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죠”

입력 2019.05.21 (16:24) 수정 2019.05.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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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다 뚫려 있으니까 오는 거죠. 여기는 편입 성지예요, 완전히 성지인 거죠. 썩었어요. 아무도 제보를 안 하고 계속 그래 왔어요, 계속." (졸업생 1)

"편입 비리도 꼭 다뤄주세요. 걔 말고도 더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편입생 들어오면 누구 아들딸일까부터 생각납니다." (졸업생 2)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암암리에 이 일이 지속돼 왔다는 것, 재학생들끼리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다는 것입니다." (재학생)


지난 16일 KBS 뉴스9는 서울대 이병천 교수의 자녀가 2015년 강원대 수의학과에 일반편입하는 과정에서 부정청탁이 있었고, 면접관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이 교수와 같은 학교 같은 과의 동기거나 후배, 논문 공저자 등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이름만 하나 기억해 줘요, 이○○라고”…부정 편입학 의혹도

보도 이후 기자에게 3통의 익명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수의학과 커뮤니티가 워낙 좁은 탓에 제보한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하면서도 더는 묻어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 어렵게 연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수의학과 편입학

취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국내 대학 중 수의대가 설치된 곳은 10곳(국립대 9곳, 사립대 1곳)에 불과할 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학별로 입학생 숫자에는 차이가 있지만, 수시·정시를 합쳐 국내 수의대의 한 해 입학생은 5백여 명 남짓입니다.

수의대 신입학에는 떨어졌더라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수의사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편입학뿐입니다. 편입학이 가능한 인원은 국내 대학을 모두 합쳐 한 해 20~30명 수준입니다. 이번에 취재했던 강원대 수의학과 일반편입학 역시 이 대학 다른 전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경쟁률만 보더라도 수의사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수십 명의 경쟁자 중에서 살아남아야만 가능합니다. 만점에 가까운 높은 공인 영어점수는 물론이고 전적(前籍)대학 성적, 특히 면접까지 모두 완벽하게 이뤄내야만 편입학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교수 자녀에겐 너무나 쉬운 편입학?

하지만 교수 자녀들에게 편입학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강원대 수의학과 졸업생·재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 대학 한 졸업생은 "강원대 수의학과는 교수 자녀의 편입 성지, 낙하산으로 안 온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라면서 강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또 다른 졸업생은 "동기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보도 이후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보도에 나온)이병천 교수의 아들 말고도 더 있으니 편입 비리를 꼭 다뤄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이병천 교수의 자녀뿐만 아니라 현재 강원대 수의학과 소속 교수 2명의 자녀가 이 학과에 편입학해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것으로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한 재학생은 "편입을 담당할 교수에게 청탁할만한 위치에 있는 수의사의 아들딸들이 몇몇 더 있다"면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암암리에 이 일이 지속돼 왔다는 것, 재학생들끼리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다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스를 통해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 작은 한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대, 실태조사 미적…심각성 인식 못 해

보도 후 해당 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강원대 대학측의 반응은 미지근해 보입니다. 강원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해당 교수들에 대한 조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사실관계 정도만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의학과 역시 시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만 물어봤을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의학과 편입학은 수의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면접이 중요한 관문이지만 현재 편입학 면접은 블라인드 면접이 아닙니다. 면접을 맡은 교수에게 지원자의 이름을 비롯한 기본 인적사항, 전적 대학 정보 등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면접을 맡은 교수의 양심에 따라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특정 지원자가 자신의 배경으로 인해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면 이는 분명한 반칙입니다.

그런 만큼 공정하면서도 투명한 편입학을 위해 면접제도 개선이 이뤄져야만 합니다. 현재와 같은 면접이 계속된다면 떨어진 학생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할 것이고, 실력이 우수해 합격한 학생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수의사의 꿈을 접습니다."


2015년 2월. 수의학과 편입학을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강원대 수의학과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떨어졌다는 탈락 후기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수의사의 꿈을 접겠다고 말합니다.

2015년은 이병천 교수의 자녀가 편입에 성공했던 때입니다. 면접은 '복불복'이라며 자신을 탓하고, 꿈을 접은 지원자에게 강원대와 교육부는 제대로 된 편입학 실태조사를 통해 답변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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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죠”
    • 입력 2019-05-21 16:24:19
    • 수정2019-05-21 16:25:23
    취재후·사건후
"여기가 다 뚫려 있으니까 오는 거죠. 여기는 편입 성지예요, 완전히 성지인 거죠. 썩었어요. 아무도 제보를 안 하고 계속 그래 왔어요, 계속." (졸업생 1)

"편입 비리도 꼭 다뤄주세요. 걔 말고도 더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편입생 들어오면 누구 아들딸일까부터 생각납니다." (졸업생 2)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암암리에 이 일이 지속돼 왔다는 것, 재학생들끼리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다는 것입니다." (재학생)


지난 16일 KBS 뉴스9는 서울대 이병천 교수의 자녀가 2015년 강원대 수의학과에 일반편입하는 과정에서 부정청탁이 있었고, 면접관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이 교수와 같은 학교 같은 과의 동기거나 후배, 논문 공저자 등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이름만 하나 기억해 줘요, 이○○라고”…부정 편입학 의혹도

보도 이후 기자에게 3통의 익명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수의학과 커뮤니티가 워낙 좁은 탓에 제보한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하면서도 더는 묻어둬선 안 된다고 생각해 어렵게 연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수의학과 편입학

취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국내 대학 중 수의대가 설치된 곳은 10곳(국립대 9곳, 사립대 1곳)에 불과할 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학별로 입학생 숫자에는 차이가 있지만, 수시·정시를 합쳐 국내 수의대의 한 해 입학생은 5백여 명 남짓입니다.

수의대 신입학에는 떨어졌더라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수의사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편입학뿐입니다. 편입학이 가능한 인원은 국내 대학을 모두 합쳐 한 해 20~30명 수준입니다. 이번에 취재했던 강원대 수의학과 일반편입학 역시 이 대학 다른 전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경쟁률만 보더라도 수의사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수십 명의 경쟁자 중에서 살아남아야만 가능합니다. 만점에 가까운 높은 공인 영어점수는 물론이고 전적(前籍)대학 성적, 특히 면접까지 모두 완벽하게 이뤄내야만 편입학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교수 자녀에겐 너무나 쉬운 편입학?

하지만 교수 자녀들에게 편입학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강원대 수의학과 졸업생·재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 대학 한 졸업생은 "강원대 수의학과는 교수 자녀의 편입 성지, 낙하산으로 안 온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라면서 강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또 다른 졸업생은 "동기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보도 이후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보도에 나온)이병천 교수의 아들 말고도 더 있으니 편입 비리를 꼭 다뤄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이병천 교수의 자녀뿐만 아니라 현재 강원대 수의학과 소속 교수 2명의 자녀가 이 학과에 편입학해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것으로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한 재학생은 "편입을 담당할 교수에게 청탁할만한 위치에 있는 수의사의 아들딸들이 몇몇 더 있다"면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암암리에 이 일이 지속돼 왔다는 것, 재학생들끼리 '올해는 어떤 교수의 아들딸이 편입할까'가 연초의 화제였다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스를 통해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 작은 한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강원대, 실태조사 미적…심각성 인식 못 해

보도 후 해당 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강원대 대학측의 반응은 미지근해 보입니다. 강원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해당 교수들에 대한 조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사실관계 정도만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의학과 역시 시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을 상대로 사실관계만 물어봤을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의학과 편입학은 수의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면접이 중요한 관문이지만 현재 편입학 면접은 블라인드 면접이 아닙니다. 면접을 맡은 교수에게 지원자의 이름을 비롯한 기본 인적사항, 전적 대학 정보 등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면접을 맡은 교수의 양심에 따라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특정 지원자가 자신의 배경으로 인해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면 이는 분명한 반칙입니다.

그런 만큼 공정하면서도 투명한 편입학을 위해 면접제도 개선이 이뤄져야만 합니다. 현재와 같은 면접이 계속된다면 떨어진 학생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할 것이고, 실력이 우수해 합격한 학생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수의사의 꿈을 접습니다."


2015년 2월. 수의학과 편입학을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강원대 수의학과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떨어졌다는 탈락 후기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수의사의 꿈을 접겠다고 말합니다.

2015년은 이병천 교수의 자녀가 편입에 성공했던 때입니다. 면접은 '복불복'이라며 자신을 탓하고, 꿈을 접은 지원자에게 강원대와 교육부는 제대로 된 편입학 실태조사를 통해 답변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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