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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지조와 절개, 심산 김창숙
입력 2019.05.07 (21:52) 수정 2019.05.08 (02:08) 뉴스9(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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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KBS 대구방송총국이 마련한
기획 뉴스입니다.
우리 나라 유림의 대표로서
한평생을 오롯이
독립운동에 바친
심산 김창숙 선생을
김도훈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앉은뱅이 노인이란 뜻의
'벽옹'을
자신의 별호로 삼은 심산 김창숙.

숱한 옥살이와 모진 고문으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자신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성주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심산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며
본격적인 항일 운동에 나섰고,

고향 성주의 서당에
성명학교를 열어
교육으로 독립 운동을 펼칩니다.

3.1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1919년에는 유림 대표로서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데 앞장섰습니다.

박재관 / 성주군 학예사[인터뷰]
"파리 장서운동, 유림단 사건으로 불리는 파리 장서운동을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시는 등 유림으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나석주 열사의 폭탄 투척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무장 투쟁 활동도 펼칩니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심산에겐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서훈됐고,
심산을 도운 두 아들까지
삼부자가 독립유공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엄혹한 일제의 법정에서도
일본 변호인의 조력을 거부하는 등
결코 굴하지 않았던
올곧은 선비 심산 김창숙,

시대의 불의에 맞서
행동하고 참여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도훈입니다.
  • 선비의 지조와 절개, 심산 김창숙
    • 입력 2019-05-07 21:52:02
    • 수정2019-05-08 02:08:21
    뉴스9(대구)
[앵커멘트]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KBS 대구방송총국이 마련한
기획 뉴스입니다.
우리 나라 유림의 대표로서
한평생을 오롯이
독립운동에 바친
심산 김창숙 선생을
김도훈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앉은뱅이 노인이란 뜻의
'벽옹'을
자신의 별호로 삼은 심산 김창숙.

숱한 옥살이와 모진 고문으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자신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성주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심산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며
본격적인 항일 운동에 나섰고,

고향 성주의 서당에
성명학교를 열어
교육으로 독립 운동을 펼칩니다.

3.1 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1919년에는 유림 대표로서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데 앞장섰습니다.

박재관 / 성주군 학예사[인터뷰]
"파리 장서운동, 유림단 사건으로 불리는 파리 장서운동을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시는 등 유림으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나석주 열사의 폭탄 투척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무장 투쟁 활동도 펼칩니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심산에겐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서훈됐고,
심산을 도운 두 아들까지
삼부자가 독립유공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엄혹한 일제의 법정에서도
일본 변호인의 조력을 거부하는 등
결코 굴하지 않았던
올곧은 선비 심산 김창숙,

시대의 불의에 맞서
행동하고 참여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도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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