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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오일파워’ 장착한 트럼프, ‘진정한 패권’ 추구하나?
입력 2019.05.04 (09:00) 수정 2019.05.06 (14:55) 글로벌 돋보기
미국의 주류 세력이 '비주류의 반란'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하지만 그는 미국 대선판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했던 트럼프는 40대였던 80년대 초부터 대통령감으로 지목받았다.

활발한 TV 출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업 철학뿐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비전까지 거침없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9년 TV 인터뷰에서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맹국을 돕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야기되는 문제를 방치하면 미국이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은 물론 석유수출국기구, OPEC까지 앞장서 비판했다. 2011년 TV 인터뷰에서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시키고 미국의 일자리와 기업들을 빼앗아가고 있는데도 미국은 가만히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의 석유 카르텔을 비판하며 "OPEC이 일반 기업이었다면 모든 직원이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14년 미국 보수정치 행동회의(CPAC) 연설에서는 "미국의 나랏빚이 1경 7천조 원이다. 이 나라는 지금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 이렇게 약하기 때문에 동맹국들도 미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없는 중동분쟁과 유럽과의 긴장, 중국의 부상,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전임 정부들이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은 '허울뿐인 패권국'으로 인식된듯하다.

그가 집권한 지 2년 4개월이 돼가는 지금, 미국은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세계를 재편해가고 있다.

■ "석유 한 방울도 수출 못 해" ... 미국, 이란에 '최후통첩'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이란산 원유 제재 예외 조치 종료 방침을 밝히면서 "이란 석유를 한 방울도 수출하지 못하게 하겠다(We're going to zero - going to zero across the board)"고 말했다. "아야톨라와 추종 세력에게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한다(We have made our demands very clear to the ayatollah and his cronies)"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거명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그러면서 핵무기 개발 종료와 탄도미사일 미사일 실험 중단, 테러지원 중단, 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End your pursuit of nuclear weapons. Stop testing and proliferating ballistic missiles. Stop sponsoring and committing terrorism. Halt the arbitrary detention of U.S. citizens)을 요구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놓고 외신들은 단순히 핵 개발 제재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유 제재에 대한 '예외 조치 종료'는 이란의 원유 '수출 전면 금지'를 의미한다. 미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석유화학 제품부터 소비재까지 이란의 무역 전반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 이어 이란의 두 번째 달러화 돈줄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재무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예정"이라며 "이는 이란 정권의 달러화 원천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5년 3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당시 미국이 주도한 이란 핵 협상에 대해 "아주 나쁜 협상"이라며 "지금과 같은 협상이 계속되면 이란도 결국 북한처럼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입장이 같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란 핵 협상에서 탈퇴했고, '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를 위한 전례 없는 압박에 나섰다. 미국의 협상 탈퇴 이후 이란은 탄도미사일 발사 등 연이은 도발을 감행했지만, 미국은 이란 정권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왔다.

■ '딴지' 못 거는 중국과 러시아 ...투자금 날리나 '전전긍긍'

이란을 손보기 위한 미국의 준비는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강대국들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중동은 전후 50년 동안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1순위 지역이었다. 미국의 석유공급, 즉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핵심 기지였고 '중동 패권을 둘러싼 러시아와의 대결'과 이를 위한 '유럽과의 협력' 구도를 만들었다.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눈치를 봐야 했고 냉전 이후에도 러시아와 대결 구도를 유지하며 중국의 부상을 눈 뜨고 지켜봐 온 미국의 모습이 트럼프의 눈에는 나약해 보였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훗날 방위비 증액을 끌어낼 수 있도록 유럽의 기선을 제압하고, 무역전쟁을 치러 중국을 크게 위축시킨 것은 이란 제재의 토대가 됐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금지 조치 이후 중국과 유럽의 대응은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란 의회 의장은 "유럽이 말로만 미국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미국에 자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의 경우, 올해 초만 해도 이란 정부와 35억 위안(약 5천700억 원)에 달하는 철도 협약을 체결해 변함없는 우방임을 과시했다. 또, 중국 정부의 투자창구 역할을 해온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CITIC)와 국책은행인 중국개발은행(CDB)은 이란에 각각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압박이 거세지자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기업도 이란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과 중국 기업 간 거래 상당수가 이미 실패한 계획이다. 아무도 위험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중국 석유회사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중국과의 패권 전쟁 일환이기도 하다. 이란은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지정학적으로 그 중심부에 있다. 마노체흐르 도라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핵심 국가로 중국은 40여 년간 이란에 투자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란 정권이 흔들리면 중국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중국은 이란의 산업 장비 최대 공급 국가이기도 하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란뿐 아니라 미국이 현재 최대 압박을 가하는 베네수엘라도 중국이 크게 공들여온 남미의 거점이다. 중국은 2008년부터 베네수엘라에 석유를 담보로 700억 달러를 빌려줬다. 또 자동차와 통신, 가전 등 산업 분야와 군사 장비도 지원해왔다. 러시아 역시 베네수엘라 이권에 깊숙이 개입돼있다. 러시아는 구제금융을 해준 대가로 베네수엘라 유전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수시로 합동 훈련을 하는 등 군사적 관계도 긴밀하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지정학적으로도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면 중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조차 상환받기 어려워진다.

■ '에너지 독립' 완성한 미국, 거침없는 질주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나약한 나머지 동맹국들에 존중받지 못했던 미국이 지금처럼 거침없이 미국의 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석유'다.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오일과 가스 생산량은 매년 급증세를 보인다. 주요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2016년부터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면서 단숨에 주요 수출국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원유 수출액이 이란을 능가했다. 매장량으로 보면 1위까지 뛰어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전체 산유량 기준으로는 미국이 이미 세계 최대 지위를 차지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중국은 이란 원유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미국의 이란 원유 예외 조치 종료가 미·중 무역협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공백을 메우겠다"며 미국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란산의 대체재까지 준비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이란산 원유 전면 봉쇄 첫날인 3일(현지시각) 국제 유가는 전날보다 오히려 급락(서부 텍사스산 원유 WTI, 배럴당 2.8%↓)했다.


주요 산유국으로 변신하며 '에너지 독립'을 완성한 미국은 사우디 같은 든든한 우군도 확보해 세계 석유 시장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주요 산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에도 마음껏 제재를 가했고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원유 가격을 떨어뜨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러시아까지 호되게 혼쭐냈다.

원유 수출 전면 차단 조치에 "미국이 흉기를 들고 압박한다"고 반발했던 이란은 이틀 만에 미국을 향해 '수감자 교환'을 제안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4번째 요구(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란은 한편으로는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와 '북한 방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쪽은 이란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미국이 산유국의 지배자"라고 주장하자 비웃었던 OPEC마저 휘청이고 있다. 이란 석유장관은 "미국이 OPEC 창립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제재한 탓에 OPEC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소개한 대로 'OPEC에 맞선 미국의 에너지 자립'과 '동맹국에 휘둘리지 않고 존중받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제시했던 미국의 모습이다. 그의 과거 발언과 취임 뒤 그가 밀어붙여 온 미국의 정책을 되돌아보면 '트럼프의 세계 전략이 체계적인 틀에서 치밀하게 준비돼왔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반사회주의’ 전사 트럼프, 중국 때리고 북한엔 손 내미는 이유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이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내건 트럼프는 "반(反)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다. 미국만을 위한 패권 싸움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만델바움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그이 저서에서 "냉전 이후 시대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 세 지역(러시아, 중국, 이란)과 벌이고 있는 미국의 전쟁은 '진정한 패권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대격변의 신호탄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자신들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하는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트럼프와 그의 전략가들이 짜놓은 큰 그림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 [글로벌 돋보기] ‘오일파워’ 장착한 트럼프, ‘진정한 패권’ 추구하나?
    • 입력 2019-05-04 09:00:52
    • 수정2019-05-06 14: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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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류 세력이 '비주류의 반란'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하지만 그는 미국 대선판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했던 트럼프는 40대였던 80년대 초부터 대통령감으로 지목받았다.

활발한 TV 출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업 철학뿐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비전까지 거침없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9년 TV 인터뷰에서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맹국을 돕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야기되는 문제를 방치하면 미국이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은 물론 석유수출국기구, OPEC까지 앞장서 비판했다. 2011년 TV 인터뷰에서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시키고 미국의 일자리와 기업들을 빼앗아가고 있는데도 미국은 가만히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의 석유 카르텔을 비판하며 "OPEC이 일반 기업이었다면 모든 직원이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14년 미국 보수정치 행동회의(CPAC) 연설에서는 "미국의 나랏빚이 1경 7천조 원이다. 이 나라는 지금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 이렇게 약하기 때문에 동맹국들도 미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없는 중동분쟁과 유럽과의 긴장, 중국의 부상,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전임 정부들이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은 '허울뿐인 패권국'으로 인식된듯하다.

그가 집권한 지 2년 4개월이 돼가는 지금, 미국은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세계를 재편해가고 있다.

■ "석유 한 방울도 수출 못 해" ... 미국, 이란에 '최후통첩'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이란산 원유 제재 예외 조치 종료 방침을 밝히면서 "이란 석유를 한 방울도 수출하지 못하게 하겠다(We're going to zero - going to zero across the board)"고 말했다. "아야톨라와 추종 세력에게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한다(We have made our demands very clear to the ayatollah and his cronies)"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거명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그러면서 핵무기 개발 종료와 탄도미사일 미사일 실험 중단, 테러지원 중단, 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End your pursuit of nuclear weapons. Stop testing and proliferating ballistic missiles. Stop sponsoring and committing terrorism. Halt the arbitrary detention of U.S. citizens)을 요구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놓고 외신들은 단순히 핵 개발 제재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유 제재에 대한 '예외 조치 종료'는 이란의 원유 '수출 전면 금지'를 의미한다. 미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석유화학 제품부터 소비재까지 이란의 무역 전반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 이어 이란의 두 번째 달러화 돈줄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재무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예정"이라며 "이는 이란 정권의 달러화 원천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5년 3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당시 미국이 주도한 이란 핵 협상에 대해 "아주 나쁜 협상"이라며 "지금과 같은 협상이 계속되면 이란도 결국 북한처럼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입장이 같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란 핵 협상에서 탈퇴했고, '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를 위한 전례 없는 압박에 나섰다. 미국의 협상 탈퇴 이후 이란은 탄도미사일 발사 등 연이은 도발을 감행했지만, 미국은 이란 정권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왔다.

■ '딴지' 못 거는 중국과 러시아 ...투자금 날리나 '전전긍긍'

이란을 손보기 위한 미국의 준비는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강대국들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중동은 전후 50년 동안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1순위 지역이었다. 미국의 석유공급, 즉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핵심 기지였고 '중동 패권을 둘러싼 러시아와의 대결'과 이를 위한 '유럽과의 협력' 구도를 만들었다.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면서 중동과 유럽의 눈치를 봐야 했고 냉전 이후에도 러시아와 대결 구도를 유지하며 중국의 부상을 눈 뜨고 지켜봐 온 미국의 모습이 트럼프의 눈에는 나약해 보였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훗날 방위비 증액을 끌어낼 수 있도록 유럽의 기선을 제압하고, 무역전쟁을 치러 중국을 크게 위축시킨 것은 이란 제재의 토대가 됐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금지 조치 이후 중국과 유럽의 대응은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란 의회 의장은 "유럽이 말로만 미국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미국에 자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의 경우, 올해 초만 해도 이란 정부와 35억 위안(약 5천700억 원)에 달하는 철도 협약을 체결해 변함없는 우방임을 과시했다. 또, 중국 정부의 투자창구 역할을 해온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CITIC)와 국책은행인 중국개발은행(CDB)은 이란에 각각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압박이 거세지자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기업도 이란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과 중국 기업 간 거래 상당수가 이미 실패한 계획이다. 아무도 위험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중국 석유회사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중국과의 패권 전쟁 일환이기도 하다. 이란은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지정학적으로 그 중심부에 있다. 마노체흐르 도라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핵심 국가로 중국은 40여 년간 이란에 투자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란 정권이 흔들리면 중국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중국은 이란의 산업 장비 최대 공급 국가이기도 하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란뿐 아니라 미국이 현재 최대 압박을 가하는 베네수엘라도 중국이 크게 공들여온 남미의 거점이다. 중국은 2008년부터 베네수엘라에 석유를 담보로 700억 달러를 빌려줬다. 또 자동차와 통신, 가전 등 산업 분야와 군사 장비도 지원해왔다. 러시아 역시 베네수엘라 이권에 깊숙이 개입돼있다. 러시아는 구제금융을 해준 대가로 베네수엘라 유전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수시로 합동 훈련을 하는 등 군사적 관계도 긴밀하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지정학적으로도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면 중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조차 상환받기 어려워진다.

■ '에너지 독립' 완성한 미국, 거침없는 질주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나약한 나머지 동맹국들에 존중받지 못했던 미국이 지금처럼 거침없이 미국의 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석유'다.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오일과 가스 생산량은 매년 급증세를 보인다. 주요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2016년부터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면서 단숨에 주요 수출국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원유 수출액이 이란을 능가했다. 매장량으로 보면 1위까지 뛰어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전체 산유량 기준으로는 미국이 이미 세계 최대 지위를 차지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중국은 이란 원유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미국의 이란 원유 예외 조치 종료가 미·중 무역협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공백을 메우겠다"며 미국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란산의 대체재까지 준비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이란산 원유 전면 봉쇄 첫날인 3일(현지시각) 국제 유가는 전날보다 오히려 급락(서부 텍사스산 원유 WTI, 배럴당 2.8%↓)했다.


주요 산유국으로 변신하며 '에너지 독립'을 완성한 미국은 사우디 같은 든든한 우군도 확보해 세계 석유 시장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주요 산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에도 마음껏 제재를 가했고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원유 가격을 떨어뜨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러시아까지 호되게 혼쭐냈다.

원유 수출 전면 차단 조치에 "미국이 흉기를 들고 압박한다"고 반발했던 이란은 이틀 만에 미국을 향해 '수감자 교환'을 제안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4번째 요구(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란은 한편으로는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와 '북한 방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쪽은 이란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미국이 산유국의 지배자"라고 주장하자 비웃었던 OPEC마저 휘청이고 있다. 이란 석유장관은 "미국이 OPEC 창립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제재한 탓에 OPEC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소개한 대로 'OPEC에 맞선 미국의 에너지 자립'과 '동맹국에 휘둘리지 않고 존중받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제시했던 미국의 모습이다. 그의 과거 발언과 취임 뒤 그가 밀어붙여 온 미국의 정책을 되돌아보면 '트럼프의 세계 전략이 체계적인 틀에서 치밀하게 준비돼왔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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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이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내건 트럼프는 "반(反)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다. 미국만을 위한 패권 싸움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만델바움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그이 저서에서 "냉전 이후 시대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 세 지역(러시아, 중국, 이란)과 벌이고 있는 미국의 전쟁은 '진정한 패권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대격변의 신호탄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자신들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하는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트럼프와 그의 전략가들이 짜놓은 큰 그림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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