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가야 무덤에 낙타가?…5세기 토기가 내는 수수께끼

입력 2019.06.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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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토기가 어떤 동물의 모양으로 보이십니까? 경남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 삼한문화재연구원의 답은 '낙타'입니다. '정말 낙타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무언가의 모양을 본뜬 상형토기는 가야 무덤에서 종종 발굴되는데, 동물 모양은 거의 대부분 오리입니다. 낙동강 유역의 유적에서 주로 발굴되기 때문에 실제 강에서 살던 오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은 것으로 보아 망자의 혼을 하늘나라로 안내하는 역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낙타가 맞는지 미심쩍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낙타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고려 초기인 942년입니다. 태조 왕건이 거란으로부터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받았는데, 거란을 마땅치 않게 여긴 왕건이 선물 받은 낙타를 다리 밑에 묶어두고 굶어 죽게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토기가 낙타 모양이 맞다면 낙타가 우리 역사에서 등장하는 시기가 5백 년 정도 앞당겨지는 셈입니다.

토기의 머리 부분을 확대한 모습과 부리가 길게 묘사된 오리 모양 가야 토기.토기의 머리 부분을 확대한 모습과 부리가 길게 묘사된 오리 모양 가야 토기.

그렇다면, 이번 토기가 오리가 아닌 낙타인 이유는 뭘까? 토기의 머리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살짝 벌어진 입과 그 위로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확인됩니다. 가야 시대의 다른 오리 모양 토기에서는 넓적한 부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 이번 토기가 오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굴을 진행한 삼한문화재연구원의 양하석 부원장은 "머리 부분에 파손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리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면서 머리와 목 뒤쪽으로는 말의 갈기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부분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오리 모양 토기와는 다른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번 토기를 어떤 동물로 봐야 할지를 놓고 연구원에서도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고 합니다. 양 부원장은 "여러 가지 동물을 후보로 놓고 논의를 진행한 결과, 이견이 있긴 했지만 낙타일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라가야가 당시 질 좋은 철 생산지로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와 무역을 했던 만큼 낙타를 직접 본 가야인이 토기에 그 모양을 본떴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가야를 '변한'으로 지칭하면서 철을 바탕으로 중국의 낙랑군과 대방군, 일본 등과 교역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려사에 등장하는 낙타가 거란을 통해서 들어왔다면 지금의 몽골지역의 낙타였을 것이고, 가야인이 낙타를 봤다면 낙랑군이나 대방군을 통해 전래된 비슷한 지역의 낙타였을 수 있습니다. 양 부원장은 "발굴 직후인 만큼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낙타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가야 토기로서 오리가 아닌 다른 동물 모양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창원 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토기. [사진 제공:문화재청]창원 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토기. [사진 제공:문화재청]

이번 발굴에서는 '낙타' 토기 외에도 무덤 600여 기의 흔적과 함께 유물 만여 점이 출토됐습니다. 아라가야의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인 데다 유물의 양도 방대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배 모양 토기도 이번에 발굴된 것인데 배의 구조가 꽤 그럴듯합니다. 또, 노를 걸어놓는 고리가 묘사된 다른 토기와 달리 난간 부분이 매끈한 것으로 보아 돛을 달고 먼 거리를 항해하는 교역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쇠를 제련하기 위한 도구들과 도끼 모양의 덩이쇠들이 함께 나온 것도 철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와 교역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뒷받침해주는 발견입니다.

낙타를 '닮은' 토기 한 점이 '내가 누구인지 맞혀보라'고 수수께끼를 내고 있습니다. 그 답은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고대왕국 가야역사의 새로운 구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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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가야 무덤에 낙타가?…5세기 토기가 내는 수수께끼
    • 입력 2019-06-04 14:03:59
    취재K
사진 속 토기가 어떤 동물의 모양으로 보이십니까? 경남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 삼한문화재연구원의 답은 '낙타'입니다. '정말 낙타일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무언가의 모양을 본뜬 상형토기는 가야 무덤에서 종종 발굴되는데, 동물 모양은 거의 대부분 오리입니다. 낙동강 유역의 유적에서 주로 발굴되기 때문에 실제 강에서 살던 오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은 것으로 보아 망자의 혼을 하늘나라로 안내하는 역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낙타가 맞는지 미심쩍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낙타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고려 초기인 942년입니다. 태조 왕건이 거란으로부터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받았는데, 거란을 마땅치 않게 여긴 왕건이 선물 받은 낙타를 다리 밑에 묶어두고 굶어 죽게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토기가 낙타 모양이 맞다면 낙타가 우리 역사에서 등장하는 시기가 5백 년 정도 앞당겨지는 셈입니다.

토기의 머리 부분을 확대한 모습과 부리가 길게 묘사된 오리 모양 가야 토기.
그렇다면, 이번 토기가 오리가 아닌 낙타인 이유는 뭘까? 토기의 머리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살짝 벌어진 입과 그 위로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확인됩니다. 가야 시대의 다른 오리 모양 토기에서는 넓적한 부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 이번 토기가 오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굴을 진행한 삼한문화재연구원의 양하석 부원장은 "머리 부분에 파손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리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면서 머리와 목 뒤쪽으로는 말의 갈기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부분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오리 모양 토기와는 다른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번 토기를 어떤 동물로 봐야 할지를 놓고 연구원에서도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고 합니다. 양 부원장은 "여러 가지 동물을 후보로 놓고 논의를 진행한 결과, 이견이 있긴 했지만 낙타일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라가야가 당시 질 좋은 철 생산지로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와 무역을 했던 만큼 낙타를 직접 본 가야인이 토기에 그 모양을 본떴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가야를 '변한'으로 지칭하면서 철을 바탕으로 중국의 낙랑군과 대방군, 일본 등과 교역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려사에 등장하는 낙타가 거란을 통해서 들어왔다면 지금의 몽골지역의 낙타였을 것이고, 가야인이 낙타를 봤다면 낙랑군이나 대방군을 통해 전래된 비슷한 지역의 낙타였을 수 있습니다. 양 부원장은 "발굴 직후인 만큼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낙타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가야 토기로서 오리가 아닌 다른 동물 모양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창원 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토기. [사진 제공:문화재청]
이번 발굴에서는 '낙타' 토기 외에도 무덤 600여 기의 흔적과 함께 유물 만여 점이 출토됐습니다. 아라가야의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인 데다 유물의 양도 방대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배 모양 토기도 이번에 발굴된 것인데 배의 구조가 꽤 그럴듯합니다. 또, 노를 걸어놓는 고리가 묘사된 다른 토기와 달리 난간 부분이 매끈한 것으로 보아 돛을 달고 먼 거리를 항해하는 교역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쇠를 제련하기 위한 도구들과 도끼 모양의 덩이쇠들이 함께 나온 것도 철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와 교역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뒷받침해주는 발견입니다.

낙타를 '닮은' 토기 한 점이 '내가 누구인지 맞혀보라'고 수수께끼를 내고 있습니다. 그 답은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고대왕국 가야역사의 새로운 구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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