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토크쇼J] 노무현과 언론개혁②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9.06.02 (22:28) 수정 2019.06.0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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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하이라이트 영상>

[정세진] “언론으로부터 가장 혹독한 대우를 받은 대통령이다”

[유시민] 좀 괴상한 거 이런 게 남더라고요. 청와대 권 모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 처 20촌. 10대 조상이 같아요. 병자호란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최소한 말이 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中 (2003.03.09.)
[김영종 검사]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박경춘 검사] “83학번이다”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 80학번쯤으로 보면 될 겁니다.

[박경춘 검사] 그렇습니까? 하하하.

[송수진] 노 대통령이 “공격적으로 되받았다”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유시민] 대통령을 좀 조롱하거나 이랬던 검사들을 영웅 만들기를 하는 언론의 수준도 검사 수준 못지않구나.

[정세진] 경포대.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 노무현 전 대통령 신년연설 中 (2007.01.23.)
“민생문제가 오로지 참여정부 책임 아니냐? 책임이 있습니다. 회피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초래한 책임은 참여정부가 몽땅 다 질 수는 없다.”

[정세진] 기자회견 다음 날 1면 톱기사로 <盧 대통령 “민생파탄 책임없다”>

[정준희] 경제가 나쁘다는 기술을 하는 게 아니라, 나빠야 한다는 희망을 투사하는 거죠.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유시민] 왜 그런 걸 희망한대요?

[정준희] 대단히 직설적인 정치인답지 않았고 과감했어요. 이거는 지금까지 없었던 대통령 화법이었거든요.

[유시민] 임기 끝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메신저를 공격할 수 있는 공격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하셨던 거예요. 그 결과 전투에서 패한 거죠.

[자료화면] 명품 시계 두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이 정치라는 것이 언론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고대 로마에서 벌어졌던 콜로세움의 검투 경기와 비슷한 것 같다. 공정한 게임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극히 야비한 암수와 살수 이런 것들이 다 동원된다. 그리고 이긴 자는 영웅이 되고 진 자는 사라진다.

<본방송>

[정세진] 조선일보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악연을 조금 되짚어보려고 하는데요.

[유시민] 노무현 대통령 기록, 자필 기록에 따르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조선일보 배달지국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제대로 받아야 할 임금을 못 받고 일해서 변호사로서 그 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첫 번째 마찰이 있었다고 그러고요. 그다음에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 맡았을 때 그때 보통 프로필은 덕담 비슷하게 소개해주는 거예요, 좋은 점만 이렇게 해서. 거기서 요트 이런 얘기가 나온 거죠. 저게 나중에 호화 요트를 탔다는 것까지 가서 나중에 200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도 계속 저게 논란이 됐죠.

[송수진] 그때 조선일보가 사과를 했었는데도 논란이 계속됐던 건가요?

[유시민] 그럼요. 한 번 일단 보도 나가면 정정 기사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게 인터넷에 퍼지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그렇게 되는 거니까.

[최 욱] 이거 소송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유시민] 네, 중간에 화해를 했을 거예요. 아마.

[최 욱] 소송은 취하했나요?

[유시민] 아마 끝까지 안 갔을 거예요, 당(黨)에서 하도 말려서요.

[최 욱] 아 그래요?

[유시민] “조선일보와 소송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송수진] 그때 1심에서 이겼고 그래서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이 노무현 당시 대변인에게 가서 사과를 한 것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유시민] 그리고 항소심에서 취하를 하고.

[최 욱] 이거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명예훼손 이런 거로 소송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진보는 가난해야 명예롭다’ 그런 틀은 좀 깰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유시민] 그래도 노동 변론을 주 임무로 하는 인권 변호사, 민주화 운동가가 호화 요트를 타고 다녔다고 하면.

[최 욱] 괴리감이 생기는 건가요?

[유시민] 괴리감이 생기죠. 그거는 보통은 잘 안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인격의 이중성을 증명하는 그런 이중인격자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게. 이중인격자. 저 사람 믿지 마라. 그러니까 당하는 당사자로서는 정치인으로서는 몹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공격이거든요. 저런 게.

[정준희] 이 시기가 제가 우리 언론 역사에서 분석할 때 제일 힘이 강할 때예요. 그러니까 87년 이후에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당시에 우리가 ‘조중동’이라고 얘기되는 데가 상업적 성장도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YS 대통령의 등장은 전형적으로 언론이 만들어준 그런 형태였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 당시에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들은 이른바 촌지라고 하는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기자들을 관리합니다. 그래서 ‘YS 장학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던 그런 시점이에요.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정치인이 그것도 고졸 출신에 그냥 고시 붙어서 변호사 한다는데 ‘이 사람이 뭔가 인권운동 했다네?’ 정도로만 알고 있는 어떤 계보 없는 한 정치인에 대해서 ‘이 사람은 뭐지?’라고 하는 식으로 건드려보는, 언론하고의 관계도 그렇게 특별하게 세우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형식의 기사를 쓴 거죠.

[숄 츠] 독일에서 옛날에 정치가였던 사람(Friedrich Merz), 다른 회사를 위해서 많이 10년이나 일하고 다시 정치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거든요. 기자들 좀 알아보니까 월급 지금 한 1억 정도이고 그리고 개인 비행기 두 대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거 보통 좀 아닌데?” 그다음부터는 이 사람의 인기 완전히 떨어졌거든요. “이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걸 어떻게 대표할 수 있어?” 이 사람 완전히 다른 수준이니까. 그래서 이것 때문에 사실 이런 거는 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유시민] 그런데 이게 되게 재밌는 게요. “한때 부산 요트클럽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산가”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이 요트가 우리 보통 영화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이렇게 하면서 그런 요트가 아니고요. 무동력, 그냥 돛 하나에 밑에 조그맣게 일어설 수 있는 배 있는 그거예요. 그래서 줄 당기면서 바람하고 맞춰서 저기 갔다 오는 거예요. 노 대통령이 이걸 왜 했냐 하면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서. 88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국가대표로요. 그래서 이 광안리 앞바다에서 그때 같이 탔던 분들 증언을 들어보면 불어터진 라면, 컵라면을 먹으면서 바닷물을 때로 들이키기도 하고 거친 모래바람 맞아가면서 “돈 있다고 하는 줄 아냐, 이 요트를? 돈 있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자라야 탈 수 있다.” 이런 글들도 올라오고 했어요.

[정세진] 갑자기 CF의 한 장면을 설명하시는데...

[유시민] 갑자기...

[정준희] 부산 사람 같은 느낌이...

[유시민] 네, 그러니까 부산 사람들이 이 요트를 타거든요. 그리고 요트를 탄다는 건 단순히 돈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고 이 모험심이 강하고 남자답고 그런 느낌이에요, 이게.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다는 게 얼마나 귀여워요.

[유시민] 그렇죠? 요트 배우러 일본도 갔다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일본 갔을 때 요트 가르쳐준 선생님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일본 언론에 인터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거를 정말 ‘어떤 사실을 얼마나 다르게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게 저 간단한 프로필 소개에서 몇 문장 되지 않아요. 그걸로 간단하게 바꾸는 거예요. 이 말과 글의 힘이라는 게요. 정말 위대합니다. 이 프로필을 보고 있으면요.

[정세진] 처음에 어떻게 보면 언론과의 싸움은 조선일보가 시작쯤이었다면 대부분의 언론으로부터 공공의 적이 된 계기가 바로 세무조사 관련된 거였죠? 송수진 기자.

[송수진] 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해양수산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2월 6일에 기자간담회가 있었거든요. 여기서 한 기자가 물어봅니다. “당시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서 이회창 총재가 언론 탄압이라고 얘기를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노무현 당시 장관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언론은 더 이상 특권적 영역이 아니다. 언론과 싸울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 이렇게 얘기를 거침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언론들이 굉장히 크게 반발을 했는데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2001년 2월 9일에 <노무현씨의 언론전쟁>이라는 사설을 썼는데 “과거 어느 독재정권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발언이다.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 이렇게 썼습니다. 노무현 장관인데 노무현 씨라고 제목을 달았고요. 그다음에 동아일보 같은 경우에는 “권력과 긴장관계를 견지해야 마땅한 언론을 ‘전쟁’의 상대로 여긴다면 그것은 언론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경우는 <노무현장관의 반언론적 망발>이라는 사설을 썼는데요. “언론과의 전쟁이란 결국 권력이 언론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독재권력을 만들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정세진] 당시 상황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왜 웃으세요?

[유시민] 아니,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다른 분들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정세진] 세무조사.

[정준희] 사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그 전 정부인 김영삼 정부 때 이미 한 번 했었어요. 그전까지 안 받았던 게 신기한 거죠, 사실은. 모든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유시민] 5년에 한 번씩 정기 세무조사를 받게 돼 있죠.

[정준희] 네, 받아야 하는데 안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특권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일종의 프렌들리(우호적인)한 액션이죠, 정부가 보여주는. 언론사에 대한. 그리고 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게 경영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부채 비율이 1000% 넘는 언론사들이 수두룩했고요. 한국에 있는 모든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사실은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업들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서울에 본사를 둔 언론사 14개 정도만 일단 하고 공표를 안 했어요, 겉으로. 그런데 일단 한번 사실은 겁을 준 것처럼 된 거 정도라고 볼 수가 있는데. 2001년 들어오면서 장기 동안 안 받았으니까 이걸 받아야겠다고 했고 실제로 물론 명분은 충분했는데 저는 여기서 말한 조선일보의 발언 중에 “독재정권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 ‘언론전쟁’이라는 거에 대해서. 비록 강한 발언이지만 독재정권 시절에는 언론과 전쟁할 이유가 없었죠. 언론이 자기 거였으니까. 그럼 언론과의 전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비장한 그런 발언이었어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실 그걸 교묘하게 비틀어서 활용한 그런 프레임(frame)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최 욱] 노무현 장관의 그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저 같은 팟캐스트 진행자가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하면 시원한 맛은 있죠. 그런데 정치인이라면 실효성 차원에서라도 뭔가 좀 정치적인 기술을 좀 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숄 츠] 어떤 정치가보다 혁명가였어요. 약간 이런 마인드(mind) 좀 있었어요. 그 별명도 ‘돌콩’ 있잖아요. 이 사람은 조금 고집이 세고 아마 그런 편이었는데요. 그리고 중요한 게 아까도 조금 얘기했는데 ‘전쟁’ 이 단어가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지금 예를 들어서 트럼프 대통령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언론은 나의 적이다.” 이런 말 들어보면 사람들 되게 민감하잖아요.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말씀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데 아마 좋은 방법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약간 더 부드러운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시민] 저는 뭐 최욱 씨 말씀이나 우리 숄츠 선생님 말씀이나 다 동의해요. 공감하고. 그런데 다른 방법이 뭐 있었을까? 부드러운 방법이? 다른 부드러운 방법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거를 권했겠죠, 그 당시에도. 그런데 아무 방법이 없더라고요. 김대중 대통령도 처음에는 (언론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2001년까지는 어떻게든 참고 가보려고. 그때 IMF 외환위기 오고 나서 국가 경제도 어려웠고 그런 판국에 언론하고 갈등을 일으키면 안 좋은 거니까 참고, 참고, 참고, 참다가 “너무한다. 이거는” 그때 제 기억에는 그게 2000년도인가에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송수진] 동아일보에서 쓴 기사죠.

[유시민] 동아일보요. 저는 그 기사가 굉장히 기억에 남거든요. 저는 경제학 전공이니까 GRDP(지역내총생산) 통계나 지역 데이터들을 보면 모든 지역에 추석이 없어요. 다 불경기예요. 그런데 큰 제목으로 “부산, 대구는 추석이 없다”

[송수진] 하필 왜 부산과 대구였는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유시민] 어떻게 언론사에서 이런 기사를 머리기사로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제목을 뽑아서 낼 수가 있지? 대체 뭐 때문에 이 기사를 썼을까? 너무 뻔히 보이는 거예요. 제가 그 신문에 몇 년간 기명(記名) 칼럼을 썼던 사람인데. 그 뒤로 그 신문하고 지금 거의 20년 가까이 거래를 안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신문인 조선일보는 그보다 한 2년쯤 전에 제가 거래를 끊고 이 시간까지 지금 제가 인생 살면서 거래 안 하고 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저항의 방법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는 살 수 없는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제가 MBC <100분토론> 진행자였을 때인데, 이 ‘언론과의 전쟁’ 건이 터졌을 때, 토론자를 못 구하겠는 거예요. 이게 터졌는데 이것을 비판하는 쪽 패널(panel)은 얼마든지 많은데 이거를 찬성 입장에서 토론해줄 토론자를 못 구하는 거예요.

[정세진] 마음에 있어도 나올 수가 없는?

[정준희] 무시무시할 때니까.

[유시민] 네, 무시무시한 거예요.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제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해봤어요. 노무현 해수부 장관이 자기가 나오겠다고. 그래서 우리 CP한테 “아무개 선배, 해수부 장관 나온대요.” “정말? 대박” 이래서 딱 자리 편성을 했어요. 그런데 청와대에서 안 된다고. 총리실에서 나가지 말라고. 그래서 결국 노무현 장관이 못 나왔어요. 명패만 비워놓고. 그 정도로 무섭더라고요. 좀 지위를 가진 분들은 안 나오려고 그래요. 우리나라 유일하게 모든 권력 중에 유일하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에요. 지금도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스캔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여배우와 관련된 건이요.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동생이나 이런 사람이 그런 추문에 휘말렸다고 생각해봐요. 그 당시에 그때 그렇게 넘어갔겠어요? 통화 기록 1년 치가 다 없어지고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지금도요. 한국의 대형 언론사를 가지고 있는 사주들은요. 법 위에 있어요. 지금도요. 노무현 대통령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저 견제 받지 않고 선출된 적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을 저 항구적(恒久的)인 사적 권력이 공론의 영역에서 미치는 힘을 무기로 삼아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사태를 참을 수 없다. 그거였어요. 그래서 우선 세무조사부터 받게 하고. 그렇죠? 그다음에 말로 싸우고. 합법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는 어떤 권력 행사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론을) 못 이긴 거죠. 이길 수가 없어요.

[정준희] 1997년에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여러분도 아실만한 대단히 극단적인 발언을 기자한테 했어요.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발언을 했어요,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보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또 한 가지가 99년에 나왔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책 본부에서 ‘언론을 어떻게 집권 후에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건이 폭로가 됐습니다. 이거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보도 안 했어요. 아무리 집권이 아닌 자라고 하더라도 집권 가능성이 높은 야당의 한 지도자가 만들어낸 이 형태가 보도가 안 됐습니다. 이거 얼마나 비일관적인 일이에요.

[유시민] 중요하지 않은 팩트(fact)이기 때문에.

[정준희]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시민] 그들이 보기에는 이것은 중요하지 않거나 혹은 중요한데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예요. 그러니까 그게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죠. 문지기예요. 그러니까 정치나 혹은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일들 중에서 ‘국민이 알아서 좋을 게 없어’라고 자기들이 판단하는 거는 그냥 없는 거로 만들어 버리고 그다음에 ‘이거는 부풀려서라도 국민들이 어떤 느낌을 갖도록 해줘야 해’ 이런 거는 (앞에서 말한) ‘요트’ 건처럼 엄청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서 알려주는 거죠. 그러니까 한국 사회를 그 언론들이 지배해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정세진] 당시 세무조사 관련된 이런 언론과의 전쟁 선포 발언은 뭐 아주 그냥 심플(simple)하게 생각하면 언론을 정상화하기 위한 아주 그냥 기본적인 첫 단계 정도로 사실은 받아들이면 되는데 언론 길들이기와 이쪽에서도 역시 전쟁으로 받아들였다는 거.

[유시민] 그렇죠.

[최 욱] 언론의 영향력이 진짜 대단한 게 저도 오늘 이 방송하기 전까지 세무조사로 (언론을) 길들이려고 했다고 오늘날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게 특혜였던 거 아니겠습니까?

[정준희] 그렇죠.

[최 욱] 저는 솔직히 오늘 방송하면서 이거를 지금 자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세진] 항상 방송 하면서 하나씩.

[유시민] 돈 내고 가요.

[정세진] 기성 언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불신. 집권과 함께 동시에 언론 개혁을 바로 시작하고 나섰는데요. 취임을 사흘 앞둔 2003년 2월 22일에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해서 이런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영상>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인터뷰 中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생각 하지 마라. 그리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정정당당하게 해 보자.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좀 빼 달라, 고쳐 달라. 그리고 앞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써 줄 것을 기대해서 말하자면 자주 만나고 소주파티하고 향응하고 이런 방식으로, 어떻든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비적 방법으로 이렇게 이제 대응해왔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번 청와대와 정부는 아주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유시민] 저거 혁명적인 거였죠. 우선 가판(街販) 구독 금지 조치는 뭐였냐 하면 그때가 조간신문 체제 때예요. 아침 신문들이 유력 일간지들이 대부분 다 아침에 나올 때인데. 그러니까 밤에 한 10시쯤 되기 전에 신문을 초판 찍어서 가판이라고 해서 광화문 앞에 가면 신문사 앞에 제일 가까운 가판대에 제일 먼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정부 부처의, 모든 부처의 공무원들이, 거기 공보실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가판 나올 거를. 가판이 나오면 얼른 사서 가지고 가는 거예요. 가서 자기 부처 관련된 거가 까이는 게 나왔나 안 나왔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까이는 게 나왔잖아요? 그럼 그때부터 국장들은 퇴근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회부에 뭐가 났다” 그러면 사회부장한테 전화해서 저녁밥을 먹어야 해요. 그래서 가서 이거 하고 뭐 하고 이래서 사회부장이 듣고 “좀 그렇네. 그럼 국장하고 얘기해볼게요.” 이래서 국장하고 얘기해서 “그래, 그러면 지방판에서 빼.” 그러면 그 다음에 정식 인쇄될 때 그게 빠지잖아요. 그러면 그 공보관은 가서 장관님한테 칭찬 듣고. 그거를 노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하고 있으니까 아예 가판신문을 구독하는 거 자체를 금지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공무원들 만세 불렀어요. 공보관실 공무원들이 이제 정상 퇴근해도 돼요.

[송수진] 단독 인터뷰를 가진 언론사가 당시만 해도 생긴 지 2년밖에 안 되는 온라인 매체, 오마이뉴스였습니다. 굉장히 파격 행보였는데, 이 인터뷰를 한 같은 날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청와대 기자실 운영 계획을 발표하는데요. 기존에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만 청와대 취재를 할 수 있었는데 기자단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에 취재가 가능하도록 개방을 한 겁니다. 이른바 개방형 브리핑(briefing) 제도라는 건데요. 기자실을 없애고 모든 기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브리핑 룸으로 개편을 하는 것이고요.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실시하니까 청와대 출입기자가 DJ 정부 때는 80명 정도였는데 노무현 대통령 때 300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청와대부터 시작을 했고 그다음에 2003년 4월쯤에는 문화관광부가 도입을 했고요. 그다음에 2004년 상반기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유시민] 개방형 브리핑 제도는 왜 했냐 하면 인수위 시절인데요, 이게 그 전에도 계속 그런 일이 있었어요. 기자 분들이 인수위 사무실에 막 다니는 거예요, 이렇게. 그래서 뭐 좀 기밀을 요하는 이런 걸 작성하다가 기자가 들어오면 확 덮는 거야. 생각해봐요, 인수위의 인수위원이 문서 작업을 하다가 기자가 나타나면 이거를 빨리 덮는 거예요, 이렇게. 안 보여주려고.

[송수진] 덮고 싶죠.

[유시민] 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슨 문서 작업을 하다가 잠깐 나갔어요. 뭐 화장실을 갔다 그러면 그때 쓱 들어와서 없잖아요. 쓱 가져가는 거예요.

[정준희] 그렇죠.

[유시민] 가져가서 ‘특종’ 이래서 ‘인수위 무슨 방침 확정’ 해서 내보내는 거예요.

[정세진] 굉장히 허술했네요.

[송수진] 그게 기자 근성을 나타내는 어떤 한 예로 여겨지기도 했었어요.

[유시민] (기자들은) 그거를 해야 기자예요. 그걸 해야 기자지. 그러니까 노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이 문제의식을 너무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어요.

[정세진] 노 전 대통령 전에는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시민] 감히!

[정세진] 감히.

[유시민] 어떻게 감히 언론을 상대로 그런 걸 해요?

[정준희] 언론 학자들은 사실 언론 개혁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로 기자실과 출입처 제도 폐지를 계속해서 얘기해왔거든요. 왜냐하면 독특한 한국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물론 일본하고 좀 공유하고 있는 그런 시스템이고. 자기들끼리 끈끈한 기자들 간의 어떤 풀(pool)단 사이에 어떤 대단히 폐쇄적인 어떤 클럽의 형태로 존재를 하고. 그다음에 거기서 출입처에 있는 취재의 대상과 기자가 한 몸이 되는 사실은 그런 영역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지금도 이 당시의 것들을 기억하면서 (기자실 폐쇄는)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는 약간 놀랄 노 자인데 “이건 한국만의 문화다” 되게 자랑스러워해요.

[숄 츠] 이거는 정말 어떤 엘리트 클럽이었잖아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이 클럽 멤버들 이 당연히 이 클럽 없어지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는. 사람들이 많이 말했던 거. 이거 인포메이션 카르텔(Information Cartel; 정보담합)이라고 그랬어요.

[정세진] 기자실 개방 관련, 또 브리핑 제도 도입 관련해서 당시 언론 보도들 좀 살펴볼까요?

[송수진] 당시 보수언론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또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이렇게 강하게 반발을 했는데요. 조선일보의 경우에는 “노무현 정부 ‘언론 길들이기’의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낡고 아마추어적인 언론 정책”이라고 평가를 했고 “노무현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정준희] 2004년 6월 13일 자 뉴욕타임즈에 이 기사가 실렸어요. “한때 언론과 권력을 서로 결착시켰던 고리가 드디어 해체되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와요.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외신기자들의 눈으로 보면 “이게 드디어 사라지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사 내용에도 보면 “동아시아에서는 드문 무언가가 지금 떠오르고 있다.”

[정세진] 동아시아에서는 드문?

[정준희] 그러니까 왜냐하면 한국은 그래도 드물게 상당히 민주적 국가로 가고 있고, 민주적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것들을 주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드문 무언가가 뭐냐면 “격렬하게 독립적인 언론”이라는 표현을 써요.

[송수진] 격렬하게 독립적인?

[정준희] fiercely, “격렬하게 독립적이다”라는 대단히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재밌죠? 이 결과로 이제는 드디어 권력과의 고리에서 벗어나서 이제 진짜 언론이 된다고 외신은 보고 있는데 정작 한국의 언론들은 ‘이 소통의 고리를 왜 없애?’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이거를 그 당시에 보도했던 데가 어디 있나 봤더니 한국경제인가 잠깐 짧게 인용 보도를 했고요. 우리나라 그렇게 뉴욕타임즈 좋아하고 외신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자기와 관련된 이런 것들은 인용보도도 안한 그런 상태였던 거죠.

[유시민] 아니, 뭐 기사를 못 봤겠죠.

[유시민] 설마 보고도 인용 안 했겠어요? 바쁘다 보니까 놓쳤을 수도 있죠. 모두가.

[최 욱] 그런 모습이 더 얄미울 것 같아요.

[정준희] 대북(對北),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 대변인 (비유한 기사)은 잘보고 그렇죠?
(뉴욕타임즈,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유시민] 기자실 문화라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인포메이션 카르텔. 그러니까 정보 담합인데 그건 한 측면에 불과해요. 정부 부처의 공보관의 제일 큰일이요, 기자실을 관리하는 거예요, 기자단을 관리하는 거예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는 각 정부 부처 장관들한테 안기부에서요, 돈을 줬어요. 현금으로요. 제가 알아보니까 보건복지부는 한 2억 정도 줬다고 하고 교육부는 한 3억 정도. 매월.

[정세진, 송수진] 매월?

[유시민] 매월이요. 그 영수증 없이 쓰는 돈 있잖아요. 무슨 특수 활동비인가. 그런데 그 돈이 오면 3분의 1이 공보관한테 가요. 그 현금으로 쓰는 돈의 3분의 1이 기자실용이에요. 그래서 공보관이 그 돈을 가지고 뭘 하냐 하면 골프장도 데리고 가고 생일 선물로 봉투도 주고 여름 되면 휴가비도 지급하고 이거를 다 하는 거예요. 그거를 잘해야 유능한 공보관이에요. 근데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이 돈을 대통령이 청와대 것부터 끊었고 각 부처로 확산돼서 그 돈이 다 끊어졌어요. 그러니까 그전까지 어땠냐 하면 기자실이라는 데 가요, 정당 기자실도 마찬가지고 고스톱 치고 있고 그래요. 점 1000원짜리 고스톱이요. 그러면 이제 대변인은 가서 돈을 잃어줘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때 20대 후반 때에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초선 의원 때 보좌관을 한 2년 잠깐 했는데 그때 제가 본 기자실 풍경이었어요. 끔찍하더라고요. 제 어린 눈에도.

[정세진] 충격이었어요?

[유시민] 제 젊은 눈에도, 이건 뭐지? 그리고 제가 국회의원을 할 때, 장관을 할 때 제가 40대 후반이었는데 저보다 한 20살쯤 어린 기자가 와서 “유 선배, 유 선배” 이러는 거예요. 속으로 “내가 왜 네 선배야?” 본 적도 없고 그냥 기사 쓰니까 이름만 아는데, 와서 거의 반말 비슷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게 기자들은 그렇게 키우는 거래요, 후배 기자들을. 대충 맞먹고 그다음에 나이 많으면 “김 선배, 이 선배” 하고 속으로 “내가 왜 네 선배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표시내면 안 되잖아요. “김 기자 왔어요?”

[정준희] 선배로 불리시는 거는 높은 지위라는 얘기입니다.

[정준희]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유시민] 그 끈적끈적한, 출입처와 출입 기자들의 끈적끈적한 인간적 관계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밥도 안 먹고 같이 술도 안 먹고. 브리핑 필요할 때만 제가 했는데.

[정세진] 너무 차가우셨네요.

[유시민] 나중에 기자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유 선배, 돈 때문에 그러는 거면 5000원짜리 순대국도 괜찮으니까 같이 밥 먹어요. 우리가 더치페이 해도 되고”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볼게요.” 그랬지만 정말 밥 먹기 싫었어요, 저는.

[정세진] 노무현 정부와 언론이 다시 한 번 크게 대립각을 세우게 된 계기. 2007년 1월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새로운 국민건강 대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말 대노(大怒)해서 발언을 했었는데요.

<영상> MBC 뉴스데스크 <盧 "기자실 담합실태 조사하라"> / 2007.01.16.

[앵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담합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자] 어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증진 계획에 대한 언론보도를 이례적인 톤으로 비판했습니다.

[노 대통령]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비용 지원, 대선용 의심, 이런 수준으로 폄하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기자실에서 많은 브리핑 내용이 가공되고 특정 방향으로 압축된다고 규정하면서 다른 나라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관련부처에 지시했습니다.

[노 대통령] 거기 그냥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서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할 자료들을 자기들이 가공하고 만들어나가고...

[정세진] 2007년이면 임기가 한 1년 정도 남았을 때였는데 굉장히, ‘(언론이) 정말 안 변하는가’ 라는 어떤 답답함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유시민] 저 말씀을 듣는 순간 눈앞이 아득했어요. 큰일 났다. 당장 복지부로 돌아가면 기자들이 그냥 바로 쳐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이.

[정세진] 어떻게 말씀하셨길래.

[유시민] 참, 그게 저게 사실은 대통령을 직접 제가 찾아뵙고 보고를 드렸던 내용이거든요. 기본 문제의식은 우리의 보건예산 중에서 97% 이상이 치료에 쓰이고 있다.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투자하는 돈은 전체 보건 예산의 3%가 안 됩니다. 그런데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에 더 돈을 투자하면 그 결과, 진료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쪽에서 재정 절감이 올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먼저 이쪽에 투자를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정부 일반 회계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건강보험 재정 자체를 구조조정해서 건강 투자 쪽에 비중을 늘리는 그런 계획을 보고 드렸던 거예요. 대통령이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되게 기분 좋게 보고를 받으시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정세진] 언론 보도에도 그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을 했고.

[유시민] 네.

[정세진] 이거는 정말 좋은 거니까.

[유시민] 네. 그런데 베트남인가 출장 갔다 오셔서 보도를 딱 보니까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그냥 ‘재원 대책 없는 장밋빛 대선 공약’ 그렇게 딱 규정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눈앞이 아득한 게 너무 큰일 났다. 이 말씀이 보도되고 나면 어떤 후폭풍이 불거라는 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그리고 이 건이 보건복지부의 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막 그냥 국무회의 끝날 때까지 막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예요. 좌불안석(坐不安席) 이렇게 하고 있다가 “죄송합니다.” 하고 국무회의 끝나고 장관실로 돌아오니까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 기자실 대표 기자 분들 십여 명이 장관실로 그냥 밀고 오셔서 거기서 제가 사과를 했죠. 죄송하다고. 제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대통령 좀 봐주시라고.

[정세진] 당시 언론 보도들을 좀 살펴볼까요? 송수진 기자.

[송수진] 당시 언론들이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담합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에는 “정부 부처 브리핑 룸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면서 “담합을 할 수 있을 만큼 기자들이 모여 있지도 않다” 이렇게 당시 기자실의 분위기를 설명했고요. 그다음에 경향신문의 경우는 “노대통령이 언론을 제대로 읽거나 보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요즘 외교안보·경제·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각 언론사들이 동일한 시각으로 사안을 조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라고 하면서 담합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정준희] 사과를 요구할 만한 정도의 발언이 되긴 해요. 왜냐하면 정면으로 ‘너희들끼리 담합해서 쓰고 있지 않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거를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정말 누군가의 고백이 터져 나오거나 이러지 않는 한 이거는 증명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방송되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나올 후폭풍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던, 그런 거다.

[유시민] 그러니까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보도가 이렇게 다 나갔는데, 오늘 보니. 되게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좀 화도 좀 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들을 생각할 때 꼭 필요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보고도 받았고 장관을 격려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도가 나가서 정말 안타깝고 서운하다. 주무장관이 언론과 조금 더 소통을 강화해서 좀 더, 더 나은 정책 홍보가 될 수 있도록 힘써라. 이러면 이제 장관을 질책하는 거잖아요. 그게 적합한 거죠. 제가 총알을 맞고 이래야 하는데 대통령이 딱 그렇게 나가버리시니까 모시고 일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막 그렇더라고요, 그게. 아이 참, 지금 생각해도 악몽이에요.

[정세진] 국무회의에서 저렇게 발언하실 거라고는 예상을 전혀 못 하신 건가요?

[유시민] 몰랐죠.

[정준희] 일반적인 일이 아니죠.

[최 욱] (이사장님이) 화를 더 돋우고 한 거는 없으신가요?

[최 욱] (영상에서 노 전 대통령이) 너무 화가 나셔 가지고.

[유시민] 모두발언은 회의시작 할 때 대통령이 맨 먼저 하시는 거예요.

[최 욱] 그래요?

[유시민] 왜 나를 자꾸...

<영상>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귀향 기념 연설 / 2008.02.25.

“오늘은 제 얘기만 해야 하는데요. 그래도 차마 제 얘기만 하고는 그냥 못 가겠습니다. 제가 노무현식 정치를 얘기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정치인인데, 자리가 적절하고 안 하고를 다 떠나서 제가 꼭 소개를 한번 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쓴 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제가 꼭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야! 기분 좋다!”

[정세진] 급기야 2007년 5월에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조치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2003년에 안된 걸 다시 기자실 통폐합, 브리핑 룸 제도를 다시 꺼내든 것이었는데요. 당시 언론의 반발이 아주 거셌습니다. 경향신문은 2007년 5월 23일에 <‘5共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은 관가의 문을 잠그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5공 언론통제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홍보처가 정부 정책의 홍보전위대라는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기구로 나선 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게 주장을 했고요. 동아일보는 다음 날 <“5共때보다 더 악랄한 언론 통제”>라는 따옴표 제목을 달고 “1980년대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보다 더 악랄한, 더 가혹한 언론 통제다. ‘노무현 정권 언론말살 저지 투쟁본부’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정권 퇴진 규탄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당시 한나라당 이규태 의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준희] 이 부분은 이미 앞에서 정권 초기에 사실은 가능성이 있었던 갈등의 양상이 드디어 터져 나온 그런 형태죠. 핵심적인 특권을 건드린 거거든요. ‘기자실’이라고 하는 제도뿐만이 아니라 ‘취재 특권’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먹고사는 핵심인데 이거를 건드려 버린 거예요. 이 지향 자체는 상당히 선진적인 지향이고 실제로 너무도 당연한 것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통령도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뭔가 싸움을 걸거나 뭔가 바꿔보겠다고 한 사람이 없는데.

[정세진] 끝까지.

[정준희] ‘왜 이 자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라는 심리가 사실은 저는 이 뒤에서 읽혀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말하기에는 사실은 민망했을 텐데 “5공보다 악랄한 언론통제” 최근 독재 발언하고 되게 유사하죠? 5공의 어떤 언론 통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사실은 이런 얘기는 당연히 할 수 없는 그런 문제라고 보고요. 실제로 그 당시 기자들은 어떤 시위를 벌였냐면 노트북 같은 걸 들고 나가서 로비에 쫙 다 앉아서 (타이핑) 치고 그랬어요. 명백한 시위 행위인 거죠. “나는 당신들이 열어준 브리핑 룸 안 들어가겠다. 바닥에서 쓰겠다.”라고 하는 거였고. 여기에서는 소위 말하는 정파적 견해차이나 좌우의 어떤 견해 차이 이런 것들은 없이 일치된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숄 츠]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기자들이 거리 나가게 만드는 (정책) 약간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이 없어졌다.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독일에서는 상상하기는 조금 어렵거든요. 이거는 신문사 건물 아니잖아요. 이거는 청와대나 이거는 사실 정부 집이잖아요. 기자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이거는 우리 너무 불쌍하다, 약간 이런 느낌 받으니까 저한테는 독일 기자 입장으로는 아주 웃기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준희] 당시에 ‘노무현 정부가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브리핑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정보 공개를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에 대해서는 뭔가 평가의 여지는 조금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나 모든 국가는 사실 정보를 공개하기를 그다지 원하지는 않거든요. 말씀처럼 유 장관님처럼 그 당시에 굉장히 열심히 브리핑을 했던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웬만하면 기자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았기 때문에 이걸 빌미로 사실은 안 만나는 쪽으로, 폐쇄적인 쪽으로 갔을 가능성들은 일부 존재해요. 그리고 통계에도 보면 브리핑이 좀 줄어들었다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얘기는 있습니다.

[정세진] 강력한 큰 반발을 얻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도들을 계속 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언론 개혁을 시도하면서 어떤 고뇌를 했는지 참여정부 시절에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송수진 기자가 만나서 이야기를 좀 들어봤습니다.

<영상> 김종민 의원 인터뷰 / 2019.05.21.

[김종민] “내가 언론하고 이렇게 관계가 안 좋은 게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거 아니냐?”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물론 내가 언론하고 조금 더 좀 유화적이거나 아니면 관계를 잘 풀었으면 정책수행에 조금 더 도움이 됐을 수는 있겠다, 개별정책에서는. 하지만 언론과의 관계는 돌아보면 내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거래관계를 맺어서 이 권력을 유지하게 되면 결국 국민들한테 손해고 이게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된다. 나는 이거를 나한테 주어진 역사적인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봤지만 지금까지 해왔다.” “나는 새 시대의 장남이 될 수 없다. 난 구시대의 막내다.”

[정세진] 이번 메모에서도 나왔지만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처’ 이런 메모도 있었는데요. “이건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고 말씀하시네요.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유시민] 이 전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패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봐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상대를 공격해서 도저히 이기는 데에 필요한 무기도 없어요. 대통령은 혼자 말하는데, 신문사들은 여러 개가 매일매일 몇 백만 부를 찍어대면서 이걸 (공격)한단 말이에요. 방송도 같이 거기에 얹어지죠. 그러니까 이 화력에서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 거예요. 그리고 졌어요. 그런데 그럼 이 전쟁이 끝났냐? 그거는 결코 아니라는 거죠. 다 같이 돌을 던졌어요. 욕을 하고. 그런데 그분이 딱 목숨을 끊어버렸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게 죽을 만큼 큰 잘못이었나? 그거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사람 왜 죽었지? 생각하니까 자기도 거기에 돌 던진 것 같고 나도 욕했던 것 같은데 그게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 욕했던 많은 내용 중에서 사실로 확인된 거는 별로 없는 것 같고 아직. 사실인지 여부를 알 수도 없어진 것 같고 그런데 너무 심하게 우리가 그렇게 해서, 죽을 만큼 잘못한 건 아닌데 그 사람이 죽은 거 아니야? 이런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내가 왜 그렇게 욕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거기에 신문들이 있었던 거예요, 언론이. 그러니까 국민들로서도 일종의 자기 면책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죠. 그러니까 언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반대로) 언론인들은 또 억울할 수 있죠. 서로 모든 것이 물려 있어요. 맞물려 있어요.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 정상적인 언론, 꿈꾸는 언론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그림을 좀 전해주신다면?

[유시민]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 대통령은 협잡(挾雜)하지 않고 그냥 독립한 주체로서 당당한 언론. 그러나 수준 있는 보도를 하는 언론. 그런 거를 되게 바라셨죠. 그게 상식적인 거 아니에요?

[숄 츠] 그렇죠.

[유시민] 그냥 대통령이 바라는 언론이라는 게 그거밖에 더 있겠어요? 노 대통령은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것이 스스로 너무 비굴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방에서 그렇게 말리는 데도.. 상당히 로맨틱한 분이셨어요.

[정준희] 저는 사실은 이 부분이 ‘국민들이 그럼 어떻게 기억하나’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거치면서 언론의 거의 바닥을 본 거죠, 상당 부분은. 그리고 아까 트라우마(trauma)라는 표현을 썼는데 ‘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민낯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그다음에 그걸 상처로 갖게 된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났다는 거예요. 실제로 2016년에 나온 논문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나 이런 것들을 기억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기억하는 그런 방식을 (연구)했는데 하나가 지역주의 타파, 또 한 가지가 서민을 위한 정치, 세 번째가 언론 개혁 정책이라고 나와요. 상당히 높은 우선순위거든요. 세 번째로 이게 언론 개혁 정책이 기억되고 있다는 건, 실패했든 성공했든 간에 언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상당히 공감하고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것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고 언론의 개혁에 뭔가 구조적이고 어떤 개혁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열망하고 있는 어떤 바탕을 깔았던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을 닮아서 이렇게 투쟁할 수 있다, 우리도 싸울 수 있다. 언론을 어떻게 개혁하고 좀 더 나은 언론이 되기를 원하는 시민들, 국민들의 어떻게 보면 본보기, 모범이 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유시민] 저는 한때는,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는 헤어날 방법이 없다. 현직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 미디어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좀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유튜브를 하잖아요. 그 전에는 무슨 기사에서 한 방 얻어맞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냥 기자한테 전화해서 “김 기자님, 사실 그게 아니었는데요.” 하고 빌어야지. 어디 기자실에 가서 “김 기자 나 좀 봅시다.” 이랬다가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정치인이라고 또 맞아요, 그 다음날. 제가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우아하게 제가 하는 유튜브에서 그 얘기 한 건 사실 그게 아니고 그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한 거고요. 그런 소리 그만하세요. 이렇게 제가 얘기할 수가 있어요.

[송수진] 그러면 기자들이 그거를 또 받아쓰죠.

[유시민] 네, 그러니까 저는 빌게이츠나 그 애플 누구예요?

[최 욱] 스티브 잡스.

[유시민] 스티브 잡스 이런 분들이

[정세진] 너무 고마워요?

[유시민] 너무 고마워요. 예수님, 부처님과 동급이에요 저한테.

[유시민] 그래서 덜 무서워요. 그래서 예전에는 언론인들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사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 이제는 좀 견딜 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의 태도로 살고 있죠.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적극적인 언론개혁 시도라든지 언론과의 투쟁,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 와서 남긴 것. 우리에게 그래도 무언가는 얻은 게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나 시민들이나 그 부분을 지적해 주시죠.

[정준희] 모든 언론이 이를테면 민주주의의 기여자가 되고 그다음에 품위가 있고 사실만을 이야기하며 정의를 추구한다? 환상이죠. 옛날에도 그랬고 이거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새로운 언론이 등장해도 저는 그거는 지금과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중요한 건 나를 비판해도 의미 있는 비판을 해주는 거고 약간은 열이 받더라도 내가 얘한테 얘기를 해줘야 하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 어떤 대상이 생겨나야 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그런 의미 있는 민주제 파트너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스스로가 상층부라고 생각하는 기성의 언론들은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 거죠. 이거를 어떻게 새로 형성할 것인가?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유시민] 제가 내린 결론은 그런 거예요. 인간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더라고요. 그냥 지나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는 게 세상이에요. 너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고 그러고 해석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에 대해서 너무 격분해서도 안 될 것 같고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다 아무 이치도 없이 그냥 모든 일들이 그냥 다 일어나니까 그걸 다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삶은 그 양극단의 사이에 중간 어디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도 한때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그만해야겠다.

[정세진] 오늘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철학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많이 힘드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꼭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많은 좋은 말씀해주셨지만. 괜찮으세요?

[유시민] 괜찮은 것 같죠? 네. 저도 좀 되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그런 게 많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근데 이제 좀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각자가 좀 특히 언론과 관련해서는 기자 분들은 기자 분들대로. 또 취재 대상이 되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특히 정치 보도와 관련해서는. 그리고 언론 소비자 또는 정보 수용자로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의심해 보는 태도. 이게 다 사실은 아닐 수 있어. 또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에 대한 이런 해석이 전적으로 옳은 거는 아닐지 몰라. 이런 생각을 좀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저는 뭐 괜찮은 그런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 소망 또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게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삶과 생각을 돌아보는 그런 계기만 될 수 있다면 또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하죠. 이게 참 얘기하기 쉽지 않아요, 진짜.

[최 욱] 저는 충분히 많은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일상에서 싸우다가 다툼이 있다가 “야, 이 얘기 신문에 난 거야” 하면 게임이 끝났어요. 그런데 검사와의 대화. 저는 사실 항상 그거를 보면서 ‘저거 왜 괜한 거를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내가 보고 느낀 것과 언론이 보고 느낀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거를 이제 우리가 확인 받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거 신문에 나온 거야”라는 말로 이제 싸움이 끝나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충분히 저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정세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서 오늘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는 노무현과 언론, 노무현의 언론 개혁,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개혁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지금 언론의 현주소는 어떤지 조금 비춰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오늘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는데요. 소감까지 여쭤보면 어떨까요?

[유시민] 언론에 대해서는 저도 어떤 결론을 갖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우리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솔직하게 나누다 보면 뭔가 좀 갈 길이 혹시라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왔고요.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돌아보기가 가볍지 않은 그런 일이라서 약간 힘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말하고 나니까 좋네요.

[정세진] 시민 분들, 국민 여러분들 또 시청자 분들도 방송 보시고 많은 것을 또 느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좋은 말씀, 의미 있는 이야기 전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유시민] 고맙습니다.

[정세진] 또 나와 주실 수 있습니까?

[정세진] <저널리즘 토크쇼 J> 오늘 저희가 준비한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KBS 1TV, myK, pooq, 유튜브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언론의 관행은 여러분이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밤 10시 3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엔딩 영상>

[기자] 5공 청문회는 무명의 노무현 의원을 전국적 정치인으로 발돋움 시킵니다.

“언론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연설 中

[앵커] 일반 서민들이 정치와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를...

[앵커] 새로운 노무현 정부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앵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기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

[앵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앵커] 대통령 탄핵안을 둘러싼 정국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앵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야! 기분좋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귀향 연설 中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출석했습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씁쓸한 미소로 답변을 피했습니다.

[앵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질적으로 ‘시민’입니다. 그리고 국민주권국가에서 여러분은 ‘주권자’입니다.”
“자,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지도자와 시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 -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194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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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널리즘 토크쇼J] 노무현과 언론개혁②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19-06-02 23:08:27
    • 수정2019-06-02 23:35:51
    저널리즘 토크쇼 J
<지난주 하이라이트 영상>

[정세진] “언론으로부터 가장 혹독한 대우를 받은 대통령이다”

[유시민] 좀 괴상한 거 이런 게 남더라고요. 청와대 권 모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 처 20촌. 10대 조상이 같아요. 병자호란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최소한 말이 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中 (2003.03.09.)
[김영종 검사]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박경춘 검사] “83학번이다”라는 보도를 어디서 봤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 80학번쯤으로 보면 될 겁니다.

[박경춘 검사] 그렇습니까? 하하하.

[송수진] 노 대통령이 “공격적으로 되받았다”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유시민] 대통령을 좀 조롱하거나 이랬던 검사들을 영웅 만들기를 하는 언론의 수준도 검사 수준 못지않구나.

[정세진] 경포대.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 노무현 전 대통령 신년연설 中 (2007.01.23.)
“민생문제가 오로지 참여정부 책임 아니냐? 책임이 있습니다. 회피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초래한 책임은 참여정부가 몽땅 다 질 수는 없다.”

[정세진] 기자회견 다음 날 1면 톱기사로 <盧 대통령 “민생파탄 책임없다”>

[정준희] 경제가 나쁘다는 기술을 하는 게 아니라, 나빠야 한다는 희망을 투사하는 거죠.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유시민] 왜 그런 걸 희망한대요?

[정준희] 대단히 직설적인 정치인답지 않았고 과감했어요. 이거는 지금까지 없었던 대통령 화법이었거든요.

[유시민] 임기 끝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메신저를 공격할 수 있는 공격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하셨던 거예요. 그 결과 전투에서 패한 거죠.

[자료화면] 명품 시계 두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이 정치라는 것이 언론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고대 로마에서 벌어졌던 콜로세움의 검투 경기와 비슷한 것 같다. 공정한 게임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극히 야비한 암수와 살수 이런 것들이 다 동원된다. 그리고 이긴 자는 영웅이 되고 진 자는 사라진다.

<본방송>

[정세진] 조선일보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악연을 조금 되짚어보려고 하는데요.

[유시민] 노무현 대통령 기록, 자필 기록에 따르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조선일보 배달지국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제대로 받아야 할 임금을 못 받고 일해서 변호사로서 그 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첫 번째 마찰이 있었다고 그러고요. 그다음에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 맡았을 때 그때 보통 프로필은 덕담 비슷하게 소개해주는 거예요, 좋은 점만 이렇게 해서. 거기서 요트 이런 얘기가 나온 거죠. 저게 나중에 호화 요트를 탔다는 것까지 가서 나중에 200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도 계속 저게 논란이 됐죠.

[송수진] 그때 조선일보가 사과를 했었는데도 논란이 계속됐던 건가요?

[유시민] 그럼요. 한 번 일단 보도 나가면 정정 기사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게 인터넷에 퍼지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그렇게 되는 거니까.

[최 욱] 이거 소송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유시민] 네, 중간에 화해를 했을 거예요. 아마.

[최 욱] 소송은 취하했나요?

[유시민] 아마 끝까지 안 갔을 거예요, 당(黨)에서 하도 말려서요.

[최 욱] 아 그래요?

[유시민] “조선일보와 소송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송수진] 그때 1심에서 이겼고 그래서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이 노무현 당시 대변인에게 가서 사과를 한 것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유시민] 그리고 항소심에서 취하를 하고.

[최 욱] 이거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명예훼손 이런 거로 소송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진보는 가난해야 명예롭다’ 그런 틀은 좀 깰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유시민] 그래도 노동 변론을 주 임무로 하는 인권 변호사, 민주화 운동가가 호화 요트를 타고 다녔다고 하면.

[최 욱] 괴리감이 생기는 건가요?

[유시민] 괴리감이 생기죠. 그거는 보통은 잘 안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인격의 이중성을 증명하는 그런 이중인격자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게. 이중인격자. 저 사람 믿지 마라. 그러니까 당하는 당사자로서는 정치인으로서는 몹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공격이거든요. 저런 게.

[정준희] 이 시기가 제가 우리 언론 역사에서 분석할 때 제일 힘이 강할 때예요. 그러니까 87년 이후에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당시에 우리가 ‘조중동’이라고 얘기되는 데가 상업적 성장도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YS 대통령의 등장은 전형적으로 언론이 만들어준 그런 형태였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 당시에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들은 이른바 촌지라고 하는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기자들을 관리합니다. 그래서 ‘YS 장학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던 그런 시점이에요.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어떤 정치인이 그것도 고졸 출신에 그냥 고시 붙어서 변호사 한다는데 ‘이 사람이 뭔가 인권운동 했다네?’ 정도로만 알고 있는 어떤 계보 없는 한 정치인에 대해서 ‘이 사람은 뭐지?’라고 하는 식으로 건드려보는, 언론하고의 관계도 그렇게 특별하게 세우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형식의 기사를 쓴 거죠.

[숄 츠] 독일에서 옛날에 정치가였던 사람(Friedrich Merz), 다른 회사를 위해서 많이 10년이나 일하고 다시 정치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거든요. 기자들 좀 알아보니까 월급 지금 한 1억 정도이고 그리고 개인 비행기 두 대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거 보통 좀 아닌데?” 그다음부터는 이 사람의 인기 완전히 떨어졌거든요. “이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걸 어떻게 대표할 수 있어?” 이 사람 완전히 다른 수준이니까. 그래서 이것 때문에 사실 이런 거는 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유시민] 그런데 이게 되게 재밌는 게요. “한때 부산 요트클럽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산가”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런데 이 요트가 우리 보통 영화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샴페인 잔을 들고 이렇게 하면서 그런 요트가 아니고요. 무동력, 그냥 돛 하나에 밑에 조그맣게 일어설 수 있는 배 있는 그거예요. 그래서 줄 당기면서 바람하고 맞춰서 저기 갔다 오는 거예요. 노 대통령이 이걸 왜 했냐 하면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서. 88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국가대표로요. 그래서 이 광안리 앞바다에서 그때 같이 탔던 분들 증언을 들어보면 불어터진 라면, 컵라면을 먹으면서 바닷물을 때로 들이키기도 하고 거친 모래바람 맞아가면서 “돈 있다고 하는 줄 아냐, 이 요트를? 돈 있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자라야 탈 수 있다.” 이런 글들도 올라오고 했어요.

[정세진] 갑자기 CF의 한 장면을 설명하시는데...

[유시민] 갑자기...

[정준희] 부산 사람 같은 느낌이...

[유시민] 네, 그러니까 부산 사람들이 이 요트를 타거든요. 그리고 요트를 탄다는 건 단순히 돈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고 이 모험심이 강하고 남자답고 그런 느낌이에요, 이게.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다는 게 얼마나 귀여워요.

[유시민] 그렇죠? 요트 배우러 일본도 갔다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일본 갔을 때 요트 가르쳐준 선생님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일본 언론에 인터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거를 정말 ‘어떤 사실을 얼마나 다르게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게 저 간단한 프로필 소개에서 몇 문장 되지 않아요. 그걸로 간단하게 바꾸는 거예요. 이 말과 글의 힘이라는 게요. 정말 위대합니다. 이 프로필을 보고 있으면요.

[정세진] 처음에 어떻게 보면 언론과의 싸움은 조선일보가 시작쯤이었다면 대부분의 언론으로부터 공공의 적이 된 계기가 바로 세무조사 관련된 거였죠? 송수진 기자.

[송수진] 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해양수산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2월 6일에 기자간담회가 있었거든요. 여기서 한 기자가 물어봅니다. “당시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서 이회창 총재가 언론 탄압이라고 얘기를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노무현 당시 장관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언론은 더 이상 특권적 영역이 아니다. 언론과 싸울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 이렇게 얘기를 거침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언론들이 굉장히 크게 반발을 했는데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2001년 2월 9일에 <노무현씨의 언론전쟁>이라는 사설을 썼는데 “과거 어느 독재정권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발언이다.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 이렇게 썼습니다. 노무현 장관인데 노무현 씨라고 제목을 달았고요. 그다음에 동아일보 같은 경우에는 “권력과 긴장관계를 견지해야 마땅한 언론을 ‘전쟁’의 상대로 여긴다면 그것은 언론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같은 경우는 <노무현장관의 반언론적 망발>이라는 사설을 썼는데요. “언론과의 전쟁이란 결국 권력이 언론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독재권력을 만들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정세진] 당시 상황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왜 웃으세요?

[유시민] 아니,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다른 분들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정세진] 세무조사.

[정준희] 사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그 전 정부인 김영삼 정부 때 이미 한 번 했었어요. 그전까지 안 받았던 게 신기한 거죠, 사실은. 모든 법인들은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유시민] 5년에 한 번씩 정기 세무조사를 받게 돼 있죠.

[정준희] 네, 받아야 하는데 안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특권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일종의 프렌들리(우호적인)한 액션이죠, 정부가 보여주는. 언론사에 대한. 그리고 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게 경영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부채 비율이 1000% 넘는 언론사들이 수두룩했고요. 한국에 있는 모든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사실은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업들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서울에 본사를 둔 언론사 14개 정도만 일단 하고 공표를 안 했어요, 겉으로. 그런데 일단 한번 사실은 겁을 준 것처럼 된 거 정도라고 볼 수가 있는데. 2001년 들어오면서 장기 동안 안 받았으니까 이걸 받아야겠다고 했고 실제로 물론 명분은 충분했는데 저는 여기서 말한 조선일보의 발언 중에 “독재정권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 ‘언론전쟁’이라는 거에 대해서. 비록 강한 발언이지만 독재정권 시절에는 언론과 전쟁할 이유가 없었죠. 언론이 자기 거였으니까. 그럼 언론과의 전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비장한 그런 발언이었어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실 그걸 교묘하게 비틀어서 활용한 그런 프레임(frame)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최 욱] 노무현 장관의 그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저 같은 팟캐스트 진행자가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하면 시원한 맛은 있죠. 그런데 정치인이라면 실효성 차원에서라도 뭔가 좀 정치적인 기술을 좀 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숄 츠] 어떤 정치가보다 혁명가였어요. 약간 이런 마인드(mind) 좀 있었어요. 그 별명도 ‘돌콩’ 있잖아요. 이 사람은 조금 고집이 세고 아마 그런 편이었는데요. 그리고 중요한 게 아까도 조금 얘기했는데 ‘전쟁’ 이 단어가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지금 예를 들어서 트럼프 대통령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언론은 나의 적이다.” 이런 말 들어보면 사람들 되게 민감하잖아요.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말씀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데 아마 좋은 방법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약간 더 부드러운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시민] 저는 뭐 최욱 씨 말씀이나 우리 숄츠 선생님 말씀이나 다 동의해요. 공감하고. 그런데 다른 방법이 뭐 있었을까? 부드러운 방법이? 다른 부드러운 방법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거를 권했겠죠, 그 당시에도. 그런데 아무 방법이 없더라고요. 김대중 대통령도 처음에는 (언론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2001년까지는 어떻게든 참고 가보려고. 그때 IMF 외환위기 오고 나서 국가 경제도 어려웠고 그런 판국에 언론하고 갈등을 일으키면 안 좋은 거니까 참고, 참고, 참고, 참다가 “너무한다. 이거는” 그때 제 기억에는 그게 2000년도인가에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송수진] 동아일보에서 쓴 기사죠.

[유시민] 동아일보요. 저는 그 기사가 굉장히 기억에 남거든요. 저는 경제학 전공이니까 GRDP(지역내총생산) 통계나 지역 데이터들을 보면 모든 지역에 추석이 없어요. 다 불경기예요. 그런데 큰 제목으로 “부산, 대구는 추석이 없다”

[송수진] 하필 왜 부산과 대구였는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유시민] 어떻게 언론사에서 이런 기사를 머리기사로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제목을 뽑아서 낼 수가 있지? 대체 뭐 때문에 이 기사를 썼을까? 너무 뻔히 보이는 거예요. 제가 그 신문에 몇 년간 기명(記名) 칼럼을 썼던 사람인데. 그 뒤로 그 신문하고 지금 거의 20년 가까이 거래를 안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신문인 조선일보는 그보다 한 2년쯤 전에 제가 거래를 끊고 이 시간까지 지금 제가 인생 살면서 거래 안 하고 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저항의 방법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는 살 수 없는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제가 MBC <100분토론> 진행자였을 때인데, 이 ‘언론과의 전쟁’ 건이 터졌을 때, 토론자를 못 구하겠는 거예요. 이게 터졌는데 이것을 비판하는 쪽 패널(panel)은 얼마든지 많은데 이거를 찬성 입장에서 토론해줄 토론자를 못 구하는 거예요.

[정세진] 마음에 있어도 나올 수가 없는?

[정준희] 무시무시할 때니까.

[유시민] 네, 무시무시한 거예요.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제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해봤어요. 노무현 해수부 장관이 자기가 나오겠다고. 그래서 우리 CP한테 “아무개 선배, 해수부 장관 나온대요.” “정말? 대박” 이래서 딱 자리 편성을 했어요. 그런데 청와대에서 안 된다고. 총리실에서 나가지 말라고. 그래서 결국 노무현 장관이 못 나왔어요. 명패만 비워놓고. 그 정도로 무섭더라고요. 좀 지위를 가진 분들은 안 나오려고 그래요. 우리나라 유일하게 모든 권력 중에 유일하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에요. 지금도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스캔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여배우와 관련된 건이요.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동생이나 이런 사람이 그런 추문에 휘말렸다고 생각해봐요. 그 당시에 그때 그렇게 넘어갔겠어요? 통화 기록 1년 치가 다 없어지고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지금도요. 한국의 대형 언론사를 가지고 있는 사주들은요. 법 위에 있어요. 지금도요. 노무현 대통령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저 견제 받지 않고 선출된 적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을 저 항구적(恒久的)인 사적 권력이 공론의 영역에서 미치는 힘을 무기로 삼아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사태를 참을 수 없다. 그거였어요. 그래서 우선 세무조사부터 받게 하고. 그렇죠? 그다음에 말로 싸우고. 합법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는 어떤 권력 행사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론을) 못 이긴 거죠. 이길 수가 없어요.

[정준희] 1997년에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여러분도 아실만한 대단히 극단적인 발언을 기자한테 했어요.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발언을 했어요,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보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또 한 가지가 99년에 나왔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책 본부에서 ‘언론을 어떻게 집권 후에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건이 폭로가 됐습니다. 이거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보도 안 했어요. 아무리 집권이 아닌 자라고 하더라도 집권 가능성이 높은 야당의 한 지도자가 만들어낸 이 형태가 보도가 안 됐습니다. 이거 얼마나 비일관적인 일이에요.

[유시민] 중요하지 않은 팩트(fact)이기 때문에.

[정준희]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시민] 그들이 보기에는 이것은 중요하지 않거나 혹은 중요한데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예요. 그러니까 그게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죠. 문지기예요. 그러니까 정치나 혹은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일들 중에서 ‘국민이 알아서 좋을 게 없어’라고 자기들이 판단하는 거는 그냥 없는 거로 만들어 버리고 그다음에 ‘이거는 부풀려서라도 국민들이 어떤 느낌을 갖도록 해줘야 해’ 이런 거는 (앞에서 말한) ‘요트’ 건처럼 엄청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어서 알려주는 거죠. 그러니까 한국 사회를 그 언론들이 지배해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정세진] 당시 세무조사 관련된 이런 언론과의 전쟁 선포 발언은 뭐 아주 그냥 심플(simple)하게 생각하면 언론을 정상화하기 위한 아주 그냥 기본적인 첫 단계 정도로 사실은 받아들이면 되는데 언론 길들이기와 이쪽에서도 역시 전쟁으로 받아들였다는 거.

[유시민] 그렇죠.

[최 욱] 언론의 영향력이 진짜 대단한 게 저도 오늘 이 방송하기 전까지 세무조사로 (언론을) 길들이려고 했다고 오늘날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게 특혜였던 거 아니겠습니까?

[정준희] 그렇죠.

[최 욱] 저는 솔직히 오늘 방송하면서 이거를 지금 자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세진] 항상 방송 하면서 하나씩.

[유시민] 돈 내고 가요.

[정세진] 기성 언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불신. 집권과 함께 동시에 언론 개혁을 바로 시작하고 나섰는데요. 취임을 사흘 앞둔 2003년 2월 22일에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해서 이런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영상>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인터뷰 中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생각 하지 마라. 그리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정정당당하게 해 보자.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좀 빼 달라, 고쳐 달라. 그리고 앞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써 줄 것을 기대해서 말하자면 자주 만나고 소주파티하고 향응하고 이런 방식으로, 어떻든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비적 방법으로 이렇게 이제 대응해왔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번 청와대와 정부는 아주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유시민] 저거 혁명적인 거였죠. 우선 가판(街販) 구독 금지 조치는 뭐였냐 하면 그때가 조간신문 체제 때예요. 아침 신문들이 유력 일간지들이 대부분 다 아침에 나올 때인데. 그러니까 밤에 한 10시쯤 되기 전에 신문을 초판 찍어서 가판이라고 해서 광화문 앞에 가면 신문사 앞에 제일 가까운 가판대에 제일 먼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정부 부처의, 모든 부처의 공무원들이, 거기 공보실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가판 나올 거를. 가판이 나오면 얼른 사서 가지고 가는 거예요. 가서 자기 부처 관련된 거가 까이는 게 나왔나 안 나왔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까이는 게 나왔잖아요? 그럼 그때부터 국장들은 퇴근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회부에 뭐가 났다” 그러면 사회부장한테 전화해서 저녁밥을 먹어야 해요. 그래서 가서 이거 하고 뭐 하고 이래서 사회부장이 듣고 “좀 그렇네. 그럼 국장하고 얘기해볼게요.” 이래서 국장하고 얘기해서 “그래, 그러면 지방판에서 빼.” 그러면 그 다음에 정식 인쇄될 때 그게 빠지잖아요. 그러면 그 공보관은 가서 장관님한테 칭찬 듣고. 그거를 노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하고 있으니까 아예 가판신문을 구독하는 거 자체를 금지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공무원들 만세 불렀어요. 공보관실 공무원들이 이제 정상 퇴근해도 돼요.

[송수진] 단독 인터뷰를 가진 언론사가 당시만 해도 생긴 지 2년밖에 안 되는 온라인 매체, 오마이뉴스였습니다. 굉장히 파격 행보였는데, 이 인터뷰를 한 같은 날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청와대 기자실 운영 계획을 발표하는데요. 기존에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만 청와대 취재를 할 수 있었는데 기자단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에 취재가 가능하도록 개방을 한 겁니다. 이른바 개방형 브리핑(briefing) 제도라는 건데요. 기자실을 없애고 모든 기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브리핑 룸으로 개편을 하는 것이고요.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실시하니까 청와대 출입기자가 DJ 정부 때는 80명 정도였는데 노무현 대통령 때 300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청와대부터 시작을 했고 그다음에 2003년 4월쯤에는 문화관광부가 도입을 했고요. 그다음에 2004년 상반기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유시민] 개방형 브리핑 제도는 왜 했냐 하면 인수위 시절인데요, 이게 그 전에도 계속 그런 일이 있었어요. 기자 분들이 인수위 사무실에 막 다니는 거예요, 이렇게. 그래서 뭐 좀 기밀을 요하는 이런 걸 작성하다가 기자가 들어오면 확 덮는 거야. 생각해봐요, 인수위의 인수위원이 문서 작업을 하다가 기자가 나타나면 이거를 빨리 덮는 거예요, 이렇게. 안 보여주려고.

[송수진] 덮고 싶죠.

[유시민] 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슨 문서 작업을 하다가 잠깐 나갔어요. 뭐 화장실을 갔다 그러면 그때 쓱 들어와서 없잖아요. 쓱 가져가는 거예요.

[정준희] 그렇죠.

[유시민] 가져가서 ‘특종’ 이래서 ‘인수위 무슨 방침 확정’ 해서 내보내는 거예요.

[정세진] 굉장히 허술했네요.

[송수진] 그게 기자 근성을 나타내는 어떤 한 예로 여겨지기도 했었어요.

[유시민] (기자들은) 그거를 해야 기자예요. 그걸 해야 기자지. 그러니까 노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이 문제의식을 너무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어요.

[정세진] 노 전 대통령 전에는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시민] 감히!

[정세진] 감히.

[유시민] 어떻게 감히 언론을 상대로 그런 걸 해요?

[정준희] 언론 학자들은 사실 언론 개혁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로 기자실과 출입처 제도 폐지를 계속해서 얘기해왔거든요. 왜냐하면 독특한 한국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물론 일본하고 좀 공유하고 있는 그런 시스템이고. 자기들끼리 끈끈한 기자들 간의 어떤 풀(pool)단 사이에 어떤 대단히 폐쇄적인 어떤 클럽의 형태로 존재를 하고. 그다음에 거기서 출입처에 있는 취재의 대상과 기자가 한 몸이 되는 사실은 그런 영역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지금도 이 당시의 것들을 기억하면서 (기자실 폐쇄는)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는 약간 놀랄 노 자인데 “이건 한국만의 문화다” 되게 자랑스러워해요.

[숄 츠] 이거는 정말 어떤 엘리트 클럽이었잖아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이 클럽 멤버들 이 당연히 이 클럽 없어지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는. 사람들이 많이 말했던 거. 이거 인포메이션 카르텔(Information Cartel; 정보담합)이라고 그랬어요.

[정세진] 기자실 개방 관련, 또 브리핑 제도 도입 관련해서 당시 언론 보도들 좀 살펴볼까요?

[송수진] 당시 보수언론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또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이렇게 강하게 반발을 했는데요. 조선일보의 경우에는 “노무현 정부 ‘언론 길들이기’의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라고 얘기를 했고요.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낡고 아마추어적인 언론 정책”이라고 평가를 했고 “노무현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정준희] 2004년 6월 13일 자 뉴욕타임즈에 이 기사가 실렸어요. “한때 언론과 권력을 서로 결착시켰던 고리가 드디어 해체되다”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와요.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외신기자들의 눈으로 보면 “이게 드디어 사라지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사 내용에도 보면 “동아시아에서는 드문 무언가가 지금 떠오르고 있다.”

[정세진] 동아시아에서는 드문?

[정준희] 그러니까 왜냐하면 한국은 그래도 드물게 상당히 민주적 국가로 가고 있고, 민주적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것들을 주목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드문 무언가가 뭐냐면 “격렬하게 독립적인 언론”이라는 표현을 써요.

[송수진] 격렬하게 독립적인?

[정준희] fiercely, “격렬하게 독립적이다”라는 대단히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재밌죠? 이 결과로 이제는 드디어 권력과의 고리에서 벗어나서 이제 진짜 언론이 된다고 외신은 보고 있는데 정작 한국의 언론들은 ‘이 소통의 고리를 왜 없애?’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이거를 그 당시에 보도했던 데가 어디 있나 봤더니 한국경제인가 잠깐 짧게 인용 보도를 했고요. 우리나라 그렇게 뉴욕타임즈 좋아하고 외신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자기와 관련된 이런 것들은 인용보도도 안한 그런 상태였던 거죠.

[유시민] 아니, 뭐 기사를 못 봤겠죠.

[유시민] 설마 보고도 인용 안 했겠어요? 바쁘다 보니까 놓쳤을 수도 있죠. 모두가.

[최 욱] 그런 모습이 더 얄미울 것 같아요.

[정준희] 대북(對北),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 대변인 (비유한 기사)은 잘보고 그렇죠?
(뉴욕타임즈, 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유시민] 기자실 문화라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인포메이션 카르텔. 그러니까 정보 담합인데 그건 한 측면에 불과해요. 정부 부처의 공보관의 제일 큰일이요, 기자실을 관리하는 거예요, 기자단을 관리하는 거예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는 각 정부 부처 장관들한테 안기부에서요, 돈을 줬어요. 현금으로요. 제가 알아보니까 보건복지부는 한 2억 정도 줬다고 하고 교육부는 한 3억 정도. 매월.

[정세진, 송수진] 매월?

[유시민] 매월이요. 그 영수증 없이 쓰는 돈 있잖아요. 무슨 특수 활동비인가. 그런데 그 돈이 오면 3분의 1이 공보관한테 가요. 그 현금으로 쓰는 돈의 3분의 1이 기자실용이에요. 그래서 공보관이 그 돈을 가지고 뭘 하냐 하면 골프장도 데리고 가고 생일 선물로 봉투도 주고 여름 되면 휴가비도 지급하고 이거를 다 하는 거예요. 그거를 잘해야 유능한 공보관이에요. 근데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이 돈을 대통령이 청와대 것부터 끊었고 각 부처로 확산돼서 그 돈이 다 끊어졌어요. 그러니까 그전까지 어땠냐 하면 기자실이라는 데 가요, 정당 기자실도 마찬가지고 고스톱 치고 있고 그래요. 점 1000원짜리 고스톱이요. 그러면 이제 대변인은 가서 돈을 잃어줘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때 20대 후반 때에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초선 의원 때 보좌관을 한 2년 잠깐 했는데 그때 제가 본 기자실 풍경이었어요. 끔찍하더라고요. 제 어린 눈에도.

[정세진] 충격이었어요?

[유시민] 제 젊은 눈에도, 이건 뭐지? 그리고 제가 국회의원을 할 때, 장관을 할 때 제가 40대 후반이었는데 저보다 한 20살쯤 어린 기자가 와서 “유 선배, 유 선배” 이러는 거예요. 속으로 “내가 왜 네 선배야?” 본 적도 없고 그냥 기사 쓰니까 이름만 아는데, 와서 거의 반말 비슷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게 기자들은 그렇게 키우는 거래요, 후배 기자들을. 대충 맞먹고 그다음에 나이 많으면 “김 선배, 이 선배” 하고 속으로 “내가 왜 네 선배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표시내면 안 되잖아요. “김 기자 왔어요?”

[정준희] 선배로 불리시는 거는 높은 지위라는 얘기입니다.

[정준희]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유시민] 그 끈적끈적한, 출입처와 출입 기자들의 끈적끈적한 인간적 관계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밥도 안 먹고 같이 술도 안 먹고. 브리핑 필요할 때만 제가 했는데.

[정세진] 너무 차가우셨네요.

[유시민] 나중에 기자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유 선배, 돈 때문에 그러는 거면 5000원짜리 순대국도 괜찮으니까 같이 밥 먹어요. 우리가 더치페이 해도 되고”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볼게요.” 그랬지만 정말 밥 먹기 싫었어요, 저는.

[정세진] 노무현 정부와 언론이 다시 한 번 크게 대립각을 세우게 된 계기. 2007년 1월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새로운 국민건강 대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말 대노(大怒)해서 발언을 했었는데요.

<영상> MBC 뉴스데스크 <盧 "기자실 담합실태 조사하라"> / 2007.01.16.

[앵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담합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실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자] 어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증진 계획에 대한 언론보도를 이례적인 톤으로 비판했습니다.

[노 대통령]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비용 지원, 대선용 의심, 이런 수준으로 폄하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기자실에서 많은 브리핑 내용이 가공되고 특정 방향으로 압축된다고 규정하면서 다른 나라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관련부처에 지시했습니다.

[노 대통령] 거기 그냥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서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할 자료들을 자기들이 가공하고 만들어나가고...

[정세진] 2007년이면 임기가 한 1년 정도 남았을 때였는데 굉장히, ‘(언론이) 정말 안 변하는가’ 라는 어떤 답답함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유시민] 저 말씀을 듣는 순간 눈앞이 아득했어요. 큰일 났다. 당장 복지부로 돌아가면 기자들이 그냥 바로 쳐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이.

[정세진] 어떻게 말씀하셨길래.

[유시민] 참, 그게 저게 사실은 대통령을 직접 제가 찾아뵙고 보고를 드렸던 내용이거든요. 기본 문제의식은 우리의 보건예산 중에서 97% 이상이 치료에 쓰이고 있다.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투자하는 돈은 전체 보건 예산의 3%가 안 됩니다. 그런데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에 더 돈을 투자하면 그 결과, 진료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쪽에서 재정 절감이 올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먼저 이쪽에 투자를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정부 일반 회계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건강보험 재정 자체를 구조조정해서 건강 투자 쪽에 비중을 늘리는 그런 계획을 보고 드렸던 거예요. 대통령이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되게 기분 좋게 보고를 받으시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거든요.

[정세진] 언론 보도에도 그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을 했고.

[유시민] 네.

[정세진] 이거는 정말 좋은 거니까.

[유시민] 네. 그런데 베트남인가 출장 갔다 오셔서 보도를 딱 보니까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그냥 ‘재원 대책 없는 장밋빛 대선 공약’ 그렇게 딱 규정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눈앞이 아득한 게 너무 큰일 났다. 이 말씀이 보도되고 나면 어떤 후폭풍이 불거라는 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그리고 이 건이 보건복지부의 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막 그냥 국무회의 끝날 때까지 막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예요. 좌불안석(坐不安席) 이렇게 하고 있다가 “죄송합니다.” 하고 국무회의 끝나고 장관실로 돌아오니까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 기자실 대표 기자 분들 십여 명이 장관실로 그냥 밀고 오셔서 거기서 제가 사과를 했죠. 죄송하다고. 제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대통령 좀 봐주시라고.

[정세진] 당시 언론 보도들을 좀 살펴볼까요? 송수진 기자.

[송수진] 당시 언론들이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담합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에는 “정부 부처 브리핑 룸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면서 “담합을 할 수 있을 만큼 기자들이 모여 있지도 않다” 이렇게 당시 기자실의 분위기를 설명했고요. 그다음에 경향신문의 경우는 “노대통령이 언론을 제대로 읽거나 보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요즘 외교안보·경제·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각 언론사들이 동일한 시각으로 사안을 조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라고 하면서 담합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정준희] 사과를 요구할 만한 정도의 발언이 되긴 해요. 왜냐하면 정면으로 ‘너희들끼리 담합해서 쓰고 있지 않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거를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정말 누군가의 고백이 터져 나오거나 이러지 않는 한 이거는 증명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방송되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나올 후폭풍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던, 그런 거다.

[유시민] 그러니까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보도가 이렇게 다 나갔는데, 오늘 보니. 되게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좀 화도 좀 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들을 생각할 때 꼭 필요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보고도 받았고 장관을 격려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도가 나가서 정말 안타깝고 서운하다. 주무장관이 언론과 조금 더 소통을 강화해서 좀 더, 더 나은 정책 홍보가 될 수 있도록 힘써라. 이러면 이제 장관을 질책하는 거잖아요. 그게 적합한 거죠. 제가 총알을 맞고 이래야 하는데 대통령이 딱 그렇게 나가버리시니까 모시고 일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막 그렇더라고요, 그게. 아이 참, 지금 생각해도 악몽이에요.

[정세진] 국무회의에서 저렇게 발언하실 거라고는 예상을 전혀 못 하신 건가요?

[유시민] 몰랐죠.

[정준희] 일반적인 일이 아니죠.

[최 욱] (이사장님이) 화를 더 돋우고 한 거는 없으신가요?

[최 욱] (영상에서 노 전 대통령이) 너무 화가 나셔 가지고.

[유시민] 모두발언은 회의시작 할 때 대통령이 맨 먼저 하시는 거예요.

[최 욱] 그래요?

[유시민] 왜 나를 자꾸...

<영상>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귀향 기념 연설 / 2008.02.25.

“오늘은 제 얘기만 해야 하는데요. 그래도 차마 제 얘기만 하고는 그냥 못 가겠습니다. 제가 노무현식 정치를 얘기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정치인인데, 자리가 적절하고 안 하고를 다 떠나서 제가 꼭 소개를 한번 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쓴 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제가 꼭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야! 기분 좋다!”

[정세진] 급기야 2007년 5월에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조치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2003년에 안된 걸 다시 기자실 통폐합, 브리핑 룸 제도를 다시 꺼내든 것이었는데요. 당시 언론의 반발이 아주 거셌습니다. 경향신문은 2007년 5월 23일에 <‘5共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은 관가의 문을 잠그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5공 언론통제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홍보처가 정부 정책의 홍보전위대라는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기구로 나선 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게 주장을 했고요. 동아일보는 다음 날 <“5共때보다 더 악랄한 언론 통제”>라는 따옴표 제목을 달고 “1980년대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보다 더 악랄한, 더 가혹한 언론 통제다. ‘노무현 정권 언론말살 저지 투쟁본부’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정권 퇴진 규탄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당시 한나라당 이규태 의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준희] 이 부분은 이미 앞에서 정권 초기에 사실은 가능성이 있었던 갈등의 양상이 드디어 터져 나온 그런 형태죠. 핵심적인 특권을 건드린 거거든요. ‘기자실’이라고 하는 제도뿐만이 아니라 ‘취재 특권’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먹고사는 핵심인데 이거를 건드려 버린 거예요. 이 지향 자체는 상당히 선진적인 지향이고 실제로 너무도 당연한 것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통령도 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뭔가 싸움을 걸거나 뭔가 바꿔보겠다고 한 사람이 없는데.

[정세진] 끝까지.

[정준희] ‘왜 이 자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라는 심리가 사실은 저는 이 뒤에서 읽혀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말하기에는 사실은 민망했을 텐데 “5공보다 악랄한 언론통제” 최근 독재 발언하고 되게 유사하죠? 5공의 어떤 언론 통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사실은 이런 얘기는 당연히 할 수 없는 그런 문제라고 보고요. 실제로 그 당시 기자들은 어떤 시위를 벌였냐면 노트북 같은 걸 들고 나가서 로비에 쫙 다 앉아서 (타이핑) 치고 그랬어요. 명백한 시위 행위인 거죠. “나는 당신들이 열어준 브리핑 룸 안 들어가겠다. 바닥에서 쓰겠다.”라고 하는 거였고. 여기에서는 소위 말하는 정파적 견해차이나 좌우의 어떤 견해 차이 이런 것들은 없이 일치된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숄 츠]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기자들이 거리 나가게 만드는 (정책) 약간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이 없어졌다.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독일에서는 상상하기는 조금 어렵거든요. 이거는 신문사 건물 아니잖아요. 이거는 청와대나 이거는 사실 정부 집이잖아요. 기자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이거는 우리 너무 불쌍하다, 약간 이런 느낌 받으니까 저한테는 독일 기자 입장으로는 아주 웃기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준희] 당시에 ‘노무현 정부가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브리핑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정보 공개를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에 대해서는 뭔가 평가의 여지는 조금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나 모든 국가는 사실 정보를 공개하기를 그다지 원하지는 않거든요. 말씀처럼 유 장관님처럼 그 당시에 굉장히 열심히 브리핑을 했던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웬만하면 기자 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았기 때문에 이걸 빌미로 사실은 안 만나는 쪽으로, 폐쇄적인 쪽으로 갔을 가능성들은 일부 존재해요. 그리고 통계에도 보면 브리핑이 좀 줄어들었다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얘기는 있습니다.

[정세진] 강력한 큰 반발을 얻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도들을 계속 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언론 개혁을 시도하면서 어떤 고뇌를 했는지 참여정부 시절에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송수진 기자가 만나서 이야기를 좀 들어봤습니다.

<영상> 김종민 의원 인터뷰 / 2019.05.21.

[김종민] “내가 언론하고 이렇게 관계가 안 좋은 게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거 아니냐?”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그러시더라고요. “물론 내가 언론하고 조금 더 좀 유화적이거나 아니면 관계를 잘 풀었으면 정책수행에 조금 더 도움이 됐을 수는 있겠다, 개별정책에서는. 하지만 언론과의 관계는 돌아보면 내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거래관계를 맺어서 이 권력을 유지하게 되면 결국 국민들한테 손해고 이게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된다. 나는 이거를 나한테 주어진 역사적인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봤지만 지금까지 해왔다.” “나는 새 시대의 장남이 될 수 없다. 난 구시대의 막내다.”

[정세진] 이번 메모에서도 나왔지만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처’ 이런 메모도 있었는데요. “이건 역사적인 숙명이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고 말씀하시네요.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유시민] 이 전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패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봐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상대를 공격해서 도저히 이기는 데에 필요한 무기도 없어요. 대통령은 혼자 말하는데, 신문사들은 여러 개가 매일매일 몇 백만 부를 찍어대면서 이걸 (공격)한단 말이에요. 방송도 같이 거기에 얹어지죠. 그러니까 이 화력에서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 거예요. 그리고 졌어요. 그런데 그럼 이 전쟁이 끝났냐? 그거는 결코 아니라는 거죠. 다 같이 돌을 던졌어요. 욕을 하고. 그런데 그분이 딱 목숨을 끊어버렸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게 죽을 만큼 큰 잘못이었나? 그거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사람 왜 죽었지? 생각하니까 자기도 거기에 돌 던진 것 같고 나도 욕했던 것 같은데 그게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 욕했던 많은 내용 중에서 사실로 확인된 거는 별로 없는 것 같고 아직. 사실인지 여부를 알 수도 없어진 것 같고 그런데 너무 심하게 우리가 그렇게 해서, 죽을 만큼 잘못한 건 아닌데 그 사람이 죽은 거 아니야? 이런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내가 왜 그렇게 욕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거기에 신문들이 있었던 거예요, 언론이. 그러니까 국민들로서도 일종의 자기 면책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죠. 그러니까 언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반대로) 언론인들은 또 억울할 수 있죠. 서로 모든 것이 물려 있어요. 맞물려 있어요.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 정상적인 언론, 꿈꾸는 언론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그림을 좀 전해주신다면?

[유시민]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 대통령은 협잡(挾雜)하지 않고 그냥 독립한 주체로서 당당한 언론. 그러나 수준 있는 보도를 하는 언론. 그런 거를 되게 바라셨죠. 그게 상식적인 거 아니에요?

[숄 츠] 그렇죠.

[유시민] 그냥 대통령이 바라는 언론이라는 게 그거밖에 더 있겠어요? 노 대통령은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것이 스스로 너무 비굴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방에서 그렇게 말리는 데도.. 상당히 로맨틱한 분이셨어요.

[정준희] 저는 사실은 이 부분이 ‘국민들이 그럼 어떻게 기억하나’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거치면서 언론의 거의 바닥을 본 거죠, 상당 부분은. 그리고 아까 트라우마(trauma)라는 표현을 썼는데 ‘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민낯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그다음에 그걸 상처로 갖게 된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났다는 거예요. 실제로 2016년에 나온 논문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나 이런 것들을 기억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기억하는 그런 방식을 (연구)했는데 하나가 지역주의 타파, 또 한 가지가 서민을 위한 정치, 세 번째가 언론 개혁 정책이라고 나와요. 상당히 높은 우선순위거든요. 세 번째로 이게 언론 개혁 정책이 기억되고 있다는 건, 실패했든 성공했든 간에 언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상당히 공감하고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것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고 언론의 개혁에 뭔가 구조적이고 어떤 개혁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열망하고 있는 어떤 바탕을 깔았던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을 닮아서 이렇게 투쟁할 수 있다, 우리도 싸울 수 있다. 언론을 어떻게 개혁하고 좀 더 나은 언론이 되기를 원하는 시민들, 국민들의 어떻게 보면 본보기, 모범이 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유시민] 저는 한때는,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는 헤어날 방법이 없다. 현직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 미디어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좀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유튜브를 하잖아요. 그 전에는 무슨 기사에서 한 방 얻어맞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냥 기자한테 전화해서 “김 기자님, 사실 그게 아니었는데요.” 하고 빌어야지. 어디 기자실에 가서 “김 기자 나 좀 봅시다.” 이랬다가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정치인이라고 또 맞아요, 그 다음날. 제가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지금은 제가 우아하게 제가 하는 유튜브에서 그 얘기 한 건 사실 그게 아니고 그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한 거고요. 그런 소리 그만하세요. 이렇게 제가 얘기할 수가 있어요.

[송수진] 그러면 기자들이 그거를 또 받아쓰죠.

[유시민] 네, 그러니까 저는 빌게이츠나 그 애플 누구예요?

[최 욱] 스티브 잡스.

[유시민] 스티브 잡스 이런 분들이

[정세진] 너무 고마워요?

[유시민] 너무 고마워요. 예수님, 부처님과 동급이에요 저한테.

[유시민] 그래서 덜 무서워요. 그래서 예전에는 언론인들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사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 이제는 좀 견딜 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의 태도로 살고 있죠.

[정세진] 노무현 대통령의 어떤 적극적인 언론개혁 시도라든지 언론과의 투쟁,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 와서 남긴 것. 우리에게 그래도 무언가는 얻은 게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나 시민들이나 그 부분을 지적해 주시죠.

[정준희] 모든 언론이 이를테면 민주주의의 기여자가 되고 그다음에 품위가 있고 사실만을 이야기하며 정의를 추구한다? 환상이죠. 옛날에도 그랬고 이거는 지금도 마찬가지고. 새로운 언론이 등장해도 저는 그거는 지금과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중요한 건 나를 비판해도 의미 있는 비판을 해주는 거고 약간은 열이 받더라도 내가 얘한테 얘기를 해줘야 하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 어떤 대상이 생겨나야 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그런 의미 있는 민주제 파트너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스스로가 상층부라고 생각하는 기성의 언론들은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 거죠. 이거를 어떻게 새로 형성할 것인가?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유시민] 제가 내린 결론은 그런 거예요. 인간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더라고요. 그냥 지나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는 게 세상이에요. 너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고 그러고 해석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에 대해서 너무 격분해서도 안 될 것 같고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다 아무 이치도 없이 그냥 모든 일들이 그냥 다 일어나니까 그걸 다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삶은 그 양극단의 사이에 중간 어디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도 한때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그만해야겠다.

[정세진] 오늘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철학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많이 힘드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꼭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많은 좋은 말씀해주셨지만. 괜찮으세요?

[유시민] 괜찮은 것 같죠? 네. 저도 좀 되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그런 게 많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근데 이제 좀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각자가 좀 특히 언론과 관련해서는 기자 분들은 기자 분들대로. 또 취재 대상이 되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특히 정치 보도와 관련해서는. 그리고 언론 소비자 또는 정보 수용자로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의심해 보는 태도. 이게 다 사실은 아닐 수 있어. 또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사실에 대한 이런 해석이 전적으로 옳은 거는 아닐지 몰라. 이런 생각을 좀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저는 뭐 괜찮은 그런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 소망 또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게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삶과 생각을 돌아보는 그런 계기만 될 수 있다면 또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하죠. 이게 참 얘기하기 쉽지 않아요, 진짜.

[최 욱] 저는 충분히 많은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일상에서 싸우다가 다툼이 있다가 “야, 이 얘기 신문에 난 거야” 하면 게임이 끝났어요. 그런데 검사와의 대화. 저는 사실 항상 그거를 보면서 ‘저거 왜 괜한 거를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내가 보고 느낀 것과 언론이 보고 느낀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거를 이제 우리가 확인 받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거 신문에 나온 거야”라는 말로 이제 싸움이 끝나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충분히 저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정세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서 오늘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는 노무현과 언론, 노무현의 언론 개혁,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개혁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지금 언론의 현주소는 어떤지 조금 비춰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오늘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는데요. 소감까지 여쭤보면 어떨까요?

[유시민] 언론에 대해서는 저도 어떤 결론을 갖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우리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솔직하게 나누다 보면 뭔가 좀 갈 길이 혹시라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왔고요.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돌아보기가 가볍지 않은 그런 일이라서 약간 힘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말하고 나니까 좋네요.

[정세진] 시민 분들, 국민 여러분들 또 시청자 분들도 방송 보시고 많은 것을 또 느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좋은 말씀, 의미 있는 이야기 전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유시민] 고맙습니다.

[정세진] 또 나와 주실 수 있습니까?

[정세진] <저널리즘 토크쇼 J> 오늘 저희가 준비한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KBS 1TV, myK, pooq, 유튜브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언론의 관행은 여러분이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밤 10시 3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엔딩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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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본질적으로 ‘시민’입니다. 그리고 국민주권국가에서 여러분은 ‘주권자’입니다.”
“자,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지도자와 시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 -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194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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