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최강시사] 박지원 “이희호 여사, DJ 옳은 길 가도록 채찍질한 분”

입력 2019.06.11 (08:48) 수정 2019.06.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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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여사 소천, 어머님 가신 것처럼 허전
- 의사의 딸로 최고 엘리트 코스 밟고 여성운동 매진. DJ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
- DJ 투옥 등 역경 속에서 유가협 구성해 저항했고, 남편이 민주화의 길 가도록 지켜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1>
■ 방송시간 : 6월 11일(화) 7:35~7:4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박지원 의원 (민주평화당)



▷ 김경래 : 지난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시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신 분이죠, 이희호 여사께서 별세했습니다. 평소 고인하고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계시죠.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연결해서 관련 얘기 잠깐이나마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지원 : 안녕하세요? 박지원입니다.

▷ 김경래 : 의원님이 페이스북에다가 사실 조금 위독하셨다가 이희호 여사가 조금 회복 중이다, 이렇게도 알려주셨었는데 이렇게 또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네요. 어제 상황이 어땠습니까?

▶ 박지원 : 아무래도 고령이셨고 약 3개월 이상 입원해 계셔서 노쇠해지신 거죠. 특히 지난 50일 전 김홍일 의원 상중에 굉장히 위기가 있었습니다만 겹상을 피하기 위해서 의료진에서 응급조치를 해서 회복이 되셨어요. 그런데 50여일간 좋았다, 나빴다 그냥 그런 상태를 유지하시다가 다행히 김홍일 의원이 5.18 국립묘지로 이장한 그날 밤에 좀 위기가 오셔서 저도 목포에서 9일 새벽 3시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만 이틀 만에 소천하셨습니다.

▷ 김경래 : 박지원 의원께서도 굉장히 각별한 사이시잖아요.

▶ 박지원 : 그렇죠. 오랫동안 모셨고.

▷ 김경래 : 이렇게 질문하는 게 항상 부담스럽긴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 박지원 : 큰별이 가셨고 어머님이 가신 것처럼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슬프기보다는 과거 여러 가지 일들이 회상돼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 김경래 :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좀 넘어서는 분이다, 이렇게들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박지원 의원께서 간단하게 그래도 이희호 여사님의 모습을 설명해 주시죠, 어떤 분이셨는지.

▶ 박지원 : 금년 97세시니까 과거 부잣집 딸, 당시만 하더라도 의사가 거의 없었잖아요. 의사 선생님을 아버지로 두신 독실한 기독교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서 이화여고, 여화여대, 서울대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여성운동에 매진해서 YWCA 총무를 역임하시다가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셔서 주위에서 모두 반대를 했지만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원한 인생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였죠.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태어났다 할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여러 가지 영향력을 끼치신 분입니다. 그렇게 항상 김대중 대통령이 어디를 가시든 함께 가시고 꼭 동석을 하시지만 몇 시간씩 대화를 하시더라도 이희호 여사님은 절대 그 대화에 섞이지 않고 가만히 듣고 계시는 그런 절제된 그런 분이셨다고 기억을 합니다.

▷ 김경래 : 신문기사에서 이희호 여사가 농담삼아 했던 말씀이 되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왜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을 했느냐, 그랬더니 잘생겨서 결혼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으로서 내조도 그렇지만 민주화운동이나 이런 부분에도 꽤 존재감이 크셨던 분 아니겠습니까?

▶ 박지원 : 뭐 원체 결혼하기 전에는 서른여섯에 하셨는데요. 여성운동을 특히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가 결혼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역적이 파란만장하니까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고 특히 구속이 되니까 가족들과 함께 유가협을 구성해서 끝까지 저항하고 또 누구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신군부에 의해서 감옥에 있을 때 신군부 주역의 한 사람인 이학봉 대령이 찾아와서 대통령만 하지 않는다고 하면 뭐든지 다 시켜주고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유혹에 넘어갈 그런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때 사모님, 이희호 여사가 생각나서 어떤 경우에도 그러한 배신을 할 수 없었다 할 정도로 강직하게 이희호 여사님은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옳은 길, 민주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했고 하나도 일탈하지 않도록 지켜본 지켜준 그런 분이어서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박 의원님, 혹시 이희호 여사께서 유언이라든지 이런 걸 좀 남기신 게 있으신가요? 어떻습니까?

▶ 박지원 : 오늘 남겨서 11시에 우리 김성재 국민장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연세대학교 장례장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렇군요. 조문을 갈 사람은 오늘 오후 2시부터는 조문을 받는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렇게 보도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 박지원 : 네, 지금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이 준비가 되려면 아무래도 오후 2시부터 외부인사들 조문을 받게 되고 11시에 유언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밝히게 될 것입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밤사이에 굉장히 경황이 없으실 텐데 새벽에 이렇게 연결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박지원 : 네.

▷ 김경래 : 박지원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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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1 08:48:38
    • 수정2019-06-11 19:13:36
    최강시사
- 이희호 여사 소천, 어머님 가신 것처럼 허전
- 의사의 딸로 최고 엘리트 코스 밟고 여성운동 매진. DJ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
- DJ 투옥 등 역경 속에서 유가협 구성해 저항했고, 남편이 민주화의 길 가도록 지켜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1>
■ 방송시간 : 6월 11일(화) 7:35~7:4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박지원 의원 (민주평화당)



▷ 김경래 : 지난밤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시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신 분이죠, 이희호 여사께서 별세했습니다. 평소 고인하고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계시죠.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연결해서 관련 얘기 잠깐이나마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지원 : 안녕하세요? 박지원입니다.

▷ 김경래 : 의원님이 페이스북에다가 사실 조금 위독하셨다가 이희호 여사가 조금 회복 중이다, 이렇게도 알려주셨었는데 이렇게 또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네요. 어제 상황이 어땠습니까?

▶ 박지원 : 아무래도 고령이셨고 약 3개월 이상 입원해 계셔서 노쇠해지신 거죠. 특히 지난 50일 전 김홍일 의원 상중에 굉장히 위기가 있었습니다만 겹상을 피하기 위해서 의료진에서 응급조치를 해서 회복이 되셨어요. 그런데 50여일간 좋았다, 나빴다 그냥 그런 상태를 유지하시다가 다행히 김홍일 의원이 5.18 국립묘지로 이장한 그날 밤에 좀 위기가 오셔서 저도 목포에서 9일 새벽 3시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만 이틀 만에 소천하셨습니다.

▷ 김경래 : 박지원 의원께서도 굉장히 각별한 사이시잖아요.

▶ 박지원 : 그렇죠. 오랫동안 모셨고.

▷ 김경래 : 이렇게 질문하는 게 항상 부담스럽긴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 박지원 : 큰별이 가셨고 어머님이 가신 것처럼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슬프기보다는 과거 여러 가지 일들이 회상돼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 김경래 :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좀 넘어서는 분이다, 이렇게들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박지원 의원께서 간단하게 그래도 이희호 여사님의 모습을 설명해 주시죠, 어떤 분이셨는지.

▶ 박지원 : 금년 97세시니까 과거 부잣집 딸, 당시만 하더라도 의사가 거의 없었잖아요. 의사 선생님을 아버지로 두신 독실한 기독교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서 이화여고, 여화여대, 서울대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여성운동에 매진해서 YWCA 총무를 역임하시다가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셔서 주위에서 모두 반대를 했지만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원한 인생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였죠.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태어났다 할 정도로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여러 가지 영향력을 끼치신 분입니다. 그렇게 항상 김대중 대통령이 어디를 가시든 함께 가시고 꼭 동석을 하시지만 몇 시간씩 대화를 하시더라도 이희호 여사님은 절대 그 대화에 섞이지 않고 가만히 듣고 계시는 그런 절제된 그런 분이셨다고 기억을 합니다.

▷ 김경래 : 신문기사에서 이희호 여사가 농담삼아 했던 말씀이 되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왜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을 했느냐, 그랬더니 잘생겨서 결혼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퍼스트 레이디, 영부인으로서 내조도 그렇지만 민주화운동이나 이런 부분에도 꽤 존재감이 크셨던 분 아니겠습니까?

▶ 박지원 : 뭐 원체 결혼하기 전에는 서른여섯에 하셨는데요. 여성운동을 특히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가 결혼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역적이 파란만장하니까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고 특히 구속이 되니까 가족들과 함께 유가협을 구성해서 끝까지 저항하고 또 누구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신군부에 의해서 감옥에 있을 때 신군부 주역의 한 사람인 이학봉 대령이 찾아와서 대통령만 하지 않는다고 하면 뭐든지 다 시켜주고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유혹에 넘어갈 그런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때 사모님, 이희호 여사가 생각나서 어떤 경우에도 그러한 배신을 할 수 없었다 할 정도로 강직하게 이희호 여사님은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옳은 길, 민주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채찍질을 했고 하나도 일탈하지 않도록 지켜본 지켜준 그런 분이어서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박 의원님, 혹시 이희호 여사께서 유언이라든지 이런 걸 좀 남기신 게 있으신가요? 어떻습니까?

▶ 박지원 : 오늘 남겨서 11시에 우리 김성재 국민장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연세대학교 장례장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렇군요. 조문을 갈 사람은 오늘 오후 2시부터는 조문을 받는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이렇게 보도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 박지원 : 네, 지금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이 준비가 되려면 아무래도 오후 2시부터 외부인사들 조문을 받게 되고 11시에 유언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밝히게 될 것입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밤사이에 굉장히 경황이 없으실 텐데 새벽에 이렇게 연결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박지원 : 네.

▷ 김경래 : 박지원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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