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문 대통령 주치의 뒤에 진짜 주치의? ‘어의’(禦醫)의 세계

입력 2019.06.04 (13:48) 수정 2019.06.0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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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로 강대환(54)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가 위촉됐습니다. 기존 주치의인 송인성(73) 서울대 명예교수가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된 것이죠. 송 교수와 같이 소화기 내과 전문의인 강 교수는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췌담도질환, 췌담도암'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 양산에 머무는 강 교수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있는 문 대통령 주치의를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치의 교체를 계기로, '어의'(御醫)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① 주치의를 서울대병원 의사가 주로 했던 이유

과거 대통령들의 주치의는 서울대 병원 내과 교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헌기 서울대 교수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이 내과를 전공한 서울대 현직 의사들을 주치의로 뒀습니다. 김대중·박근혜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 의사를 주치의로 위촉한 것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민병석 가톨릭의대 교수가 주치의로 일한 것 정도가 예외일 뿐입니다. (민 교수는 가톨릭 의대 교수였지만 학교는 서울의대 졸업)

내과 의사들이 주로 임명되는 것은 내과가 신체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 서울대병원 의사가 주로 임명된 것은 서울대가 우리나라 최고 의료기관이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겁니다.

또 한가지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와의 거리입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청와대에 상주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의 일정은 수행하지만, 평소에는 소속된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 활동을 합니다.

그럼에도 유사시를 대비해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불문율은 있었다고 합니다. YS(김영삼 대통령) 시절 주치의의 고창순 박사는 몇 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대 교수가 주로 주치의가 되는 건 서울대병원이 최고의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라는 점도 고려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② 양산에 머무는 의사가 주치의 가능?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경남 양산에서 진료하는 강대환 교수가 대통령 주치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문제없다는 게 청와대 설명입니다. 강 교수가 1~2주에 한 번씩 와서 대통령의 전반적인 건강을 체크하는 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게 주치의보다 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살피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청와대 의무실장입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인 의무실장은 청와대에 상주하지 않는 주치의를 대신해 항상 대통령 주위를 지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부분 현역 영관급 군의관이 맡습니다. 청와대 의무실에는 의무실장을 비롯해 의무대장, 간호 부장 등의 현역 의료진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대기 체제를 갖춥니다.

③ 진짜 주치의는 따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이런 특성 때문에 진짜 주치의는 의무실장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2017년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 때 의무실장이던 군의관 출신 이선우 실장이 출석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이 실장은 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 대통령에게 태반주사를 처방한 사실을 인정해 파문을 일으킵니다.

현 정부 들어 의무실장을 맡은 사람은 황일웅 박사였죠. 그는 국군의무사령관 출신으로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입니다. (육사 46기로 서울대를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 김대중 정부 때 의무실장을 맡은 데 이어 노무현 정부 때도 의무실장을 했습니다. 재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신임했고 문 대통령의 신망도 두터웠다고 합니다. 황 실장은 지난해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임했고 현재 의무실장도 육사 출신인 신홍경 육군 중령입니다.

대부분 군인이 맡는 의무실장 자리지만 간혹 등장하는 민간인 의무실장은 상당한 의료계 실세였다고 합니다. DJ(김대중 대통령) 때 의무실장을 한 장석일 박사는 서울 성애병원 내과 과장을 하던 1992년 DJ가 단식 투쟁을 할 때 인연을 맺은 뒤 신장 투석을 담당한 측근이었습니다. DJ는 퇴임 6개월 전 장 박사를 주치의로 임명할 정도로 그를 챙겼죠. YS 시절 의무실장을 한 정윤철 박사도 개인적인 인연으로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가 YS의 부름을 받은 경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민간인 의무실장을 취임 초 썼습니다. 대장질환 전문의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원호 교수가 의무실장을 맡았죠. 그는 1년간 병원을 휴직하고 의무실장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사진 출처 : 연합뉴스]

④ 대통령 가족은 어느 병원 갈까

대통령과 가족들이 진료와 치료를 받는 병원은 어디일까요? 필요시 의사가 청와대로 왕진을 가겠지만, 그래도 각종 검사나 치과 치료 등을 위해서는 병원 시설이 필요하기 마련이죠. 이때 이용하는 곳이 바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국군서울지구병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근 기무사 내에 만들어졌으며, 경호 문제 때문에 대통령 일가는 이 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9년 흉탄에 맞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실려 온 곳이 바로 이 서울지구병원입니다.

대통령의 경우 분야별로 20~30명의 담당 의사가 지정돼 있습니다. 자문위원으로 불리는 이 의사들은 각 진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서도 위촉 경쟁이 치열합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의전상 차관급 예우를 받고 해외 순방 시 때로는 공식 수행원에 포함될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많지 않은 수당을 받는 무보수 명예직입니다. 그럼에도 분야별 자문위원 추천권은 대통령 주치의가 누리는 가장 권한 중에 하나죠.


⑤ 역대 대통령, 어떤 사람을 주치의로 썼나

주치의는 개인 건강을 다루는 자리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임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치의로 딸의 시아버지인 최윤식 서울대 교수를 위촉했죠. 최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부정맥을 담당하는 내과 의사였습니다.

주치의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발탁하는 이유는 대통령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YS시절 주치의였던 고창순 박사(당시 서울대 내과 교수)는 문민정부의 상징이었던 매일 새벽 청와대 조깅의 멤버였습니다. 경남고 후배로 YS와 수십 년간 친분을 쌓아온 고 박사는 본인의 건강이 안 좋았죠. 세 차례 암 수술을 받고 이겨낸 것으로 유명한 고 박사는 주치의 시절이던 97년 9월 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한 달 뒤 캐나다로 떠나는 YS가 “고 박사, 니 괘안겠노”라며 말렸지만, 그는 대통령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YS는 "내가 주치의의 주치의"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자신의 고교(경북고) 후배를 주치의로 썼습니다. 최규완 서울대 내과 교수입니다. 그는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초대 주치의가 될 뻔했습니다. 주치의 내정 단계까지 갔다가 최종적으로 강남성모병원장이던 민병석 박사가 낙점을 받았습니다. 2년 뒤인 1983년 대통령 미얀마 순방을 수행했던 민 박사가 아웅 산 테러로 숨지면서 두 의사의 운명은 갈렸습니다.

최규완 박사는 몇 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매년 여름 대통령이 청남대로 2주씩 휴가를 가실 때 수행해 바둑도 두고 테니스 심판도 봐 드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주치의와 대통령의 관계를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DJ의 주치의를 했던 허갑범 연세대 교수는 당뇨병의 권위자였는데, 1997년 대선 과정에서 DJ 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자 직접 진단서를 발급해 논란을 불식시킨 대선 공로자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송인성, 최윤식 전 서울대교수와 이병석 연세대 교수(왼쪽 부터)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송인성, 최윤식 전 서울대교수와 이병석 연세대 교수(왼쪽 부터)

⑥ 한방주치의 제도가 시작된 까닭은

대통령의 건강은 의료계의 핫 이슈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허리 디스크가 고질병이었죠. 당선인 신분이던 2003년 1월 그는 척추수술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적용된 ‘내시경-레이저 병용 수술법’을 놓고 관련 학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척추 내시경을 보면서 레이저를 이용해 수술하는 이 방법은 통증이 적고 간편합니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병원의 신경외과·정형외과 교수들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반대했죠. 의견이 갈렸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이상호 원장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계속 허리가 안 좋았던 노 전 대통령이 한방 주치의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허리 통증과 관련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었습니다. 1호 한방 주치의였던 신현대 박사는 한방 재활의학 전공자였죠. 신 박사는 몇 해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 대통령께서 허리가 안 좋을 때는 1주일에 두세 차례씩 관저에서 침·봉침·전기침·부황 등의 한방 재활치료를 해 드렸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한방 주치의를 별도로 두지 않았습니다만, 한의사계의 요구로 결국 류봉하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한방 주치의로 위촉했고, 이 한방 주치의 제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는 김성수 경희대 한방병원장입니다.

⑦ 비선 의료의 기억

내과 의사들이 독점하던 대통령 주치의 자리에 다른 전공자가 들어온 것은 박근혜 정부 때입니다.

박근혜 정부 첫 주치의였던 이병석 연세대 의대 교수는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세브란스병원장으로 떠난 그의 뒤를 이은 사람도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의사였던 서창석 교수였습니다. 여성 대통령의 특성이 고려됐을 법한 인사였죠. 서 교수는 2014년 9월부터 주치의를 하다가 2016년 2월 돌연 사임합니다.

몇 달 뒤 그는 서울대병원장에 도전해 성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서 원장은 2017년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선 진료를 묵인하고, 비선 의료진들에게 혜택을 줬다는 청문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최순실’ 청문회에 출석한 박근혜 정부 시절 주치의 서창석 교수(왼쪽)와 이선우 의무실장‘최순실’ 청문회에 출석한 박근혜 정부 시절 주치의 서창석 교수(왼쪽)와 이선우 의무실장

⑧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조선 시대 승정원 업무 지침서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는 왕의 건강이 절대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되는 1급 기밀 사항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건강은 국가 안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 중반 YS의 위내시경 검사를 두고 청와대 의료진 간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막 도입되기 시작한 수면 내시경을 할지를 두고 반대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을 써서 대통령을 가수 면 상태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YS는 일반 위내시경을 받았죠.

하지만 80~90년대 이처럼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던 '어의'(御醫) 스토리들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제는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주치의를 맡은 양산 부산대병원 강대환 교수의 임명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 교수는 3일 KBS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통화에서 "임명 전에 문 대통령을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내과 교수+ 개인적 연고'라는 전형적인 대통령 주치의 스펙(?)을 강 교수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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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문 대통령 주치의 뒤에 진짜 주치의? ‘어의’(禦醫)의 세계
    • 입력 2019-06-04 13:48:59
    • 수정2019-06-04 20:35:57
    취재K
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로 강대환(54)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가 위촉됐습니다. 기존 주치의인 송인성(73) 서울대 명예교수가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된 것이죠. 송 교수와 같이 소화기 내과 전문의인 강 교수는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췌담도질환, 췌담도암'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 양산에 머무는 강 교수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있는 문 대통령 주치의를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주치의 교체를 계기로, '어의'(御醫)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① 주치의를 서울대병원 의사가 주로 했던 이유

과거 대통령들의 주치의는 서울대 병원 내과 교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헌기 서울대 교수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이 내과를 전공한 서울대 현직 의사들을 주치의로 뒀습니다. 김대중·박근혜 대통령이 세브란스병원 의사를 주치의로 위촉한 것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민병석 가톨릭의대 교수가 주치의로 일한 것 정도가 예외일 뿐입니다. (민 교수는 가톨릭 의대 교수였지만 학교는 서울의대 졸업)

내과 의사들이 주로 임명되는 것은 내과가 신체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 서울대병원 의사가 주로 임명된 것은 서울대가 우리나라 최고 의료기관이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겁니다.

또 한가지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와의 거리입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청와대에 상주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의 일정은 수행하지만, 평소에는 소속된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 활동을 합니다.

그럼에도 유사시를 대비해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불문율은 있었다고 합니다. YS(김영삼 대통령) 시절 주치의의 고창순 박사는 몇 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대 교수가 주로 주치의가 되는 건 서울대병원이 최고의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라는 점도 고려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② 양산에 머무는 의사가 주치의 가능?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경남 양산에서 진료하는 강대환 교수가 대통령 주치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문제없다는 게 청와대 설명입니다. 강 교수가 1~2주에 한 번씩 와서 대통령의 전반적인 건강을 체크하는 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게 주치의보다 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살피는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청와대 의무실장입니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인 의무실장은 청와대에 상주하지 않는 주치의를 대신해 항상 대통령 주위를 지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부분 현역 영관급 군의관이 맡습니다. 청와대 의무실에는 의무실장을 비롯해 의무대장, 간호 부장 등의 현역 의료진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대기 체제를 갖춥니다.

③ 진짜 주치의는 따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이런 특성 때문에 진짜 주치의는 의무실장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2017년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 때 의무실장이던 군의관 출신 이선우 실장이 출석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이 실장은 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 대통령에게 태반주사를 처방한 사실을 인정해 파문을 일으킵니다.

현 정부 들어 의무실장을 맡은 사람은 황일웅 박사였죠. 그는 국군의무사령관 출신으로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입니다. (육사 46기로 서울대를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 김대중 정부 때 의무실장을 맡은 데 이어 노무현 정부 때도 의무실장을 했습니다. 재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크게 신임했고 문 대통령의 신망도 두터웠다고 합니다. 황 실장은 지난해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임했고 현재 의무실장도 육사 출신인 신홍경 육군 중령입니다.

대부분 군인이 맡는 의무실장 자리지만 간혹 등장하는 민간인 의무실장은 상당한 의료계 실세였다고 합니다. DJ(김대중 대통령) 때 의무실장을 한 장석일 박사는 서울 성애병원 내과 과장을 하던 1992년 DJ가 단식 투쟁을 할 때 인연을 맺은 뒤 신장 투석을 담당한 측근이었습니다. DJ는 퇴임 6개월 전 장 박사를 주치의로 임명할 정도로 그를 챙겼죠. YS 시절 의무실장을 한 정윤철 박사도 개인적인 인연으로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가 YS의 부름을 받은 경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민간인 의무실장을 취임 초 썼습니다. 대장질환 전문의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원호 교수가 의무실장을 맡았죠. 그는 1년간 병원을 휴직하고 의무실장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④ 대통령 가족은 어느 병원 갈까

대통령과 가족들이 진료와 치료를 받는 병원은 어디일까요? 필요시 의사가 청와대로 왕진을 가겠지만, 그래도 각종 검사나 치과 치료 등을 위해서는 병원 시설이 필요하기 마련이죠. 이때 이용하는 곳이 바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국군서울지구병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근 기무사 내에 만들어졌으며, 경호 문제 때문에 대통령 일가는 이 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9년 흉탄에 맞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실려 온 곳이 바로 이 서울지구병원입니다.

대통령의 경우 분야별로 20~30명의 담당 의사가 지정돼 있습니다. 자문위원으로 불리는 이 의사들은 각 진료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서도 위촉 경쟁이 치열합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의전상 차관급 예우를 받고 해외 순방 시 때로는 공식 수행원에 포함될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많지 않은 수당을 받는 무보수 명예직입니다. 그럼에도 분야별 자문위원 추천권은 대통령 주치의가 누리는 가장 권한 중에 하나죠.


⑤ 역대 대통령, 어떤 사람을 주치의로 썼나

주치의는 개인 건강을 다루는 자리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임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치의로 딸의 시아버지인 최윤식 서울대 교수를 위촉했죠. 최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부정맥을 담당하는 내과 의사였습니다.

주치의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발탁하는 이유는 대통령과 함께해야 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YS시절 주치의였던 고창순 박사(당시 서울대 내과 교수)는 문민정부의 상징이었던 매일 새벽 청와대 조깅의 멤버였습니다. 경남고 후배로 YS와 수십 년간 친분을 쌓아온 고 박사는 본인의 건강이 안 좋았죠. 세 차례 암 수술을 받고 이겨낸 것으로 유명한 고 박사는 주치의 시절이던 97년 9월 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한 달 뒤 캐나다로 떠나는 YS가 “고 박사, 니 괘안겠노”라며 말렸지만, 그는 대통령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YS는 "내가 주치의의 주치의"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자신의 고교(경북고) 후배를 주치의로 썼습니다. 최규완 서울대 내과 교수입니다. 그는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초대 주치의가 될 뻔했습니다. 주치의 내정 단계까지 갔다가 최종적으로 강남성모병원장이던 민병석 박사가 낙점을 받았습니다. 2년 뒤인 1983년 대통령 미얀마 순방을 수행했던 민 박사가 아웅 산 테러로 숨지면서 두 의사의 운명은 갈렸습니다.

최규완 박사는 몇 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매년 여름 대통령이 청남대로 2주씩 휴가를 가실 때 수행해 바둑도 두고 테니스 심판도 봐 드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주치의와 대통령의 관계를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DJ의 주치의를 했던 허갑범 연세대 교수는 당뇨병의 권위자였는데, 1997년 대선 과정에서 DJ 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자 직접 진단서를 발급해 논란을 불식시킨 대선 공로자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송인성, 최윤식 전 서울대교수와 이병석 연세대 교수(왼쪽 부터)
⑥ 한방주치의 제도가 시작된 까닭은

대통령의 건강은 의료계의 핫 이슈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허리 디스크가 고질병이었죠. 당선인 신분이던 2003년 1월 그는 척추수술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적용된 ‘내시경-레이저 병용 수술법’을 놓고 관련 학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척추 내시경을 보면서 레이저를 이용해 수술하는 이 방법은 통증이 적고 간편합니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병원의 신경외과·정형외과 교수들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반대했죠. 의견이 갈렸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이상호 원장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계속 허리가 안 좋았던 노 전 대통령이 한방 주치의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허리 통증과 관련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었습니다. 1호 한방 주치의였던 신현대 박사는 한방 재활의학 전공자였죠. 신 박사는 몇 해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 대통령께서 허리가 안 좋을 때는 1주일에 두세 차례씩 관저에서 침·봉침·전기침·부황 등의 한방 재활치료를 해 드렸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한방 주치의를 별도로 두지 않았습니다만, 한의사계의 요구로 결국 류봉하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한방 주치의로 위촉했고, 이 한방 주치의 제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는 김성수 경희대 한방병원장입니다.

⑦ 비선 의료의 기억

내과 의사들이 독점하던 대통령 주치의 자리에 다른 전공자가 들어온 것은 박근혜 정부 때입니다.

박근혜 정부 첫 주치의였던 이병석 연세대 의대 교수는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세브란스병원장으로 떠난 그의 뒤를 이은 사람도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의사였던 서창석 교수였습니다. 여성 대통령의 특성이 고려됐을 법한 인사였죠. 서 교수는 2014년 9월부터 주치의를 하다가 2016년 2월 돌연 사임합니다.

몇 달 뒤 그는 서울대병원장에 도전해 성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서 원장은 2017년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선 진료를 묵인하고, 비선 의료진들에게 혜택을 줬다는 청문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최순실’ 청문회에 출석한 박근혜 정부 시절 주치의 서창석 교수(왼쪽)와 이선우 의무실장
⑧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조선 시대 승정원 업무 지침서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는 왕의 건강이 절대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되는 1급 기밀 사항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건강은 국가 안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 중반 YS의 위내시경 검사를 두고 청와대 의료진 간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막 도입되기 시작한 수면 내시경을 할지를 두고 반대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을 써서 대통령을 가수 면 상태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YS는 일반 위내시경을 받았죠.

하지만 80~90년대 이처럼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던 '어의'(御醫) 스토리들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제는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주치의를 맡은 양산 부산대병원 강대환 교수의 임명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 교수는 3일 KBS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통화에서 "임명 전에 문 대통령을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내과 교수+ 개인적 연고'라는 전형적인 대통령 주치의 스펙(?)을 강 교수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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