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도 ‘화재 허점’…속보설비 없는 문화재 31%

입력 2019.04.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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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발생 1시간 만에 불에 타 무너져 내린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화재 참사' 시작은 목(木)구조물…"문화재 안전 점검 계기"

노트르담 대성당은 겉에서 보면 석조 건물입니다. 그런데도 불길이 삽시간에 번져 지붕과 첨탑까지 무너뜨렸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죠. 그 이유는 아치형 지지구조(Flying buttress)를 위해 내부 공간에 목재를 대량으로 쓰는 고딕 양식 건축물의 특징 때문입니다. 불에 잘 타는 마르고 오래된 목재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목구조 문화재들은 화재에 크게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재 설비를 완벽히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번 화재에서도 초기 대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성당 전체를 잃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 문화재 중 대다수가 목구조인 국내 문화재는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훨씬 화재에 취약하다"면서 "문화재 화재 예방 대책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2008년 2월 발생한 숭례문 화재2008년 2월 발생한 숭례문 화재

'자동 화재 속보 설비' 없는 문화재 31.5%…보물에도 없어

전 국민을 슬픔에 빠트렸던 숭례문 화재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재 화재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요. KBS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여전히 부족한 실태가 드러납니다. 화재 신호가 감지됐을 때 자동으로 소방관서에 통보되는 설비(자동 화재 속보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목조 문화재(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사적)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437건 중 138건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져보니 31.5%에 달했습니다. 자동화재 속보설비는 문화재보호법과 소방시설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에는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물인 목조건축물 4건은 자동 화재 속보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과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과 경북 예천의 야옹정입니다.


보물 1942호로 지정된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보물 1942호로 지정된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국보·보물급 문화재 보유한 용주사도 '화재 취약'

KBS 취재진은 18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용주사의 대웅보전에 직접 가 봤습니다. 대웅보전은 조선 시대 정조 임금이 1790년에 지으면서 직접 현판 글씨를 썼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입니다. 그런데도 소방 설비라고는 전각 내외부에 놓인 분말형 소화기 4개가 전부였습니다. 국보 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이 불과 10m 거리에 떨어져 있고, 또 다른 목조 건물도 가깝게 배치돼 있었습니다. 화재 발생 시 대웅보전뿐 아니라 사찰 전체가 피해를 보는 대형 화재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24시간 내내 관리·감독할 인원이 부족한 사찰의 특성상, 자동화재 속보설비는 더더욱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사찰 관계자는 "시를 통해 설비 지원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지만, 뒷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화성행궁의 낙남헌. 화성행궁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화성행궁의 낙남헌. 화성행궁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유산 수원 화성도 화재에 '허점'…속보설비는 단 4곳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은 어떨까요. 곳곳에 고화질 CCTV가 설치돼 있고, 방화관리 자격이 있는 경비원들이 수시로 순찰하는 등 비교적 대비가 잘 돼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허점도 보였습니다. 팔달문과 화서문, 동북각루와 서북공심돈 등 보물로 지정된 목조 건축물 4곳에는 자동화재 속보설비가 있었지만, 그 이외 목조 건축물에는 없었습니다. 성곽 둘레 5.7㎞, 지정 구역 37만㎡에 달하는 수원 화성은 목조 건축물이 24채가 있고, 이 중엔 화성행궁, 장안문, 화령전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속보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에서 화재가 시작된다면,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원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불꽃감지기 등 화재 탐지 설비를 설치하고 CCTV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인력들로 보완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효도폰' 화질 CCTV도 20% 수준…화재 조기 발견 어려워

자동화재 속보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CCTV로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KBS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목조 문화재(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사적)는 전체 437건 중 83건, 18.9%에 달했습니다. 경북 의성 만취당과 청송 보광사 극락전 등 보물 5곳에도 CCTV는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해도 40만 화소 이하의 저화질 장비가 전체 3,264개 가운데 645개, 19.7% 비율이라는 겁니다. 40만 화소는 이른바 '효도폰'이라고 불리는 2G 휴대전화 카메라보다 못한 화질입니다. 캄캄한 밤의 경우에는 불씨와 연기조차도 제대로 식별하기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갑신정변의 거사 장소로 유명한 우정총국에 설치된 CCTV 7개도 모두 2006년에 설치된 저화질 장비입니다. 우정총국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다음 주에 CCTV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진작 바꿨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는 생각이 듭니다.


40만 화소 이하인 우정총국 CCTV의 야간 화면40만 화소 이하인 우정총국 CCTV의 야간 화면

문화재 소방 설비 개선에 한 해 60억 원…부실 관리도 문제

모든 문제가 거의 다 그렇지만 결국 핵심은 돈입니다. 문화재청 심의를 통해 소방 설비 개선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경우, 정부는 70%, 지자체는 30%를 부담합니다. 여기에 배정된 문화재청 올해 예산이 60억 원인데,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금액입니다. 화재에 취약한 문화재는 목조 건축물만 있는 게 아닌 데다,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 중에서도 화재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설비를 갖추더라도 지자체가 소홀하게 관리하거나 개인이 방치하다시피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비용은 최대 23억 달러(2조 6,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던 숭례문의 교훈이 남아 있습니다. 복구 비용뿐 아니라, 목조 문화재는 한 번 소실되면 복원을 해도 그 가치를 온전히 되살릴 수 없습니다. 역사 유적 보존에 철저한 대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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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화성도 ‘화재 허점’…속보설비 없는 문화재 31%
    • 입력 2019-04-21 07:01:14
    취재K
화재 발생 1시간 만에 불에 타 무너져 내린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화재 참사' 시작은 목(木)구조물…"문화재 안전 점검 계기"

노트르담 대성당은 겉에서 보면 석조 건물입니다. 그런데도 불길이 삽시간에 번져 지붕과 첨탑까지 무너뜨렸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죠. 그 이유는 아치형 지지구조(Flying buttress)를 위해 내부 공간에 목재를 대량으로 쓰는 고딕 양식 건축물의 특징 때문입니다. 불에 잘 타는 마르고 오래된 목재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목구조 문화재들은 화재에 크게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재 설비를 완벽히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번 화재에서도 초기 대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성당 전체를 잃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 문화재 중 대다수가 목구조인 국내 문화재는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훨씬 화재에 취약하다"면서 "문화재 화재 예방 대책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2008년 2월 발생한 숭례문 화재
'자동 화재 속보 설비' 없는 문화재 31.5%…보물에도 없어

전 국민을 슬픔에 빠트렸던 숭례문 화재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재 화재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요. KBS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여전히 부족한 실태가 드러납니다. 화재 신호가 감지됐을 때 자동으로 소방관서에 통보되는 설비(자동 화재 속보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목조 문화재(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사적)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437건 중 138건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져보니 31.5%에 달했습니다. 자동화재 속보설비는 문화재보호법과 소방시설법에 따라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축물에는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물인 목조건축물 4건은 자동 화재 속보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과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과 경북 예천의 야옹정입니다.


보물 1942호로 지정된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국보·보물급 문화재 보유한 용주사도 '화재 취약'

KBS 취재진은 18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용주사의 대웅보전에 직접 가 봤습니다. 대웅보전은 조선 시대 정조 임금이 1790년에 지으면서 직접 현판 글씨를 썼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입니다. 그런데도 소방 설비라고는 전각 내외부에 놓인 분말형 소화기 4개가 전부였습니다. 국보 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동종이 불과 10m 거리에 떨어져 있고, 또 다른 목조 건물도 가깝게 배치돼 있었습니다. 화재 발생 시 대웅보전뿐 아니라 사찰 전체가 피해를 보는 대형 화재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24시간 내내 관리·감독할 인원이 부족한 사찰의 특성상, 자동화재 속보설비는 더더욱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사찰 관계자는 "시를 통해 설비 지원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지만, 뒷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화성행궁의 낙남헌. 화성행궁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유산 수원 화성도 화재에 '허점'…속보설비는 단 4곳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은 어떨까요. 곳곳에 고화질 CCTV가 설치돼 있고, 방화관리 자격이 있는 경비원들이 수시로 순찰하는 등 비교적 대비가 잘 돼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허점도 보였습니다. 팔달문과 화서문, 동북각루와 서북공심돈 등 보물로 지정된 목조 건축물 4곳에는 자동화재 속보설비가 있었지만, 그 이외 목조 건축물에는 없었습니다. 성곽 둘레 5.7㎞, 지정 구역 37만㎡에 달하는 수원 화성은 목조 건축물이 24채가 있고, 이 중엔 화성행궁, 장안문, 화령전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속보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에서 화재가 시작된다면,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원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불꽃감지기 등 화재 탐지 설비를 설치하고 CCTV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인력들로 보완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효도폰' 화질 CCTV도 20% 수준…화재 조기 발견 어려워

자동화재 속보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CCTV로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KBS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목조 문화재(국보·보물·국가민속문화재·사적)는 전체 437건 중 83건, 18.9%에 달했습니다. 경북 의성 만취당과 청송 보광사 극락전 등 보물 5곳에도 CCTV는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해도 40만 화소 이하의 저화질 장비가 전체 3,264개 가운데 645개, 19.7% 비율이라는 겁니다. 40만 화소는 이른바 '효도폰'이라고 불리는 2G 휴대전화 카메라보다 못한 화질입니다. 캄캄한 밤의 경우에는 불씨와 연기조차도 제대로 식별하기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갑신정변의 거사 장소로 유명한 우정총국에 설치된 CCTV 7개도 모두 2006년에 설치된 저화질 장비입니다. 우정총국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다음 주에 CCTV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진작 바꿨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는 생각이 듭니다.


40만 화소 이하인 우정총국 CCTV의 야간 화면
문화재 소방 설비 개선에 한 해 60억 원…부실 관리도 문제

모든 문제가 거의 다 그렇지만 결국 핵심은 돈입니다. 문화재청 심의를 통해 소방 설비 개선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경우, 정부는 70%, 지자체는 30%를 부담합니다. 여기에 배정된 문화재청 올해 예산이 60억 원인데,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금액입니다. 화재에 취약한 문화재는 목조 건축물만 있는 게 아닌 데다, 국가 지정 문화재가 아닌 등록문화재 중에서도 화재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설비를 갖추더라도 지자체가 소홀하게 관리하거나 개인이 방치하다시피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 비용은 최대 23억 달러(2조 6,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렀던 숭례문의 교훈이 남아 있습니다. 복구 비용뿐 아니라, 목조 문화재는 한 번 소실되면 복원을 해도 그 가치를 온전히 되살릴 수 없습니다. 역사 유적 보존에 철저한 대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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