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①] ‘국가는 왜 72정을 수장(水葬)했나?’

입력 2019.04.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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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정 침몰…17명 전원 실종

1980년 1월 23일 새벽 5시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앞바다. 동해 최북단인 이 해상에서 해경 소속 60톤급 '72정'이 200톤급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72정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경 17명은 전원 실종됐다. 침몰한 선체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전 72정 모습사고 전 72정 모습

'수장(水葬)'…시신 없는 영결식

신군부 시절, 관계기관은 사고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72정 침몰 이후 일주일도 안 돼, 영결식이 치러졌다. 당시 해경 대원 17명은 여전히 전원 실종된 상태. 해상 수색 작업도 끝나지 않았지만, 시신 없는 영결식이 진행됐다. 유족들은 당시 국가가 실종대원들을 '수장(水葬)' 시켰다는 입장이다.

72정 순직자 영결식72정 순직자 영결식

'집단행동 차단' 유가족 감시

유가족들도 철저히 분리했다. 침몰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유족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당시 해경과 내무부 관계자들은 유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감시했다. 실종자 가족마다 경찰관을 배치했고, 숙소도 따로따로 배치했다. 심지어 가족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경찰관을 집까지 따라가게 했다. 유족들의 반발 등 집단행동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72정 순직자 유가족72정 순직자 유가족

언론도 통제…신군부 부담 우려?

언론도 통제했다. 17명이나 실종된 대형 사고였지만, 신문은 물론 방송도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72정 침몰사고는 신군부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지 한 달여 만에 발생했다. 언론까지 장악했던 군부는 '경비정 침몰'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시 지역에 주재하던 기자는 침몰 소식을 알면서도, 보도지침 등의 이유로 기사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원 17명이 전원 실종된 사건이 알려질 경우, 군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유족들은 당시 의혹 제기는커녕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72정 탑승 대원들72정 탑승 대원들

2019년 4월 30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이런 의혹들을 추적한다. 특히 1980년 사고 당시 작성된 '경비함 충돌 발생보고' 문서와 '경비정 침몰 수사기록' 일체를 확보했다. 39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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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기획 창①] ‘국가는 왜 72정을 수장(水葬)했나?’
    • 입력 2019-04-26 07:00:34
    취재K
경비정 침몰…17명 전원 실종

1980년 1월 23일 새벽 5시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앞바다. 동해 최북단인 이 해상에서 해경 소속 60톤급 '72정'이 200톤급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72정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경 17명은 전원 실종됐다. 침몰한 선체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전 72정 모습
'수장(水葬)'…시신 없는 영결식

신군부 시절, 관계기관은 사고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72정 침몰 이후 일주일도 안 돼, 영결식이 치러졌다. 당시 해경 대원 17명은 여전히 전원 실종된 상태. 해상 수색 작업도 끝나지 않았지만, 시신 없는 영결식이 진행됐다. 유족들은 당시 국가가 실종대원들을 '수장(水葬)' 시켰다는 입장이다.

72정 순직자 영결식
'집단행동 차단' 유가족 감시

유가족들도 철저히 분리했다. 침몰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유족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당시 해경과 내무부 관계자들은 유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감시했다. 실종자 가족마다 경찰관을 배치했고, 숙소도 따로따로 배치했다. 심지어 가족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경찰관을 집까지 따라가게 했다. 유족들의 반발 등 집단행동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72정 순직자 유가족
언론도 통제…신군부 부담 우려?

언론도 통제했다. 17명이나 실종된 대형 사고였지만, 신문은 물론 방송도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72정 침몰사고는 신군부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지 한 달여 만에 발생했다. 언론까지 장악했던 군부는 '경비정 침몰'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시 지역에 주재하던 기자는 침몰 소식을 알면서도, 보도지침 등의 이유로 기사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원 17명이 전원 실종된 사건이 알려질 경우, 군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유족들은 당시 의혹 제기는커녕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72정 탑승 대원들
2019년 4월 30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이런 의혹들을 추적한다. 특히 1980년 사고 당시 작성된 '경비함 충돌 발생보고' 문서와 '경비정 침몰 수사기록' 일체를 확보했다. 39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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