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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한한령’ 사드 보복하며 ‘자유무역 수호’ 외치는 중국의 이중성
입력 2019.05.18 (19:55) 특파원 리포트
시진핑 앞에서 노래 한 곡 했다고 '한한령(限韓令)'이 해제될까?

2년 전 필자가 중국에 부임했을 때부터 이미 그랬다. 중국에서 아주 작은 행사라도 우리나라 연예인이 나오게 되면 여지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한한령 해제 신호탄?", "한한령 해제되나?", "한한령 해제 청신호!", "한한령 해제 기대감 쑥쑥"... 하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다. 섣부른 보도가 나가고 아무 변화가 없고 우리 자존심에 상처만 깊어져 왔을 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진핑 주석 앞에서 가수 비가 노래 한 곡 했다고 한한령(限韓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당국이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문명 대화대회 개막 공연에 가수 비를 초대했지만, 이를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비관세 장벽으로 굳어져 가는 한한령

한한령, 한류 금지령은 2016년 7월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이에 반발한 중국의 치졸한 복수로만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또 명문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분명 업계 전반에 아주 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가 분명하다.

첫째, 영화 분야의 스크린 쿼터 강화다. 과거 한한령 이전에도 우리나라 영화는 일 년에 고작 한 두 편 정도만이 중국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16년 말을 기점으로 아예 사라졌다. 둘째는 게임분야. 우리나라 게임은 2017년 3월 이후로 판매 허가를 한 건도 못 받고 있다. 올해 초에 미국과 일본 게임에 대한 판매 허가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 게임은 여전히 막혀있다. 셋째, 음악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음원 서비스는 되고 있지만, 유료 공연 허가가 꽉 막혀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제한이 가장 심해지고 있는 분야다. 이제는 중국인이 감독을 맡고 주인공도 중국인이어야 하고, 제작 스태프의 80% 이상은 중국인이어야만 한다.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한한령은 이미 일종의 자국 문화 산업 보호 육성을 위한 비관세 장벽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행분야의 한한령까지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한한령 전에는 한일령(限日令), 한미령(限美令)

애초부터 사드는 구실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한령의 전위대 역할을 해온 중국 국가신문출판 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의 지난 행적을 보면 외국 콘텐츠에 대한 각종 규제는 오래전부터 확대돼온 것을 파악할 수 있다. 2007년에는 타이완과 홍콩 출신 방송 진행자들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는 중국 TV 황금 시간대에 외국 영화나 드라마 상영을 금지했다. 2015년에는 한국이나 미국 프로그램 틀을 모방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지침을 하달했다. 2016년에서 2017년 본격적인 한한령을 우리가 인식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한령은 진행돼 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류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중국 내에서 차근차근 진행됐던 한일령과 한미령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일령에서 시작돼 한미령으로, 한한령으로, 중국의 외국 콘텐츠 배척(?)의 역사는 의외로 유구하다.

여전히 경쟁력 있는 한류 콘텐츠

너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만 합리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선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사상통제도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우리 콘텐츠가 여전히 중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중국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화제가 됐다. 바이두와 웨이보의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오르내릴 정도로 중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많은 중국인은 한쥐TV(韩剧TV) 등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는 앱 서비스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 방송들도 중국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포맷을 여전히 베끼고 있는 것만 봐도 여전히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은 유효하다.

우리 정부 '한한령 철폐하라' 중국에 강력히 요구해야

이렇게 자국 문화 산업 보호를 위해 무자비한 장벽을 치고 있는 중국이 최근 '세계 자유무역 수호'를 부르짖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중국 상무부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에 맞설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씁쓸하다. 아무리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중국 사람들이라지만 도대체 이런 이중성(二重性)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과 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투자분야 협상이 진행 중이다. 6월에 서울에서 회의가 예정돼 있다.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문화 콘텐츠 분야, 한한령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말에 시작한 실무협상은 아직 제대로 된 문안 하나 교환하지 못했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과 맞서 싸우는 중국이 경황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정부는 당당하고 강력하게 요구하라. "당신들이 미국에 맞서 수호하겠다는 그 '자유무역 질서 수호'를 한국에도 좀 적용하라"고 말이다.
  • [특파원리포트] ‘한한령’ 사드 보복하며 ‘자유무역 수호’ 외치는 중국의 이중성
    • 입력 2019-05-18 19:55:44
    특파원 리포트
시진핑 앞에서 노래 한 곡 했다고 '한한령(限韓令)'이 해제될까?

2년 전 필자가 중국에 부임했을 때부터 이미 그랬다. 중국에서 아주 작은 행사라도 우리나라 연예인이 나오게 되면 여지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한한령 해제 신호탄?", "한한령 해제되나?", "한한령 해제 청신호!", "한한령 해제 기대감 쑥쑥"... 하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다. 섣부른 보도가 나가고 아무 변화가 없고 우리 자존심에 상처만 깊어져 왔을 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진핑 주석 앞에서 가수 비가 노래 한 곡 했다고 한한령(限韓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당국이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문명 대화대회 개막 공연에 가수 비를 초대했지만, 이를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비관세 장벽으로 굳어져 가는 한한령

한한령, 한류 금지령은 2016년 7월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이에 반발한 중국의 치졸한 복수로만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또 명문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분명 업계 전반에 아주 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가 분명하다.

첫째, 영화 분야의 스크린 쿼터 강화다. 과거 한한령 이전에도 우리나라 영화는 일 년에 고작 한 두 편 정도만이 중국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16년 말을 기점으로 아예 사라졌다. 둘째는 게임분야. 우리나라 게임은 2017년 3월 이후로 판매 허가를 한 건도 못 받고 있다. 올해 초에 미국과 일본 게임에 대한 판매 허가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 게임은 여전히 막혀있다. 셋째, 음악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음원 서비스는 되고 있지만, 유료 공연 허가가 꽉 막혀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제한이 가장 심해지고 있는 분야다. 이제는 중국인이 감독을 맡고 주인공도 중국인이어야 하고, 제작 스태프의 80% 이상은 중국인이어야만 한다.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한한령은 이미 일종의 자국 문화 산업 보호 육성을 위한 비관세 장벽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행분야의 한한령까지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한한령 전에는 한일령(限日令), 한미령(限美令)

애초부터 사드는 구실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한령의 전위대 역할을 해온 중국 국가신문출판 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의 지난 행적을 보면 외국 콘텐츠에 대한 각종 규제는 오래전부터 확대돼온 것을 파악할 수 있다. 2007년에는 타이완과 홍콩 출신 방송 진행자들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는 중국 TV 황금 시간대에 외국 영화나 드라마 상영을 금지했다. 2015년에는 한국이나 미국 프로그램 틀을 모방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지침을 하달했다. 2016년에서 2017년 본격적인 한한령을 우리가 인식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한령은 진행돼 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류 콘텐츠가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중국 내에서 차근차근 진행됐던 한일령과 한미령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일령에서 시작돼 한미령으로, 한한령으로, 중국의 외국 콘텐츠 배척(?)의 역사는 의외로 유구하다.

여전히 경쟁력 있는 한류 콘텐츠

너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한 상태에서만 합리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선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사상통제도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우리 콘텐츠가 여전히 중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중국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화제가 됐다. 바이두와 웨이보의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오르내릴 정도로 중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많은 중국인은 한쥐TV(韩剧TV) 등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는 앱 서비스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 방송들도 중국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포맷을 여전히 베끼고 있는 것만 봐도 여전히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은 유효하다.

우리 정부 '한한령 철폐하라' 중국에 강력히 요구해야

이렇게 자국 문화 산업 보호를 위해 무자비한 장벽을 치고 있는 중국이 최근 '세계 자유무역 수호'를 부르짖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중국 상무부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에 맞설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씁쓸하다. 아무리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중국 사람들이라지만 도대체 이런 이중성(二重性)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과 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투자분야 협상이 진행 중이다. 6월에 서울에서 회의가 예정돼 있다.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문화 콘텐츠 분야, 한한령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말에 시작한 실무협상은 아직 제대로 된 문안 하나 교환하지 못했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과 맞서 싸우는 중국이 경황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정부는 당당하고 강력하게 요구하라. "당신들이 미국에 맞서 수호하겠다는 그 '자유무역 질서 수호'를 한국에도 좀 적용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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