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천억 원 짜리 조각’의 탄생, “나만 이해 못 하는 거야?”

입력 2019.05.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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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 ‘토끼(1986년)’.출처:로이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의 탄생...제프 쿤스의 '토끼'

언뜻 보면 놀이공원에서 파는 알루미늄 풍선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감상을 함부로 쏟아내는 건 '예술에 문외한'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아주 도전적인 언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 '제프 쿤스'가 1986년에 만든 약 1m 크기의 이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이 조각상은 이달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9,110만 달러, 우리 돈으로는 약 1,084억 원에 낙찰된 작품입니다. 낙찰과 동시에 작가인 제프 쿤스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반열에 다시 올려놓은 화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경매 전까지 '가장 비싼 생존 작가' 타이틀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작품이 전시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역시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9,030만 달러에 낙찰됐었는데, 이 기록을 불과 6개월여 만에 갈아치운 겁니다. 재미있는 건, 호크니 전 경매 낙찰가 최고가를 기록한 생존 작가도 제프 쿤스 였다는 겁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 '풍선 개'는 2013년에 5,840만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천억 원'에 공개 낙찰받은 사람...'므누신' 누구일까?

여기까지 읽어도 "나는 여전히 놀이동산 풍선이랑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주장을 굽히고 싶지 않다면, 이런 질문도 분명히 하고 싶으실 겁니다. "아니, 그런데 이걸 왜 천만 원도 아니고, 천억 원이나 주고 사는 거지?"라는 질문입니다. 이 작품의 원소유주는 1992년에 백만 달러, 우리 돈 12억 원 정도에 작품을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 경매에 내놨습니다. 경매를 시작할 때 경매 회사는 작품의 '추정가'라는 걸 매깁니다. 경매 시작 가격을 결정하고, 작품의 가치를 따져 봤을 때 최소 얼마에서 최대 얼마 정도까지에 팔릴지 예상한 가격인데요. '토끼'의 추정가는 5,000만 달러에서 7,000만 달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이 9,110만 달러에 팔렸다는 건, 이 작품을 사겠다고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호가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작품을 낙찰받은 사람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아버지인 '로버트 므누신'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계에서 일하다가 은퇴 후에는 '아트 딜러'러 활동하고 있습니다. 므누신은 경매장 맨 앞줄에 앉아서 직접 입찰에 나섰는데요. 보통 경매사에서는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도 누가 낙찰을 받았는지 알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이번 작품을 므누신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지게 된 건, 그가 직접 경매장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므누신이 '될성싶은 작가'를 키우고, 고객과 작품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아트 딜러'라는 점으로 볼 때, 실제 이 작품에 천억 원 넘는 돈을 지불한 사람은 또 다른 미술계의 '큰 손'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티’ 경매 장면.출처:게티이미지‘크리스티’ 경매 장면.출처:게티이미지

예술 작품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지나?

경매 시장을 미술계에서는 보통 '2차 시장'이라고 말합니다. 미술작품이 거래되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인데, 1차 유통 경로는 '갤러리'라고 부르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를 동시에 하는 곳입니다. 보통 이곳에서 미술 시장의 소비자들은 작가에게서 작품을 직접 구매하게 됩니다. 갤러리는 중간에서 거래를 보증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소비자가 지불한 미술품의 값은 '작가'에게 바로 지불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경매' 시장인데요. 경매 시장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그러니까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되팔기 위해 내놓는 곳입니다. 그래서 '2차 시장'이 되는 건데요.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곳들이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의 경매 시장은 '서울옥션', 과 'K옥션'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가격을 갱신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 '크리스티'나 '소더비'같은 경매 회사의 이름을 많이 듣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1차 유통시장인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사적인 거래로, 거의 공개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가격은 작가와 갤러리 측이 결정하게 됩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죠.

하지만 경매는 '수요자' 중심의 시장입니다. 재미있는 건, 경매에서는 특정 작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 두 명이라고 하더라도 이 두 사람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얼마나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 가격이 '사는 사람 마음'이라고 해도, 작품을 팔 때 경매 '추정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있습니다. 완성도는 기본이고요, 작품과 작가의 미술사적 가치, 희소성, 누가 소장해 온 작품인지를 말하는 '소장 이력' 등이 대표적입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 '토끼'는 모두 4개가 만들어졌는데, 이번에 경매에 나온 작품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개인'이 소장한 작품으로는 유일한 버전입니다. 미국의 출판 재벌 'S.I. 뉴하우스 주니어'가 2017년 사망할 때까지 소장했었는데, 그의 사망 후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그만큼, 같은 작품이 다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적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희소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작가 ‘제프 쿤스’,출처:게티이미지작가 ‘제프 쿤스’,출처:게티이미지

'앤디 워홀을 잇는 거장' VS '기업인'...엇갈리는 평가

그렇다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인 '미술사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제프 쿤스'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요?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데이비드 호크니 이전에 '생존 최고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만 해도 일단 예사로운 인물은 아닙니다.

작품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나온 평이긴 하지만,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취급하면서 예술시장의 맥을 정확히 꿰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경매사, '크리스티'가 내놓은 평가를 보겠습니다. '토끼'는 "20세기 예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딱딱하고 서늘한 외관이지만 어린 시절의 시각적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고 했습니다.

먼저, 크리스티는 왜 이 작품을 "20세기 예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한 걸까요? 한 작가의 작품이 '믿을만한지'에 대한 본인의 '직관'을 믿을 수 없을 때 찾아봐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작가의 작품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의 작품들을 걸어놓고 관객을 맞이하는 곳만은 아닙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고, 그걸 통해서 미술사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위치를 재정립하는, 생각보다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201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제프 쿤스 전시.출처:게티이미지201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제프 쿤스 전시.출처:게티이미지

이런 점에서 제프 쿤스는 '기성 미술계'의 평가를 거친 검증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뉴욕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제프 쿤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석 달간 관람객 26만 명이 찾으면서, 휘트니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면서, 1992년 '메이드 인 헤븐'이라는 작품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제프 쿤스'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계기가 됐습니다.

제프 쿤스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들을 직접 접하면 가장 먼저, 많이 나오는 반응은 '귀엽고, 독특하다' 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미지들을 그 이미지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토끼'를 예로 들면, 제프 쿤스는 익히 알고 있던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토끼의 '공감각'을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해체합니다. 하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감각을 찬찬히 마주하다 보면, 토끼 같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에 다가가게 하는 것 같은 방식입니다. 그는 2007년 이후 주로 이런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쿤스의 작품 제작 방식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합니다. 그는 작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작가 자신은 작품의 재료, 콘셉트 등만 정합니다. 제작은 전문가들이 합니다. 의도대로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작가가 맡는 거죠. 그러니까, 쿤스에게 중요한 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투여된 작가의 '혼'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쿤스가 예술가이기보다 '비즈니스맨'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혹시, "이 사람 '앤디 워홀'이랑 비슷한데?" 하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네, 쿤스의 행보는 종종 '앤디 워홀'의 후예라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앤디 워홀은 1960년대 수프 깡통이나 콜라병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대상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팩토리'라고 불리던 작업실에서 또 다른 전문가들이 '공장장' 워홀의 지시에 따라 작품을 찍어내면서,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뒤흔든 인물이죠.

좌/마르셀 뒤샹 ‘변기’, 우/앤디 워홀 ‘캠벨 수프 캔’좌/마르셀 뒤샹 ‘변기’, 우/앤디 워홀 ‘캠벨 수프 캔’

하지만 정작 쿤스 본인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마르셀 뒤샹'이라고 얘기합니다. 2018년 1월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쿤스는 "어떤 다른 작가들보다 '앤디 워홀'을 존경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마르셜 뒤샹'까지 내 작품의 고리를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뒤샹은 1917년 변기를 뒤집어 놓고 '파운틴(우물)'이라고 쓴 다음 전시 작품으로 내놓았었죠. 작가가 직접 공들여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라는 기존 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쿤스의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을 '레디 메이드(ready made)' 사물에 대한 예술의 새로운 시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억 원짜리 작품'은 미술 시장의 거품일까?

지난해 세계 미술 시장의 전체 거래 규모는 674억 달러, 우리 돈 76조 원 규모입니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와 '아트바젤'이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기반을 둔 수치입니다. 전년 대비 7% 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술 시장에 '큰 손'들의 돈이 몰린다는 얘기입니다.

이쯤에서 처음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던, 그러나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할 것만 같던 질문을 다시 던져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스테인리스 토끼 조각이 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거야?"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낙찰자인 므누신 장관의 아버지가 알고 있을, 이 작품의 최종 소장자에게 들어야 합니다.

경매 시장의 속성을 앞에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작품의 가격과 '작품성'은 정확히 비례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작품을 '소장'하게 되는 입장에서 '작품성' 이란,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스타성,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 작품의 완성도와 희소성과 같이 객관적인 지표에서 읽히는 '상품성' 너머에 소장가의 마음을 뒤흔든 '예술적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들을 수 있다면, 날 선 질문을 던졌던 마음이 조금은 겸연쩍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예술은 '비즈니스'입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에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비즈니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죠. 수억, 수십억짜리 작품을 사고 위안보다는 '불안'을 느낄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예술은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을 찾아가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또, 그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작품에 담긴 새로운 생각, 기쁨과 슬픔, 치유와 화해 같은 예술적 언어에 공감하는 과정일 겁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 작품'의 가치를 굳이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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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돋보기] ‘천억 원 짜리 조각’의 탄생, “나만 이해 못 하는 거야?”
    • 입력 2019-05-18 09: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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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 ‘토끼(1986년)’.출처:로이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의 탄생...제프 쿤스의 '토끼'

언뜻 보면 놀이공원에서 파는 알루미늄 풍선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감상을 함부로 쏟아내는 건 '예술에 문외한'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아주 도전적인 언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 '제프 쿤스'가 1986년에 만든 약 1m 크기의 이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이 조각상은 이달 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9,110만 달러, 우리 돈으로는 약 1,084억 원에 낙찰된 작품입니다. 낙찰과 동시에 작가인 제프 쿤스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반열에 다시 올려놓은 화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경매 전까지 '가장 비싼 생존 작가' 타이틀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작품이 전시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역시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9,030만 달러에 낙찰됐었는데, 이 기록을 불과 6개월여 만에 갈아치운 겁니다. 재미있는 건, 호크니 전 경매 낙찰가 최고가를 기록한 생존 작가도 제프 쿤스 였다는 겁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 '풍선 개'는 2013년에 5,840만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천억 원'에 공개 낙찰받은 사람...'므누신' 누구일까?

여기까지 읽어도 "나는 여전히 놀이동산 풍선이랑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주장을 굽히고 싶지 않다면, 이런 질문도 분명히 하고 싶으실 겁니다. "아니, 그런데 이걸 왜 천만 원도 아니고, 천억 원이나 주고 사는 거지?"라는 질문입니다. 이 작품의 원소유주는 1992년에 백만 달러, 우리 돈 12억 원 정도에 작품을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 경매에 내놨습니다. 경매를 시작할 때 경매 회사는 작품의 '추정가'라는 걸 매깁니다. 경매 시작 가격을 결정하고, 작품의 가치를 따져 봤을 때 최소 얼마에서 최대 얼마 정도까지에 팔릴지 예상한 가격인데요. '토끼'의 추정가는 5,000만 달러에서 7,000만 달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이 9,110만 달러에 팔렸다는 건, 이 작품을 사겠다고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호가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작품을 낙찰받은 사람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아버지인 '로버트 므누신'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계에서 일하다가 은퇴 후에는 '아트 딜러'러 활동하고 있습니다. 므누신은 경매장 맨 앞줄에 앉아서 직접 입찰에 나섰는데요. 보통 경매사에서는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도 누가 낙찰을 받았는지 알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이번 작품을 므누신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지게 된 건, 그가 직접 경매장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므누신이 '될성싶은 작가'를 키우고, 고객과 작품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아트 딜러'라는 점으로 볼 때, 실제 이 작품에 천억 원 넘는 돈을 지불한 사람은 또 다른 미술계의 '큰 손'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티’ 경매 장면.출처:게티이미지
예술 작품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지나?

경매 시장을 미술계에서는 보통 '2차 시장'이라고 말합니다. 미술작품이 거래되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인데, 1차 유통 경로는 '갤러리'라고 부르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를 동시에 하는 곳입니다. 보통 이곳에서 미술 시장의 소비자들은 작가에게서 작품을 직접 구매하게 됩니다. 갤러리는 중간에서 거래를 보증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소비자가 지불한 미술품의 값은 '작가'에게 바로 지불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경매' 시장인데요. 경매 시장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그러니까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되팔기 위해 내놓는 곳입니다. 그래서 '2차 시장'이 되는 건데요.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곳들이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의 경매 시장은 '서울옥션', 과 'K옥션'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가격을 갱신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 '크리스티'나 '소더비'같은 경매 회사의 이름을 많이 듣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1차 유통시장인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사적인 거래로, 거의 공개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가격은 작가와 갤러리 측이 결정하게 됩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죠.

하지만 경매는 '수요자' 중심의 시장입니다. 재미있는 건, 경매에서는 특정 작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 두 명이라고 하더라도 이 두 사람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얼마나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 가격이 '사는 사람 마음'이라고 해도, 작품을 팔 때 경매 '추정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있습니다. 완성도는 기본이고요, 작품과 작가의 미술사적 가치, 희소성, 누가 소장해 온 작품인지를 말하는 '소장 이력' 등이 대표적입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 '토끼'는 모두 4개가 만들어졌는데, 이번에 경매에 나온 작품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개인'이 소장한 작품으로는 유일한 버전입니다. 미국의 출판 재벌 'S.I. 뉴하우스 주니어'가 2017년 사망할 때까지 소장했었는데, 그의 사망 후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그만큼, 같은 작품이 다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적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희소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작가 ‘제프 쿤스’,출처:게티이미지
'앤디 워홀을 잇는 거장' VS '기업인'...엇갈리는 평가

그렇다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인 '미술사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제프 쿤스'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까요?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데이비드 호크니 이전에 '생존 최고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만 해도 일단 예사로운 인물은 아닙니다.

작품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나온 평이긴 하지만,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취급하면서 예술시장의 맥을 정확히 꿰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경매사, '크리스티'가 내놓은 평가를 보겠습니다. '토끼'는 "20세기 예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딱딱하고 서늘한 외관이지만 어린 시절의 시각적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고 했습니다.

먼저, 크리스티는 왜 이 작품을 "20세기 예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한 걸까요? 한 작가의 작품이 '믿을만한지'에 대한 본인의 '직관'을 믿을 수 없을 때 찾아봐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작가의 작품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의 작품들을 걸어놓고 관객을 맞이하는 곳만은 아닙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고, 그걸 통해서 미술사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위치를 재정립하는, 생각보다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201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제프 쿤스 전시.출처:게티이미지
이런 점에서 제프 쿤스는 '기성 미술계'의 평가를 거친 검증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뉴욕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제프 쿤스'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석 달간 관람객 26만 명이 찾으면서, 휘트니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면서, 1992년 '메이드 인 헤븐'이라는 작품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제프 쿤스'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계기가 됐습니다.

제프 쿤스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들을 직접 접하면 가장 먼저, 많이 나오는 반응은 '귀엽고, 독특하다' 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미지들을 그 이미지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토끼'를 예로 들면, 제프 쿤스는 익히 알고 있던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토끼의 '공감각'을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해체합니다. 하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감각을 찬찬히 마주하다 보면, 토끼 같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에 다가가게 하는 것 같은 방식입니다. 그는 2007년 이후 주로 이런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쿤스의 작품 제작 방식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합니다. 그는 작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작가 자신은 작품의 재료, 콘셉트 등만 정합니다. 제작은 전문가들이 합니다. 의도대로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작가가 맡는 거죠. 그러니까, 쿤스에게 중요한 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투여된 작가의 '혼'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쿤스가 예술가이기보다 '비즈니스맨'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혹시, "이 사람 '앤디 워홀'이랑 비슷한데?" 하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네, 쿤스의 행보는 종종 '앤디 워홀'의 후예라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앤디 워홀은 1960년대 수프 깡통이나 콜라병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대상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팩토리'라고 불리던 작업실에서 또 다른 전문가들이 '공장장' 워홀의 지시에 따라 작품을 찍어내면서,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뒤흔든 인물이죠.

좌/마르셀 뒤샹 ‘변기’, 우/앤디 워홀 ‘캠벨 수프 캔’
하지만 정작 쿤스 본인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마르셀 뒤샹'이라고 얘기합니다. 2018년 1월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쿤스는 "어떤 다른 작가들보다 '앤디 워홀'을 존경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마르셜 뒤샹'까지 내 작품의 고리를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뒤샹은 1917년 변기를 뒤집어 놓고 '파운틴(우물)'이라고 쓴 다음 전시 작품으로 내놓았었죠. 작가가 직접 공들여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라는 기존 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쿤스의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을 '레디 메이드(ready made)' 사물에 대한 예술의 새로운 시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억 원짜리 작품'은 미술 시장의 거품일까?

지난해 세계 미술 시장의 전체 거래 규모는 674억 달러, 우리 돈 76조 원 규모입니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와 '아트바젤'이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기반을 둔 수치입니다. 전년 대비 7% 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술 시장에 '큰 손'들의 돈이 몰린다는 얘기입니다.

이쯤에서 처음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던, 그러나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할 것만 같던 질문을 다시 던져 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스테인리스 토끼 조각이 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거야?"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낙찰자인 므누신 장관의 아버지가 알고 있을, 이 작품의 최종 소장자에게 들어야 합니다.

경매 시장의 속성을 앞에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작품의 가격과 '작품성'은 정확히 비례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작품을 '소장'하게 되는 입장에서 '작품성' 이란,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스타성,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 작품의 완성도와 희소성과 같이 객관적인 지표에서 읽히는 '상품성' 너머에 소장가의 마음을 뒤흔든 '예술적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들을 수 있다면, 날 선 질문을 던졌던 마음이 조금은 겸연쩍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예술은 '비즈니스'입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에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비즈니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죠. 수억, 수십억짜리 작품을 사고 위안보다는 '불안'을 느낄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경우 예술은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을 찾아가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또, 그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작품에 담긴 새로운 생각, 기쁨과 슬픔, 치유와 화해 같은 예술적 언어에 공감하는 과정일 겁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예술 작품'의 가치를 굳이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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