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어떡해]④ 연기금 투자 ‘안전빵’이 최선일까?

입력 2019.05.28 (07:00) 수정 2019.05.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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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위험 대비 수익률은 '워런 버핏'급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윌리엄 샤프(William F.Sharpe) 교수가 만든 '샤프지수(Sharpe ratio)'. 각 펀드의 위험을 보정해 초과수익을 얼마나 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흔히 금융권에서 펀드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매우 유명한 지수다.


국민연금의 2004년~2017년 수익률을 바탕으로 나온 샤프지수는 1.01~1.36 수준. 위 표에서 보듯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헤서웨이'를 비롯해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등 세계 최상위 펀드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1988년 이후 지금까지 30여년 간 올린 수익금은 모두 318조 원으로 연기금 총액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과 수익률 상관관계 0...'전문성 시비' 기금운영위원회 기여도 100

팩트체크 차원에서 한가지 사실을 덧붙인다면 국민연금이 지금껏 올린 이런 수익금은 일부 언론들로부터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역할이 거의 전부였다. 카이스트 김우창 교수가 2006년~2016년 국민연금 수익률을 분석했더니, 이 기간 연기금 수익률에 대한 기여도는 대부분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하는 '전략적 자산배분'에 의한 성과로,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하는 '전술적 자산배분'은 오히려 -0.04%였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의 투자는 기금운용본부나 수많은 위탁운용사들의 전문성이 중요한 변수가 아닌 셈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이전해 전문가들이 떠나고 수익률에 비상이 걸렸다는 진단은 최소한 현재의 투자방식에서는 틀린 얘기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을 더 강화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명분, 즉 초과수익률이나 새로운 투자 방법을 구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투자의 법칙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금융에서 '위험'은 수익 '기회'

그런데 국민연금의 샤프지수가 높다고 꼭 투자를 잘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공적연금 수익률을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수익율을 목표로 투자할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위험을 얼마나 취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결정해 실행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그 기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을 한마디로 '절대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지 않아야 하는 안전한 투자'로 평가한다.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면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하겠다. 수익을 더 높이려면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속된 말로 '안전빵'을 추구하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연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 시기가 6년 늦춰진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금 보험료를 올리는 게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보험료를 한꺼번에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선 기금운용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인데 '안전빵 투자'는 초과 수익을 기대하기도 힘든 것(Low risk low return)이다.

진짜 실력은 어려울 때 나온다는데...기금운용 '보신주의' 우려

'안전하게 투자했다'라는 주장은 지극히 자명해 반론을 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금융 투자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와 백년을 사는 인간의 삶이 다르듯, 백년을 설계하는 연금이 단기투자자처럼 돈을 굴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가 생긴 뒤 20년 동안 딱 두 번, 지난해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건,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무식한 투자를 했다는 조롱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은 향후 20여년 동안 국내 주식에서 수익률을 5.8%로 예상했다. 이는 해외 유수의 운용사들이 향후 10~15년 동안 한국 주식시장 수익률로 제시한 6.6%(슈로더)와 7.5%(JP 모건)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제적으로 주식시장 수익률은 [일본 < 미국 < EU 등 기타 선진국 < 신흥국] 순이다. 한국 증시 수익률이 10년 넘게 선진국 증시보다 낮을 것이라는 예상은 국제금융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매우 보수적 전망'이란 평가도 있다.

'장기재정목표의 부재' = 갈 곳을 모르는 600조 원

국민연금이 보수적인 이유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지만 '장기재정목표가 없는 근시안적인 투자'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70년짜리 재정추계를 하면서 자산배분 전략이 고작 5년짜리라는 건 난센스다.

현재의 연기금 운용은 장기재정목표 즉 '연기금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할 것인지'라는 목표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잘 운용하자라는 추상적인 목표만 있어 보이는데, 임기가 2-3년에 불과한 의사결정권자들이 장기적인 수익보다 손실이 났을 때 쏟아질 비난 여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이 모은 돈 '600조 원'의 목표를 어느 누가 함부로 세울 수 있으랴. 구체적인 전략은 전문가의 몫이겠지만 큰 방향과 목표를 정하는 일은 국민적 합의가 없이는 힘들다. 10여년만에 시도되는 국민연금 개편과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만들어졌을 때 이 과제를 풀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금 개편이 지연 될수록 지속가능성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루빨리 '연금의 목표->기금의 목표->운용 전략'이 마련돼야 국민연금이란 제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해외투자를 더 하든, 대체투자를 늘리든, 운용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든 그런 결정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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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8 07:00:37
    • 수정2019-05-29 17: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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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위험 대비 수익률은 '워런 버핏'급

199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윌리엄 샤프(William F.Sharpe) 교수가 만든 '샤프지수(Sharpe ratio)'. 각 펀드의 위험을 보정해 초과수익을 얼마나 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흔히 금융권에서 펀드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매우 유명한 지수다.


국민연금의 2004년~2017년 수익률을 바탕으로 나온 샤프지수는 1.01~1.36 수준. 위 표에서 보듯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헤서웨이'를 비롯해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등 세계 최상위 펀드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1988년 이후 지금까지 30여년 간 올린 수익금은 모두 318조 원으로 연기금 총액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과 수익률 상관관계 0...'전문성 시비' 기금운영위원회 기여도 100

팩트체크 차원에서 한가지 사실을 덧붙인다면 국민연금이 지금껏 올린 이런 수익금은 일부 언론들로부터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역할이 거의 전부였다. 카이스트 김우창 교수가 2006년~2016년 국민연금 수익률을 분석했더니, 이 기간 연기금 수익률에 대한 기여도는 대부분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하는 '전략적 자산배분'에 의한 성과로,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하는 '전술적 자산배분'은 오히려 -0.04%였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의 투자는 기금운용본부나 수많은 위탁운용사들의 전문성이 중요한 변수가 아닌 셈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이전해 전문가들이 떠나고 수익률에 비상이 걸렸다는 진단은 최소한 현재의 투자방식에서는 틀린 얘기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을 더 강화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명분, 즉 초과수익률이나 새로운 투자 방법을 구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투자의 법칙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금융에서 '위험'은 수익 '기회'

그런데 국민연금의 샤프지수가 높다고 꼭 투자를 잘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공적연금 수익률을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수익율을 목표로 투자할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위험을 얼마나 취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결정해 실행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그 기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을 한마디로 '절대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지 않아야 하는 안전한 투자'로 평가한다.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면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하겠다. 수익을 더 높이려면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속된 말로 '안전빵'을 추구하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연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 시기가 6년 늦춰진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금 보험료를 올리는 게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보험료를 한꺼번에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선 기금운용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인데 '안전빵 투자'는 초과 수익을 기대하기도 힘든 것(Low risk low return)이다.

진짜 실력은 어려울 때 나온다는데...기금운용 '보신주의' 우려

'안전하게 투자했다'라는 주장은 지극히 자명해 반론을 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금융 투자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와 백년을 사는 인간의 삶이 다르듯, 백년을 설계하는 연금이 단기투자자처럼 돈을 굴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가 생긴 뒤 20년 동안 딱 두 번, 지난해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건,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무식한 투자를 했다는 조롱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은 향후 20여년 동안 국내 주식에서 수익률을 5.8%로 예상했다. 이는 해외 유수의 운용사들이 향후 10~15년 동안 한국 주식시장 수익률로 제시한 6.6%(슈로더)와 7.5%(JP 모건)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제적으로 주식시장 수익률은 [일본 < 미국 < EU 등 기타 선진국 < 신흥국] 순이다. 한국 증시 수익률이 10년 넘게 선진국 증시보다 낮을 것이라는 예상은 국제금융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매우 보수적 전망'이란 평가도 있다.

'장기재정목표의 부재' = 갈 곳을 모르는 600조 원

국민연금이 보수적인 이유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지만 '장기재정목표가 없는 근시안적인 투자'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70년짜리 재정추계를 하면서 자산배분 전략이 고작 5년짜리라는 건 난센스다.

현재의 연기금 운용은 장기재정목표 즉 '연기금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할 것인지'라는 목표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잘 운용하자라는 추상적인 목표만 있어 보이는데, 임기가 2-3년에 불과한 의사결정권자들이 장기적인 수익보다 손실이 났을 때 쏟아질 비난 여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이 모은 돈 '600조 원'의 목표를 어느 누가 함부로 세울 수 있으랴. 구체적인 전략은 전문가의 몫이겠지만 큰 방향과 목표를 정하는 일은 국민적 합의가 없이는 힘들다. 10여년만에 시도되는 국민연금 개편과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만들어졌을 때 이 과제를 풀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금 개편이 지연 될수록 지속가능성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루빨리 '연금의 목표->기금의 목표->운용 전략'이 마련돼야 국민연금이란 제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해외투자를 더 하든, 대체투자를 늘리든, 운용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든 그런 결정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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