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세월호 유가족은 어떻게 ‘종북’이 되었나

입력 2019.05.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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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당시 사이버 댓글 사건을 조사하던 국방부는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 지난해 9월 해체돼 현재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를 조사하다 우연히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이라는 기무사 작성 문건을 발견합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군인을 대상으로 방첩 활동 등을 수행하는 기무사가 민간인인 세월호 유가족을 전방위적으로 사찰한 내용이 담겨있었던 겁니다.

사찰을 주도한 기무사 '세월호 TF' 단장 등 전·현직 장교들이 재판에 넘겨졌고, 기무사는 해체됐습니다.

KBS가 기무사의 사찰 행적이 담긴 군 수사단의 수사기록을 단독 입수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참사 엿새 만에 등장한 '방첩활동' 계획

세월호 참사 엿새째였던 2014년 4월 21일. 생존자 확인과 시신 수습에 정신없던 그때, 기무사는 '방첩활동 계획'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방첩(防諜)', 간첩 활동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눈에 띄는 건 참사 일주일도 안 돼서, '종북좌파'라는 단어가 보고서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사망(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반정부 활동을 조장하는 '종북좌파'의 동정을 확인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합니다.

기무사 보고서에 ‘종북좌파’ 표현이 확인됐다.(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발췌)기무사 보고서에 ‘종북좌파’ 표현이 확인됐다.(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발췌)

이후 기무사는 팽목항 등 진도 지역에 기무 부대원 2명, 안산 지역에 2명을 투입하는 등 구체적인 사찰 계획을 세우고, 세월호 TF 내에 아예 '불순세력 관리팀'까지 만듭니다.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가 '종북세력'?

이들이 한 달여 동안 방첩 활동을 벌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5월 29일 기무사는 보고서에서 당시 상황을 진단하며 '종북세력'과 '보수세력'을 나눴는데, '종북세'라는 소제목 하에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가 포함돼있습니다.

보고서에는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연계한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종북세력 활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무사 문건 ‘종북세 촛불집회 확산시도 차단 대책’ 발췌)보고서에는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연계한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종북세력 활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무사 문건 ‘종북세 촛불집회 확산시도 차단 대책’ 발췌)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는 김병권 위원장과 유경근 대변인 등 유가족이 중심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다시 말해 기무사는 최소한 이 시점부턴 '대놓고' 유가족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는 얘깁니다.

기무사는 도대체 왜 간첩에게나 쓰일 법한 '종북'이란 단어를 유가족에게 사용했을까?

KBS가 확보한 기무사 문건에선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기무사가 당시 대책위 위원장과 대변인에 대한 정보보고에서 사용한 단어는 '지게차 운영', '사회 비판적', '정의당 당원'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간첩입니까? 우리는 자식을 잃은 피해자라고요."

기무사는 또 다른 보고서에서 "종북세력의 총공세가 예상되니 안보단체를 이용해 종북 문제를 이슈화해야 한다"거나 "청와대 중요보고에도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다른 보고서에서 기무사는 종북세력의 공세를 막기 위해 안보단체를 활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기무사 문건 ‘안보단체, 세월호 관련 종북세 반정부 활동에 대비 긴요’ 발췌)또 다른 보고서에서 기무사는 종북세력의 공세를 막기 위해 안보단체를 활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기무사 문건 ‘안보단체, 세월호 관련 종북세 반정부 활동에 대비 긴요’ 발췌)

참사 초기부터 유가족을 '종북세력'으로 규정지은 기무사는, 차근차근 다음 시나리오를 밟아나갔습니다.

안보단체를 동원해 여론을 악화시켰고,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흘러나왔으며, 세월호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초리도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기무사발 '판짜기'의 시작은 사찰이었습니다.

사찰.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단어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의 부모인 장동원 씨는 학부모 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되었다.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의 부모인 장동원 씨는 학부모 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되었다.

2014년 당시 생존자 학부모 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사찰을 당했던 장동원 씨. 기무사 문건에는 "금속노조 출신으로 활동 사항에 대해 주의 깊게 확인 중"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장 씨는 말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감시당하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는 거예요. 친한 지인들이랑 술 한잔 하더라도 집에 들어갈 때도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되고,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이 의식하게 돼요. 어디 가서도 맘대로 지인들이랑 술 마시는 것도 겁이 나고. 말도 조심하게 되고…"

세월호 참사 5년.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시선과 매일 맞서 싸우고 있는 장훈 세월호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그의 말로 기사의 마지막 말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식을 잃은 피해자라고요. 피해자가 어떻게 갑자기 간첩이 될 수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기무사의 사찰 행적은 6일 밤 'KBS 뉴스9'에서 더욱 자세히 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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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 잃은 세월호 유가족은 어떻게 ‘종북’이 되었나
    • 입력 2019-05-06 18:00:41
    취재K
지난해 7월, 당시 사이버 댓글 사건을 조사하던 국방부는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 지난해 9월 해체돼 현재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를 조사하다 우연히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이라는 기무사 작성 문건을 발견합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군인을 대상으로 방첩 활동 등을 수행하는 기무사가 민간인인 세월호 유가족을 전방위적으로 사찰한 내용이 담겨있었던 겁니다.

사찰을 주도한 기무사 '세월호 TF' 단장 등 전·현직 장교들이 재판에 넘겨졌고, 기무사는 해체됐습니다.

KBS가 기무사의 사찰 행적이 담긴 군 수사단의 수사기록을 단독 입수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참사 엿새 만에 등장한 '방첩활동' 계획

세월호 참사 엿새째였던 2014년 4월 21일. 생존자 확인과 시신 수습에 정신없던 그때, 기무사는 '방첩활동 계획'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방첩(防諜)', 간첩 활동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눈에 띄는 건 참사 일주일도 안 돼서, '종북좌파'라는 단어가 보고서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사망(실종)자 가족 대상으로 반정부 활동을 조장하는 '종북좌파'의 동정을 확인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합니다.

기무사 보고서에 ‘종북좌파’ 표현이 확인됐다.(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발췌)
이후 기무사는 팽목항 등 진도 지역에 기무 부대원 2명, 안산 지역에 2명을 투입하는 등 구체적인 사찰 계획을 세우고, 세월호 TF 내에 아예 '불순세력 관리팀'까지 만듭니다.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가 '종북세력'?

이들이 한 달여 동안 방첩 활동을 벌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5월 29일 기무사는 보고서에서 당시 상황을 진단하며 '종북세력'과 '보수세력'을 나눴는데, '종북세'라는 소제목 하에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가 포함돼있습니다.

보고서에는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연계한 진상규명 서명운동을 종북세력 활동으로 분류하고 있다. (기무사 문건 ‘종북세 촛불집회 확산시도 차단 대책’ 발췌)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는 김병권 위원장과 유경근 대변인 등 유가족이 중심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다시 말해 기무사는 최소한 이 시점부턴 '대놓고' 유가족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는 얘깁니다.

기무사는 도대체 왜 간첩에게나 쓰일 법한 '종북'이란 단어를 유가족에게 사용했을까?

KBS가 확보한 기무사 문건에선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기무사가 당시 대책위 위원장과 대변인에 대한 정보보고에서 사용한 단어는 '지게차 운영', '사회 비판적', '정의당 당원'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간첩입니까? 우리는 자식을 잃은 피해자라고요."

기무사는 또 다른 보고서에서 "종북세력의 총공세가 예상되니 안보단체를 이용해 종북 문제를 이슈화해야 한다"거나 "청와대 중요보고에도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다른 보고서에서 기무사는 종북세력의 공세를 막기 위해 안보단체를 활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기무사 문건 ‘안보단체, 세월호 관련 종북세 반정부 활동에 대비 긴요’ 발췌)
참사 초기부터 유가족을 '종북세력'으로 규정지은 기무사는, 차근차근 다음 시나리오를 밟아나갔습니다.

안보단체를 동원해 여론을 악화시켰고,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흘러나왔으며, 세월호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초리도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기무사발 '판짜기'의 시작은 사찰이었습니다.

사찰.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단어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의 부모인 장동원 씨는 학부모 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사찰 대상이 되었다.
2014년 당시 생존자 학부모 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사찰을 당했던 장동원 씨. 기무사 문건에는 "금속노조 출신으로 활동 사항에 대해 주의 깊게 확인 중"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장 씨는 말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감시당하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는 거예요. 친한 지인들이랑 술 한잔 하더라도 집에 들어갈 때도 항상 뒤를 돌아보게 되고,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이 의식하게 돼요. 어디 가서도 맘대로 지인들이랑 술 마시는 것도 겁이 나고. 말도 조심하게 되고…"

세월호 참사 5년.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시선과 매일 맞서 싸우고 있는 장훈 세월호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그의 말로 기사의 마지막 말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식을 잃은 피해자라고요. 피해자가 어떻게 갑자기 간첩이 될 수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기무사의 사찰 행적은 6일 밤 'KBS 뉴스9'에서 더욱 자세히 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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