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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아니어서 벤처인증 탈락?…여전한 규제장벽에 떠나는 신산업
입력 2019.05.22 (17:14) 취재K
"이공계 전공자 아니라고 벤처인증 안 된대요."

#사례1. 인사 노무 업체 대표 A 씨는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둔 IT 업종으로 전환한 뒤 기술보증기금에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했습니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면 각종 정책자금을 지원받거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어서 점수가 모자란다"는 답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사례 2. 신생 IT 업체 대표 B 씨도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했지만, 담당자로부터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거절당했습니다. B 씨는 결국 관련 학위를 취득한 끝에 인증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오늘(22일) 발표한 '경쟁국보다 불리한 신산업 규제사례'에 나온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신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대한상의는 의료와 ICT, 공유경제, 금융, 유통물류 등 9개 분야의 대표사례 20여 개를 분석해 '3가지 덫'을 찾아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무원의 소극행정'입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벤처기업 인증을 받기 어려운 것은 평가가 쉽다는 이유로 학력과 전공에 따라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기술보증기금은 "IT업체의 경우 전기공학 등 관련 전공자만 학력과 전공 항목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서 "벤처기업 인증을 위한 평가 항목은 18개나 되기 때문에 다른 부문의 점수가 높으면 인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신산업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허용"

상의가 밝힌 또 하나의 덫은, 정해진 것 외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 규제(positive regulation)'입니다. DTC(Direct-to-Consumer: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검사기관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 항목 규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국내 한 DTC 업체는 위암과 폐암, 간암 등 8대 암에 고혈압과 치매 등 12개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했지만, 상용화할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DTC 검사를 통한 암 진단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회사는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고 연구소를 일본과 싱가포르에 설립했습니다.

김정욱 KDI 규제센터장은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DTC)검사항목 확대를 위한 규제 특례를 허용했지만,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선 상당히 부족하다"면서 "심사를 통해 승인받은 사업만 가능하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의는 "한국에서 DTC 검사는 25개 항목만 가능한 반면 일본은 300개, 영국과 중국은 항목에 제한이 없다"면서 "경쟁국이 규제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모든 규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도심 숙박공유 업도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있습니다. 한국에서 내국인 대상 도심 숙박공유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있으며, 한옥체험 업과 농어촌민박업 등 일부 형태만 허용되어 있습니다. 180일 이내에서 내국인 대상 숙박 공유업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관련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산업 불허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한국에서 신산업을 가로막는 무엇보다 큰 장벽은 무엇일까.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규 사업자는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운송서비스 업종이 대표적입니다. 안경이나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제한된 것도 관련 협회의 반대 이유가 큽니다. 검안 절차 없는 온라인 판매가 국민 눈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대한상의 조사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은 안경 온라인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이런 규제가 소비자들을 위한 것일까요? 국내 렌즈값은 해외보다 최대 84%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입규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높을까.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이 발표한 2018년 한국의 진입규제 자유도는 54개국 가운데 38위였습니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이집트보다 규제 수준이 높았습니다. 2017년에는 49위였으니 자유도가 높아지긴 했습니다만, 경쟁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하위권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정영석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기득권과 포지티브 규제, 소극행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 아닌 혁신을 규제하는 데 그칠 것"이라며 "과감함 규제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폭넓게 인정하면 택시 업계 등 기존 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택시 기사 수천 명이 모여 집회와 시위를 열고 생존권 사수를 외칩니다. 숙박업, 안경 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수입이 줄어드니 살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정부나 정치인들도 기존 산업을 영위하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또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 산업만으로는 우리 경제가 더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활로를 찾기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 이공계 아니어서 벤처인증 탈락?…여전한 규제장벽에 떠나는 신산업
    • 입력 2019-05-22 17:14:50
    취재K
"이공계 전공자 아니라고 벤처인증 안 된대요."

#사례1. 인사 노무 업체 대표 A 씨는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둔 IT 업종으로 전환한 뒤 기술보증기금에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했습니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면 각종 정책자금을 지원받거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어서 점수가 모자란다"는 답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사례 2. 신생 IT 업체 대표 B 씨도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했지만, 담당자로부터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거절당했습니다. B 씨는 결국 관련 학위를 취득한 끝에 인증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오늘(22일) 발표한 '경쟁국보다 불리한 신산업 규제사례'에 나온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신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대한상의는 의료와 ICT, 공유경제, 금융, 유통물류 등 9개 분야의 대표사례 20여 개를 분석해 '3가지 덫'을 찾아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무원의 소극행정'입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벤처기업 인증을 받기 어려운 것은 평가가 쉽다는 이유로 학력과 전공에 따라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기술보증기금은 "IT업체의 경우 전기공학 등 관련 전공자만 학력과 전공 항목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서 "벤처기업 인증을 위한 평가 항목은 18개나 되기 때문에 다른 부문의 점수가 높으면 인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신산업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허용"

상의가 밝힌 또 하나의 덫은, 정해진 것 외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 규제(positive regulation)'입니다. DTC(Direct-to-Consumer: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검사기관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 항목 규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국내 한 DTC 업체는 위암과 폐암, 간암 등 8대 암에 고혈압과 치매 등 12개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했지만, 상용화할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DTC 검사를 통한 암 진단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회사는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고 연구소를 일본과 싱가포르에 설립했습니다.

김정욱 KDI 규제센터장은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DTC)검사항목 확대를 위한 규제 특례를 허용했지만,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선 상당히 부족하다"면서 "심사를 통해 승인받은 사업만 가능하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의는 "한국에서 DTC 검사는 25개 항목만 가능한 반면 일본은 300개, 영국과 중국은 항목에 제한이 없다"면서 "경쟁국이 규제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모든 규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도심 숙박공유 업도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있습니다. 한국에서 내국인 대상 도심 숙박공유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있으며, 한옥체험 업과 농어촌민박업 등 일부 형태만 허용되어 있습니다. 180일 이내에서 내국인 대상 숙박 공유업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관련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산업 불허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한국에서 신산업을 가로막는 무엇보다 큰 장벽은 무엇일까.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규 사업자는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습니다. 운송서비스 업종이 대표적입니다. 안경이나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제한된 것도 관련 협회의 반대 이유가 큽니다. 검안 절차 없는 온라인 판매가 국민 눈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대한상의 조사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은 안경 온라인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이런 규제가 소비자들을 위한 것일까요? 국내 렌즈값은 해외보다 최대 84%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입규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높을까.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이 발표한 2018년 한국의 진입규제 자유도는 54개국 가운데 38위였습니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이집트보다 규제 수준이 높았습니다. 2017년에는 49위였으니 자유도가 높아지긴 했습니다만, 경쟁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하위권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정영석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기득권과 포지티브 규제, 소극행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 아닌 혁신을 규제하는 데 그칠 것"이라며 "과감함 규제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폭넓게 인정하면 택시 업계 등 기존 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택시 기사 수천 명이 모여 집회와 시위를 열고 생존권 사수를 외칩니다. 숙박업, 안경 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수입이 줄어드니 살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편리한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정부나 정치인들도 기존 산업을 영위하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또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기존 산업만으로는 우리 경제가 더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활로를 찾기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출처:대한상공회의소출처: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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