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헤이세이 30년, 40% 쪼그라든 일본 기업…갈라파고스의 현실

입력 2019.05.01 (16:51) 수정 2019.05.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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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주가 총액 뒷걸음질...30년 전의 57% 수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사회 문제로
기업 1/3,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일본 '강소 기업'을 흔드는 문제
피복비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어...갈라파고스 문제는 이제 내부로

일본은 5월 1일 새로운 일왕 즉위에 맞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축하하는 분위기에 들떠 있다. 각 미디어에서도 전임 아키히토 일왕의 시대였던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정리하고 앞으로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점검하는 데 분주하다.

1989년 시작해 올해까지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 시대.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일본은 뒷걸음질만 계속해온 측면이 강하고,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주가 총액 뒷걸음질...30년 전의 57% 수준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 닛케이 평균 주가는 3만 8915로 막을 내렸다. 버블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당시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중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부동산 가격도 최고치를 기록해 도쿄 중앙에 위치한 치요다 구의 땅을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인 1990년부터 시작된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됐고,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는 하나, 헤이세이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26일 평균주가는 2만 2258로 마무리됐다. 30년 전의 57%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사회 문제로

일본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평생 고용'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식 기업 문화도 쇠퇴하게 됐다. 단적인 예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지난 89년 800만 명 가량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리만 쇼크 당시 1,800만 명에 이르더니, 현재는 2,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이 이른바 취업 빙하기. 2002~2003년 사이 5% 중반까지 치솟았던 일본의 실업률은 '취업 빙하기'라는 이름을 낳았고, 당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바 '후리타 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태어나기도 했다.

일본 채용 시장의 특징은 전적으로 대졸자에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2020년 봄 기업들의 채용활동이 사실상 그 전년인 2019년 봄부터 시작해 대학 4학년 학생들, 예비 졸업자들의 취업이 내정되는 시스템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기간이 끝나면 졸업자 신분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취업활동이라고 하는 일본식 단어인 '취활(就活) 기간'도 사실상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상시 채용 시스템이 아니어서 결국 한번 취업 낭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이를 흡수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약하다 할 수 있다.

당시 '취업 빙하기'에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이후 경제 상황이 좋아진 후에도 자신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세대의 비극은 현재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약 61만 명의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정부도 대책 마련에 들어간 상황이다.

기업 1/3,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일본 '강소 기업'을 흔드는 문제

일본 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세계 최강으로 메이드인 재팬의 선구에 섰던 일본 전자 업계는 이미 뒤쳐진지 오래고, 그나마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산업만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관 기사] [특파원리포트] 반도체도 디스플레이도 없다…일, 전자산업의 몰락

그러나 대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갔음에도 일본이 아직도 GDP 기준 세계 3위 규모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탄탄한 내수 시장과 함께 기술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들이 지역별로 산재해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최근 소행성 착륙에 성공한 일본의 우주 탐사선 '하야부사'에 시골 소규모기업들의 기술이 들어갔다며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5년까지 일본 기업의 1/3에 해당하는 127만 개 회사가 후계자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2018년 신생아 수가 92만 1,000명으로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의 75%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 감소, 노령화 문제가 심각해 사회적, 경제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피복비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어...갈라파고스 문제는 이제 내부로

아사히 신문은 헤이세이의 경제 흐름을 정리하면서 소비와 관련해 재미있는 수치를 제시했다. 이른바 '피복비 등 의류 소비 통계'.

1990년 30만엔, 우리 돈 300만 원을 넘겼던 1인당 피복비는 2017년 13만 8천 엔(138만 원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30년 동안 확대는커녕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인데, 일본 경제가 탄탄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비 침체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1996년 225만엔 수준이었던 세대 1인당 소득 또한 2016년 219만엔 까지 줄어들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6년 2개월에 이르는 전후 최장의 경기 확대기에 있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를 체감하는 일본 국민이 많지 않은 이유다. 결국, 기업의 이득을 내고 있을지 모르나, 개인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변 세계와 단절된 채 독특한 진화를 거듭한 갈라파고스 섬은 '내수'에만 의존해 세계적 추세를 발맞추지 못해 뒤처져간 일본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이제 그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헤이세이 30년 동아 후퇴기를 겪은 일본 경제. 새로운 일왕 레이와(令和) 시대에 대한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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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1 16:51:57
    • 수정2019-05-01 16:57:37
    특파원 리포트
주가 총액 뒷걸음질...30년 전의 57% 수준<br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사회 문제로<br />기업 1/3,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일본 '강소 기업'을 흔드는 문제<br />피복비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어...갈라파고스 문제는 이제 내부로
일본은 5월 1일 새로운 일왕 즉위에 맞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축하하는 분위기에 들떠 있다. 각 미디어에서도 전임 아키히토 일왕의 시대였던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정리하고 앞으로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점검하는 데 분주하다.

1989년 시작해 올해까지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 시대.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일본은 뒷걸음질만 계속해온 측면이 강하고,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주가 총액 뒷걸음질...30년 전의 57% 수준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 닛케이 평균 주가는 3만 8915로 막을 내렸다. 버블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당시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중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부동산 가격도 최고치를 기록해 도쿄 중앙에 위치한 치요다 구의 땅을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인 1990년부터 시작된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됐고,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는 하나, 헤이세이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26일 평균주가는 2만 2258로 마무리됐다. 30년 전의 57%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사회 문제로

일본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평생 고용'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식 기업 문화도 쇠퇴하게 됐다. 단적인 예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지난 89년 800만 명 가량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리만 쇼크 당시 1,800만 명에 이르더니, 현재는 2,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이 이른바 취업 빙하기. 2002~2003년 사이 5% 중반까지 치솟았던 일본의 실업률은 '취업 빙하기'라는 이름을 낳았고, 당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바 '후리타 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태어나기도 했다.

일본 채용 시장의 특징은 전적으로 대졸자에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2020년 봄 기업들의 채용활동이 사실상 그 전년인 2019년 봄부터 시작해 대학 4학년 학생들, 예비 졸업자들의 취업이 내정되는 시스템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기간이 끝나면 졸업자 신분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취업활동이라고 하는 일본식 단어인 '취활(就活) 기간'도 사실상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상시 채용 시스템이 아니어서 결국 한번 취업 낭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이를 흡수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약하다 할 수 있다.

당시 '취업 빙하기'에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이후 경제 상황이 좋아진 후에도 자신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한 세대의 비극은 현재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약 61만 명의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정부도 대책 마련에 들어간 상황이다.

기업 1/3,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일본 '강소 기업'을 흔드는 문제

일본 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세계 최강으로 메이드인 재팬의 선구에 섰던 일본 전자 업계는 이미 뒤쳐진지 오래고, 그나마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산업만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관 기사] [특파원리포트] 반도체도 디스플레이도 없다…일, 전자산업의 몰락

그러나 대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갔음에도 일본이 아직도 GDP 기준 세계 3위 규모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탄탄한 내수 시장과 함께 기술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들이 지역별로 산재해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최근 소행성 착륙에 성공한 일본의 우주 탐사선 '하야부사'에 시골 소규모기업들의 기술이 들어갔다며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5년까지 일본 기업의 1/3에 해당하는 127만 개 회사가 후계자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2018년 신생아 수가 92만 1,000명으로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의 75%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 감소, 노령화 문제가 심각해 사회적, 경제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피복비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어...갈라파고스 문제는 이제 내부로

아사히 신문은 헤이세이의 경제 흐름을 정리하면서 소비와 관련해 재미있는 수치를 제시했다. 이른바 '피복비 등 의류 소비 통계'.

1990년 30만엔, 우리 돈 300만 원을 넘겼던 1인당 피복비는 2017년 13만 8천 엔(138만 원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30년 동안 확대는커녕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인데, 일본 경제가 탄탄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비 침체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1996년 225만엔 수준이었던 세대 1인당 소득 또한 2016년 219만엔 까지 줄어들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6년 2개월에 이르는 전후 최장의 경기 확대기에 있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를 체감하는 일본 국민이 많지 않은 이유다. 결국, 기업의 이득을 내고 있을지 모르나, 개인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변 세계와 단절된 채 독특한 진화를 거듭한 갈라파고스 섬은 '내수'에만 의존해 세계적 추세를 발맞추지 못해 뒤처져간 일본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이제 그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헤이세이 30년 동아 후퇴기를 겪은 일본 경제. 새로운 일왕 레이와(令和) 시대에 대한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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