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장애인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장애인에게 ‘오줌권’을!

입력 2019.05.02 (08:46) 수정 2019.05.0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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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처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송형국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의 쓸모' 시간입니다.

송 기자, 새로 시작하는 <영화의 쓸모>, 그런데 영화 소개하는 코너가 아니라고요?

[기자]

네, 우리가 어떤 예술작품을 보고 와 재밌다, 감동적이다, 라고는 하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좀 깊이있게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는 사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삶과의 접점을 찾아보고 그러다보면 영화를 보는 눈을 조금은 키울 수도 있고, 그래서 한층 쓸모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으로 영화의 쓸모, 라고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앵커]

기대되는데요, 오늘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가져오셨다고요.

[기자]

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는데요.

이번 작품은 기존의 여느 매체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좀 다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어제 개봉한 영화인데요.

주인공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만난 의형제 사이입니다.

형은 머리를 잘 쓰고 동생은 몸을 잘 씁니다.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인 형제가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못 하는 건 보완하면서 살아간다는,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극 초반에 이 시설을 책임져온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는데요.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까 호구지책을 내놓습니다.

["제가 봉사 시간 좀 챙겨줄 수 있는데 봉사하는 데 20만원..."]

학생들 수행평가용으로 봉사활동 한 걸로 인증해주고 돈을 받아챙깁니다.

이 영화가 장애인을 그리는 태도에 우리는 주목하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이 부분만 보면 이 영화는 '국내 최초 장애인 사기극'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 이거 뭐 하는 짓인겨 제정신 맞는겨?) 봉사경력 필요한 사람들하고 기브앤테이크좀 하는 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장애인이 이렇게 극중에서 사기 치고 또 짜증도 내고, 이런 캐릭터로 나온 경우는 한국 상업영화에 거의 없었거든요.

언론을 비롯해서 많은 매체들이 장애인을 천사처럼 그리거나, 동정심을 이끌어내거나 아니면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이뤘다거나, 이렇게 장애인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어떤 장애인이 대단히 위대하고 많은 장애인들께 도움을 드려야 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상화하게 되면 장애인을 뭔가 다른 존재로 분리해서 인식하게 되고 결국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이 영화가 잘 알고 만든 것으로 보이고요.

TV나 영화에서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의 신화를 쓴 어떤 특별한 장애인이 이런 모습을 보고 박수치고 공감은 하면서 자기 동네에 장애인학교가 들어오면 결사 반대하는 이런 경우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소수의 특별한 장애인을 보고 동정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 인구가 우리 전체인구의 스무 명 중 1명 꼴이거든요.

수많은 장애인들과 우리가 일상을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이런 영화 속 캐릭터 설정을 보고 한번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네, 주류가 비주류를 대상화한다, 좀 어려운 개념 같기도 하고 좀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기자]

예를 들어 여신급 미모다, 이런 말이 순수하게 칭찬이 될 수도 있지만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어떤 회사에서 주류인 남성들이 비주류인 여성을 대상화한다면 남성은 업무능력으로 평가하는데 여성은 외모라든가 다소곳한 태도, 뭐 이런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 주류가 저지르는 대상화의 잘못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류가 비주류를 대상화하게 되면 비록 좋은 뜻으로 외모를 칭찬했다 하더라도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경계할 일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아 그냥 줘~ (뜨거워) 야이 개XX야!"]

이 영화는 장애인을 대단히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대상화해서 그리지 않고 라면도 먹고 싶고, 화도 내고 소변 보고 대변 보고, 이렇게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꼼꼼히 의식하면서 장애인 캐릭터를 그렸고 그러면서도 유쾌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작품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소변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지체장애인이면서 인권변호사인 김원영 변호사의 책을 잠시 보겠습니다.

여기에 '오줌권'이라는 중요한 권리가 등장합니다.

"밥은 사람들 앞에서도 먹는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하루 정도 굶어도 괜찮다. 오줌은 다르다. 급하다고 사람들 앞에서 눌 수는 없다. 미리 눌 수도 없다. 조금씩 나눠 누는 걸로 상황을 모면하지도 못한다. 내 지인은 모든 권리 가운데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단언한다".

소변 볼 권리를 빼앗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수많은 장애인들이 제대로 화장실 갈 권리,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공공의 비용을 들여서 도시와 건물의 시설들은 물론 도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바꿔가야 할 텐데요.

["아메리카노 두잔 오렌지 주스 한 잔요, 여기서 먹다가 남으면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보듯이 누군가는 편하다고 생각하는 커피숍 주문대의 높이가 휠체어 탄 장애인에게는 높은 장애물이 되죠.

엘리베이터 버튼 높이, 소변을 보는 공간의 넓이, 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합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여유있을 때는 혜택을 베풀고 아니면 말고, 이런 후순위 문제로 밀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이런 생각도 이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됩니다.

[앵커]

송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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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장애인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장애인에게 ‘오줌권’을!
    • 입력 2019-05-02 08:53:29
    • 수정2019-05-02 22: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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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처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송형국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의 쓸모' 시간입니다.

송 기자, 새로 시작하는 <영화의 쓸모>, 그런데 영화 소개하는 코너가 아니라고요?

[기자]

네, 우리가 어떤 예술작품을 보고 와 재밌다, 감동적이다, 라고는 하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좀 깊이있게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는 사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품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삶과의 접점을 찾아보고 그러다보면 영화를 보는 눈을 조금은 키울 수도 있고, 그래서 한층 쓸모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으로 영화의 쓸모, 라고 이름을 지어봤습니다.

[앵커]

기대되는데요, 오늘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가져오셨다고요.

[기자]

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는데요.

이번 작품은 기존의 여느 매체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좀 다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어제 개봉한 영화인데요.

주인공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만난 의형제 사이입니다.

형은 머리를 잘 쓰고 동생은 몸을 잘 씁니다.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인 형제가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못 하는 건 보완하면서 살아간다는,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극 초반에 이 시설을 책임져온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는데요.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까 호구지책을 내놓습니다.

["제가 봉사 시간 좀 챙겨줄 수 있는데 봉사하는 데 20만원..."]

학생들 수행평가용으로 봉사활동 한 걸로 인증해주고 돈을 받아챙깁니다.

이 영화가 장애인을 그리는 태도에 우리는 주목하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이 부분만 보면 이 영화는 '국내 최초 장애인 사기극'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 이거 뭐 하는 짓인겨 제정신 맞는겨?) 봉사경력 필요한 사람들하고 기브앤테이크좀 하는 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장애인이 이렇게 극중에서 사기 치고 또 짜증도 내고, 이런 캐릭터로 나온 경우는 한국 상업영화에 거의 없었거든요.

언론을 비롯해서 많은 매체들이 장애인을 천사처럼 그리거나, 동정심을 이끌어내거나 아니면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이뤘다거나, 이렇게 장애인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어떤 장애인이 대단히 위대하고 많은 장애인들께 도움을 드려야 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상화하게 되면 장애인을 뭔가 다른 존재로 분리해서 인식하게 되고 결국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이 영화가 잘 알고 만든 것으로 보이고요.

TV나 영화에서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의 신화를 쓴 어떤 특별한 장애인이 이런 모습을 보고 박수치고 공감은 하면서 자기 동네에 장애인학교가 들어오면 결사 반대하는 이런 경우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소수의 특별한 장애인을 보고 동정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 인구가 우리 전체인구의 스무 명 중 1명 꼴이거든요.

수많은 장애인들과 우리가 일상을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이런 영화 속 캐릭터 설정을 보고 한번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네, 주류가 비주류를 대상화한다, 좀 어려운 개념 같기도 하고 좀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기자]

예를 들어 여신급 미모다, 이런 말이 순수하게 칭찬이 될 수도 있지만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어떤 회사에서 주류인 남성들이 비주류인 여성을 대상화한다면 남성은 업무능력으로 평가하는데 여성은 외모라든가 다소곳한 태도, 뭐 이런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 주류가 저지르는 대상화의 잘못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류가 비주류를 대상화하게 되면 비록 좋은 뜻으로 외모를 칭찬했다 하더라도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경계할 일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아 그냥 줘~ (뜨거워) 야이 개XX야!"]

이 영화는 장애인을 대단히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대상화해서 그리지 않고 라면도 먹고 싶고, 화도 내고 소변 보고 대변 보고, 이렇게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꼼꼼히 의식하면서 장애인 캐릭터를 그렸고 그러면서도 유쾌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작품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소변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지체장애인이면서 인권변호사인 김원영 변호사의 책을 잠시 보겠습니다.

여기에 '오줌권'이라는 중요한 권리가 등장합니다.

"밥은 사람들 앞에서도 먹는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하루 정도 굶어도 괜찮다. 오줌은 다르다. 급하다고 사람들 앞에서 눌 수는 없다. 미리 눌 수도 없다. 조금씩 나눠 누는 걸로 상황을 모면하지도 못한다. 내 지인은 모든 권리 가운데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단언한다".

소변 볼 권리를 빼앗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수많은 장애인들이 제대로 화장실 갈 권리,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공공의 비용을 들여서 도시와 건물의 시설들은 물론 도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바꿔가야 할 텐데요.

["아메리카노 두잔 오렌지 주스 한 잔요, 여기서 먹다가 남으면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보듯이 누군가는 편하다고 생각하는 커피숍 주문대의 높이가 휠체어 탄 장애인에게는 높은 장애물이 되죠.

엘리베이터 버튼 높이, 소변을 보는 공간의 넓이, 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합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여유있을 때는 혜택을 베풀고 아니면 말고, 이런 후순위 문제로 밀리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이런 생각도 이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됩니다.

[앵커]

송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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