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체성 논란’ 세메냐는 유죄인가…성차별과 공정성 사이에서

입력 2019.05.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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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AP

거의 10년 넘게 이른바 '성 정체성 논란'에 시달린 한 육상 선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캐스터 세메냐(28, 남아공). 2009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였다. 여자 800m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한 뒤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여자 선수들보다 현저히 많은 근육, 중저음의 목소리 등으로 ‘남성이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세메냐의 이 성 정체성 논란도 이제 올해로 10주년을 맞게 됐다. 그런데 아직도 이 논쟁은 뜨겁게 진행 중이다.

세메냐는 유죄인가

지난해 1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여자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한계 수치를 한층 강화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새롭게 마련한 기준치를 넘어서면 여성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는 강경한 방침이었다. 이 규정의 타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세메냐였고, 이로 인해 그는 국제 대회 출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세메냐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간 끝에 일단 양측의 대결은 IAAF의 승리로 판가름났다. CAS가 지난 1일 "국제육상연맹(IAAF)의 규정은 합리적이다. 세메냐와 남아공 육상연맹의 주장을 기각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세메냐의 이 성 정체성 논란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 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전 세계 SNS에는 이른바 ‘캐스터 세메냐를 내버려둬(#HansOffCaster)’라는 표제어 열풍이 불었다. 세메냐의 올림픽 출전에 의문을 제기한 미국 잡지 기사가 논란의 출발점이었고, 세메냐의 인권을 옹호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자는 범지구적 캠페인이 일었다.

이 논쟁은 한 편으로는 스포츠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기도 했다. 리우올림픽 당시 세메냐 논란에 대해 세메냐와 함께 뛴 다른 국가 육상 선수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들은“우리는 세메냐와 함께 뛸 수 없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공개적으로 했고, 남성에 가까운 세메냐가 여자 종목에 출전하는 것은 ‘반칙’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전에도 후에도 세메냐는 육상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비슷한 논쟁을 촉발하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성 정체성 탄로나 메달 박탈된 사례도

스포츠의 성 정체성 논란은 세메냐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가까운 예가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인도 육상의 산티 순다라얀(38, 인도)이다. 순다라얀은 경기 뒤 성별 테스트에서 여성이 아닌 남성 염색체 Y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메달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이는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사실로, 당시 충격을 딛고 지금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100m 금메달을 획득한 발라시비치(폴란드)는 나중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뒤 부검 과정에서 남성 생식기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인도의 순다라얀은 도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이지만 성 정체성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인도의 순다라얀은 도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이지만 성 정체성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한국 스포츠의 성 정체성 논란…'박은선 사태’

국내 스포츠에도 성 정체성 논란이 뜨겁게 인적이 있다. 여자 축구 선수 박은선(33) 논란이다. 남성에 가까운 외모로 인해 박은선은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부터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출전하는 국제 대회마다 상대 국가에서 성 정체성 시비를 걸고 나서기 다반사였다.

논란의 정점은 2013년. 당시 박은선의 소속팀이었던 서울 시청을 제외한 나머지 6개 WK리그 구단들이 박은선을 다음 시즌부터 리그 경기에 뛸 수 없게끔 하자고 결의했다. 당시 감독들은 “박은선을 계속 뛰게 하면 리그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10년 넘게 여자 축구 선수로 활동한 박은선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선수의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한 이 상식 밖의 사건으로 여자축구는 국민적 질타를 받았으나, 결국 박은선은 논란 끝에 이듬해 해외 이적을 선택하고 말았다.


유독 스포츠에서 성별 논란이 거센 이유가 있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스포츠만큼은 이 구분선을 뚜렷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끊임없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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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정체성 논란’ 세메냐는 유죄인가…성차별과 공정성 사이에서
    • 입력 2019-05-02 15:03:05
    스포츠K
사진 출처 = AP

거의 10년 넘게 이른바 '성 정체성 논란'에 시달린 한 육상 선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캐스터 세메냐(28, 남아공). 2009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였다. 여자 800m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한 뒤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여자 선수들보다 현저히 많은 근육, 중저음의 목소리 등으로 ‘남성이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세메냐의 이 성 정체성 논란도 이제 올해로 10주년을 맞게 됐다. 그런데 아직도 이 논쟁은 뜨겁게 진행 중이다.

세메냐는 유죄인가

지난해 1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여자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한계 수치를 한층 강화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새롭게 마련한 기준치를 넘어서면 여성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는 강경한 방침이었다. 이 규정의 타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세메냐였고, 이로 인해 그는 국제 대회 출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세메냐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스포츠중재재판소(CAS)까지 간 끝에 일단 양측의 대결은 IAAF의 승리로 판가름났다. CAS가 지난 1일 "국제육상연맹(IAAF)의 규정은 합리적이다. 세메냐와 남아공 육상연맹의 주장을 기각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세메냐의 이 성 정체성 논란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 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전 세계 SNS에는 이른바 ‘캐스터 세메냐를 내버려둬(#HansOffCaster)’라는 표제어 열풍이 불었다. 세메냐의 올림픽 출전에 의문을 제기한 미국 잡지 기사가 논란의 출발점이었고, 세메냐의 인권을 옹호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자는 범지구적 캠페인이 일었다.

이 논쟁은 한 편으로는 스포츠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기도 했다. 리우올림픽 당시 세메냐 논란에 대해 세메냐와 함께 뛴 다른 국가 육상 선수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들은“우리는 세메냐와 함께 뛸 수 없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공개적으로 했고, 남성에 가까운 세메냐가 여자 종목에 출전하는 것은 ‘반칙’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전에도 후에도 세메냐는 육상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비슷한 논쟁을 촉발하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성 정체성 탄로나 메달 박탈된 사례도

스포츠의 성 정체성 논란은 세메냐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가까운 예가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인도 육상의 산티 순다라얀(38, 인도)이다. 순다라얀은 경기 뒤 성별 테스트에서 여성이 아닌 남성 염색체 Y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메달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이는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사실로, 당시 충격을 딛고 지금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100m 금메달을 획득한 발라시비치(폴란드)는 나중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뒤 부검 과정에서 남성 생식기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인도의 순다라얀은 도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이지만 성 정체성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한국 스포츠의 성 정체성 논란…'박은선 사태’

국내 스포츠에도 성 정체성 논란이 뜨겁게 인적이 있다. 여자 축구 선수 박은선(33) 논란이다. 남성에 가까운 외모로 인해 박은선은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부터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출전하는 국제 대회마다 상대 국가에서 성 정체성 시비를 걸고 나서기 다반사였다.

논란의 정점은 2013년. 당시 박은선의 소속팀이었던 서울 시청을 제외한 나머지 6개 WK리그 구단들이 박은선을 다음 시즌부터 리그 경기에 뛸 수 없게끔 하자고 결의했다. 당시 감독들은 “박은선을 계속 뛰게 하면 리그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10년 넘게 여자 축구 선수로 활동한 박은선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선수의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한 이 상식 밖의 사건으로 여자축구는 국민적 질타를 받았으나, 결국 박은선은 논란 끝에 이듬해 해외 이적을 선택하고 말았다.


유독 스포츠에서 성별 논란이 거센 이유가 있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스포츠만큼은 이 구분선을 뚜렷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끊임없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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