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묘비에 “나 대신 다른 사람이”…유가족 울린 현충원

입력 2019.06.11 (20:01) 수정 2019.06.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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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비 옆, 삽으로 파낸 구덩이가 생겼다.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비 옆, 삽으로 파낸 구덩이가 생겼다.

현충일 이틀 뒤인 지난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한 국가유공자의 묘비 옆이 삽으로 파헤쳐졌습니다. 유골이 제대로 묻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고이 잠든 현충원에서 어쩌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내 남편 이름을 보고도 묘비를 잘못 찾은 줄 알았어요"

2010년 국가유공자 남편과 사별하고 유해를 대전현충원에 안장한 64살 장 모 씨는 현충일을 맞아 지난 8일 가족과 함께 남편 묘를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유공자의 배우자가 사망하면 유골을 묘비 옆에 안장하고 묘비에 배우자 이름을 함께 새기는데 배우자 자리에 전혀 모르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장 씨는 본인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배우자 자리에 이름이 새겨진 것도 모자라 엉뚱한 이름이 새겨진 것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현충원 측에 항의했고 현충원은 그제야 뒤늦게 경위 파악에 나섰습니다.

묘비에 잘못 새겨진 글자를 현충원 측이 임시로 가려 놓았다.묘비에 잘못 새겨진 글자를 현충원 측이 임시로 가려 놓았다.

묘비에 글자 새기는 외주업체가 묘비 번호 착각현충원은 '나 몰라라'

현충원이 확인한 결과 지난 4월, 외주업체가 묘비에 글자를 새기면서 묘비 번호를 착각해 벌어진 일로 드러났습니다.

12만 위 이상이 안장된 대전현충원에서는 외주업체가 3주에 한 번씩 100개 안팎의 묘비에 글자를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일어난 날도 해당 업체가 현충원으로부터 묘비 번호와 새겨야 할 글자를 넘겨받아 93개 묘비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는데 작업자가 36563번 묘비에 새겼어야 할 이름을 36536번에 새겼던 겁니다.

이렇게 작업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외주업체에 일을 맡긴 현충원은 그동안 오류가 없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고 이름이 잘못 새겨진 묘비는 두 달 넘게 방치됐다가 결국 유족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현충일에 유족 두 번 울린 현충원

현충원 관계자는 실수가 발생한 경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해당 업체가 제대로 확인을 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업체에 엄중히 경고하겠다"는 등 책임 회피성 답변만 내놨습니다.

유족들 역시 진심 어린 사과 대신 '묘비를 교체해주면 그만 아니냐'는 식의 현충원 대응이 가장 큰 상처로 다가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현충원 행정서비스헌장현충원 행정서비스헌장

현충원은 행정서비스헌장에서 현충원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안식처로 가꾸고 아름다운 보훈의 성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새겨진 묘비는 유족들이 6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요구한 끝에서야 교체됐고 호국보훈의 달, 누구보다 위로받아야 할 유족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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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남편 묘비에 “나 대신 다른 사람이”…유가족 울린 현충원
    • 입력 2019-06-11 20:01:41
    • 수정2019-06-11 20:01:59
    취재K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유공자 묘비 옆, 삽으로 파낸 구덩이가 생겼다. 현충일 이틀 뒤인 지난 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한 국가유공자의 묘비 옆이 삽으로 파헤쳐졌습니다. 유골이 제대로 묻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고이 잠든 현충원에서 어쩌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내 남편 이름을 보고도 묘비를 잘못 찾은 줄 알았어요" 2010년 국가유공자 남편과 사별하고 유해를 대전현충원에 안장한 64살 장 모 씨는 현충일을 맞아 지난 8일 가족과 함께 남편 묘를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유공자의 배우자가 사망하면 유골을 묘비 옆에 안장하고 묘비에 배우자 이름을 함께 새기는데 배우자 자리에 전혀 모르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장 씨는 본인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배우자 자리에 이름이 새겨진 것도 모자라 엉뚱한 이름이 새겨진 것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모독이라며 현충원 측에 항의했고 현충원은 그제야 뒤늦게 경위 파악에 나섰습니다. 묘비에 잘못 새겨진 글자를 현충원 측이 임시로 가려 놓았다. 묘비에 글자 새기는 외주업체가 묘비 번호 착각현충원은 '나 몰라라' 현충원이 확인한 결과 지난 4월, 외주업체가 묘비에 글자를 새기면서 묘비 번호를 착각해 벌어진 일로 드러났습니다. 12만 위 이상이 안장된 대전현충원에서는 외주업체가 3주에 한 번씩 100개 안팎의 묘비에 글자를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일어난 날도 해당 업체가 현충원으로부터 묘비 번호와 새겨야 할 글자를 넘겨받아 93개 묘비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는데 작업자가 36563번 묘비에 새겼어야 할 이름을 36536번에 새겼던 겁니다. 이렇게 작업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외주업체에 일을 맡긴 현충원은 그동안 오류가 없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고 이름이 잘못 새겨진 묘비는 두 달 넘게 방치됐다가 결국 유족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현충일에 유족 두 번 울린 현충원 현충원 관계자는 실수가 발생한 경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해당 업체가 제대로 확인을 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업체에 엄중히 경고하겠다"는 등 책임 회피성 답변만 내놨습니다. 유족들 역시 진심 어린 사과 대신 '묘비를 교체해주면 그만 아니냐'는 식의 현충원 대응이 가장 큰 상처로 다가왔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현충원 행정서비스헌장 현충원은 행정서비스헌장에서 현충원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안식처로 가꾸고 아름다운 보훈의 성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새겨진 묘비는 유족들이 6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요구한 끝에서야 교체됐고 호국보훈의 달, 누구보다 위로받아야 할 유족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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