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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 전대법관 격정토로] “세상사의 이치로 사리 가려달라”
입력 2019.05.30 (11:27) 수정 2019.05.31 (11:18) 취재K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29일 첫 정식 재판에서 이번 재판에 대한 입장과 소회를 작심하고 밝혔다. 전날(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발언 전문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엔 박 전 처장의 진술을 방어권 차원에서 전문을 소개한다. 2014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처장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혐의로 2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고, 이후 불구속기소 됐다. 발언 전문은 실시간으로 속기한 것이라 실제 발언과 다소 차이가 있거나 생략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취재=김채린, 김성수, 정리=윤창희)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제 인생,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하는 32년의 세월을 오로지 법관으로 지냈고, 퇴임한 지도 이제 만 2년이 벌써 지났습니다.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에 휘말려 이렇게 형사법정 법대 앞에 섰습니다.

재판할 때나 사법행정을 할 때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를 다 잡아 절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인간사,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무게를 느낍니다.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던 2년 동안에도 그걸 살피고 헤아리면서 사법부의 자존감에 한치라도 흠이 갈까 봐 언제나 경계했습니다.

공소장에서는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도모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 단죄하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좀 더 나은 재판 시스템과 사법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노심초사했습니다.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는 물론 법원행정처의 그 누가 하는 일이라도, 불법인 줄 알면서 감행하도록 하거나 못 본 체 묵인한 적은 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에 편승하여 뭔가를 이루겠다고 옹호한 일도 없습니다. 사심 없이 일했노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

그러나 그런 것으로 책임과 도리를 다했다고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 이 처지가 되어서 저 자신 되돌아보며 매사에 좀 더 삼가고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절실합니다. 제가 처장으로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이면 직접 관여했든 안 했든,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관리자로서 책임 있단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기대와 격려를 해주셨던 모든 분께 심려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단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번 일로 법원의 위상과 법관들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된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법관들이 겁박당한 듯한 조서"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서도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많은 법관이 때로는 겁박을 당한 듯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훈계와 질책을 듣는 그 조서의 행간을 읽자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장으로서 행정처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탓에 대법원장께서도 구속까지 돼 이런 고초 겪고 계신 게 아닌가 하여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울러 이 힘든 사건의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된 재판부도 마주 대하기 어려울 만큼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제 재판이 진행되면 그동안 오해, 과장 있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저는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모든 법관의 법원에 대한 충정과 헌신을 믿습니다. 설령 법원답지 못하다고 보이는 검토나 대처가 있었다 하더라도 행정조직 업무 성격을 감안하면 묵묵히 소임을 다하려 했던 그분들을 탓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만약 질책, 비난할 일 있다면 처장인 저에게 모든 책임 물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진 '단독보도'....공소장에는 알맹이 없어"

돌이켜보면 지난 수사과정 내내 하루가 멀다고 '단독보도'의 타이틀이 붙은 언론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의 뇌리에는 재판조차도 뒷공론에 따라 향배가 정해지는 듯한 인상이 깊이 새겨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사결과로 제시된 공소장에는 알맹이 있는 실체보단 기껏 부적절한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게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거래니 사법 농단이니 말 잔치만 무성했던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려 속수무책으로 떠밀려온 이 현실 상황에 대해 어찌 가슴이 저릿저릿한 통한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모든 과대포장과 견강부회를 일일이 꼬집어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어떤 정치적 색이 묻어나는 덧씌움에도 맞서서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는 오직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서 역사의 페이지에 올바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하는 데만 집중하려 합니다. 그것이 그나마 평생을 바쳤던 사법에 대한 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법행정권은 선비처럼 고고해야 하나?"

삼권분립의 이념은 있지만, 원리와 원칙보단 현실적인 힘의 논리가 작동한 법원의 대외적 관계에서, 사법행정은 과연 어느 지점까지 선비처럼 고고해야 하는지 다각도의 조망이 이뤄질 것까지 바라진 않겠습니다. 다만 검찰이 본 것처럼 모든 사법행정이 법관들을 옥죄고 통제하려는 어두운 책략으로 물들어 있었는지, 과연 법원을 위한 조직 이기주의의 발상이라고 함부로 폄하하여도 되는지, 이 재판을 통해 최소한이라도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역사적 책임 말하는 자리 아닌 형사책임 가리는 자리"

지금 이 법정에는 재판부, 검찰, 변호인단, 피고인까지 법률 공부하고 법률가로 살아온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논리와 주장의 품격이 지켜질 줄 믿습니다. 저로서는 충분한 인적, 물적 뒷받침을 받는 검찰에 맞서 일일이 대응하기는 참으로 역부족이지만 감정적 논쟁으로 국민 눈살 찌푸려지는 일 없도록 최대한 절제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진행될 모든 심리과정에선 단지 형식만 아니라 실질적 페어플레이가 이뤄지기를 진정으로 고대한단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재판은 도의적, 사회적, 역사적 책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법적 책임, 형사법적 책임을 가리는 절차인 만큼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나 여론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한 자세로 재단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사의 이치로 사리 가려달라"

(재판부도) 피고인이 법조 선배라는 생각도 말끔히 접고, 세상사의 이치와 평상심으로 사리를 가려주시길 바랍니다. 저로서도 이 법정에서만큼은 피고인이라는 위치에서 마땅히 처신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도록 최선 다할 것입니다. 삼가고 또 삼가면서 성심 다해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이 재판에 임하겠단 말씀 드리면서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관기사] [양승태 격정토로]① “이런 잔인한 수사가 어디있습니까”
  • [박병대 전대법관 격정토로] “세상사의 이치로 사리 가려달라”
    • 입력 2019-05-30 11:27:00
    • 수정2019-05-31 11:18:41
    취재K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29일 첫 정식 재판에서 이번 재판에 대한 입장과 소회를 작심하고 밝혔다. 전날(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발언 전문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엔 박 전 처장의 진술을 방어권 차원에서 전문을 소개한다. 2014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처장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혐의로 2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고, 이후 불구속기소 됐다. 발언 전문은 실시간으로 속기한 것이라 실제 발언과 다소 차이가 있거나 생략한 부분이 있음을 밝힌다. (취재=김채린, 김성수, 정리=윤창희)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제 인생,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하는 32년의 세월을 오로지 법관으로 지냈고, 퇴임한 지도 이제 만 2년이 벌써 지났습니다.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에 휘말려 이렇게 형사법정 법대 앞에 섰습니다.

재판할 때나 사법행정을 할 때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를 다 잡아 절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인간사,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무게를 느낍니다.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던 2년 동안에도 그걸 살피고 헤아리면서 사법부의 자존감에 한치라도 흠이 갈까 봐 언제나 경계했습니다.

공소장에서는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도모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 단죄하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좀 더 나은 재판 시스템과 사법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노심초사했습니다.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는 물론 법원행정처의 그 누가 하는 일이라도, 불법인 줄 알면서 감행하도록 하거나 못 본 체 묵인한 적은 없습니다. 부정한 방법에 편승하여 뭔가를 이루겠다고 옹호한 일도 없습니다. 사심 없이 일했노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

그러나 그런 것으로 책임과 도리를 다했다고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 이 처지가 되어서 저 자신 되돌아보며 매사에 좀 더 삼가고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절실합니다. 제가 처장으로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이면 직접 관여했든 안 했든,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관리자로서 책임 있단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기대와 격려를 해주셨던 모든 분께 심려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단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이번 일로 법원의 위상과 법관들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된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법관들이 겁박당한 듯한 조서"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서도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많은 법관이 때로는 겁박을 당한 듯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훈계와 질책을 듣는 그 조서의 행간을 읽자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장으로서 행정처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탓에 대법원장께서도 구속까지 돼 이런 고초 겪고 계신 게 아닌가 하여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울러 이 힘든 사건의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된 재판부도 마주 대하기 어려울 만큼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제 재판이 진행되면 그동안 오해, 과장 있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저는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모든 법관의 법원에 대한 충정과 헌신을 믿습니다. 설령 법원답지 못하다고 보이는 검토나 대처가 있었다 하더라도 행정조직 업무 성격을 감안하면 묵묵히 소임을 다하려 했던 그분들을 탓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만약 질책, 비난할 일 있다면 처장인 저에게 모든 책임 물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진 '단독보도'....공소장에는 알맹이 없어"

돌이켜보면 지난 수사과정 내내 하루가 멀다고 '단독보도'의 타이틀이 붙은 언론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의 뇌리에는 재판조차도 뒷공론에 따라 향배가 정해지는 듯한 인상이 깊이 새겨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사결과로 제시된 공소장에는 알맹이 있는 실체보단 기껏 부적절한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게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거래니 사법 농단이니 말 잔치만 무성했던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려 속수무책으로 떠밀려온 이 현실 상황에 대해 어찌 가슴이 저릿저릿한 통한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모든 과대포장과 견강부회를 일일이 꼬집어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어떤 정치적 색이 묻어나는 덧씌움에도 맞서서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는 오직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서 역사의 페이지에 올바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하는 데만 집중하려 합니다. 그것이 그나마 평생을 바쳤던 사법에 대한 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법행정권은 선비처럼 고고해야 하나?"

삼권분립의 이념은 있지만, 원리와 원칙보단 현실적인 힘의 논리가 작동한 법원의 대외적 관계에서, 사법행정은 과연 어느 지점까지 선비처럼 고고해야 하는지 다각도의 조망이 이뤄질 것까지 바라진 않겠습니다. 다만 검찰이 본 것처럼 모든 사법행정이 법관들을 옥죄고 통제하려는 어두운 책략으로 물들어 있었는지, 과연 법원을 위한 조직 이기주의의 발상이라고 함부로 폄하하여도 되는지, 이 재판을 통해 최소한이라도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역사적 책임 말하는 자리 아닌 형사책임 가리는 자리"

지금 이 법정에는 재판부, 검찰, 변호인단, 피고인까지 법률 공부하고 법률가로 살아온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논리와 주장의 품격이 지켜질 줄 믿습니다. 저로서는 충분한 인적, 물적 뒷받침을 받는 검찰에 맞서 일일이 대응하기는 참으로 역부족이지만 감정적 논쟁으로 국민 눈살 찌푸려지는 일 없도록 최대한 절제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진행될 모든 심리과정에선 단지 형식만 아니라 실질적 페어플레이가 이뤄지기를 진정으로 고대한단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재판은 도의적, 사회적, 역사적 책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법적 책임, 형사법적 책임을 가리는 절차인 만큼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나 여론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한 자세로 재단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사의 이치로 사리 가려달라"

(재판부도) 피고인이 법조 선배라는 생각도 말끔히 접고, 세상사의 이치와 평상심으로 사리를 가려주시길 바랍니다. 저로서도 이 법정에서만큼은 피고인이라는 위치에서 마땅히 처신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도록 최선 다할 것입니다. 삼가고 또 삼가면서 성심 다해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이 재판에 임하겠단 말씀 드리면서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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