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접촉해 강제징용 판결 늦추자” 제안에…“박근혜 ‘뭐 그게 낫겠네요’”

입력 2019.05.07 (20:29) 수정 2019.05.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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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외교부가 대법원을 접촉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직접 제안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에 수긍해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오늘(7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을 벌였습니다.

박 전 수석은 법정에서 2013년 11월 15일 열린 국무총리 현안보고 자리에서 오간 논의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 수석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확정될 경우 한일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는 취지로 보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당시 국무총리의 보고가)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대통령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냐고 해서 제가 10분 가까이 말씀을 드렸다"라고 자신이 발언에 나서게 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외교부 출신인 박 전 수석은 당시 박 대통령에게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단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이대로 확정되면, 일본은 우리나라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 접촉해 (재상고심) 판결을 늦추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본도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구나 평가할 것이고, 이 경우 향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재단 설립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기 유리하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전 수석은 "재판을 늦춰서 시간을 번 다음, 그 사이에 독일식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자"라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대법원에 접촉하는 주체로 외교부를 택한 데 대해서는, 청와대나 총리실이 접촉을 시도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외교부가 한일관계의 소관부처이니 공식적으로 대법원 측에 의견을 제출해 재판을 늦추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사가 "(당시) 박 대통령이 (건의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묻자, 박 전 수석은 "뭐 그게 낫겠네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전 수석은 또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정홍원 총리에게 "이 문제가 중요한 것 같으니 총리님께서 잘 좀 챙겨주시라"고 당부했고, 정 총리는 "내려가는 대로 외교부 장관에게 지시하겠다, 그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전 수석의 증언을 들은 재판장은 "증인은 외교부 등이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그건 아니고, 외교부가 외교 업무를 주관하는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교부가 그렇게 한다고 판결을 늦추거나 당기거나 그런 지식은 전혀 없었고, 다만 '외교부가 그런 노력 해야 한다' '시간 벌어서 한일관계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다급함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외교부가 대법을 접촉해 판결을 늦춰야 한다는 발언이 삼권분립, 사법독립,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습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박 전 수석은 당시 이 발언을 전해 들은 외교부 고위공무원이 오해의 소지가 있게 적어놨다면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편 외교부에서 과장급으로 강제징용 재판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공무원도 오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뒤늦게 알게 된 이후 "마음이 착잡하고 좋지 않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돌아가기 전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대법원 측에서 저희한테 (의견서를 빨리 내라고) 압박을 가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면서 "당시에는 순진하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니까 저 양반(대법원)들도 신경 쓰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법관 파견, 이런 게 걸려있었다는 걸 알고 실무 직원들이 적잖이 충격받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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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7 20:29:01
    • 수정2019-05-07 20:30:44
    사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외교부가 대법원을 접촉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판결을 늦춰야 한다"고 직접 제안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에 수긍해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오늘(7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을 벌였습니다.

박 전 수석은 법정에서 2013년 11월 15일 열린 국무총리 현안보고 자리에서 오간 논의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 수석 등이 배석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확정될 경우 한일 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는 취지로 보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당시 국무총리의 보고가)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대통령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냐고 해서 제가 10분 가까이 말씀을 드렸다"라고 자신이 발언에 나서게 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외교부 출신인 박 전 수석은 당시 박 대통령에게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단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이대로 확정되면, 일본은 우리나라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 접촉해 (재상고심) 판결을 늦추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본도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구나 평가할 것이고, 이 경우 향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재단 설립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기 유리하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전 수석은 "재판을 늦춰서 시간을 번 다음, 그 사이에 독일식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자"라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대법원에 접촉하는 주체로 외교부를 택한 데 대해서는, 청와대나 총리실이 접촉을 시도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외교부가 한일관계의 소관부처이니 공식적으로 대법원 측에 의견을 제출해 재판을 늦추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사가 "(당시) 박 대통령이 (건의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묻자, 박 전 수석은 "뭐 그게 낫겠네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전 수석은 또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정홍원 총리에게 "이 문제가 중요한 것 같으니 총리님께서 잘 좀 챙겨주시라"고 당부했고, 정 총리는 "내려가는 대로 외교부 장관에게 지시하겠다, 그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전 수석의 증언을 들은 재판장은 "증인은 외교부 등이 대법원을 접촉해 판결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그건 아니고, 외교부가 외교 업무를 주관하는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교부가 그렇게 한다고 판결을 늦추거나 당기거나 그런 지식은 전혀 없었고, 다만 '외교부가 그런 노력 해야 한다' '시간 벌어서 한일관계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다급함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외교부가 대법을 접촉해 판결을 늦춰야 한다는 발언이 삼권분립, 사법독립,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습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박 전 수석은 당시 이 발언을 전해 들은 외교부 고위공무원이 오해의 소지가 있게 적어놨다면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편 외교부에서 과장급으로 강제징용 재판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공무원도 오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뒤늦게 알게 된 이후 "마음이 착잡하고 좋지 않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돌아가기 전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대법원 측에서 저희한테 (의견서를 빨리 내라고) 압박을 가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면서 "당시에는 순진하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니까 저 양반(대법원)들도 신경 쓰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법관 파견, 이런 게 걸려있었다는 걸 알고 실무 직원들이 적잖이 충격받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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