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의 30년째 금기어 ‘6·4, 천안문 어머니’

입력 2019.06.04 (07:04) 수정 2019.11.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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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역린(逆鱗)…‘6.4 천안문 민주화 시위’

중국에서 5월 35일이라고 부르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 6월 4일이다. '1989년 6월 4일' '6월 4일' '6·4' 이런 단어들로는 중국 SNS나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할 수 없다. 중국 당국이 금기어로 정해 놓은 탓이다. 6월 4일과 연관된 다른 금기어도 많은 데, 일테면 '천안문 어머니'다. '천안문 어머니회'는 천안문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 이름이다. 벌써 30년째 천안문 민주화 시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명예 회복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유혈 진압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중국 공산당의 최대 치부다. 중국 정부는 이 역사적 사실을 꺼내는 것을 역린(逆鱗,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으로 여긴다. 1989년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그 후세대들엔 실재했던 역사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천안문 광장 시위에 대한 정의도 국제사회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다. 극소수 반사회적, 반공산주의 세력이 노동자와 서민을 선동해 일으킨 '폭란(暴亂)'이라는 거다. 2010년대 이후 '정치적 풍파'로 표현수위를 조금 누그러뜨리기는 했지만, 본질에서 '반란(反亂)'이라는 성격은 같다. 소총과 탱크를 동원한 무력 유혈 진압도 민주화 요구에 패망한 소련을 예로 들며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인민을 위한 군대 '인민 해방군'이 무고한 '인민'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30주년 천안문 시위…무슨 일이 있었나?

천안문 시위 출발은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전 총서기 사망에서 비롯됐다. 덩샤오핑의 심복이었던 후야오방 총서기는 경제개혁과 함께 정치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요구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학생 시위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한다. 그리고 정치국 회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후야오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추모 행사는 금세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 '빈부 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집회로 발전했다. 개혁개방 과실을 독차지한 부패한 관료와 공산당 일당 독재에 중국 인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군중이 100만 명에 달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논쟁 끝에 무력 진압을 결정한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를 기해 인민해방군이 광장에 투입됐다. 이날 하루 발생한 사망자가 중국 당국은 수백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위 지도부는 최소 7천 명이 숨졌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시위 지도부에 대한 검거 열풍이 불었다. 그리고 대학생들에 대한 군사 교육과 공산주의 이론 교육,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이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이 주로 철학과 역사학과 학생들이라고 해서 베이징대 등에는 신입생 모집조차 금지됐다. 이런 흐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줄이기도 했다.


감춘다고 숨겨지는 게 역사일까?

중국 정부가 천안문 시위 유혈 진압을 인정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 최대 치부를 자백하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는 천안문 시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어떤 매체도 기사 한줄 없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본토 밖 중화권 지역과 미국과 유럽에서는 천안문 시위의 진실 규명과 역사적 재정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에서는 이미 지난달 30주년 집회와 거리 행진이 열렸다. 오늘도 빅토리아 공원에서 촛불 집회가 열린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 30주기 추모식, 중국 장시성 2019.4.15후야오방 전 총서기 30주기 추모식, 중국 장시성 2019.4.15

역사는 감춘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중국 장시성 궁칭청에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3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사망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베이징의 바바오산 혁명 묘역에 안치된 것과 달리 후야오방은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를 기억하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추모식에 참석한 중국 사회과학원 사회정책연구중심 고문 양환 씨가 SNS에 "추모식은 짧고, 조촐했지만 비통하고 엄숙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후 전 총서기의 고향 후난성 류양시에서도 이틀에 걸쳐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역사가는 "중요한 것은 후 전 총서기의 생각, 즉 민주주의와 자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기억되고 토론되고 있는 것"이라며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30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의 감시와 검열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보여주는 언론보도가 많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감시 작전을 편다고도 하고,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접속이 차단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 SNS 위챗 단체 대화방에 통지문이 돌았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달라진 통제 기술 만큼이나 옛날보다 많이 부유해진 중국 인민들의 정보 접근 방식도 발전했다. 이것이 과연 통제로 차단되는 것일까? 그리고 중국 스스로 밝혔듯이 중국은 이미 한 해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국 밖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나라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한 많은 나라가 중국에 교훈을 던지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헐뜯으려던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드러났다. 중국에 '천안문 어머니회'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수많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와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그들의 헌신을 조명하는 많은 노력이 있었고, 희생자들은 지금 국가가 마련한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 모셔져 있다. 중국이라고 해서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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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04 07:04:05
    • 수정2019-11-14 09: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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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역린(逆鱗)…‘6.4 천안문 민주화 시위’ 중국에서 5월 35일이라고 부르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 6월 4일이다. '1989년 6월 4일' '6월 4일' '6·4' 이런 단어들로는 중국 SNS나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할 수 없다. 중국 당국이 금기어로 정해 놓은 탓이다. 6월 4일과 연관된 다른 금기어도 많은 데, 일테면 '천안문 어머니'다. '천안문 어머니회'는 천안문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 이름이다. 벌써 30년째 천안문 민주화 시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명예 회복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유혈 진압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중국 공산당의 최대 치부다. 중국 정부는 이 역사적 사실을 꺼내는 것을 역린(逆鱗,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으로 여긴다. 1989년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그 후세대들엔 실재했던 역사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천안문 광장 시위에 대한 정의도 국제사회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다. 극소수 반사회적, 반공산주의 세력이 노동자와 서민을 선동해 일으킨 '폭란(暴亂)'이라는 거다. 2010년대 이후 '정치적 풍파'로 표현수위를 조금 누그러뜨리기는 했지만, 본질에서 '반란(反亂)'이라는 성격은 같다. 소총과 탱크를 동원한 무력 유혈 진압도 민주화 요구에 패망한 소련을 예로 들며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인민을 위한 군대 '인민 해방군'이 무고한 '인민'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30주년 천안문 시위…무슨 일이 있었나? 천안문 시위 출발은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전 총서기 사망에서 비롯됐다. 덩샤오핑의 심복이었던 후야오방 총서기는 경제개혁과 함께 정치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요구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학생 시위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한다. 그리고 정치국 회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후야오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추모 행사는 금세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 '빈부 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집회로 발전했다. 개혁개방 과실을 독차지한 부패한 관료와 공산당 일당 독재에 중국 인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중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천안문 광장을 지키는 군중이 100만 명에 달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논쟁 끝에 무력 진압을 결정한다. 1989년 6월 4일 새벽 6시를 기해 인민해방군이 광장에 투입됐다. 이날 하루 발생한 사망자가 중국 당국은 수백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위 지도부는 최소 7천 명이 숨졌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시위 지도부에 대한 검거 열풍이 불었다. 그리고 대학생들에 대한 군사 교육과 공산주의 이론 교육,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이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이 주로 철학과 역사학과 학생들이라고 해서 베이징대 등에는 신입생 모집조차 금지됐다. 이런 흐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줄이기도 했다. 감춘다고 숨겨지는 게 역사일까? 중국 정부가 천안문 시위 유혈 진압을 인정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 최대 치부를 자백하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는 천안문 시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어떤 매체도 기사 한줄 없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본토 밖 중화권 지역과 미국과 유럽에서는 천안문 시위의 진실 규명과 역사적 재정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에서는 이미 지난달 30주년 집회와 거리 행진이 열렸다. 오늘도 빅토리아 공원에서 촛불 집회가 열린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 30주기 추모식, 중국 장시성 2019.4.15 역사는 감춘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중국 장시성 궁칭청에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3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사망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베이징의 바바오산 혁명 묘역에 안치된 것과 달리 후야오방은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를 기억하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추모식에 참석한 중국 사회과학원 사회정책연구중심 고문 양환 씨가 SNS에 "추모식은 짧고, 조촐했지만 비통하고 엄숙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후 전 총서기의 고향 후난성 류양시에서도 이틀에 걸쳐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역사가는 "중요한 것은 후 전 총서기의 생각, 즉 민주주의와 자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기억되고 토론되고 있는 것"이라며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30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의 감시와 검열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보여주는 언론보도가 많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감시 작전을 편다고도 하고,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접속이 차단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 SNS 위챗 단체 대화방에 통지문이 돌았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달라진 통제 기술 만큼이나 옛날보다 많이 부유해진 중국 인민들의 정보 접근 방식도 발전했다. 이것이 과연 통제로 차단되는 것일까? 그리고 중국 스스로 밝혔듯이 중국은 이미 한 해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국 밖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나라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한 많은 나라가 중국에 교훈을 던지고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헐뜯으려던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드러났다. 중국에 '천안문 어머니회'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수많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와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그들의 헌신을 조명하는 많은 노력이 있었고, 희생자들은 지금 국가가 마련한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 모셔져 있다. 중국이라고 해서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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