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피터 팬’과 ‘해리 포터’의 고향이 스코틀랜드인 이유

입력 2019.06.04 (07:04) 수정 2019.06.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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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스코틀랜드에 이른바 <피터 팬의 집(사진 위)>이 문을 열었다.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된 현관 로비와 중앙의 둥근 지붕까지... 마치 이야기 속에 들어온 듯 몽환적 느낌을 주는 건물 안에는 만화경과 같은 100여 년도 더 전의 장난감들과 수천 권의 동화책들이 놓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구경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주인공이 되어 피터 팬 이야기 속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피터 팬 그림자 잡기 놀이' 같은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도 마련되었다. <피터 팬>의 등장인물인 웬디의 보모 노릇을 하는 강아지 나나가 사는 집으로 기어들어 가 드레스와 가면 등 변장용 소품이 놓인 공연장에 찾아가 볼 수도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peterpanmoatbrae.org/사진 출처: https://www.peterpanmoatbrae.org/

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의 '모우트 브래 하우스(Moat Brae House).' 1832년 지어진 죠지언 시대의 이 낡은 저택이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들을 위한 <피터 팬의 집>으로 단장하고 재개장했다. 동화 <피터 팬(1911년 출간)>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JM Barrie; 1860년에 태어난 영국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곳에서 살면서 <피터 팬 이야기>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에 여기서 보낸 시절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으나 '모우트 브래 하우스'는 배리가 떠난 후에는 병원과 요양원 등으로 쓰이다 버려졌었다. 그랬던 것을 지난 2011년 철거를 단 사흘 앞두고, 지역의 자선단체(Peter Pan Moat Brae trust)가 사들여 가까스로 보전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의 ‘모우트 브래 하우스.’ ‘영원한 소년’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의 ‘모우트 브래 하우스.’ ‘영원한 소년’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8년이라는 시간과 850만 파운드에 이르는 공사비(한화 약 127억 7천만 원)를 들여 3층 규모에 테라스가 있는 널찍한 정원이 딸린 모습으로 재탄생한 '모우트 브래 하우스'는 사실 단순한 볼거리나 흥미로운 체험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국립 어린이 문학센터(National Centre for Children's Literature and Storytelling)'로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공 도서관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먼 데이비드슨 센터장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보존 서고(an archive of books that nobody could touch")를 만들기보다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성장의 필수 요소가 되는 세상(a world where reading and storytelling are an integral part of growing up)"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피터 팬>에 나오는 섬 이름을 따 '네버랜드'라고 이름 붙여진 정원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후크 선장이 탔을 법한 실물 크기의 해적선과 작은 호수, '잃어버린 소년들'이 살 법한 나무 위의 집 등을 둘러보면서 읽기와 스토리텔링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난독증을 앓고 있거나 책 읽기를 싫어하거나 읽는 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까지도" 말이다.

스코틀랜드 국립 어린이 문학센터 안에 있는 정원 ‘네버랜드’에서 피터팬과 팅커벨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모우트 브래 하우스 홈페이지 캡쳐)스코틀랜드 국립 어린이 문학센터 안에 있는 정원 ‘네버랜드’에서 피터팬과 팅커벨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모우트 브래 하우스 홈페이지 캡쳐)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성장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세상"

스코틀랜드가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스코틀랜드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 창조와 예술에 영감을 주는 나라"로 통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에든버러성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호그와트 이야기를 상상하고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셜록홈스>와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명작 소설들이 탄생한 토대가 된 곳도 스코틀랜드이다.

물론 영국인들이 <피터 팬>에 나오는 시간이 멈추는 곳, 영원히 늙지 않는 공간 '네버랜드'일 거라고 믿는 북부의 하이랜드와 스카이섬 같이 스코틀랜드 특유의 장대하고 신비스런 풍광과 자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절경. 빙하가 깎아 놓은 깊은 산들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는 곳이다. 동화 ‘피터 팬’에서 “내일이면 어른이 된다”는 웬디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멈춰 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로 떠나자고 피터 팬이 제안하고, 요정 팅커벨이 지팡이로 가루를 뿌리자 피터 팬은 웬디와 그의 동생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는데, 영국인들은 하이랜드가 바로 그 네버랜드라고 생각한다.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절경. 빙하가 깎아 놓은 깊은 산들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는 곳이다. 동화 ‘피터 팬’에서 “내일이면 어른이 된다”는 웬디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멈춰 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로 떠나자고 피터 팬이 제안하고, 요정 팅커벨이 지팡이로 가루를 뿌리자 피터 팬은 웬디와 그의 동생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는데, 영국인들은 하이랜드가 바로 그 네버랜드라고 생각한다.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의 글렌피넌 대교 위를 지나가는 증기 열차 Jacobite steam train. ‘해리 포터’에 실제로 나왔던 호그와트행 기차이다.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의 글렌피넌 대교 위를 지나가는 증기 열차 Jacobite steam train. ‘해리 포터’에 실제로 나왔던 호그와트행 기차이다.

하지만 스토리에 담겨진 '마법 같은 위로'와 '인습적 사회에 만연한 어른의 역할에 맞서는 저항정신' 같은 메시지는 결코 풍광과 같은 외적 자극으로부터 비롯된 영감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터.

어쩌면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읽고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말로써 이야기해주는 것(storytelling)을 생활화해 자라면서 필수적인 경험으로서 갖추게 해주겠다"는 스코틀랜드의 교육 철학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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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6-04 09: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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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스코틀랜드에 이른바 <피터 팬의 집(사진 위)>이 문을 열었다.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된 현관 로비와 중앙의 둥근 지붕까지... 마치 이야기 속에 들어온 듯 몽환적 느낌을 주는 건물 안에는 만화경과 같은 100여 년도 더 전의 장난감들과 수천 권의 동화책들이 놓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구경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주인공이 되어 피터 팬 이야기 속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피터 팬 그림자 잡기 놀이' 같은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도 마련되었다. <피터 팬>의 등장인물인 웬디의 보모 노릇을 하는 강아지 나나가 사는 집으로 기어들어 가 드레스와 가면 등 변장용 소품이 놓인 공연장에 찾아가 볼 수도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peterpanmoatbrae.org/
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의 '모우트 브래 하우스(Moat Brae House).' 1832년 지어진 죠지언 시대의 이 낡은 저택이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들을 위한 <피터 팬의 집>으로 단장하고 재개장했다. 동화 <피터 팬(1911년 출간)>의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JM Barrie; 1860년에 태어난 영국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곳에서 살면서 <피터 팬 이야기>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에 여기서 보낸 시절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으나 '모우트 브래 하우스'는 배리가 떠난 후에는 병원과 요양원 등으로 쓰이다 버려졌었다. 그랬던 것을 지난 2011년 철거를 단 사흘 앞두고, 지역의 자선단체(Peter Pan Moat Brae trust)가 사들여 가까스로 보전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의 ‘모우트 브래 하우스.’ ‘영원한 소년’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8년이라는 시간과 850만 파운드에 이르는 공사비(한화 약 127억 7천만 원)를 들여 3층 규모에 테라스가 있는 널찍한 정원이 딸린 모습으로 재탄생한 '모우트 브래 하우스'는 사실 단순한 볼거리나 흥미로운 체험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국립 어린이 문학센터(National Centre for Children's Literature and Storytelling)'로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공 도서관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먼 데이비드슨 센터장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보존 서고(an archive of books that nobody could touch")를 만들기보다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성장의 필수 요소가 되는 세상(a world where reading and storytelling are an integral part of growing up)"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피터 팬>에 나오는 섬 이름을 따 '네버랜드'라고 이름 붙여진 정원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후크 선장이 탔을 법한 실물 크기의 해적선과 작은 호수, '잃어버린 소년들'이 살 법한 나무 위의 집 등을 둘러보면서 읽기와 스토리텔링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난독증을 앓고 있거나 책 읽기를 싫어하거나 읽는 데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까지도" 말이다.

스코틀랜드 국립 어린이 문학센터 안에 있는 정원 ‘네버랜드’에서 피터팬과 팅커벨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모우트 브래 하우스 홈페이지 캡쳐)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성장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세상"

스코틀랜드가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스코틀랜드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 창조와 예술에 영감을 주는 나라"로 통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에든버러성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호그와트 이야기를 상상하고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셜록홈스>와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명작 소설들이 탄생한 토대가 된 곳도 스코틀랜드이다.

물론 영국인들이 <피터 팬>에 나오는 시간이 멈추는 곳, 영원히 늙지 않는 공간 '네버랜드'일 거라고 믿는 북부의 하이랜드와 스카이섬 같이 스코틀랜드 특유의 장대하고 신비스런 풍광과 자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절경. 빙하가 깎아 놓은 깊은 산들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는 곳이다. 동화 ‘피터 팬’에서 “내일이면 어른이 된다”는 웬디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멈춰 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로 떠나자고 피터 팬이 제안하고, 요정 팅커벨이 지팡이로 가루를 뿌리자 피터 팬은 웬디와 그의 동생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는데, 영국인들은 하이랜드가 바로 그 네버랜드라고 생각한다.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의 글렌피넌 대교 위를 지나가는 증기 열차 Jacobite steam train. ‘해리 포터’에 실제로 나왔던 호그와트행 기차이다.
하지만 스토리에 담겨진 '마법 같은 위로'와 '인습적 사회에 만연한 어른의 역할에 맞서는 저항정신' 같은 메시지는 결코 풍광과 같은 외적 자극으로부터 비롯된 영감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터.

어쩌면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읽고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말로써 이야기해주는 것(storytelling)을 생활화해 자라면서 필수적인 경험으로서 갖추게 해주겠다"는 스코틀랜드의 교육 철학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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