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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산불은 나지만 큰불은 없다”…핀란드 산불관리 현장을 가다
입력 2019.05.07 (17:47) 수정 2019.05.07 (17:49) 특파원 리포트
전체 산림 면적 2,300만ha. 숲이 전 국토의 75%, 유럽 전체의 10%를 차지하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토 대비 산림 면적 1위. 산림 국가 핀란드를 말해주는 통계들이다.
핀란드 국가산림자원조사(Finnish National Forest Inventory)에 따르면 숲 속 수목의 총 부피는 계속 증가 추세로 1971년 이후 40% 증가해 현재 24억 세제곱미터에 이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의 숫자도 많아지고, 나무가 성장하면서 숲이 더욱 풍성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핀란드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3천8백만 톤에 이른다. 핀란드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0%에 해당한다.
핀란드가 이렇게 울창한 숲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뿐만 아니라 화재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KBS는 국가재난사태를 불러온 지난달 강원도 산불을 계기로 핀란드의 산림보호와 산불대응체계를 현지 취재했다.

신속한 포착과 초기 진화가 핵심

취재진은 먼저 산불 관리를 총괄하는 핀란드 내무부를 찾았다. 산불 담당 전문가인 라미 루스카 선임관은 산불 관련 통계부터 제시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핀란드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간 1,000건 이하였고, 소실 면적은 500ha가 안 됐다. 산불 1회당 소실 면적은 연간 0.19ha(2015)~0.52ha(2017)에 불과했다.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된 지난해에는 예년의 2~3배인 2,400여 건의 산불이 났지만, 한 번의 산불로 소실된 숲 면적은 마찬가지로 0.51ha에 그쳤다. 산불이 나더라도 큰불로 번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루스카 선임관은 첫 번째 비결로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을 꼽았다. 산불 징후를 사전에 감시해 실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고 불이 나더라도 신속히 진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핀란드 기상청은 기온과 건조도, 강수량, 풍속 등을 토대로 매일 산불위험지수를 발표한다. 위험지수는 최저 1부터 최고 6까지 구분되는데, 지수가 4를 넘으면 TV와 라디오,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조기경보를 발령하고 특별경계태세에 돌입한다. 경보가 발동되면 해당 지역에선 야외에서 불을 피워선 안 된다.


경보 발령과 함께 항공 감시(aerial surveillance)도 시작된다. 산불 방지의 두 번째 비결이다. 항공 감시는 정부와 업무 협약을 맺은 지역 항공 클럽이 담당한다. 핀란드 정부는 전국을 26개 구역으로 나눴다. 구역마다 담당 항공 클럽이 있는데, 경보가 발령되면 경비행기를 활용해 공중 순찰을 한다. 순찰 도중 불꽃이나 연기를 발견하면 크건 작건 즉각 소방당국에 화재 위치와 규모를 보고한다. 항공 감시는 대부분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정부는 항공 클럽에 유류비 정도인 시간당 350유로의 비용을 지불한다. 핀란드 정부는 조기경보시스템 운영에 2015~2017년 사이 연간 40만 유로를 지출했는데, 더위가 지속된 지난해엔 그 3배인 125만 유로를 지불했고, 이 가운데 122만 유로가 항공 감시에 할당됐다. 산불 위험성이 높아져 항공 순찰 횟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산림도로, 불길 차단 효과

핀란드의 그물망 같은 산림도로는 산불 관리의 세 번째 비결이다. 취재진은 해메 응용과학대학의 헨리크 린드버그 교수와 함께 핀란드 남부의 에보(Evo) 지역 숲을 찾았다. 벌목과 목재 운반을 위해 대형 트럭이 지날 수 있도록 만든 널찍한 산림도로가 깊은 숲 속까지 뚫려 있었다. 촘촘하게 산림도로를 내다보니 핀란드 숲 속 어느 곳에서든지 300m 정도만 가면 산림도로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불이 나면 소방차가 산림도로를 이용해 숲 속까지 들어간 뒤 소방관이 소방호스를 들고 300m만 가면 화재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애초 목적은 목재 운반용 도로이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신속히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산림도로는 또 불길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촘촘하게 난 산림도로에 의해 핀란드 숲은 평균 1.5ha 미만의 작은 단위로 나뉜다. 산림도로엔 흙과 물, 돌 등 불에 타지 않는 물질들이 있기 때문에 불길 확산을 차단하는 저지선 기능을 한다고 린드버그 교수는 설명했다.


소방서와 자율소방대의 긴밀 공조

항공 감시나 숲 방문객 등에 의해 화재 신고가 접수되면 소방서와 자율소방대가 함께 출동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헤멘린나(Hämeenlinna) 지역의 경우 24시간 운영되는 소방서 4곳 외에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자율소방대 25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자율소방대에도 소방차와 구조차가 있어 많은 경우 소방서보다 먼저 화재 현장에 도착해 산불을 초기에 진화한다. 칸타-해메소방서의 페트리 탈리카 구조팀장은 항상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방대가 화재에 대응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해 핀란드의 숲 1,200여ha가 탔지만,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이웃 나라 스웨덴에서는 20배 이상인 26,000여ha가 소실됐다. 핀란드에서 주민이 대피할 정도로 산불이 크게 번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핀란드 자연환경은 산불관리에 행운

핀란드 내무부의 라미 루스카 선임관은 정부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행운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한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20도 안팎에 머물 정도로 선선하다. 겨울에는 많은 눈이 쌓이고, 가을엔 습도가 높다. 또 호수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에 있는 수천 개의 호수는 산불 이동을 막는다. 주요 수목은 소나무(50%)와 가문비나무(30%), 자작나무(17%) 등 침엽수가 대부분이다.

루스카 선임관이 '행운'이라고 표현했지만, 인간의 노력이 과소평가될 순 없다. 이웃 스웨덴이나 러시아와 비교해 보면 핀란드의 산불관리체계의 효율성이 더욱 돋보인다. 루스카 선임관은 "화재 예방과 조기 경보시스템, 빠른 화재 진화가 핀란드 정부의 전략과 가이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와 수종은 물론 평지가 많은 핀란드의 자연환경 등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가 산불 관리에 있어 불리한 여건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미치는 숲의 중요성에 가치를 두고, 생명과 재산, 환경 보호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핀란드 정부의 노력은 결코 무시될 수 없다.
  • [특파원리포트] “산불은 나지만 큰불은 없다”…핀란드 산불관리 현장을 가다
    • 입력 2019-05-07 17:47:56
    • 수정2019-05-07 17:49:15
    특파원 리포트
전체 산림 면적 2,300만ha. 숲이 전 국토의 75%, 유럽 전체의 10%를 차지하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토 대비 산림 면적 1위. 산림 국가 핀란드를 말해주는 통계들이다.
핀란드 국가산림자원조사(Finnish National Forest Inventory)에 따르면 숲 속 수목의 총 부피는 계속 증가 추세로 1971년 이후 40% 증가해 현재 24억 세제곱미터에 이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의 숫자도 많아지고, 나무가 성장하면서 숲이 더욱 풍성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핀란드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3천8백만 톤에 이른다. 핀란드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0%에 해당한다.
핀란드가 이렇게 울창한 숲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뿐만 아니라 화재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KBS는 국가재난사태를 불러온 지난달 강원도 산불을 계기로 핀란드의 산림보호와 산불대응체계를 현지 취재했다.

신속한 포착과 초기 진화가 핵심

취재진은 먼저 산불 관리를 총괄하는 핀란드 내무부를 찾았다. 산불 담당 전문가인 라미 루스카 선임관은 산불 관련 통계부터 제시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핀란드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간 1,000건 이하였고, 소실 면적은 500ha가 안 됐다. 산불 1회당 소실 면적은 연간 0.19ha(2015)~0.52ha(2017)에 불과했다.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된 지난해에는 예년의 2~3배인 2,400여 건의 산불이 났지만, 한 번의 산불로 소실된 숲 면적은 마찬가지로 0.51ha에 그쳤다. 산불이 나더라도 큰불로 번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루스카 선임관은 첫 번째 비결로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을 꼽았다. 산불 징후를 사전에 감시해 실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고 불이 나더라도 신속히 진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핀란드 기상청은 기온과 건조도, 강수량, 풍속 등을 토대로 매일 산불위험지수를 발표한다. 위험지수는 최저 1부터 최고 6까지 구분되는데, 지수가 4를 넘으면 TV와 라디오,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조기경보를 발령하고 특별경계태세에 돌입한다. 경보가 발동되면 해당 지역에선 야외에서 불을 피워선 안 된다.


경보 발령과 함께 항공 감시(aerial surveillance)도 시작된다. 산불 방지의 두 번째 비결이다. 항공 감시는 정부와 업무 협약을 맺은 지역 항공 클럽이 담당한다. 핀란드 정부는 전국을 26개 구역으로 나눴다. 구역마다 담당 항공 클럽이 있는데, 경보가 발령되면 경비행기를 활용해 공중 순찰을 한다. 순찰 도중 불꽃이나 연기를 발견하면 크건 작건 즉각 소방당국에 화재 위치와 규모를 보고한다. 항공 감시는 대부분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정부는 항공 클럽에 유류비 정도인 시간당 350유로의 비용을 지불한다. 핀란드 정부는 조기경보시스템 운영에 2015~2017년 사이 연간 40만 유로를 지출했는데, 더위가 지속된 지난해엔 그 3배인 125만 유로를 지불했고, 이 가운데 122만 유로가 항공 감시에 할당됐다. 산불 위험성이 높아져 항공 순찰 횟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산림도로, 불길 차단 효과

핀란드의 그물망 같은 산림도로는 산불 관리의 세 번째 비결이다. 취재진은 해메 응용과학대학의 헨리크 린드버그 교수와 함께 핀란드 남부의 에보(Evo) 지역 숲을 찾았다. 벌목과 목재 운반을 위해 대형 트럭이 지날 수 있도록 만든 널찍한 산림도로가 깊은 숲 속까지 뚫려 있었다. 촘촘하게 산림도로를 내다보니 핀란드 숲 속 어느 곳에서든지 300m 정도만 가면 산림도로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불이 나면 소방차가 산림도로를 이용해 숲 속까지 들어간 뒤 소방관이 소방호스를 들고 300m만 가면 화재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애초 목적은 목재 운반용 도로이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가 신속히 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산림도로는 또 불길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촘촘하게 난 산림도로에 의해 핀란드 숲은 평균 1.5ha 미만의 작은 단위로 나뉜다. 산림도로엔 흙과 물, 돌 등 불에 타지 않는 물질들이 있기 때문에 불길 확산을 차단하는 저지선 기능을 한다고 린드버그 교수는 설명했다.


소방서와 자율소방대의 긴밀 공조

항공 감시나 숲 방문객 등에 의해 화재 신고가 접수되면 소방서와 자율소방대가 함께 출동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헤멘린나(Hämeenlinna) 지역의 경우 24시간 운영되는 소방서 4곳 외에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자율소방대 25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자율소방대에도 소방차와 구조차가 있어 많은 경우 소방서보다 먼저 화재 현장에 도착해 산불을 초기에 진화한다. 칸타-해메소방서의 페트리 탈리카 구조팀장은 항상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방대가 화재에 대응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해 핀란드의 숲 1,200여ha가 탔지만,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이웃 나라 스웨덴에서는 20배 이상인 26,000여ha가 소실됐다. 핀란드에서 주민이 대피할 정도로 산불이 크게 번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핀란드 자연환경은 산불관리에 행운

핀란드 내무부의 라미 루스카 선임관은 정부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행운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한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20도 안팎에 머물 정도로 선선하다. 겨울에는 많은 눈이 쌓이고, 가을엔 습도가 높다. 또 호수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에 있는 수천 개의 호수는 산불 이동을 막는다. 주요 수목은 소나무(50%)와 가문비나무(30%), 자작나무(17%) 등 침엽수가 대부분이다.

루스카 선임관이 '행운'이라고 표현했지만, 인간의 노력이 과소평가될 순 없다. 이웃 스웨덴이나 러시아와 비교해 보면 핀란드의 산불관리체계의 효율성이 더욱 돋보인다. 루스카 선임관은 "화재 예방과 조기 경보시스템, 빠른 화재 진화가 핀란드 정부의 전략과 가이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와 수종은 물론 평지가 많은 핀란드의 자연환경 등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가 산불 관리에 있어 불리한 여건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미치는 숲의 중요성에 가치를 두고, 생명과 재산, 환경 보호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핀란드 정부의 노력은 결코 무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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