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와 광주전남…민주주의의 동반자
입력 2019.06.11 (21:54)
수정 2019.06.12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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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이희호 여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광주전남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광주가 DJ의 목숨을
구했다고 언급하는 등
5.18 정신 계승과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80년 5·18 당시
옥중에서 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7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1987년 9월>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 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 동지인 김 전 대통령의 옆을
변함 없이 지켰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면서
광주가 남편의 목숨을 구했다고
적었습니다.
광주에서 살상을 한 신군부가
김대중을 결코 죽일 수 없었고,
김대중 역시 피 흘린 광주를
배반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여사는
고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5월 영령들을 언급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힘써달라고
젊은이들에게 말해왔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지난 2011년>
"광주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열심히
우리나라가 민주화, 단단한 민주화가 이뤄지기
바라고 위에서 힘쓰게 할 줄로 압니다.
이 여사는 앞서
67년 7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고 김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시작으로
험난한 정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2011년 KBS 인터뷰>
"국회의원 선거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목포에) 내려오셨어요.
김대중은 떨어뜨려야 한다고..
목포사람들이 유세할 적에 참 많이 모였어요."
역사적 고비마다 DJ에게
용기와 신념을 불어넣었던 이희호 여사,
DJ의 정치적 동지로
민주화 투쟁의 큰 별로
광주전남 지역민에게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이희호 여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광주전남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광주가 DJ의 목숨을
구했다고 언급하는 등
5.18 정신 계승과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80년 5·18 당시
옥중에서 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7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1987년 9월>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 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 동지인 김 전 대통령의 옆을
변함 없이 지켰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면서
광주가 남편의 목숨을 구했다고
적었습니다.
광주에서 살상을 한 신군부가
김대중을 결코 죽일 수 없었고,
김대중 역시 피 흘린 광주를
배반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여사는
고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5월 영령들을 언급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힘써달라고
젊은이들에게 말해왔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지난 2011년>
"광주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열심히
우리나라가 민주화, 단단한 민주화가 이뤄지기
바라고 위에서 힘쓰게 할 줄로 압니다.
이 여사는 앞서
67년 7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고 김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시작으로
험난한 정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2011년 KBS 인터뷰>
"국회의원 선거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목포에) 내려오셨어요.
김대중은 떨어뜨려야 한다고..
목포사람들이 유세할 적에 참 많이 모였어요."
역사적 고비마다 DJ에게
용기와 신념을 불어넣었던 이희호 여사,
DJ의 정치적 동지로
민주화 투쟁의 큰 별로
광주전남 지역민에게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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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와 광주전남…민주주의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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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6-11 21:54:43
- 수정2019-06-12 03: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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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광주전남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광주가 DJ의 목숨을
구했다고 언급하는 등
5.18 정신 계승과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습니다.
김해정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80년 5·18 당시
옥중에서 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7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1987년 9월>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 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 동지인 김 전 대통령의 옆을
변함 없이 지켰습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면서
광주가 남편의 목숨을 구했다고
적었습니다.
광주에서 살상을 한 신군부가
김대중을 결코 죽일 수 없었고,
김대중 역시 피 흘린 광주를
배반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여사는
고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5월 영령들을 언급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힘써달라고
젊은이들에게 말해왔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지난 2011년>
"광주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열심히
우리나라가 민주화, 단단한 민주화가 이뤄지기
바라고 위에서 힘쓰게 할 줄로 압니다.
이 여사는 앞서
67년 7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고 김 전 대통령 지지 연설을 시작으로
험난한 정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故 이희호 여사 / 2011년 KBS 인터뷰>
"국회의원 선거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목포에) 내려오셨어요.
김대중은 떨어뜨려야 한다고..
목포사람들이 유세할 적에 참 많이 모였어요."
역사적 고비마다 DJ에게
용기와 신념을 불어넣었던 이희호 여사,
DJ의 정치적 동지로
민주화 투쟁의 큰 별로
광주전남 지역민에게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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