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찜통 경비실’ 이유는?…절반은 “주민 반대”

입력 2019.05.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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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10곳 중 4곳 냉난방기 없어
"주민 반대", "에너지 절약"부터 "재건축 앞둬서"까지 이유 제각각
일부 자치구는 '설치비 50% 지원' 조례 마련.. 경비원 고용률 99% 효과도

곧 여름입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이 평년보다 더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10곳 중 4곳(36%)은 아직 냉난방기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가 2천200여 개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 총 9천 763곳을 전수조사해 내놓은 결과입니다.

경비원들에게 경비실은 직장일 텐데, 에어컨과 온열기가 설치되지 않은 직장이 있다는 게 한편 놀랍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주민들이 돈을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미담' 기사가 매년 화제가 될 만큼, 냉난방기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 "주민들과 동대표가 반대해서" 51%

서울시 조사 결과 냉난방기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로 절반 넘게(51%) '주민 및 동대표 반대'를 꼽았습니다. '예산 부족 및 장소 협소'(31%), '에너지 절약, 재건축 준비 중 등 기타'(16%)가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작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붙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기상 관측 111년 이래 가장 더웠다는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글이 붙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불볕더위로 48명이 사망한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글이 붙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불볕더위로 48명이 사망한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 "곧 재건축될 건데 에어컨이 왜 필요하죠?"

전체적으로 강북보다 강남의 설치율이 낮았습니다. 한강 이북 14개 자치구의 설치율은 70%, 한강 이남 11개 자치구는 59%였습니다.

그중 꼴찌는 송파구였습니다. 송파구의 냉난방기 설치율은 34%로, 올해 추가로 설치될 분량을 포함해도 43%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5천여 세대 규모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와 올림픽훼밀리타운아파트는 설치율이 0%였습니다.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에는 208개,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에는 151개의 경비실이 있습니다.

두 아파트는 모두 재건축을 준비 중이라는 이유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두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 이야기가 나온 지는 이미 10년도 넘었습니다.

담당 구청인 송파구청에서도 쓸 방법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송파구 공동주택 지원 조례'가 있지만 단지 내 도로와 보안등을 설치할 수는 있을 뿐, 경비실 에어컨은 지원 항목에 없어서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구청은 차선책으로 두 아파트 단지에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협조 공문을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두 아파트는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 냉난방기 설치비 50% 지원, 경비원 99% 고용 유지

1위 성북구는 설치율이 85%로 송파구의 2배가 넘었습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자꾸 늘어나자 자치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성북구는 2011년 구청에서 공동주택 지원 조례를 전면 개정해 7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 냉난방기뿐 아니라 경비원 휴게실 설치비에 구비 50%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성북구 의무관리 대상 아파트의 110개 휴게실에 냉방기 55대, 난방기 97대가 설치됐습니다. 올해는 6개 단지에 예산 천백만 원을 들여 24대의 냉난방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개인 사유지인 아파트에 구 예산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북구는 "공동주택은 열린 주거공간이고, 아파트 단지 내부뿐 아니라 외부도 함께 참여하는 일종의 공동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효과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냉난방기 설치 비용 지원을 시작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성북구 내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유지율은 99.6%에 달했습니다. 예산을 지원하기에 앞서 입주자대표회의 등과 고용 유지 등을 조건으로 협상한 결과입니다.

■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를 반대하는 글

에어컨 설치 비용과 전기 요금은 단지별로 다르겠지만, 큰 부담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작년에 LH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경비실 에어컨을 하루 8시간 가동할 경우 월 2만 7,600원의 전기요금이 발생합니다. 가구당 월평균 55.4원을 부담하는 정도입니다.

서울시는 아파트 동대표 등에게 노동 인권을 교육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캠페인도 벌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지입니다. 앞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올라온 뒤, 해당 아파트에서는 또 다른 글이 붙었습니다.

"여러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 대 없었다는 것이 저는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붙은 뒤, 다른 입주민이 이를 반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작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붙은 뒤, 다른 입주민이 이를 반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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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어컨 없는 ‘찜통 경비실’ 이유는?…절반은 “주민 반대”
    • 입력 2019-05-09 16:01:05
    취재K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10곳 중 4곳 냉난방기 없어 <br />"주민 반대", "에너지 절약"부터 "재건축 앞둬서"까지 이유 제각각 <br />일부 자치구는 '설치비 50% 지원' 조례 마련.. 경비원 고용률 99% 효과도
곧 여름입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이 평년보다 더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10곳 중 4곳(36%)은 아직 냉난방기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가 2천200여 개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 총 9천 763곳을 전수조사해 내놓은 결과입니다.

경비원들에게 경비실은 직장일 텐데, 에어컨과 온열기가 설치되지 않은 직장이 있다는 게 한편 놀랍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주민들이 돈을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미담' 기사가 매년 화제가 될 만큼, 냉난방기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 "주민들과 동대표가 반대해서" 51%

서울시 조사 결과 냉난방기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로 절반 넘게(51%) '주민 및 동대표 반대'를 꼽았습니다. '예산 부족 및 장소 협소'(31%), '에너지 절약, 재건축 준비 중 등 기타'(16%)가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작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붙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기상 관측 111년 이래 가장 더웠다는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글이 붙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불볕더위로 48명이 사망한 2018년 여름이었습니다.
■ "곧 재건축될 건데 에어컨이 왜 필요하죠?"

전체적으로 강북보다 강남의 설치율이 낮았습니다. 한강 이북 14개 자치구의 설치율은 70%, 한강 이남 11개 자치구는 59%였습니다.

그중 꼴찌는 송파구였습니다. 송파구의 냉난방기 설치율은 34%로, 올해 추가로 설치될 분량을 포함해도 43%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5천여 세대 규모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와 올림픽훼밀리타운아파트는 설치율이 0%였습니다.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에는 208개,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에는 151개의 경비실이 있습니다.

두 아파트는 모두 재건축을 준비 중이라는 이유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두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 이야기가 나온 지는 이미 10년도 넘었습니다.

담당 구청인 송파구청에서도 쓸 방법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송파구 공동주택 지원 조례'가 있지만 단지 내 도로와 보안등을 설치할 수는 있을 뿐, 경비실 에어컨은 지원 항목에 없어서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구청은 차선책으로 두 아파트 단지에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라는 협조 공문을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두 아파트는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 냉난방기 설치비 50% 지원, 경비원 99% 고용 유지

1위 성북구는 설치율이 85%로 송파구의 2배가 넘었습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자꾸 늘어나자 자치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성북구는 2011년 구청에서 공동주택 지원 조례를 전면 개정해 7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 냉난방기뿐 아니라 경비원 휴게실 설치비에 구비 50%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성북구 의무관리 대상 아파트의 110개 휴게실에 냉방기 55대, 난방기 97대가 설치됐습니다. 올해는 6개 단지에 예산 천백만 원을 들여 24대의 냉난방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개인 사유지인 아파트에 구 예산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북구는 "공동주택은 열린 주거공간이고, 아파트 단지 내부뿐 아니라 외부도 함께 참여하는 일종의 공동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효과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냉난방기 설치 비용 지원을 시작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성북구 내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유지율은 99.6%에 달했습니다. 예산을 지원하기에 앞서 입주자대표회의 등과 고용 유지 등을 조건으로 협상한 결과입니다.

■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를 반대하는 글

에어컨 설치 비용과 전기 요금은 단지별로 다르겠지만, 큰 부담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작년에 LH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경비실 에어컨을 하루 8시간 가동할 경우 월 2만 7,600원의 전기요금이 발생합니다. 가구당 월평균 55.4원을 부담하는 정도입니다.

서울시는 아파트 동대표 등에게 노동 인권을 교육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캠페인도 벌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지입니다. 앞서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올라온 뒤, 해당 아파트에서는 또 다른 글이 붙었습니다.

"여러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 대 없었다는 것이 저는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글이 붙은 뒤, 다른 입주민이 이를 반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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