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덩어리에 깃든 ‘천년 미소’…성(聖)과 속(俗)을 초월한 오백나한

입력 2019.06.04 (11:09) 수정 2019.06.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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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웃음'을 그린 문화재를 찾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서양 미술의 역사에선 '미소' 하면 가장 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 유명한 <모나리자>를 꼽더군요.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미소'가 있을까. '한국의 미소'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뭘까. 그래서 제가 찾아본 건 이렇습니다. 우선 삼국시대. 신라 하면 역시 '얼굴무늬 수막새'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현재 길이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현재 길이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골동상에게 구매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 유물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사연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길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찌됐건 어느 뜻있는 분의 간절함이 기적적으로 결실을 맺어 되찾아온 이 귀중한 유물이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었죠.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 이봉직 <웃는 기와> 중에서

(왼쪽)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백제 ‘7세기 초’, 국보 84호 (가운데)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2×54.8cm,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오른쪽)중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21호, 하회병산동민 소유,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왼쪽)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백제 ‘7세기 초’, 국보 84호 (가운데)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2×54.8cm,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오른쪽)중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21호, 하회병산동민 소유,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

그렇게 시대별로 대표적인 유물을 찾다 보니, 백제는 <서산마애불>, 고려는 <수월관음>, 조선은 <하회탈>이더라는 겁니다. 물론 이 유물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일부러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미소'를 뽐내는 문화재들은 이 밖에도 더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남긴 자취 속에서 '웃음'을 보여주는 유물을 찾아 헤맸던 건 2017년 3월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사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지난해 말,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개최된 어느 전시회를 소개한 사진들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돌조각들이 보여주는 미소가 가히 '역대급'이었기 때문이죠. 꼭 직접 가서 보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전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춘천까지 가서 전시를 직접 보고온 주변 분들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까지 했답니다. 아, 그런데 결국은 그 간절함이 가닿은 걸까요. 서울에서 똑같은 전시가 다시 열린다지 뭡니까. 서울 전시를 열어준 박물관의 배려에 거듭거듭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서둘러 전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명불허전.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더군요. 이름 없는 석공은 그 옛날 어찌 저 거칠고 메마른 화강암을 쪼개고 깎고 문지르고 다듬었을까. 게다가 무슨 조화를 부려 저리도 선하고 따뜻한 웃음을 차가운 돌에 새겨 넣었을까. 저 환한 웃음을 지어내면서 석공은 마음에 무엇을 품었을까.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빌었을까.

이 돌조각상들은 2001년 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천리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김병호 씨가 발견한 겁니다. 발굴 조사 도중 창령(蒼嶺)이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돼 사찰 이름이 창령사라는 사실이 확인됐죠. 절이 있던 자리에 묻혀 있던 돌조각은 317점, 이 가운데 형태가 완전한 것이 64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립춘천박물관이 특별전을 위해 깨지고 부서진 조각을 맞춰 12점을 복원해냅니다.

땅과 같아서 성내지 않고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네.
아라한은 번뇌가 없어
세상에 나고 죽음이 끊어지네.
- <법구경 法句經> 10장, 나한품(羅漢品)

이 돌조각들은 '나한상'입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聖者)를 가리킵니다. 공양받아 마땅한 자, 복을 심는 밭, 진리에 상응하는 자 등으로도 불립니다. 영월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돌조각상의 수효를 헤아려보면 '오백나한'으로 여겨집니다.

인도에 뿌리를 둔 오백나한 신앙은 중국을 거쳐 고려시대에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나한 신앙은 '재난 구제'가 주요 목적이었다고 하죠. 세속의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성자의 경지에 올랐으니, 오백 명이나 되는 나한상을 만들어 사찰에 모신 건 결국 '신앙'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고요한 전시장 안에서 명상하듯 앉아 있는 나한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서일까요. 결가부좌하고 앉아 수행하는 나한들의 표정에는 한없이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근엄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미지여서 듬뿍 정이 가는 존재들.

그래서 자세도, 표정도 천차만별이죠. 분명 한 사람이 만든 건 아닐텐데 어쩌면 저리도 다채로운 얼굴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그중에서도 유독 가사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거나 두건을 쓴 나한상이 많이 보입니다. 역시 수행하는 성자의 이미지를 강조해서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머리까지 가사를 덮어쓴 경우를 복두의(覆頭衣) 나한이라고 한답니다. 영월 창령사 터에서 나온 나한상 가운데는 유난히 이런 모습의 나한이 많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남북조시대에 선불교를 전한 달마(達磨)입니다.


마을에 있거나 들판에 있거나
평지에 있거나 높은 언덕에 있거나
아라한이 지나는 곳이라면
어느 누가 그의 은혜 입지 않으리.
- <법구경 法句經> 10장, 나한품(羅漢品)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머물며 나와 실은 다르지 않은 높이에 있는 나한이기에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미술사학자 조은정 선생의 말입니다. 전시(展示)는 말 뜻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죠. 하지만 나한들 사이를 가만히 거닐면서 그 표정과 몸짓을 살피다 보면 나한상을 '관람하는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전시는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비우는' 자리라고. '눈으로 읽는' 관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가장 마음에 드는 나한상 앞에서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깨달음은 결코 먼 곳이 있지 않다고, 네가 곧 깨달은 자라고 말을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자애로운 표정의 나한에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고려의 미소'를 찾았습니다.


■전시 정보
- 제목: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 기간: 2019년 6월 13일까지
-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작품: 창령사 터 출토 석조나한상 8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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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덩어리에 깃든 ‘천년 미소’…성(聖)과 속(俗)을 초월한 오백나한
    • 입력 2019-06-04 11:09:59
    • 수정2019-06-04 11:48:42
    취재K
한때 '웃음'을 그린 문화재를 찾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서양 미술의 역사에선 '미소' 하면 가장 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 유명한 <모나리자>를 꼽더군요.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미소'가 있을까. '한국의 미소'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뭘까. 그래서 제가 찾아본 건 이렇습니다. 우선 삼국시대. 신라 하면 역시 '얼굴무늬 수막새'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현재 길이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골동상에게 구매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 유물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사연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길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찌됐건 어느 뜻있는 분의 간절함이 기적적으로 결실을 맺어 되찾아온 이 귀중한 유물이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었죠.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 이봉직 <웃는 기와> 중에서

(왼쪽)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백제 ‘7세기 초’, 국보 84호 (가운데)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2×54.8cm,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오른쪽)중탈,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21호, 하회병산동민 소유, 국립중앙박물관 위탁 보관
그렇게 시대별로 대표적인 유물을 찾다 보니, 백제는 <서산마애불>, 고려는 <수월관음>, 조선은 <하회탈>이더라는 겁니다. 물론 이 유물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일부러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미소'를 뽐내는 문화재들은 이 밖에도 더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남긴 자취 속에서 '웃음'을 보여주는 유물을 찾아 헤맸던 건 2017년 3월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사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지난해 말,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개최된 어느 전시회를 소개한 사진들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돌조각들이 보여주는 미소가 가히 '역대급'이었기 때문이죠. 꼭 직접 가서 보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전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춘천까지 가서 전시를 직접 보고온 주변 분들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까지 했답니다. 아, 그런데 결국은 그 간절함이 가닿은 걸까요. 서울에서 똑같은 전시가 다시 열린다지 뭡니까. 서울 전시를 열어준 박물관의 배려에 거듭거듭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서둘러 전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명불허전.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더군요. 이름 없는 석공은 그 옛날 어찌 저 거칠고 메마른 화강암을 쪼개고 깎고 문지르고 다듬었을까. 게다가 무슨 조화를 부려 저리도 선하고 따뜻한 웃음을 차가운 돌에 새겨 넣었을까. 저 환한 웃음을 지어내면서 석공은 마음에 무엇을 품었을까.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빌었을까.

이 돌조각상들은 2001년 강원도 영월군 서면 신천리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김병호 씨가 발견한 겁니다. 발굴 조사 도중 창령(蒼嶺)이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돼 사찰 이름이 창령사라는 사실이 확인됐죠. 절이 있던 자리에 묻혀 있던 돌조각은 317점, 이 가운데 형태가 완전한 것이 64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립춘천박물관이 특별전을 위해 깨지고 부서진 조각을 맞춰 12점을 복원해냅니다.

땅과 같아서 성내지 않고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네.
아라한은 번뇌가 없어
세상에 나고 죽음이 끊어지네.
- <법구경 法句經> 10장, 나한품(羅漢品)

이 돌조각들은 '나한상'입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聖者)를 가리킵니다. 공양받아 마땅한 자, 복을 심는 밭, 진리에 상응하는 자 등으로도 불립니다. 영월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돌조각상의 수효를 헤아려보면 '오백나한'으로 여겨집니다.

인도에 뿌리를 둔 오백나한 신앙은 중국을 거쳐 고려시대에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의 나한 신앙은 '재난 구제'가 주요 목적이었다고 하죠. 세속의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성자의 경지에 올랐으니, 오백 명이나 되는 나한상을 만들어 사찰에 모신 건 결국 '신앙'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고요한 전시장 안에서 명상하듯 앉아 있는 나한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서일까요. 결가부좌하고 앉아 수행하는 나한들의 표정에는 한없이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근엄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미지여서 듬뿍 정이 가는 존재들.

그래서 자세도, 표정도 천차만별이죠. 분명 한 사람이 만든 건 아닐텐데 어쩌면 저리도 다채로운 얼굴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그중에서도 유독 가사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거나 두건을 쓴 나한상이 많이 보입니다. 역시 수행하는 성자의 이미지를 강조해서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머리까지 가사를 덮어쓴 경우를 복두의(覆頭衣) 나한이라고 한답니다. 영월 창령사 터에서 나온 나한상 가운데는 유난히 이런 모습의 나한이 많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남북조시대에 선불교를 전한 달마(達磨)입니다.


마을에 있거나 들판에 있거나
평지에 있거나 높은 언덕에 있거나
아라한이 지나는 곳이라면
어느 누가 그의 은혜 입지 않으리.
- <법구경 法句經> 10장, 나한품(羅漢品)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머물며 나와 실은 다르지 않은 높이에 있는 나한이기에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미술사학자 조은정 선생의 말입니다. 전시(展示)는 말 뜻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죠. 하지만 나한들 사이를 가만히 거닐면서 그 표정과 몸짓을 살피다 보면 나한상을 '관람하는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전시는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비우는' 자리라고. '눈으로 읽는' 관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가장 마음에 드는 나한상 앞에서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깨달음은 결코 먼 곳이 있지 않다고, 네가 곧 깨달은 자라고 말을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자애로운 표정의 나한에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고려의 미소'를 찾았습니다.


■전시 정보
- 제목: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 기간: 2019년 6월 13일까지
-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작품: 창령사 터 출토 석조나한상 8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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