교과서인데, 지금 쓰고 있는 거. 그러니까 통일지향적인 내용을 지금 바탕으로 하고 있죠."]

그러나 일본 정부의 차별정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문부과학성이‘고교 무상화’정책에서 조선학교 10곳만 제외시킨 겁니다.

교육권의 침해라는 UN의 권고가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학교가 무상화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협력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도쿄와 오사카, 아이치, 후쿠오카, 히로시마 등 5개 지역에서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승소한 건 오사카 1심 딱 한 번뿐, 재판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민주당 정권에서 고교무상화를 도입할 당시 책임자였던 마에카와 전 문부과학성 차관.

그 역시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는 의외의 결과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에카와/전 문부과학성 차관 : "15세 학생이 중학교 졸업 뒤 들어가서 3년 동안 일정 수준의 수업을 받는 학교라면 충분하다는 (심사)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심사를 위해) 교토, 오사카, 고베 지역의 조선고교 3곳을 견학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물론 교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이 걸려있었지만 그것이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하세가와 씨는 책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 67곳을 직접 찾아다닌 6개월 대장정의 이야깁니다.

[하세가와 가즈오/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대표 : "일본인들에게는 조선학교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파이 학교 아니냐’ ‘조총련 돈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등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고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와 이념을 떠나서 아이들은 모두 같다고 말하는 하세가와 선생.

[하세가와 가즈오/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대표 : "여론이나 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계속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6월,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조선학교 학생들이 판문점 북측지역을 찾았습니다.

[가나가와 조선중고급학교 학생 : "오늘 6월12일 온 세계의 이목을 모으는 조미수뇌회담이 진행되는 뜻깊은 날에 여기 판문점에 오니 감동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소망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의 수학여행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끝까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3만 조선적

[앵커]

조선학교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조선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광복 직후, 일본 정부는 일본에 남은 우리 민족을 ‘조선적’의 ‘외국인’으로 분류합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 중 3만 명 정도는 여전히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적을 바꾸면 남북 분단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라는데요.

‘조선적’을 지키고 있는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 채유나 리포터가 들려드립니다.

[리포트]

일본 요코하마의 조선학교.

재일동포이자 전 J리그 축구 스타인 안영학 씨를 만났습니다.

[2006년 1월 KBS 뉴스 : "(조선적 출신) K리그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안영학은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를 보고 K리그 선수가 되는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안영학 : "특히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는 울면서 기뻐했고..."]

[안영학 : "16강 진출은 어렵지만, 안되죠. (16강 진출) 가능성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에서도 활약한 안영학 씨의 국적은 ‘조선적’입니다.

[1947년 5월 2일 : "오늘 일본국 헌법을 공포 합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연합국 최고 사령부 GHQ 하에서 일본의 새로운 헌법이 시행됩니다.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의 법적 지위가 ‘황국신민’에서 ‘외국인’ 즉 ‘조선적’으로 바뀐건데요.

‘조선적’이 표시된 외국 증명서를 지니지 않으면 감옥에 구금하거나 강제 퇴거한다고 돼있습니다.

일본에 남아있던 약 60만명의 조선인에게 ‘조선적’이 부여된 겁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등록증에 뭐 조선, 조선이라는 그 기호라고 하나? 국적은 아니고 조선. 일단 조선이라고 돼 있는데 그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고 사실상 좀 뭐 복잡한 조선적. 네."]

1965년 한일 수교 협정 체결 이후, 한국 국적을 선택할 길이 열렸지만 안영학 씨는 여전히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어머니도, 형님도 다 한국 국적으로 바꿨어요. 저는 역시 (국적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냥 조선으로서 불편함이 없는 날이 오는 것을 저는 믿고 있고, 그런 날이 오기를 저는 기대하고 있어요."]

방한을 위해 조선적 동포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일본과 다른 나라를 오갈 땐 일본 법무성으로부터 재입국허가서를 받아야 합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아무래도 조선의 그 여권을 보거나, 아니면 재입국허가서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역시 본 적이 없는 직원도 있잖아요. 세관 직원들이. 그러면 ‘이거 무엇이냐’ 해서 좀 기다리라고 해서 대기를 해야 해요. 그때는. 그래서 좀 오래 걸리고..."]

한국 입국을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K리그 시절 동료가) ‘결혼합니다. 꼭 와주세요’라고 해서 청첩장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꼭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대사관에 가서 신청했는데, 청첩장도 제시했는데 결국에는 발급이, 며칠 후에 통보가 와서 이번에는 발급이 안 됐습니다, 라고 해서, 이유는 물어보지도 못해요. 이유는 뭐 말씀 못 드린다고..."]

2017년 은퇴한 뒤 안영학 씨는 선수이자 감독으로 독립축구 연맹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일명 CONIFA라 불리는 이 대회는 FIFA에 가입하지 못한 47개 미승인 국가와 소수 민족들이 참여하는 축제입니다.

UKJ, 즉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안영학/재일동포 : "축구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그런 이념이 있었어요. 그거는 제가 살면서 축구선수로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저의 이념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 꼭 대회에 가야겠다. 우리 재일 코리안을 온 세계에 알려주고 싶었고..."]

서울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조경희 씨도 재일동포입니다.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조선학교에서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조선학교) 특징으로 봤을 때 굉장히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고요. 사실 조선학교 출신자들은 그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는 자존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도 안정적으로 세워진다고 할까요."]

일본 땅에 살지만 조선학교에서 자신의 뿌리를 배우는 학생들.

하지만 조선적 재일동포들에겐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한국 입국할 때) 첫 번째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래 (한국에) 방문하세요’ 이렇게 내줍니다. 여행 증명서 자체를 내주기도 하는데 두 번, 세 번에 걸쳐서 신청하게 되면 끈질긴 질문과 이유서, 사유서를 쓰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에 방문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문제가 지속되면서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한국 정부에 입국 과정의 단순화, 발급 기간 축소 등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는데요.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죠. 새로운 규정도 개선되었고. 규정 자체도 개선이 되었고. 현재는 많은 사람이 신청하면 일단은 발급이 되고 있다고 듣고 있어요. 아직은 시험단계이긴 하지만."]

지난 2017년 문재인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광복절 경축사/2017년 8월 15일 :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외교부는 남북의 창 취재진의 질문에, “조선적 재일동포는 합법적 등록 절차를 거친다면 대한민국 국적으로 인정” 되고, 또한 “원활한 고국방문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민단계 민족학교 4곳 외에 조선학교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 : "이게 사실 다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고 남북의 이 분단체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조선적자들을 어떤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는 사실 한반도하고 일본, 재일동포의 그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문제를 금방 좀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 ‘조선’적을 지키고 있는 재일 동포들.

“남도 북도 내 고향, 내 조국” 이라는 동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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